소금골렘 요리사의 마지막 레시피

3화: 아버지 레시피에 적힌 소금의 비율
“어머니에게 국을 끓이지 말라고 전해.”
라온은 모자 안쪽의 문장을 다시 읽었다. 붉은 실은 손가락에 달라붙을 만큼 젖어 있었다. 선원 모자를 알아본 바루가 문을 닫으려 했지만 라온이 막았다.
“미란 씨가 수색선에 갔어. 누가 이걸 보낸 건지 알아야 해.”
“문밖에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다는 건 방금 왔다는 뜻이야.”
라온은 모자를 들고 부두 쪽으로 달렸다. 폭풍은 잦아들었지만, 물이 빠진 선착장에는 어젯밤의 파편이 남아 있었다. 미란은 수색선 난간에 매달린 채 선원들과 말다툼 중이었다.
“내 아들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부터 말해!”
“신호가 끊겼다고 했잖아요. 해가 뜨면 다시 찾겠다고!”
라온은 모자를 내밀었다. “이게 식당 앞에 떨어져 있었어요.”
미란의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졌다. 그녀는 안감을 보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 글씨는 성우 글씨가 아니야.”
“그럼 누가 쓴 거예요?”
“모르겠어. 하지만 그 애는 내게 국을 끓이지 말라고 하지 않을 거야. 어릴 때부터 내가 끓인 국을 제일 좋아했으니까.”
배 선장 고필수가 말을 끊었다. “누군가 돌아오지 말라는 뜻으로 쓴 것 같습니다.”
“누가요?”
“그건 배를 찾으면 알겠죠.”
그가 수색선에 오르려는 순간, 뒤쪽 골목에서 소금 자루를 실은 수레가 굴러나왔다. 수레를 끄는 남자는 얼굴을 모자로 가렸고, 수레 옆면에는 왕실 창고의 봉인이 찍혀 있었다. 미란이 맨 먼저 알아차렸다.
“저 봉인은 폐쇄된 창고에서만 쓰는 거야.”
필수가 수레 길을 막았다. “거기 서시오.”
남자는 고삐를 당겨 방향을 틀었다. 수레 바퀴가 젖은 판자 위에서 미끄러졌다. 라온이 달려가 고삐를 잡았지만, 수레가 몸을 끌고 갔다. 바닥에서 소금 자루 하나가 떨어져 터졌다. 검은빛 알갱이와 함께 붉은 실 조각이 쏟아졌다.
“이 실, 모자에 있던 것과 같아요!”
남자는 수레에서 뛰어내려 창고 쪽으로 달아났다. 필수와 선원들이 뒤쫓았다. 라온은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바루가 수레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의 몸은 무게를 받치느라 어깨 결정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괜찮아?”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 말은 괜찮지 않다는 뜻처럼 들려.”
라온은 그의 팔에 붙은 소금 조각을 주웠다. 조각 안쪽에는 숫자와 문장이 더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3:1:2. 잃은 맛은 손님에게 묻는다.’ 아버지의 글씨였다.
“레시피 비율이야.”
“조석소금 세, 말린 해초 하나, 물 둘.”
“왜 마지막 숫자가 물이지?”
바루는 대답하지 못했다. 라온은 자루에 든 검은 소금을 살폈다. 왕실 봉인은 새것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찍힌 봉인 위에 누군가 붉은 실을 감아 다시 묶었다. “이건 왕실에서 가져온 게 아니야. 누군가 폐창고 재고를 빼돌리고 있어.”
필수가 돌아왔다. “수레꾼은 놓쳤습니다. 창고 쪽에 사람 그림자만 남았어요.”
“모자 메시지도 그쪽 사람이 보냈을까요?”
“그럴 수 있죠. 성우가 타고 나간 배도 어제 저쪽으로 지나갔다는 목격이 있습니다.”
미란은 수색선에 오르려다 멈췄다. “내가 가면 더 방해가 될까?”
“아들이 실종된 선원과 직접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필수가 말했다. “하지만 배가 돌아오면 어머니를 찾을 겁니다. 여기 계세요.”
미란은 고개를 저었다. “또 기다리기만 하라는 말은 싫어. 식당으로 돌아가서 그 애가 먹을 국을 끓일 거야. 이번엔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게.”
라온은 그 말을 듣고 모자를 건넸다. “메시지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국은 끓여도 돼요. 성우 씨가 돌아올 때까지 따뜻하게 두죠.”
식당에는 정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창문에 새로 붙은 공고문을 보고 있었다. ‘백염포 구항 재개발 구역. 다음 주부터 소금 창고 및 인접 상점 철거.’ 공고 아래에는 ‘마지막 소금’의 간판 사진이 찍혀 있었다.
“이건 누가 붙였어요?” 라온이 물었다.
“왕실 창고 관리단일 거요. 오래된 부지가 민간에 넘어가고 있소.”
“아버지 식당도 포함돼 있어요.”
“그렇소. 이 부근의 기억 소금이 모일수록 값이 올라가니까.”
라온은 공고를 떼어 냈다. “기억 소금이랑 재개발이 무슨 상관이죠?”
정헌은 선반의 조석소금 자루를 바라봤다. “왕실은 이 소금으로 사람들이 잊은 항구의 이름을 지웠소. 기억을 바꾸는 건 아니지만, 장소를 잊게 만들면 그 땅을 누가 지켜야 하는지 묻는 이가 줄어들지.”
바루가 물었다. “왕비도 그 땅을 잊었나?”
“그분은 스스로 옛 이름을 놓았소. 왕실이 강요한 건 아니오. 그러나 내가 그 선택을 정치에 이용했지.”
“그건 다른 사람의 선택을 이용한 것이다.”
정헌은 대꾸하지 않았다. 라온은 아버지 쪽지와 바루 팔에 새겨진 비율을 나란히 놓았다. 3:1:2. 세 숟갈의 소금, 한 줌의 해초, 두 사발의 물. 하지만 어떤 소금을 기준으로 삼는지 적혀 있지 않았다. 바루의 팔에 새겨진 조석소금은 한 종류가 아니었다.
“이 비율이 국물 레시피가 맞다면, 어떤 소금인지도 적혀 있어야 해.”
“아버지는 늘 재료 이름을 적었다.” 바루가 말했다.
“그럼 빠진 게 아니라 지운 거야.”
라온은 소금 조각을 빛에 비추었다. 결정의 가장자리에 아주 작은 홈이 있었다. 해초가 아니라 꽃잎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식당 뒤편에 심어 둔 붉은 염초의 결정은 마르면 별처럼 갈라졌다. 라온은 뒤뜰로 뛰어갔다. 염초는 폭풍에 쓰러져 있었지만 뿌리는 살아 있었다. 줄기 아래에 작은 소금 주머니가 묻혀 있었다.
주머니 안에는 종이가 아니라 손때 묻은 나무 숟가락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손잡이에는 아버지의 흉터와 같은 방향으로 칼자국이 나 있었다. 라온은 숟가락을 들자 미세하게 짠맛이 느껴졌다. 조석소금의 쓴맛과 달랐다. 익숙한 뒷맛이었다.
“맛이 돌아왔어?”
바루가 물었다.
“아직은 아니야. 이 숟가락은 내 입에 익숙한 맛이야. 어릴 때 아버지 국을 먹던 때.”
“그럼 그 비율은 네 기억에 맞춘 것인가.”
라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손님이 먹을 국을 손님 입에 맞추라는 뜻이야. 잃은 맛을 내가 대신 정하지 말라는 거야.”
그는 3:1:2를 종이에 옮기고, 조석소금 자루를 치웠다. 식당 뒤편 염초의 결정 세 알, 말린 해초 한 줌, 맑은 물 두 사발. 마지막 소금을 넣자 국물이 붉게 빛나지는 않았다. 다만 식당 밖에 붙은 철거 공고의 글씨가 소금물에 젖은 듯 번졌다.
라온은 불을 끄고 그릇을 두 개 꺼냈다. 하나는 미란에게, 하나는 바루 앞에 놓았다. “맛을 말해 줘. 네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국과 같아?”
바루는 숟가락을 들었다. “나는 먹을 수 없다.”
“기억할 수 있잖아.”
“그건 맛이 아니다.”
“그래도 네 기억은 네 거야.”
바루는 한참을 망설이다 한 숟갈을 입에 댔다. 소금 결정이 그의 입가에 붙었다가 녹았다. “첫맛은 같다. 끝맛은 다르다.”
“끝맛이 뭔데?”
“아버지는 늘 국을 더 끓였다. 누군가 늦게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라온은 뒤뜰의 붉은 염초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 레시피는 손님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국이네.”
“그렇게 정하면 안 된다.”
“맞아. 손님이 그렇게 느끼는지 물어봐야지.”
라온은 미란이 돌아오면 물어보기로 하고, 공고문을 식탁 위에 펼쳤다. 재개발 날짜는 일주일 뒤였다. 마지막 소금의 주방을 지키려면 땅의 주인을 찾아야 했다. 정헌이 공고 오른쪽 아래의 서명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시행사 대표는 왕비의 옛 이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왕비를 이용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아니.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이제 몇 안 되오. 나와 당신 아버지, 그리고…”
식당 문 밖에서 간판이 금속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누군가 밧줄을 걸어 간판을 떼고 있었다. 라온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골목 끝 수레에는 간판이 실려 있었고, 수레 뒤편에 미란의 아들이 쓰던 붉은 손수건이 묶여 있었다.
수레는 골목 어귀에서 멈췄다. 운전자는 철거 용역 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그가 운반하던 간판 밑에는 소금 자루가 세 겹으로 쌓여 있었다. 라온이 다가가자 남자는 수레를 버리고 도망쳤다. 바루는 이번에는 쫓지 않았다. 대신 자루를 들어 올려 바닥의 긁힌 자국을 보여 주었다. 자루가 지나간 길은 식당에서 폐창고로 이어져 있었다.
미란이 뒤늦게 도착해 붉은 손수건을 보았다. “성우 거야. 배에 오르기 전에 내가 묶어 줬어.”
“이 안에 쪽지가 있어요. 이번 건 성우 씨 글씨일까요?”
미란은 종이를 받아 들고 모서리를 쓸었다. “왼손으로 썼네. 손목이 아프면 늘 이렇게 썼어. 이건 성우 글씨가 맞아.”
“그럼 왜 어머니에게 국을 먹지 말라고 했을까요?”
“그 애는 아버지가 사라진 뒤 내가 끓인 마지막 국을 기억해. 내가 그 국을 먹으면 아버지를 잊을 거라고, 어릴 때부터 농담처럼 말했어.”
“그 농담이 진심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미란은 쪽지를 가슴에 안았다. “내가 먼저 국을 권해서 그 애가 도망간 거라면, 이번엔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돌아오면 둘 다 먹지 않아도 돼.”
바루는 수레의 자루를 살폈다. “이 소금은 창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염초밭의 흙이 섞였다.”
라온은 식당 뒤편을 돌아보았다. 붉은 염초 밭에는 어제보다 선명한 발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누군가 간판을 떼기 전에 그곳에서 한참 머문 흔적이었다. 발자국 끝에는 작은 조개껍데기가 뒤집혀 있었다. 안쪽에 새겨진 숫자는 식당의 주소도, 왕실의 창고 번호도 아니었다. 성우가 배의 짐표에 쓰던 ‘17’이었다.
“그 아이가 아직 근처에 있다는 뜻일까요?” 정헌이 물었다.
“아니요. 이건 찾으러 오지 말라는 표시일 수도 있어요.” 라온은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성우 씨가 이 수레를 봤다는 건 알겠어요.”
그 순간 부두 쪽에서 경적이 두 번 울렸다. 미란은 뛰어가려다 멈춰 라온을 보았다. “내가 가서 확인해도 될까?”
“지금 가고 싶은 마음이 어머니 것이라면요.”
미란은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바다 쪽으로 달렸다. 라온은 수레의 마지막 자루를 열었다. 자루 안에서 젖은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라온이 손수건을 잡아당기자 안쪽에서 쪽지가 떨어졌다.
‘엄마가 나를 찾으면, 마지막 국은 먹지 말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