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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골렘 요리사의 마지막 레시피1화

소금골렘 요리사의 마지막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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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왕이 주문한 기억의 국

백염포에 폭풍이 닥치면 ‘마지막 소금’의 문은 안쪽에서만 잠겼다. 라온은 문고리를 걸고 창문에 덧댄 나무판을 밀었다. 바닷물이 도로까지 올라와 소금 자루가 둥둥 떠다녔다. 손님이 올 날씨가 아니었다.

그때 바루가 조리대 위에 빈 사발을 올려놓았다.

“누가 왔어?”

“문 앞 발자국 하나. 젖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아니야?”

“발자국은 사람의 것이지만, 걷는 간격이 일정합니다.”

라온이 문을 열자 검은 외투를 입은 노인이 비에 젖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그는 금박 문양이 반쯤 뜯긴 소매를 숨기려 했으나, 라온은 왕실 조리관의 문장을 알아보았다. 문양을 그린 손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주문 노트에 그려 둔 것과 같았다.

“식당은 아직 영업합니까?”

“바람이 문을 뜯어 가지 않는 한요.”

“그럼 왕비가 드시던 소금기억국 한 그릇을 부탁하겠소.”

라온은 노인의 젖지 않은 어깨를 훑어보았다. “그분은 여기 안 계시잖아요.”

“그분을 위한 겁니다. 그 맛을 기억해 내야 해요.”

“손님이 드실 건가요?”

노인은 잠깐 멈칫했다. “내가 먹겠습니다.”

바루가 주방에서 나왔다. 소금 결정 어깨에서 물방울이 떨어졌지만, 바닥에는 소금물 자국이 남지 않았다. 노인을 본 순간 골렘의 눈에 박힌 푸른 유리알이 한번 깜박였다.

“윤정헌. 주문을 받지 않는다.”

라온이 바루를 돌아봤다. “아는 사람이야?”

“주문을 받지 않는다.”

노인은 바루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명령이 아니다. 부탁이오.”

“그릇은 손님을 기억한다. 당신은 주인을 기억시킬 생각이다.”

“그분이 자신을 잊었소. 한 그릇만 있으면—”

“그릇은 잊은 이름을 돌려주지 않는다.”

라온이 둘 사이에 섰다. “주문부터 들어 보죠. 한 그릇에 다섯 닢, 오늘은 재료가 모자라서 선불이에요.”

정헌은 낡은 은화 대신 왕실 문양이 새겨진 동전을 내밀었다. 라온은 받지 않았다. “이런 건 항구에서 못 써요.”

그는 주머니를 뒤져 구리 닢을 세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것뿐이오.”

“왜 꼭 그 국이어야 하죠?”

“왕비께서 매년 첫 폭풍이 오면 이곳에 오셨소. 식당이 아직 있다면, 그때 드셨던 맛을 다시 찾고 싶어 하실 거요.”

“왕비가 지금 어디 계신지도 모르잖아요.”

“알고 있소. 다만 나를 기억하지 못하십니다.”

라온은 동전을 받았다. 바루의 침묵이 싫었다. 아버지도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때 저런 얼굴을 했다. “한 그릇만 끓일게요. 기억이 나올 거라는 약속은 안 해요.”

“그 정도면 충분하오.”

바루가 냄비를 꺼내려 하자 라온은 손을 내밀었다. “내가 할게.”

“조석소금은 없다.”

“이 항구에 소금이 없다고?”

“오늘은 창고 문이 잠겼다. 밀물 뒤에 벽에서 결정이 맺힌다.”

정헌의 눈이 흔들렸다. “아직도 그 방식으로 소금을 얻는구려.”

“왕실 사람은 창고 열쇠를 갖고 왔소?” 바루가 물었다.

“없소.”

“그럼 문밖에 서서 기다리시오.”

라온은 바루를 노려봤다. “주문을 거절할 거면 내가 재료를 구해야지. 정헌 씨, 창고 열쇠를 어디서 찾아요?”

그는 입을 다물었다. 마침 밖에서 배 종이 울렸다. 폭풍 속에서 선원들이 부두에 줄을 걸고 있었다. 라온은 외투를 집어 들었다. “제가 가 볼게요.”

“혼자 나가면 안 돼.” 바루가 말했다.

“네가 싫다고 하면 손님도 재료도 다 포기해야 해?”

“그것은 내 말이 아니다.”

“하지만 네 행동은 그래.”

바루는 더 말하지 않았다. 라온은 문을 열고 부두로 달렸다. 물은 장화 안으로 밀려들었고, 선착장에 묶인 작은 배가 밧줄을 죄어 울었다. 선원 하나가 창고 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라온은 줄을 잡아 그를 끌어냈다.

“다리 다쳤어요?”

“괜찮아. 소금 창고 문이 열렸어. 파도에 자물쇠가 깨졌거든.”

“안에 들어가도 돼요?”

선원은 고개를 저었다. “벽이 무너질 것 같아. 그 안에 들어가면 너까지 떠내려간다.”

라온은 창고 창문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안쪽은 소금 먼지와 바닷물이 섞여 희뿌옇게 흐렸다. 벽에 매달린 소금 결정은 굵은 손톱처럼 뾰족했다. 아버지는 매번 밀물이 빠진 뒤에만 조석소금을 채취했다. 오늘처럼 폭풍 중에 맺힌 결정은 안쪽까지 검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작은 망치로 하얀 끝만 떼어 냈다. 바닥이 크게 울렸다. 천장 들보가 내려앉으며 창고 선반을 쳤다. 라온은 결정이 든 망태를 품에 안고 틈으로 뛰었다. 밖에서 바루의 팔이 뻗어와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다음 순간 선반이 무너져 물보라를 일으켰다.

“내가 나오라고 하기 전에 들어갔어.”

“그럼 이제 나왔으니까 잔소리는 나중에 해.”

바루의 손끝에서 소금 조각이 떨어졌다. 라온은 그의 손목을 쥐었다. “너도 다쳤어.”

“나는 부서진다. 다치지 않는다.”

“다친 것과 부서진 건 다르지 않아?”

바루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은 문 앞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는 망태를 받아 들지 않고 라온이 직접 식당으로 들어가게 비켜섰다.

라온은 소금을 물에 담가 검은 침전물을 가라앉혔다. 그 사이 바루는 양파와 생선뼈를 손질했다. 다만 평소처럼 칼을 움직이지 않았다. 칼날이 한 번 내려갈 때마다 간격이 너무 정확했다. 라온은 소금물의 짠맛을 혀끝에 대고 농도를 살폈다.

“이 결정은 써.” 그녀가 말했다.

“폭풍 중에 채취해서다.”

“아버지는 이 맛으로도 국을 끓였을 텐데.”

“그는 재료를 바꾸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기억이 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라온은 쓴맛을 삼켰다. 혀가 얼얼해졌다. “그럼 오늘은 내가 정할게. 소금 대신 말린 다시마를 더 넣고, 국은 맑게 끓여.”

정헌은 주방 입구에서 고개를 저었다. “왕비는 탁한 국물을 싫어하셨소.”

“왕비가 아니라 손님이 드실 거예요. 손님 입에 맞춰야죠.”

“그분은 늘 마지막 한 숟갈을 남겼소. 그걸 내가 가져와야 했는데.”

“왜 못 가져왔는데요?”

정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루가 냄비를 올렸다. “그분이 남긴 그릇은 왕실에 있다.”

“그걸 당신은 어떻게 알아?”

“그릇 바닥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라온은 그에게 더 묻지 않고 국물을 저었다. 다시마가 풀리며 바다 냄새가 올라왔다. 조석소금은 조금만 넣었다. 맛이 너무 깊어지면 손님이 원하지 않는 장면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라온의 재능은 기억을 읽는 것이지, 기억을 고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첫 숟가락을 먼저 맛보고 위험한 결정을 해야 했다.

국물이 혀에 닿자 폭풍 소리가 멀어졌다. 닻줄이 끌리는 소리, 젖은 나무판을 밟는 발소리, 어린 여자가 접시를 둘로 나누는 손. 그 얼굴은 흐릿했지만 손끝의 작은 흉터가 보였다. 라온은 아버지 손에 있던 흉터와 같은 위치를 알아차렸다.

“무슨 기억이었소?” 정헌이 물었다.

라온은 눈을 떴다. “항구에서 누군가 그릇을 나눠 먹는 장면이에요. 왕실 식당은 아니었어요.”

정헌은 입술을 눌렀다. “확실한가?”

“아니요. 제가 본 건 장면의 일부예요. 나머지는 당신이 말해야죠.”

바루가 국을 뜨지 않았다. “그 장면을 더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면 손님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붙잡고 싶은 기억을 만들게 돼.”

“주문자는 원한다.”

“나는 원하지 않아.”

라온의 말이 너무 빨리 나왔다. 바루의 눈에 박힌 유리알이 다시 깜박였다. 정헌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왕비는 왕궁에 오기 전, 이 항구에서 살았소. 이름도 다르게 썼지.”

“그걸 왕실 기록에서 지웠나요?”

“내가 지웠소. 그분이 원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분이 그 이름을 잊었는데, 다시 보여 주고 싶고요?”

정헌의 손이 은화 위에서 멈췄다. “내가 사과하고 싶소.”

“사과는 기억을 돌려주는 일이 아니에요.”

“알고 있소.”

“정말 알아요?”

노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외투 안쪽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오래된 메뉴였다. ‘첫 폭풍의 국’이라고 적혀 있었고, 조리자 이름은 바루의 몸에 새겨진 작은 기호와 닮았다.

바루가 몸을 굳혔다. “그 종이를 어디서 얻었지?”

“왕비께서 내게 주셨소. 마지막으로 이곳에 왔을 때.”

“그 주문을 내가 받았다.”

라온은 메뉴를 펴 보았다. 뒷면에는 재료와 함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를 왕비라고 부르지 말고, 여기 살던 사람으로 불러 주세요.’ 라온은 그 문장을 소리 내 읽지 않았다. 정헌이 자기 손으로 다시 볼 수 있도록 종이를 건넸다.

“국을 드시겠어요?” 라온이 물었다.

정헌은 한참 메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루는 그릇을 들지 않았다.

“왜 또 거부해?”

“그릇을 내면 그가 왕비의 기억을 자기 사과에 묶을 것이다.”

“그건 손님이 선택하게 해야지. 네가 대신 정하지 마.”

“나는 주문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라온은 그 말을 듣고 멈췄다. 바루가 거부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그를 고장 난 조리기구처럼 여겼다. 하지만 지금 바루는 스스로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라온은 그릇을 들었다. “그럼 내가 내놓을게. 이 국은 기억을 되살리는 약이 아니고, 당신 사과를 받아들이게 하는 조건도 아니에요.”

정헌은 국물을 한 숟갈 떠먹었다.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뜨거웠지만,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눈물이 한 방울 그릇 가장자리에 떨어졌다. “짠맛은 조금 다르군.”

“폭풍 소금이라서요.”

“그날도 폭풍이 왔소.”

“그럼 이 맛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정확한 건 당신 기억뿐이에요.”

정헌은 다시 한 숟갈을 먹었다. 이번에는 오래 씹었다. 그리고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분은 이름을 말하지 않았소. 내가 묻지 않았지.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했소.”

“지금이라도 물어볼 수 있어요?”

“대답을 원해서 묻는다면 안 되겠지.”

바루는 주방 선반에서 빈 사발을 꺼내 노인 앞에 놓았다. 그 안에는 맑은 물 한 모금과 얇은 소금 조각이 담겨 있었다.

“왜 물을 줬지?” 라온이 물었다.

“그가 국을 더 먹기 전에 입을 씻도록.”

정헌은 물을 마셨다. “고맙소, 바루.”

“나는 고맙다는 말을 받지 않는다.”

“그럼 다음에는 주문하러 오겠소. 이번에는 왕비의 기억을 찾으러 오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국을.”

라온은 웃지 않았다. “그때도 선불이에요.”

“알겠소.”

노인이 문을 나선 뒤 라온은 남은 국을 맛봤다. 생선의 단맛은 났지만, 소금의 짠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폭풍 소금이 혀를 마비시킨 모양이었다. 그녀는 물을 마시고 다시 맛봤다. 달고 짰던 국이 그저 따뜻한 물처럼 느껴졌다.

“맛이 없어졌어?”

바루가 물었다.

“잠깐일 거야.”

“그렇게 확신할 근거는?”

“없어. 그래도 지금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

바루는 빈 사발을 닦지 않았다. 깨진 어깨에서 결정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라온은 그 조각을 주워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조각 안쪽에 아주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의 글씨였다.

‘왕이 다시 오면, 바루가 거절하게 둘 것.’

라온은 쪽지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소금 비율 대신 물음표 하나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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