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우체국의 잃어버린 주소

3화: 받는 사람의 대답
가람은 자기 이름이 적힌 종이를 소포에서 떼어 내지 않았다.
우체국 규정상 이름이 적힌 쪽지는 수취인을 특정하는 단서일 뿐, 봉투를 열 권한을 주지는 않았다. 그는 장부에 ‘상자 내부에서 수취 가능 이름 1개 확인, 발신인 및 내용 미상’이라고 적었다. 받는 사람 칸에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다.
해준은 그가 장부를 덮는 걸 지켜봤다. “가람 씨가 직접 받겠다고 적으면 되잖아요.”
“내가 받는 사람인지 아직 몰라.”
“상자 안에 이름이 나왔다면서요.”
“내 이름이 같은 사람이 많아.”
해준은 장부에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저 이름을 봤을 때, 가람 씨는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어요.”
가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소포를 옛 나루 주소 확인함에 넣었다. 정화가 만든 둥근 표식은 아직 아무도 답을 남기지 않았다. 수경이 받을 의사가 없다고 전해 왔다는 은하의 기억은 있었지만, 그 말은 이 소포의 수취인임을 증명하지 못했다.
“오늘은 섬으로 가자.” 가람이 말했다. “수경 씨에게 소포가 아니라 수령 의사 확인표를 전할 거야. 이름을 말하지 않고, 표식으로 선택할 수 있게.”
은하는 배를 준비했다. 해준은 구명줄과 방수 봉투를 챙겼다. 강은 전날보다 낮았지만, 둑 아래의 물살은 여전히 거셌다. 섬으로 가는 길은 옛 나루에서 남쪽으로 한 굽이 돌아야 했다. 그곳의 암초가 수면 아래에 숨어 있었다.
가람은 수취 확인표를 세 장 준비했다. ‘받겠습니다’, ‘거절합니다’, ‘연락을 원합니다.’ 마지막 선택지에는 연락 방법을 직접 적을 빈 칸을 뒀다. 해준은 ‘거절’을 가장 아래에 놓으려 했지만, 가람은 세 항목을 같은 크기로 다시 썼다.
“왜 순서를 바꿔요?”
“첫 번째에 놓인 답이 더 쉬워 보일 수 있어. 어느 쪽도 먼저 유도하지 않게 하자.”
해준은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럼 수취인이 답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것도 선택이야.”
배가 섬에 닿자, 은하는 노를 배 안에 묶어 두었다. 바람이 바뀌면 배가 밀려날 수 있었다. 그들은 표식이 있는 해안 길을 따라 낮은 집으로 향했다. 문 앞에는 오래된 우편함 대신 빈 나무틀이 서 있었다. 우편함은 홍수에 떠내려간 듯했다.
“여기 사는 분이 수경 씨입니까?” 가람이 이웃에게 물었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어요?” 노인이 경계했다.
“옛 14번 나루의 주소 확인표가 필요합니다. 소포는 가져오지 않았어요.”
노인은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사람은 이곳에 살지만, 우편은 받지 않습니다.”
해준이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가람이 손바닥을 들어 멈췄다. “그러면 확인표만 문 앞에 두고 가겠습니다.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세 선택지가 적힌 종이를 방수 봉투에 넣어 나무틀에 걸었다. 소포의 발신인이나 내용은 알리지 않았다. 이웃은 문을 닫지 않았지만, 안으로 들이지도 않았다.
“정말 그냥 가요?” 해준이 낮게 물었다.
“기다리는 것도 배달 과정이야.”
그들은 해안가의 바위턱에서 시간을 보냈다. 은하는 배가 묶인 밧줄을 확인했고, 해준은 둥근 표식을 새긴 나뭇조각을 확인표 옆에 뒀다. 바람에 종이가 펄럭일 때마다 그는 일어나 확인하려 했다.
“답이 없을 수 있다고 했잖아.” 가람이 말했다.
“네. 알아요.”
“그런데 왜 자꾸 일어나?”
“제가 기다리는 동안 뭔가를 놓치면, 그 사람은 또 소포를 못 받을까 봐요.”
가람은 바람에 찢긴 봉투 모서리를 주웠다. “내가 어릴 때도 편지를 기다렸어. 주소가 없어서 못 왔다는 말만 들었지. 그런데 답이 없다고 해서 우편이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받는 사람이 숨을 곳이 없어져.”
해준은 처음으로 가람이 자기 이름을 소포에서 봤다고 말한 뒤에도 계속 침묵한 이유를 이해하려는 표정을 지었다. “가람 씨는 그 편지를 받고 싶어요?”
“모르겠어. 그래서 아직 답을 쓰지 않았어.”
해준은 나뭇조각을 손안에 굴렸다. “그럼 저도 그 사람 대신 답하지 않을게요.”
해가 기울 무렵, 집 안에서 문이 열렸다. 중년 여성이 나와 나무틀의 봉투를 들었다. 그녀는 가람과 해준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확인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소포에 누구 이름이 적혀 있나요?”
“아직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가람이 말했다. “여기에 소포는 없습니다. 원하시면 선택을 표시해서 우체국에 두세요.”
“내가 그 사람인지는 묻지 않는군요.”
“이름은 수취인이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편을 원하지 않으시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성은 확인표의 세 문장을 차례로 읽었다. “이걸 선택하면, 편지를 쓴 사람에게도 알려지나요?”
“연락을 원한다고 선택하실 때만, 허락하신 방법으로 전합니다. 받지 않겠다는 답은 배달 기록에만 남습니다.”
그녀는 종이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해준은 어깨를 움츠렸다.
“거절하실까요?”
“내가 정할 일이 아니야.”
그들은 배로 돌아가 기다렸다. 은하가 노를 점검하는 동안 가람은 짧은 메모를 썼다. ‘수취 확인표 전달. 수령 여부 미정. 회신 대기.’ 그는 문 앞에 다녀온 일을 수신자의 허락 없이 주변 사람에게 말하지 않도록 해준에게 당부했다.
잠시 뒤, 이웃 아이가 우체국 표시가 새겨진 작은 나무패를 들고 달려왔다. 수경이 보낸 답이었다. 패에는 ‘받지 않겠습니다’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다른 요청은 없었다. 뒷면에는 짧은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이름을 전하지 말아 주세요. 그래도 그 사람에게, 내가 살아 있다고만 알려 주세요.’
가람은 그 문장을 소리 내 읽지 않았다. 해준에게 보여 주지도 않았다. 수경이 허락한 말은 당사자에게만 전달되어야 했다.
“어떻게 할 건가요?” 은하가 물었다.
“그 사람에게 살아 있다는 말만 전할 방법을 찾을게요. 이름과 주소는 전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그 사람인지 모르면?”
가람은 소포의 안쪽 종이에 적힌 이름을 떠올렸다. 그 이름이 자신을 가리키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때는 내가 먼저 수취인인지 확인해야겠죠.”
배는 강을 거슬러 우체국으로 향했다. 중간에 물살이 배를 옆으로 밀었다. 은하가 노를 꺾고 해준이 밧줄을 당겼다. 가람은 소포를 무릎에 고정했다. 상자 안의 병이 흔들렸지만, 이번에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우체국에 도착한 뒤 가람은 수경의 거절을 장부에 기록했다. 수취인의 이름은 비워 두었다. ‘생존 소식 전달 허가, 이름 및 주소 비공개.’ 그 기록은 평소의 배달 완료 표시와 달랐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수취인의 뜻은 전해졌다.
가람은 자신이 받을 소포를 유실함에 다시 넣지 않았다. 대신 개인 우편함 앞에 세 선택지를 놓았다. 밤새 어느 것도 고르지 못한다 해도, 아침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새벽 무렵, 빈 우편함 안에서 나무패가 하나 울렸다. 가람이 문을 열어 보니, 세 가지 선택지 중 ‘연락을 원합니다’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연락 방법 칸에는 주소가 아닌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가람은 ‘만나자’라는 말에 손가락을 멈췄다. 수경의 답이 자기에게 온 것인지, 소포 안에 적힌 동명이인에게 가는 것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이름을 적지 않고 답장 칸에 짧은 문장을 썼다.
‘14번 나루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다면 오지 않아도 됩니다. 소포는 열지 않겠습니다.’
해준은 그 문장을 읽고 가람의 옆에 섰다. “주소를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답을 보내요?”
“표식이 있는 확인함에 넣으면 돼. 수경 씨가 그걸 볼 수 있다면.”
“혹시 다른 사람이 가져가면요?”
“그 사람도 선택할 수 있어. 다만 답장에는 소포의 내용이나 이름을 쓰지 않았어.”
가람은 나무패를 강변 우편함에 걸었다. 패가 바람에 흔들리며 벽을 두 번 두드렸다. 안쪽에 둥근 홈을 새기고, 그 아래에 답장을 넣었다. 우편함의 바닥은 젖어 있었지만 방수 종이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는 못을 다시 조여 패가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강물이 낮아지기 전, 은하는 나루까지 갈 수 있는 안전한 시간을 계산했다. “물이 가장 낮을 때도 그곳의 모래톱은 미끄러워. 배를 대고 내릴 수는 있어도, 강을 건너려 들면 안 돼.”
“건너지 않겠습니다.” 가람은 말했다. “그 사람이 오면 여기서 만나고, 오지 않으면 돌아오죠.”
“그럼 유실함의 소포는 그대로 두는 거야?” 해준이 물었다.
“응. 만남이 성사되어도 먼저 받을지 물어볼 거야.”
해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자기 방수 가방의 끈을 고쳐 맸다. “제가 같이 가도 돼요? 기록을 남기지 않고, 그냥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람은 답장표의 빈 서명란을 그에게 내밀었다. “함께 가겠다는 뜻을 적어. 그날 네가 그 자리에 있을지 네가 정하는 거야.”
해준은 한참 뒤에 이름을 적었다. 단순한 동행 신청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적인 만남을 지켜도 되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절차였다.
‘강이 가장 낮아지는 날, 14번 나루에서 만나자.’
가람은 답장을 들고 새벽의 물살을 지켜봤다. 이번에는 누구의 주소도 먼저 정하지 않기로 했다.
강물이 낮아지면, 그저 약속한 장소로 가서 기다릴 것이다. 답이 오지 않으면 더는 이름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이 정한 때를 기다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우편함은 그 사이 비워 두지 않기로 했다. 답이 오면 먼저 확인한 뒤 움직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