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의 첫 승소

1화: 열한 분의 빈 화면
강소라는 구치소 접견실에서 마웅의 손부터 봤다. 오른손 엄지 옆에 검은 기름이 눌어붙어 있었다. 수갑이 풀린 자리에는 얇은 붉은 자국이 남았다. 통역사 린이 맞은편에 앉아 말을 옮겼다. 마웅은 소라를 보지 않고 탁자 한가운데 놓인 사건 기록을 바라봤다.
“노트북을 훔치지 않았다고 하셨죠.” 소라가 말했다.
린이 베트남어로 통역했다. 마웅은 짧게 대답했다.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날 창고 문을 열었습니까?”
마웅은 답을 늦췄다. “열었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열었습니까?”
그는 통역이 끝나기도 전에 소라를 바라봤다. “그건 말하지 않겠습니다.”
소라는 펜을 내려놓았다. 검찰 기록에는 새벽 2시 17분, 마웅의 출입카드로 창고 문이 열렸다고 적혀 있었다. 회사 노트북 한 대가 사라진 것도 같은 시간대였다. CCTV는 2시 12분부터 23분까지 녹화가 끊겼다. 검사는 카드 로그, 마웅의 야간 근무, 창고 안쪽에 찍힌 그의 신발 자국을 근거로 기소했다. 모든 자료가 그에게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문을 열었다고 말했어요. 그럼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까?”
마웅은 다시 침묵했다.
린이 소라에게 말했다. “그분이 답을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소라는 질문을 바꾸었다. “이 사건에서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입니까?”
마웅이 처음으로 소라의 눈을 봤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기숙사에 있습니다.”
“무죄 판결을 원하십니까, 합의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일단 가족을 만나고 싶으십니까?”
“죄가 없다고 말하면 가족이 위험해집니다.”
접견 시간 종료 종이 울렸다. 소라는 더 묻지 않았다. 마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변호사님, 제가 말 안 하는 건 거짓말해서가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소라는 그 말만 했다.
법원 사무실로 돌아온 소라는 기록을 펼쳐 시간순으로 붙였다. 노트북은 창고 안의 재고 선반에 있던 회사 장비였다. 재고 담당자는 2시 25분에 분실을 확인했고, 경비 기록에는 마웅이 2시 17분 출입문을 열었다고 나왔다. 그런데 회사 CCTV 영상은 11분 동안 검은 화면이었다. 검찰은 영상 공백은 기기 오류라고 적었지만, 언제부터 오류가 났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소라는 출입카드 로그를 확대했다. 카드 소유자는 마웅이었지만, 카드 사용 위치는 창고 문 하나뿐이었다. 사무실 출입 기록도, 외부 출입문 기록도 없었다. 같은 날 야간조 교대표를 요청했다. 검찰 기록에 첨부된 교대표는 1주 전 버전이었다.
“왜 교대 시각이 달라졌지?” 소라가 중얼거렸다.
린이 옆 자리에서 통역 기록을 정리하다 고개를 들었다. “회사에서 제출한 표는 변경 전입니다. 마웅 씨는 그날 2시부터 2시 반까지 다른 경비원과 교대했다고 했어요.”
“그 얘기를 접견에서 왜 안 했죠?”
“그분이 아직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대신 말할 수는 없어요.”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린은 말을 보태지 않은 것이 옳았다. 소라가 확인해야 할 질문을 구체적으로 만들면 됐다. 새 교대표를 확보하고, 카드가 다른 사람에게 맡겨졌는지 확인하고, 노트북의 마지막 사용 시각을 요청해야 했다.
그때 검사가 보낸 증거목록이 도착했다. 회사 창고 책임자 백진호가 제출한 재고표에는 마웅이 근무를 시작한 직후 노트북이 선반에 있었다고 적혔다. 하지만 재고표의 서명란에 기록된 시각은 다음 날 오전이었다. 마웅이 문을 연 뒤에도 노트북이 남아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소라는 메일을 작성해 검찰에 추가 자료를 요청했다. CCTV 원본 저장 장치, 카드 서버의 접근 로그, 변경 전과 변경 후 교대표, 회사 노트북의 마지막 로그인 기록. 요청 목록을 본 선배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첫 사건인데 욕심내지 마. 카드 로그 하나로 다투면 돼.”
“카드가 문을 열었다는 건 인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누가 카드를 썼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피고인이 직접 열었다고 하면?”
“그때는 왜 열었는지 묻겠습니다.”
선배는 더 말하지 않았다. 소라는 모니터를 끄고 다시 구치소로 갈 접견 신청서를 만들었다. 이번엔 마웅이 원하는 바를 다시 묻고, 사실관계와 가족의 체류 문제가 섞인 이유를 들을 생각이었다. 그는 사건의 중심에 있었지만, 소라는 그가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을 먼저 존중해야 했다.
두 번째 접견에서 마웅은 린이 통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말했다. “어제 너무 많이 물었습니다.”
“그랬다면 미안합니다.” 소라는 종이를 치워 탁자를 비웠다. “오늘은 제가 먼저 듣겠습니다. 집에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재판에서 어떤 선택을 원한다는 뜻인지 알고 싶습니다.”
마웅은 한참 뒤에 말했다. “제가 죄를 인정하면 빨리 나갈 수 있다고 회사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내가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고요.”
“누가 말했습니까?”
“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소라는 그를 설득해 이름을 말하게 하려다 멈췄다. 그 말은 협박일 수도, 회사의 제안일 수도, 누군가의 개인적 조언일 수도 있었다. 지금은 사실을 더 물어야 했다. “그 제안에 동의하고 싶습니까?”
마웅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럼 무죄를 다투고 싶으십니까?”
“아내와 아이가 안전하면요.”
“저는 가족의 체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다만 형사사건과 체류 문제는 같은 결정이 아니고, 따로 상담받을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당신이 사실대로 말하는 것과 가족을 지키는 방법을 같이 생각할 수 있어요.”
마웅은 손가락으로 기름 얼룩을 문질렀다. “문을 연 건 맞습니다. 동료가 손을 다쳐서 안에 있던 약을 가져오게 해 줬어요. 노트북이 없어졌는지는 그 뒤에 알았습니다.”
“동료가 누구인지 지금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문을 연 시간과 동료가 다친 시간은 확인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임시 계약입니다. 회사가 자르면 돌아갈 돈이 없습니다.”
“법정에서 말할지 말지는 그분과 상의해야 합니다. 제가 먼저 연락하지 않겠습니다.”
마웅은 처음으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제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접견이 끝난 뒤 린은 복도에서 소라를 불렀다. “아내분이 법률 상담을 원할 수도 있어요. 체류 문제까지 한꺼번에 묻고 싶어 하지만, 남편 사건과 연결될까 봐 걱정합니다.”
“가족에게 연락해도 된다는 마웅 씨 동의가 있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제가 대신 연락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맞아요. 다음 접견 때 본인이 허락하는 범위를 물어볼게요.”
그날 저녁 법원 기록실에서 소라에게 새 교대표가 왔다. 마웅의 근무는 2시 10분부터 2시 30분까지 동료 린박과 교대였다. 카드 로그가 찍힌 시간은 2시 17분. 노트북 분실 확인은 2시 25분. CCTV 공백은 정확히 그 사이를 덮고 있었다. 진호가 제출한 재고표에는 2시 25분에도 노트북이 있었다고 적혀 있었지만, 서명 시각은 다음 날이었다.
린이 교대표의 수정 이력을 찾았다. 마웅은 교대를 위해 창고 문을 열었고, 린박은 그 문 안으로 들어간 뒤 11분 동안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 동료가 누구인지, 노트북이 언제 없어졌는지, 누가 카드를 쥐고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법원 민원실에서 소라에게 전화가 왔다. 마웅의 아내가 접견실 앞에 와 있었다. 그녀는 통역이 가능한 상담을 부탁했지만, 남편의 사건을 물어보러 온 건 아니라고 했다. 소라는 린에게 먼저 마웅의 동의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남편이 뭘 말했는지 듣고 싶지 않아요. 그냥 아이가 아빠를 찾는다고 전하고 싶어요.”
그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법원 계단에 앉았다. 아이는 아버지가 언제 집에 오는지 물었다. 아내는 “곧”이라고 답하지 못했다. 소라는 그 장면을 지나치며 자신이 변호사로 해 줄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좁다는 걸 느꼈다. 무죄를 다투는 것과 가족이 다시 만나는 건 같은 시간이 아니었다.
린은 잠시 뒤 소라를 불렀다. “아내분이 오늘은 사건 얘기를 안 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내일은 체류 상담을 받고 싶대요. 마웅 씨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요.”
소라는 접견 신청서를 다시 썼다. 가족을 만나도 된다는 허락, 통역 범위, 상담을 연결해도 되는지 따로 물을 질문을 적었다. 준비한 질문은 길었지만, 접견실에 들어가면 먼저 한 가지만 물을 생각이었다. “아내분에게 아이 이야기를 전해도 될까요?”
소라는 다음 접견에서 마웅에게 한 가지 질문만 하기로 했다. “그 동료가 당신 대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답에 따라 사건의 첫 증인이 달라질 터였다. 다음 접견에서 소라는 준비해 간 질문을 접었다. “아내분이 아이가 아빠를 찾는다고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마웅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잠시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 “아이한테는 제가 곧 간다고 하지 마세요.”
그는 린박의 이름을 말했지만, 직접 연락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소라는 연락처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럼 당신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대신 린박이 법정에 오지 않더라도, 출입 기록은 확인할 수 있어요.” 마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문을 연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다친 걸 회사에 알린 건 제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소라는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처음으로 마웅은 사건의 일부를 자신의 말로 선택했다. 이름을 말한 것이 결백을 증명해 주지는 않았지만, 이제 법정에서 확인해야 할 시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