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병원의 느린 계절

2화: 물을 주지 않는 날
수아는 새싹 사진을 여러 번 확대해 봤다. 잎 하나가 났다고 회복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음 날 작업실에 가서 사진 속 새싹을 직접 확인했다. 우석은 화분을 창가가 아니라 밝은 간접광이 드는 선반에 옮겨 두었다. 직사광선은 약해진 잎을 태울 수 있었다.
“물은 아직 주지 않았어요.”
“흙이 말라 보이는데요.”
“아래쪽은 습기가 남아 있어요. 겉이 말랐다고 물을 주면 뿌리가 더 약해질 수 있습니다.”
우석은 흙을 손가락으로 파지 않고, 나무 막대와 무게로 수분을 확인했다. 수아는 그가 왜 식물을 만지기 전에 관찰하는지 조금씩 알게 됐다. 그녀는 화분의 뿌리 주변을 촬영하고, 병원 담당자에게 새싹 사진을 전달했다. 병원 담당자는 해당 식물을 돌보던 직원의 이름을 알려 줬다. 직원은 다른 지역으로 옮겼지만, 반출을 확인해 줘 고맙다고 답했다.
“그분이 식물 이름을 알고 있을까요?” 수아가 물었다.
“문의해도 되겠죠. 다만 사진을 보내도 되는지 먼저 물어보세요.”
수아는 담당자에게 연락해 직원의 동의를 받았다. 직원은 사진을 보고 식물이 ‘칼라데아’ 종류일 수 있다고 했다. 정확한 품종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화분이 휴게실에 놓인 이유를 설명했다. 야간 근무자들이 쉴 때 초록색을 보고 마음을 가라앉히길 바랐다고 했다.
수아는 그 말을 듣고 화분을 가져온 자신의 선택을 다시 생각했다. 휴게실에 두려던 식물을 자신이 가져온 게 맞는지, 병원이 폐기하기로 했다고 해도 직원들이 원하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분은 다시 가져가길 원할까요?”
“제가 대신 결정할 수는 없어요.”
“그럼 물어볼게요.”
수아는 병원 담당자에게 식물의 임시 치료를 계속할지, 직원들에게 의견을 물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병원은 당장 휴게실을 정리할 예정이라 식물을 돌려놓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신 직원들이 원하면 새 식물을 함께 고를 수 있다고 답했다. 수아는 그 제안을 전달했다. 답은 며칠 뒤에 오기로 했다.
식물병원에는 다른 환자들이 들어왔다. 잎이 누렇게 된 몬스테라, 뿌리가 화분 밖으로 나온 선인장, 물을 너무 많이 먹은 허브. 우석은 식물마다 상태표를 붙이고, 주인의 말을 들었다. 어떤 사람은 식물을 살려 달라고만 했고, 어떤 사람은 왜 병들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우석은 결과를 장담하지 않고 치료 계획과 비용을 설명했다.
수아는 처음에는 작업을 지켜보다가, 주인이 동의한 화분의 잎을 닦는 일을 도왔다. 일회용 장갑을 끼고, 다른 식물에 병충해가 옮지 않도록 도구를 씻었다. 우석은 그녀에게 간단한 도구만 맡겼다. 수아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모든 일을 맡기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이런 일을 매일 했어요?” 우석이 물었다.
“환자를 돌보는 건 매일 했죠. 그런데 제가 아픈 건 늘 나중이었어요.”
“지금도요?”
“휴직했는데도, 복귀 날짜를 먼저 생각해요.”
“돌아가고 싶은지부터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수아는 대답 대신 흙이 묻은 장갑을 벗었다. 병원에서 동료들이 자신을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다시 근무표를 받으면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녀는 우석에게 치료를 받아도 괜찮다고 허락받으려 하지 않았다. 지금 결정할 수 있는 건 화분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뿐이었다.
점심 무렵 건물 관리인이 작업실에 들어와 재개발 설명회를 공지했다. 90일 뒤 임대 계약이 끝나고, 건물주와 입주자들이 개별 협상을 진행한다고 했다. 우석은 계약 연장을 원하는 세입자가 몇 명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는 수아에게 식물병원 운영에 간섭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여기서 식물을 돌보는 일이 좋았어요?” 수아가 물었다.
“좋았어요. 사람들이 식물을 맡기고, 다음에 돌아와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요. 다만 건물이 사라지면 다른 곳을 찾아야죠.”
“이 자리를 지키고 싶은 거군요.”
“네. 하지만 세입자 모두가 같은 생각은 아닐 겁니다.”
우석은 입주자들에게 의견을 묻는 안내문을 붙였다. 수아는 회의록 작성이나 협상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직 자신의 힘을 어디에 쓸지 정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식물 환자 기록을 정리하고, 병원에서 돌아온 답을 기다렸다.
그날 밤 병원 담당자는 직원 6명이 휴게실 식물을 다시 들이고 싶다고 답했다. 다만 병원 쪽에서 돌볼 사람이 없으니 관리가 쉬운 종으로 바꾸길 원했다. 수아는 식물이 회복될 때까지 현재 화분을 돌보고, 이후 병원에 돌려보낼지 직원 의견을 다시 묻기로 했다. 우석은 그 계획에 동의했다.
“여기서는 계속 돌봐도 되겠네요.”
“네. 반출 확인 기간을 정해 두면 됩니다.”
“제가 계속 올 이유가 생겼네요.”
“식물 때문인가요?”
수아는 한참 생각했다. “지금은요.”
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말의 뒤에 숨은 뜻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보리는 수아의 신발 옆에 와서 앉았다.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았다. 수아가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냄새를 맡고, 몸을 조금 기댔다.
“천천히 친해지는군요.”
“강요하지 않으니까요.”
우석은 잠시 수아를 봤다. 그녀는 그 시선을 알아챘지만,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
“식물도 사람도 기다리는 게 필요해요.”
“그 기다림이 항상 답을 주진 않아요.”
“그래도 기다릴지 말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죠.”
수아는 화분의 새싹을 바라봤다. 아직 잎은 작고, 뿌리도 약했다. 물을 더 주지 않기로 한 결정은 무심함이 아니라 지금 필요한 돌봄이었다. 그녀는 병원 복귀 신청서의 날짜 칸을 비워 두었다.
수아는 병원 동료들이 보내 준 휴게실 사진을 보며 화분의 이전 위치를 확인했다. 창문 바로 아래라 겨울이면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고, 난방기 바람도 잎에 닿았다. 식물이 약해진 이유는 물만이 아니었다. 관리 부서가 언제부터 물을 줬는지 기록은 없었다. 수아는 동료에게 기억을 물었지만, 모두 교대 근무라 서로 다른 답을 했다.
우석은 물 주기를 당분간 중단하고, 흙의 수분을 매일 같은 시간에 확인하자고 했다. 수아는 간단한 표를 만들었다. 날짜, 흙 상태, 잎 변화, 물을 준 사람. 누가 돌봤는지 알 수 없어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기 어려웠다. 병원 직원들은 교대표에 담당을 적기로 했다.
“식물에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동료가 물었다.
“회복이 목적이면 상태를 보고 결정해야 해요. 지금은 물을 더 주면 안 된다고 해요.”
“그럼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리는 건가요?”
“기다리는 동안 상태를 기록하고, 변화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
그녀는 동료에게 완벽히 돌봐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식물은 병원 직원들의 책임이 될 수도 있고, 다시 폐기될 수도 있었다. 그 결정은 직원들과 시설팀이 해야 했다. 수아는 중간에서 화분을 옮긴 사람으로서 정보를 전달했다.
그날 작업실에 식물을 맡기러 온 손님이 있었다. 그는 할머니가 키우던 난을 살려 달라고 했다. 우석은 사진부터 찍고, 난의 상태와 관리 환경을 물었다. 손님은 집에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했다. 우석은 꽃이 다시 필 거라고 장담하지 않고, 뿌리 손상과 회복에 필요한 시간, 치료 비용을 설명했다.
손님은 비용이 예상보다 높다며 난을 그냥 두고 가겠다고 했다. 우석은 맡긴 기록과 소유권 확인을 요청했고, 손님은 난을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수아는 우석이 식물을 무조건 구해 주겠다고 하지 않는 걸 보았다. 돌봄은 원하는 결과를 사는 일이 아니었다.
“돌려보내도 괜찮아요?” 수아가 물었다.
“그분이 결정한 거예요. 집에서 할 수 있는 관리법은 알려 드렸습니다.”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도 그분은 집에 가져가기로 했어요.”
수아는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자신도 병원에서 일할 때 환자에게 결과를 약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자리를 충분히 남겼는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우석은 식물에게도 사람에게도 같은 답을 적용하지 않았다. 각각의 조건을 살피고, 가능한 선택을 설명했다.
점심 무렵 수아의 병원 복귀 상담이 시작됐다. 그녀는 작업실 안 작은 의자에 앉아 화상 통화로 상담 담당자와 이야기했다. 우석은 공간을 비워 주고, 보리와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수아는 휴직 기간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일, 교대 근무를 생각하면 몸이 굳는 일, 동료들이 기다릴까 봐 걱정되는 일을 말했다.
상담 담당자는 복귀를 바로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단축 근무 가능 여부와 심리 지원, 업무 조정 절차를 안내했다. 수아는 신청서를 받아 검토한 뒤 답하겠다고 했다. 통화가 끝났을 때 그녀는 울지 않았지만, 손이 차가웠다.
“괜찮아요?” 우석이 문밖에서 물었다.
“아직 모르겠어요.”
“차를 내올까요?”
“네. 따뜻한 걸로요.”
그는 바로 차를 가져왔다. 수아는 자신이 괜찮다고 말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 그녀는 그날 오후 다시 화분의 흙 상태를 확인했다. 흙은 어제보다 조금 말랐지만, 물을 줄 때는 아니었다.
수아는 그날 저녁 일찍 작업실을 나왔다. 내일도 올 수 있을지는 아침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우석은 그 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장갑을 세척하고 도구를 제자리에 놓았다.
보리는 문턱에 앉아 그녀를 바라봤다.
내일 상태를 다시 보기로 했다.
그녀는 문을 닫았다.
차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