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병원의 느린 계절

1화: 시들어 온 화분
남수아는 종이컵을 들고 식물병원 문을 열었다. 커피는 식었고, 그녀의 손에는 전날 응급실에서 가져온 작은 화분이 들려 있었다. 잎 두 장이 바싹 말라 안쪽으로 말려 있었다. 화분 표면에는 물 자국이 굳어 있었다.
“새 환자예요?”
진우석이 앞치마에 흙을 털며 물었다. 그는 식물 전문점을 운영하고, 병원이라고 부르는 작은 작업실에서 동네 식물을 돌봤다. 수아는 퇴직이 아니라 휴직 중인 간호사였다. 야간 근무를 끝낸 뒤 집에 돌아가도 잠들지 못했고, 병원 복도에서 쓰러진 뒤로는 출근하지 않았다.
“이 식물은 제가 키우는 게 아니에요. 응급실 휴게실에 있던 거예요.”
“그럼 병원에서 허락받고 가져온 거죠?”
수아는 잠시 멈췄다. 식물 담당자가 퇴직하면서 화분이 버려질 거라고 들었다. 그녀는 간호부에 연락해 병원 소유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아직 확인 안 했어요.”
“그러면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소유자를 확인해야겠네요. 다른 사람 물건일 수도 있으니까.”
우석은 화분을 받아들지 않았다. 수아는 그 말을 듣고 화분을 다시 자기 손으로 들었다. 병원에 전화해 분실물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화분은 휴게실에서 쓰던 비품 목록에 있었지만, 관리 부서는 폐기할 예정이었다. 폐기 전에 가져간 사실을 공식적으로 남겨야 했다.
“그럼 가져가셔도 됩니다. 다만 병원 물품 반출 확인서를 작성해 주세요.”
수아는 서류를 이메일로 받고, 이름과 반출 시각을 적어 보냈다. 작은 일인데도 손바닥에 땀이 났다. 병원에서 자신이 하던 일은 늘 빠르게 움직이고, 다른 사람 대신 결정을 내려야 했다. 화분 하나를 옮기는 데도 동의를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켰다.
우석은 화분의 흙을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 “물을 너무 많이 준 흔적이 있어요. 그런데 뿌리가 마른 것 같기도 합니다.”
“둘 다일 수 있어요?”
“흙 표면은 말랐는데, 아래는 계속 젖어 있을 수 있어요. 화분 배수구가 막혔거든요.”
그는 흙을 바로 갈아엎지 않았다. 먼저 화분을 기울여 물이 빠지는지 확인하고, 잎과 줄기를 사진으로 남겼다. 수아는 사진에 날짜와 상태가 기록되는 걸 보았다. 우석은 식물의 이름을 모른다고 했다. 종을 확인하려면 꽃이 피거나 잎을 더 살펴봐야 했다.
“병원에 있었을 때는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어요.”
“이름을 알아야만 돌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이름을 알고 싶어요.”
우석은 잎의 뒷면을 확인했다. 작은 벌레가 붙어 있었고, 그는 면봉으로 조심스럽게 닦아 냈다. 수아는 집게를 들어 도우려다 손을 멈췄다.
“제가 해도 될까요?”
“장갑을 끼고, 이쪽 잎은 건드리지 마세요. 아직 약합니다.”
우석은 작업 범위를 설명했다. 수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장갑을 꼈다. 둘은 잎 사이를 확인하고, 병충해가 옮지 않도록 화분을 다른 식물과 떨어뜨려 놓았다. 그 과정이 간호 업무의 처치와 닮아 있었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필요한 만큼만 손대는 것.
“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수아가 물었다.
“식물은 아픈 곳을 말해 주지 않아서요. 내가 먼저 자세히 봐야 합니다.”
“환자도 말을 못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간호사를 하신 거예요?”
수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휴게실 식물이 버려질 것 같아서 가져왔다. 그 이상으로 의미를 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우석은 더 묻지 않고 화분 아래에 받침을 놓았다. 물을 주기 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날 작업실에는 노란 고양이 임보리도 있었다. 보호소에서 입양 대기 중인 고양이였다. 보리는 수아의 신발 끈에 앞발을 올렸다가, 그녀가 움직이자 구석으로 숨었다. 우석은 억지로 안아 올리지 않았다.
“새 사람을 만나면 오래 숨어 있어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아는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밤샘 뒤 커피를 마시는 대신, 따뜻한 차를 마셔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석은 주전자를 올리고, 물이 끓는 동안 식물의 관리 기록표를 건넸다.
“하루에 한 번 상태를 확인하고, 물은 오늘 주지 않아요. 잎이 더 처지거나 줄기가 검게 변하면 연락하세요.”
“제가 매일 올 수는 없어요.”
“그럼 사진으로 기록해도 됩니다. 병원에서 보낸 식물이니 담당자에게도 상태를 공유하는 게 좋겠어요.”
수아는 병원 연락처를 적고, 화분을 맡아도 된다는 확인서를 보관했다. 식물은 아직 치료되지 않았다. 우석은 회복 가능성을 장담하지 않았다. 수아는 그 점이 좋았다. 모든 걸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모르는 것을 확인하는 사람이 믿을 만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우석이 말했다. “다음에 올 때 식물 이름을 같이 찾아봐요.”
“제가 키우기로 한 건 아니에요.”
“알아요. 돌볼 사람을 정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격리해 두겠습니다.”
“제가 다시 오지 않으면요?”
“병원 분실물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죠.”
그는 수아에게 화분을 억지로 맡기지 않았다. 수아는 돌아서기 전에 작업실 한쪽의 안내판을 봤다. ‘식물병원 임대 계약 만료까지 90일’. 그 아래에는 재개발 관련 공고가 붙어 있었다.
“여기도 곧 문을 닫나요?”
우석은 안내판을 보았다.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건물주가 재개발을 검토 중이라고만 했습니다.”
“막을 방법은요?”
“세입자들이 같이 대화해 봐야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수아는 그 말을 듣고 문을 나섰다. 그녀는 휴직 신청서에 복귀 예정일을 적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연락이 왔지만, 당장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식물병원의 임대 공고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었다. 그런데 우석은 그곳을 지키기 위해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날 밤 수아는 화분 상태를 확인하러 작업실에 다시 왔다.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 안으로 보리가 보였다. 유리 너머 작업대에는 식물 잎의 사진과 병원 반출 확인서 사본이 놓여 있었다. 수아는 연락하지 않은 채 돌아서려 했다. 그때 우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화분을 버릴지 다시 가져갈지,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일 병원에서 식물 담당자에게 답이 왔어요.
뒤이어 사진 하나가 도착했다. 화분의 잎 사이에서 아주 작은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병원 담당자는 반출 확인서에 식물의 상태와 임시 보관 기간을 적어 달라고 했다. 수아는 자신이 식물을 가져간 이유를 설명하고, 식물이 회복되지 않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을 문서로 남기지 않았다. 그런 면책은 병원 담당자의 권한이 아니었다. 대신 병원 측이 폐기 예정으로 분류했고, 수아가 임시 치료를 맡았다는 사실만 기재했다. 우석은 문서에 식물의 사진과 상태를 첨부하자고 했다.
“폐기 예정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기록할 필요가 있나요?” 수아가 물었다.
“폐기됐다는 말은 누구에게서 들었어요?”
“간호부 직원이요.”
“그분이 실제 담당자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출 후에는 누가 돌보는지 남겨야 해요.”
수아는 담당자를 다시 확인했다. 화분은 병원 공용 비품이었고, 관리 부서가 폐기 예정 목록에 올려 두었다. 반출 승인자는 시설팀장이었다. 그는 화분이 병원에서 나가도 괜찮다고 승인했다. 수아는 승인 메일을 받은 뒤에야 화분을 작업실 선반에 내려놓았다.
그때까지 우석은 흙을 만지지 않았다. 그는 수아에게 작업실을 둘러보게 한 뒤 격리 구역의 환기 상태를 확인했다. 병충해가 다른 식물로 옮겨 갈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수아는 응급실에서 감염 관리를 위해 했던 것처럼 도구를 분리해 두었다. 우석은 그녀가 간호사라는 말을 듣고도 능력을 당연시하지 않았다. 어느 일을 맡을지 매번 물었다.
“잎을 닦는 건 제가 할 수 있어요.”
“이 잎은 약해서 면봉으로 살짝만 닦아야 합니다. 먼저 제가 시범을 보일게요.”
수아는 시범을 본 뒤 같은 방식으로 잎을 닦았다. 작은 벌레가 떨어지자 그녀는 소독한 도구를 따로 담았다. 우석은 확인하고 기록했다. 둘이 맡은 일은 각자의 경험에 맞게 나뉘었다.
수아는 병원 휴게실에 남아 있는 물건이 더 있는지 담당자에게 물었다. 담당자는 식물 외에는 없다고 답했다. 그녀는 병동 동료들에게 화분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상태를 공유해도 되는지 동의를 구했다. 일부는 반응이 없었고, 한 동료는 식물을 보고 싶다고 했다. 수아는 사진만 보내고, 직접 방문은 병원과 작업실의 일정이 정해진 뒤로 미뤘다.
밤에 수아는 병원에서 온 복귀 상담 안내를 확인했다. 상담은 이번 주 안에 가능했지만, 그녀는 예약 화면을 열었다 닫았다. 우석은 그녀에게 병원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지 않았다. 대신 내일 다시 올 수 있는 시간만 확인했다. 수아는 상담을 예약하고, 작업실에 갈 시간도 달력에 적었다. 둘은 한 가지씩만 정했다.
수아는 화분을 두고 병원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다음 상담에 갈 시간을 정하고,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아침에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우석은 그녀가 방문 여부를 정하지 않아도 화분은 정해진 장소에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커피를 식히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컵을 감쌌다. 따뜻한 감각이 손바닥으로 돌아왔다.
컵 가장자리에서 차가운 김이 조금씩 걷혔다. 수아는 아직 돌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잎의 변화를 기록했다.
우석은 그 기록을 확인했다.
내일 확인할 일도 남았다.
남은 새싹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