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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너머의 용과수원1화

문 너머의 용과수원

문 너머의 용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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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뿌리 아래의 알

은엽 과수원의 사과는 세 해째 열리지 않았다.

서린은 잎 뒷면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봤다. 은빛 잎맥 사이에 검은 점이 번져 있었다. 병반은 잎 끝에서 시작해 줄기를 향했다. 뿌리까지 옮겨 가면 나무는 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또 병든 나무야?” 마온이 물었다.

“잎마름병 같아요. 하지만 흙의 염분이 높아요. 같은 병이 반복되는 원인은 아닐 수 있어요.”

“이곳 흙은 원래 짰다. 용의 비늘이 섞였으니까.”

“과거 기록에선 이 나무가 열매를 맺었어요.”

서린은 오래된 재배장부를 펼쳐 보였다. 이십 년 전에는 은엽수가 평범한 사과보다 작은 과일을 많이 맺었다. 그러다 어느 해 기록이 뚝 끊겼다. 그다음 장부터 과수원은 폐쇄 구역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마온은 장부를 덮었다. “옛날 기록은 과수원 문을 다시 열어 주지 않아.”

“그래도 원인을 알아야 나무를 살릴 수 있어요.”

“살릴 수 있는 나무만 살려. 전부 끌어안으면 네가 먼저 쓰러진다.”

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병든 나무에 띠를 묶고, 다음 나무와의 거리를 기록했다. 병반은 과수원 안쪽으로 갈수록 심해졌다. 바깥의 배수로는 말라 있었고, 나무뿌리 주변의 흙만 젖어 있었다.

“물을 준 적 없는데 왜 젖어 있죠?”

“땅속 물길이 바뀌었나 보지.”

마온은 삽을 들어 흙을 팠다. 두 번 삽질하자 땅 아래에서 은빛 가루가 나왔다. 비늘처럼 얇고 반짝이는 조각이었다. 서린은 장갑을 끼고 그것을 유리병에 담았다.

“이건 용의 비늘이에요.”

“죽은 용이 남긴 거지. 만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성분을 분석하면 뿌리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있어요.”

“여긴 연구소가 아니야.”

“나무가 죽어 가고 있어요.”

마온은 삽을 멈췄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영지의 기사가 두 명의 병사와 함께 과수원 입구로 들어왔다. 갑옷에는 회색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서린은 유리병의 비늘 가루를 햇빛에 비췄다. 조각은 한쪽 면만 푸르게 빛났다. 그녀는 같은 흙에서 나온 평범한 광석가루와 나란히 놓고 색과 무게를 비교했다. 용의 비늘은 흙에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었다. 표면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있어 물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놓아 주었다.

“염분이 높다는 게 전부가 아니네요. 비늘이 물을 붙잡고 있어요.”

“그럼 뿌리가 계속 젖어 있다는 뜻이군.” 마온이 말했다.

“네. 병든 뿌리는 숨을 쉬지 못해요. 배수로를 열어 물을 빼면 나무가 살아날 수도 있어요.”

“그 물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먼저 한 그루만 시험해야 해요. 주변 밭에 영향을 주는지도 확인하고요.”

마온은 삽자루를 세워 땅에 꽂았다. “내가 젊었을 때도 그렇게 했어. 한 줄만 물을 빼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용의 비늘이 물길을 따라 옮겨 가고, 다른 밭까지 은빛 뿌리가 퍼졌어.”

서린은 오래된 기록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배수로를 닫은 날짜와 영주가 내린 폐쇄 명령만 있었다. 이전 장의 수확 기록에는 수확량이 줄어든 원인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이 없어요.”

“살아남은 사람은 기억하기 싫어했으니까.”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또 할 수 있어요.”

“기록이 사람을 살려 주진 않는다.”

“그래도 기록은 다음 사람이 선택할 근거를 줘요.”

마온은 반박하지 않았다. 서린은 샘플에 날짜와 나무 번호를 적었다. 과수원은 한때 영지의 식량을 책임졌지만, 전쟁이 끝난 뒤 용의 비늘 때문에 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남은 나무를 베면 관리인 일자리도 사라지고, 인근 농민들은 겨울 연료를 잃는다.

“관리인 마온. 영주님의 명령이다. 과수원을 폐쇄하고 남은 나무를 태워라.”

“이유가 뭡니까?”

“병든 나무가 인근 농지로 전염될 수 있다. 용의 흔적을 남기는 일도 금지되어 있다.”

서린이 유리병을 내밀었다. “뿌리의 염분과 비늘 성분이 달라요. 병은 과수원 안쪽에만 퍼지고 있어요. 주변 농지는 아직 괜찮습니다.”

기사는 병을 받지 않았다. “검사 결과는 허가된 기관만 인정한다.”

“그럼 검사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이미 두 번 기다렸다. 영주님은 이곳을 용의 둥지로 쓰게 둘 생각이 없다.”

마온은 횃불을 든 병사들의 손을 살폈다. “불을 지르면 연기가 마을의 우물 쪽으로 내려갈 거다. 바람이 남쪽으로 불고 있어.”

“바람은 저녁에 바뀐다.” 기사가 대답했다.

서린은 과수원 가장자리의 흰 깃발을 가리켰다. “깃발이 계속 남쪽을 향해요. 해가 지기 전에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지금 태우면 연기와 재가 경작지에 내려앉아요.”

기사는 잠깐 하늘을 봤지만, 병사들에게 불씨통을 거두라고 하지는 않았다. “오염 여부를 증명하는 서류가 없다. 그 책임을 누가 질 건가?”

“제가 기록하겠습니다. 어떤 나무에서 어떤 성분이 나왔는지, 바람 방향과 배수로 상태도 같이요.”

“네 기록은 영주에게 효력이 없어.”

“그래도 태운 뒤에는 다시 검사할 수 없어요.”

병사 하나가 횃불을 낮췄다. 그는 과수원 남쪽의 농가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 집은 은엽수 열매를 말려 겨울 약재로 팔았다. 기사는 병사의 말을 듣고도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다만 불씨통을 든 손에 망설임이 생겼다.

그는 병사들에게 불씨통을 내주었다. 마온이 길을 막았지만 기사는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서린은 과수원 안쪽으로 뛰어갔다. 불을 지르면 뿌리의 원인을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토양 속 비늘이 인근 마을로 날아갈 수 있었다.

“불을 놓으면 연기가 남쪽 밭으로 갑니다!”

“물러서라.”

서린은 나무들 사이를 지나 더 깊은 곳으로 달렸다. 뿌리 주변의 젖은 흙이 일정한 원을 이루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오래된 문처럼 보이는 석판이 반쯤 묻혀 있었다. 그녀는 병든 잎과 비늘 가루를 샘플 주머니에 넣고, 석판 가장자리를 따라 흙을 걷어 냈다.

돌 아래에서 둥근 껍질이 드러났다. 사람의 몸통만 한 알이었다. 껍질은 잿빛이고 표면에 가느다란 금이 퍼져 있었다. 금 사이로 따뜻한 빛이 숨 쉬듯 밝아졌다 꺼졌다.

“마온 아저씨!”

그가 달려왔다. 석판을 보자 얼굴이 굳었다.

“그 알은 묻어 둬야 해.”

“용알이 맞아요?”

“오래전에 발견했다. 부화하지 못했어. 그때 과수원의 나무도 다 죽기 시작했지.”

“왜 말하지 않았어요?”

“영주는 알을 부수라고 했다. 내가 숨겨서 여기에 묻었다.”

서린은 껍질의 온도를 재고 주변 흙의 습도를 기록했다. 알의 한쪽은 차가웠고, 반대편은 지나치게 따뜻했다. 온도차가 계속되면 내부 생명이 약해질 수 있었다.

“알을 옮겨야 해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

“그대로 두면 뿌리와 함께 썩을 거예요. 온도와 물길을 조정해야 합니다.”

마온은 잠시 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다칠 수 있어.”

“불을 놓아도 다쳐요.”

뒤에서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접근했다. 서린은 알을 덮은 석판을 밀어 물길이 지나가는 작은 홈을 열었다. 흙 속의 은빛 가루가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차가운 물이 알의 뿌리 쪽으로 스며들고, 뜨거운 쪽의 빛이 조금씩 고르게 퍼졌다.

마온은 놀라 서린을 바라봤다. “그 홈을 어떻게 알았지?”

“기록에 있던 배수 패턴과 같아요.”

그녀는 도구를 놓지 않은 채 병사들을 향해 섰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태우지 마세요. 알이 살아 있어요.”

“용은 적이다.” 기사가 말했다. “알이 깨어나면 과수원은 폐쇄된다.”

“그럼 제가 책임지고 지키겠습니다.”

기사는 불씨통을 내려놓지 않았다. 마온이 서린 옆에 섰다. 그는 지난 세 해 동안 누구 앞에서도 과수원을 지키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나도 함께 책임지지.”

서린은 병사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석판 옆에 도구를 늘어놓았다. 땅을 더 파지 않고 수분계를 세 군데에 꽂아 값을 비교했다. 알에서 먼 곳의 흙은 말라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은엽수 두 그루는 뿌리 주변의 습도가 높았다. 나무가 알의 온도를 맞추려고 물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가 살아 있는 건 알 때문인가요?”

“아니면 알이 나무에 기대어 버티는 걸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인지 아직 몰라요.”

“그럼 알을 떼어 내면 나무가 죽을 수도 있겠군.” 마온이 말했다.

“그래서 옮기지 않을 거예요. 먼저 물길을 조정해 온도를 고르게 하고, 주변 나무를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서린은 배수 홈을 조금씩 열었다. 물을 한꺼번에 흘려 보내면 뿌리가 마를 수 있어 손가락 너비만큼만 틈을 냈다. 마온은 남쪽 홈을 흙으로 막아 물이 농지로 가지 않게 했다. 병사들은 불씨통을 내려놓지 않았지만, 불을 붙일 만큼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하룻밤만 시간을 주세요.” 서린이 기사에게 말했다. “아침에 토양과 알의 상태를 다시 측정하겠습니다. 위험이 커지면 제가 먼저 알을 덮겠습니다.”

“그 약속은 기록하겠다.” 기사가 대답했다. “하지만 허가를 받은 건 아니다.”

“알아요. 그래서 측정 결과도 공개하겠습니다.”

그때 알 안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껍질의 금이 길게 벌어졌다. 병든 은엽수의 잎들이 동시에 흔들리고, 땅 아래에서 낮은 울음이 퍼졌다.

알의 빛이 서린의 손바닥에 닿았다.

그녀는 그 울음 속에서 자기 이름을 들었다.

서린은 측정 기록을 품에 넣고 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알의 빛은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같은 박자로 깜박였다. 아직 그 울음의 뜻은 알 수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알릴 때까지 혼자 해석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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