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저궤도 택배기사는 무중력을 배달한다3화

저궤도 택배기사는 무중력을 배달한다

저궤도 택배기사는 무중력을 배달한다

AD
스폰서 광고

3화: 정거장 4호의 마지막 급수

정거장 4호는 지도에서 지워진 지 6년이 됐다. 정거장 본부의 공식 기록에는 무인 농업 실험 시설로 적혀 있었고, 마지막 작업자는 지구로 귀환했다고 나왔다. 캡슐의 신호가 정말 구조 요청이라면, 기록이 틀렸거나 누군가 오래된 신호를 흉내 내고 있었다.

“급수 제어기는 4호에서 가져온 중계 부품이에요.” 세라가 말했다. “지금 농장 구역과 연결된 보조 회로가 남아 있죠. 신호가 거길 타고 들어온 것 같아요.”

태오는 손목 단말의 폐쇄 목록을 펼쳤다. “그 시설은 이미 정리됐습니다. 산소도 전력도 끊겼어요. 사람이 있을 수 없어요.”

“사람이 없다는 걸 누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습니까?” 예린이 물었다.

태오는 대답 대신 목록을 닫았다. 예린은 그 침묵을 기억했다. 그는 늘 기록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기록이 너무 매끄러웠다.

유경 관제사가 중계 신호를 분리했다. 캡슐에서 나온 파형에는 위치 정보가 없었지만, 정거장 4호의 옛 통신 주기가 섞여 있었다. 그 신호를 따라가려면 폐쇄 구역과 직접 연결된 급수 제어기까지 가야 했다. 하지만 그 구역의 전력은 제한돼 있었다. 한 번 접속하면 30분 동안 농장 급수 펌프를 우회시켜야 했다.

세라는 발아판 쪽을 바라봤다. “펌프를 멈추면 모종이 마를 수 있어요. 지금 막 뿌리를 내리는 중이라 시간을 많이 못 버텨요.”

“신호를 확인하지 못하면 캡슐을 폐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올 겁니다.” 카림이 말했다. “그럼 안에 든 기록도 사라져요.”

예린은 캡슐을 폐기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씨앗 여섯 알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선택은 한쪽을 지키며 다른 쪽을 잃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누군가에게 다음 기회가 없어질 수 있었다.

“펌프를 완전히 끄지 않고 우회할 방법을 찾죠.” 그녀가 말했다. “예비 급수 탱크를 얼마나 쓸 수 있어요?”

세라는 잠깐 계산했다. “구역 2를 절반만 공급하면 24분입니다. 발아판의 일부는 버텨요. 다만 탱크 압력이 떨어지면 다음 급수 주기까지 회복이 안 됩니다.”

“그 24분 동안 4호 신호를 추적하겠습니다.”

태오는 반대하려 입을 열었지만, 세라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발아판을 나눌게요. 버틸 모종을 고르겠습니다.”

세라는 씨앗 용기를 열어 회수한 여섯 알을 다시 나눴다. 손끝이 떨렸지만, 그녀는 가장 먼저 뿌리가 약한 모종이 심긴 판을 제외했다. 두 줄을 살리기 위해 한 줄의 급수를 줄이는 결정이었다. 예린은 그 손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등 상처를 감쌌다. 세라가 하는 일은 수량표에 숫자를 적는 것보다 훨씬 무거워 보였다.

그들은 급수 제어실로 이동했다. 태오는 예비 탱크 밸브를 조작했고, 세라는 농장 구역의 압력 변화를 감시했다. 예린은 캡슐을 제어기 가까이 가져갔다. 청색 표시가 밝아지자 통신 단말에 낡은 코드가 나타났다.

“오래된 음성 압축 방식이에요.” 유경이 설명했다. “기록을 바로 재생하면 손상될 수 있습니다. 먼저 신호만 읽겠습니다.”

카림은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그는 캡슐을 실은 책임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제가 허가 없이 옮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안의 코어에는 4호 농장 기록이 있어요. 마지막 작업자가 남긴 재배 일지와 급수 경고가 같이 저장됐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죠?” 태오가 물었다.

“어머니가 4호에서 일했습니다. 폐쇄 직전에 저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요. ‘급수 기록을 버리지 말라’고요.”

그 말에 태오의 얼굴이 굳었다. “마지막 작업자 명단에는 네 어머니가 없어.”

카림은 시선을 피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예린은 그가 거짓말을 완전히 털어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의 손이 캡슐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어머니의 목소리를 찾으려는 쪽으로 떨리고 있었다.

유경이 통신을 연결했다. 급수 펌프가 멈추며 제어실에 낮은 진동이 사라졌다. 탱크의 압력이 떨어지는 숫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세라는 발아판 구역에서 모종을 살펴보겠다고 나갔다. 태오가 그녀를 따라가려 했지만 예린이 손목을 잡았다.

“밸브는 당신이 봐야 해요. 숫자가 임계점에 닿으면 바로 펌프를 돌려요.”

“세라 혼자 괜찮을까요?”

“저보다 세라 씨가 자기 모종을 더 잘 알아요.”

태오는 손목을 빼지 않았다. 예린은 그가 세라를 걱정하면서도 책임을 떠넘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는 결국 밸브 앞에 남았다.

캡슐에서 읽힌 신호가 화면에 떠올랐다. 잡음 사이로 짧은 문장이 복원됐다.

신호를 읽는 동안 제어실 조명은 한 번씩 어두워졌다. 태오는 밸브 고정쇠를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손으로 압력 수치를 적었다. 숫자는 18.2에서 17.8로 떨어졌다가, 펌프가 돌 때마다 조금씩 올라왔다. 세라는 농장 구역에서 들어오는 영상을 띄웠다. 모종 잎 가장자리가 아래로 처져 있었다. 작은 물방울들이 뿌리 주변에서 떠다니다가 투명 덮개에 부딪혔다.

“이 속도로는 열두 분도 못 갑니다.” 세라가 말했다. “밸브를 더 열어야 해요.”

“그러면 4호 신호 분석이 끊길 수 있어요.” 유경이 답했다.

“그곳에 사람이 있든 없든, 여기엔 살아 있는 모종이 있어요.” 세라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건 제 책임이에요. 신호를 확인하는 건 여러분 책임이고요.”

예린은 두 사람의 말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녀가 운송하던 씨앗은 세라의 손에 있었고, 캡슐은 카림의 어머니에게 이어져 있었다. 둘 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도착한 것만으로 문제가 끝나지는 않았다.

태오가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말했다. “4호의 밸브를 열면 농장 쪽 압력을 빼앗길 겁니다. 반대로 지금 펌프를 완전히 돌리면 신호를 더 읽을 수 없고요.”

“둘 다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요.” 예린이 말했다. “제가 중간 밸브를 잡고 있을 테니, 펌프를 짧게 세 번만 돌려 주세요. 압력 회복 시간을 확인하면서 신호를 읽겠습니다.”

유경은 잠깐 침묵하다가 계산을 다시 시작했다. “가능은 합니다. 수동 제어라 압력 변동이 커질 수 있어요.”

“그럼 제가 손으로 따라가겠습니다.”

예린은 팔꿈치를 벽에 걸고 밸브를 쥐었다. 태오는 펌프를 짧게 작동시켰다. 제어실 바닥에 붙은 진동이 돌아왔다가 사라졌다. 첫 번째 회복 뒤 압력은 18.0, 두 번째는 18.1. 세 번째에는 18.1에서 멈췄다. 세라는 발아판의 물방울이 뿌리 쪽으로 가라앉는 것을 확인했다. 세 번의 짧은 급수로 모종은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급수 3번 밸브를 닫지 마라. 거기 사람이 있다.’

태오가 굳었다. “3번 밸브는 폐쇄된 4호와 연결된 회수관입니다. 도면상 막혀 있어야 해요.”

예린은 지도에서 해당 관을 찾았다. 정거장 4호로 이어지는 선이 급수 회로 아래에 겹쳐 있었다. 한 사람이 들어갈 만큼 좁은 정비 통로도 표시됐다. 하지만 산소 공급 상태는 알 수 없었다.

세라가 통신으로 말했다. “발아판 압력이 안정적이지 않아요. 6분 안에 펌프를 되돌리지 않으면 뿌리층이 마릅니다.”

예린은 선택해야 했다. 4호에 사람이 있다면 지금 신호를 외면할 수 없었다. 펌프를 계속 세워 두면 농장 모종이 죽는다. 그녀는 밸브를 손으로 돌려 급수량을 절반만 되돌리는 임시 조치를 제안했다. 그러면 탱크 압력을 조금씩 올리면서 신호 분석을 이어갈 수 있었다. 완벽한 해결은 아니지만 6분을 12분으로 늘릴 가능성이 있었다.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밸브가 오래돼서 중간 개도가 고정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럼 제가 붙잡고 있을게요.”

예린은 밸브 손잡이를 돌렸다. 금속이 뻑뻑하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튀었다. 손목이 강하게 당겨졌고, 팔꿈치가 패널에 부딪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손잡이를 중간에서 멈췄다. 태오가 고정쇠를 밀어 넣었다. 두 사람의 팔이 동시에 떨렸다.

압력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세라는 발아판에 물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잎이 축 늘어졌지만 완전히 마르진 않았다. 탱크는 다음 주기까지 간신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유경이 신호의 마지막 부분을 복원했다. “위치는 4호의 북쪽 정비실입니다. 음성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생체 센서가 남긴 자동 응답일 수 있어요. 지금 살아 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카림이 눈을 감았다. 예린은 캡슐을 쥔 그의 손등에 손가락이 하얗게 질린 걸 보았다.

“구조 요청을 보내려면 4호 쪽으로 송신해야 합니다.” 유경이 말했다. “그럼 남은 배터리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한 번만 보낼 수 있어요.”

예린은 통신기를 바라봤다. 이번 응답이 구조대에 닿을지, 오래된 기계에 메아리칠지 아무도 몰랐다. 그녀는 메시지를 짧게 정했다. “정거장 4호, 현재 신호를 받았습니다. 위치를 확인 중입니다. 살아 있다면 세 번 두드려 주세요.”

송신 버튼을 눌렀다. 기지의 전력이 한 번 흔들렸다. 탱크 압력도 잠깐 떨어졌지만 태오가 밸브를 지켰다. 10초, 20초, 30초.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세라는 발아판 쪽에서 돌아왔다. “다음 급수 주기까지 버틸 수 있어요. 대신 오늘은 새 씨앗을 못 심습니다.”

카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린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지 않았다. 대신 캡슐을 다시 고정망에 묶었다. 구조 신호가 확인될 때까지 폐기하지 않겠다고 보안팀에 기록으로 남겼다. 태오는 그 기록에 자신의 서명을 보탰다.

교대가 끝나기 직전, 캡슐 안에서 짧은 충격이 세 번 전해졌다.

이번에는 신호가 아니라 금속을 두드린 소리였다. 정거장 4호의 북쪽 정비실 방향에서, 세 번 더.

예린은 안전 장비를 챙겼다. 화면에는 산소 잔량이 표시되지 않았다. 신호 뒤에 떠오른 마지막 문장은 낡은 기록이 아니었다.

‘문을 열지 마. 밖에 있는 건 우리 쪽이 아니야.’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