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가마터의 불꽃 도인

2화: 돌아온 제자의 조건
한청은 아침상 앞에 앉지 않았다. 작업대에 종이 세 장을 펴고 그 위에 돌을 올렸다. 산바람이 불어도 가장자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명하는 김 나는 보리죽을 그녀 곁에 놓았다가 자신의 그릇만 들고 앉았다.
“첫째. 검날의 소유자는 저입니다. 검을 깨뜨리는 시험도 제가 고릅니다.”
명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청화문에서 앞으로 맡길 주문은 제가 가격과 날짜를 정합니다. 제자라는 이유로 위험한 일을 먼저 시키지 마세요.”
“아직 문파를 세우지도 않았다며.”
“그래서 지금 정합니다. 생긴 뒤에는 늦어요.”
세 번째 종이는 비어 있었다. 명하가 손을 뻗자 한청이 붓을 먼저 올려놓았다.
“세 해 전의 작업 기록을 여기 쓰세요. 어떤 철을 섞었고, 왜 저에게 내공을 넣으라고 했고, 왜 제 손이 먼저 탈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엄노가 작업대 건너편에서 깨진 잔을 세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들지 않았다. 명하는 한청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으나 더 이상 조건은 없었다. 단순한 요구라 피할 곳도 없었다. 그는 붓에 먹을 묻혔다.
‘화실 온도가 낮아 제자에게 내공을 보태게 함.’
그가 첫 줄을 쓰자 한청이 종이 끝을 당겼다.
“낮았던 게 아니라 일부러 낮췄죠. 납품할 찻잔을 버릴 수 없어서.”
명하는 글자를 지우지 않았다. 옆에 작은 글씨로 그녀의 말을 적었다. 기록은 붓을 잘 쓰는 사람의 편에 설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말과 한청의 말을 다른 줄에 남겼다.
“나는 네가 버틸 줄 알았다.”
“버티겠다고 말한 건 저였습니다. 안 된다고 하셨어야 하는 건 스승님이었고요.”
그가 붓을 멈췄다. 한청은 처음으로 그를 스승이라 불렀다. 그 호칭은 용서가 아니었다. 맡았어야 할 책임의 이름이었다. 명하는 붓을 다시 움직였다. 철상단에서 산 검은 광석을 삼 푼 섞었고, 철의 녹는점이 낮아진 대신 표면에 기운이 몰렸다는 사실을 적었다. 알고도 다음 공정으로 넘겼다고 마지막에 덧붙였다.
엄노가 잔 여섯 조각을 가져왔다.
“밤에 깨진 건 셋이다. 혼례 잔 두 개에 약사발 하나. 새 흙을 이기려면 열흘 걸려.”
“내 품삯에서 제하게.”
“돈만 제하면 네가 또 혼자 결정하잖아. 그동안 마을엔 누가 약사발을 빌려 주지?”
명하는 밖의 빨래줄에 걸린 묵은 사발을 봤다. 자신이 쓰던 사발을 씻어서 먼저 내주고, 혼례집에는 어제 남은 잔 중 두 점을 가져가 직접 모양을 고르게 하겠다고 답했다. 엄노는 그제야 조각을 치웠다. 한청은 명하가 적은 기록을 자신의 주문서 뒤에 묶었다.
“이제 철을 봅시다.”
그들은 가마의 불을 높이지 않았다. 검날을 찬 상태에서 돌판 위에 올리고 숯가루를 뿌렸다. 명하가 손톱으로 칼등을 튕기자 가루가 아주 작은 고리를 만들었다. 문양 안의 세 점 중 하나에서만 가루가 움직이지 않았다.
“속이 빈 데는 소리가 늦게 나온다.”
“그럼 이 점은 빈 게 아니네요. 묶인 거죠?”
한청이 자신의 칼집으로 검날 옆의 돌을 두드렸다. 나무 칼집을 때렸는데도 쇠에서 떨림이 되돌아왔다. 명하는 칼집을 받아 들려다가 멈췄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살폈다. 입구의 철테 안쪽에 같은 검은 광석이 박혀 있었다.
“어디서 구했나?”
“지난겨울 아이 셋을 데리고 달아날 때요. 다리에서 부러진 창대를 주워서 만들었습니다.”
“창을 누가 썼지?”
“철상단 호위입니다.”
명하는 칼집과 검날을 멀리 떼어 놓았다. 붉은 문양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안쪽의 점 하나가 어두워졌다. 한청이 종이에 그렸다는 표식과 같은 모양이 생긴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물건이 서로 반응한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그는 불꽃으로 쇠를 읽어 왔는데 오늘은 찬 쇠가 말을 걸고 있었다.
산 아래에서 종이 울렸다. 장작꾼이 위험을 알릴 때 치는 종이었다. 엄노가 밖으로 나간 사이, 젖은 옷을 말리던 소년이 마당으로 넘어졌다. 한청이 달려가 받았다. 소년의 배낭 바닥이 찢어져 검은 돌 여러 개가 굴렀다.
“누나. 내려가는 길이 막혔어.”
소년은 청화문을 함께 세우려는 셋 중 하나인 두만이었다. 광석을 주우러 간 것이 아니라 한청에게 두고 온 음식과 편지를 전하러 온 길이었다. 길목에서 상단 호위가 배낭을 뒤지고, 산의 돌은 상단 소유라며 맨손으로 진흙을 파게 했다고 했다.
한청은 두만의 손을 물에 담갔다. 손가락 사이가 갈라져 있었다.
“돌은 어디서 받았니?”
“뒤편 개울. 검은 돌 나오는 곳을 표시하래. 안 하면 내려가는 것도 안 된대.”
명하는 바닥의 돌 중 하나를 집었다. 새벽의 빛이 닿자 같은 점 세 개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검날 한 자루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단이 가져가려는 것은 가마의 열이 닿은 땅이었다.
그가 마당으로 나가자 조탁이 세 사람을 데리고 서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어깨에는 장작꾼의 지게가 걸렸다. 장작꾼이 맡긴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임은 굽은 지게 다리로 알 수 있었다.
“산의 도둑들을 숨기셨군요.”
“애가 훔친 물건이 무엇이지?”
조탁은 바닥의 검은 돌을 가리켰다. 한청이 젖은 손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무딘 검날을 천째 허리에 걸었다. 왼손에는 짧은 칼집만 들었다.
“그 돌을 주우라고 시킨 사람부터 부르세요.”
호위 한 명이 어깨에서 지게를 내려놓았다. 조탁은 그를 잠깐 봤고, 호위는 시선을 피했다. 명하는 그 찰나를 봤다. 그는 증인으로 장작꾼을 불러 달라 했지만 조탁은 웃었다.
“산길에서 누구 말이 맞는지 시비하면 하루가 다 갑니다. 장인이 도장을 찍으면 아이는 놓아 드리지요.”
엄노가 소년 앞을 가로막았다. 한청은 검날을 빼지 않았다. 대신 칼집의 입구를 조탁 쪽으로 세웠다.
“검사하러 오셨으면 검사해 보세요. 저 돌이 정말 같은 돌인지.”
조탁의 손이 보호대 아래로 들어갔다. 짧은 쇠막대가 나타났다. 호위는 검을 뽑지 않았지만 쇠막대로 한청의 칼집을 걸었다. 나무가 비틀리며 낮게 울었다. 명하가 앞으로 나오려 하자 한청이 손바닥을 펴 보였다.
“제 주문입니다.”
그녀는 막대와 칼집을 맞잡은 채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손목 힘으로 버티지 않았다. 어깨를 낮추고 칼집 끝을 조탁의 팔꿈치 안쪽에 댔다. 쇠막대가 위로 들렸고 조탁의 보호대 안쪽에서 검은 가루가 쏟아졌다.
조탁이 몸을 돌려 주먹을 내밀었다. 한청은 칼집으로 주먹을 받지 않았다. 문지방을 밟아 거리를 좁히고 그의 팔 아래를 지나갔다. 한청의 왼손에서 칼집이 빠질 뻔했다. 화상 자리가 당겨 손가락이 굽지 않았다. 명하는 긴 집게 끝을 그녀의 칼집 아래에 댔다. 단지 받쳐 줬다. 때릴 곳과 움직일 방향은 그녀가 정했다.
칼집 입구가 조탁의 보호대를 긁었다. 검은 가루 사이에 붉은 선이 나타났다. 두만이 돌 하나를 집어 그 아래에 놓자 가루와 돌에 똑같은 지붕 모양이 비쳤다.
“검사 끝났네요.” 한청이 말했다.
조탁은 팔을 빼려 했으나 엄노가 가루 위에 넓은 잔받침을 덮었다. 장인들이 견본을 남길 때 쓰는 방식이었다. 그는 한청에게 칼집을 빼라고 말했다. 조탁은 더 싸우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마당에 모이고 있었다.
“상단 물건의 표시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단 증서에 넣으세요.” 명하가 말했다. “새 검날과 아이가 주운 돌, 자네 보호대의 가루가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내 도장 옆에 자네 도장도 찍게.”
조탁의 입가가 사라졌다. 그는 계약서를 꺼내지 않았다. 호위에게 지게를 돌려주라 명하고 장작꾼의 종이 멎기 전에 산길을 내려갔다. 그러나 한청은 이겼다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왼손은 붉게 부풀어 있었다.
“아직 내려가면 안 돼.” 그녀가 두만에게 말했다.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는 엄노 어르신이 다른 길로 소식을 전해 줄 거야.”
“문파는 언제 세워?”
“우선 이 산에서 다 함께 내려갈 수 있을 때.”
명하는 집게를 벽에 걸었다. 한청이 자신의 손을 펼쳐 보였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그는 오늘의 기록에 자신이 싸웠다고 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힘이 모자라 보였으나, 방향을 고른 사람은 그녀였다. 자신은 그 방향을 유지할 작은 받침 하나를 놓았을 뿐이었다.
엄노가 검은 가루를 싸며 가마 바닥을 두 번 밟았다.
“저자들은 바닥을 알아. 땅을 팔라는 것도 그래서겠지.”
명하는 오래 덮어 둔 자리를 봤다. 한청도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벽 아래의 재는 다른 자리보다 짙었다. 가마를 다시 세울 때도 파지 않았던 땅이었다.
“거기에 뭘 묻으셨습니까?”
“스승님의 칼.”
“고장 난 칼인가요?”
명하는 그 표현을 오래 생각했다. 고장 난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그는 칼이 부러졌다고만 전해 왔다. 스승이 마지막으로 무엇을 막으려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칼이다. 내가 꺼내지 않아서.”
한청은 주문서를 다시 펼쳤다. 빈 네 번째 줄에 가마 밑의 칼을 함께 확인한다고 썼다. 명하는 그 아래에 도장을 찍었다. 가마의 열을 낮추고 땅을 파려면 이번 달의 장작과 흙을 모두 잃어야 했다. 그는 비용을 계산한 뒤에도 도장을 떼지 않았다.
두만이 바닥의 돌을 모으는 동안, 장부 옆의 새 검날에서 낮은 울림이 나왔다. 두 사람은 동시에 돌아봤다. 칼집은 멀리 놓였는데도 문양 안의 마지막 점이 빛났다. 이번에는 그 빛이 발밑에서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