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산중 가마터의 불꽃 도인1화

산중 가마터의 불꽃 도인

산중 가마터의 불꽃 도인

AD
스폰서 광고

1화: 아직 없는 문파 문장

비가 내리면 청요의 가마는 먼저 귀를 닫았다.

고명하는 불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젖은 장작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도자기 쉰여섯 점이 안에 있었다. 밥그릇 스무 개, 약사발 열두 개, 마을 혼례에 쓸 잔 스물네 개. 하나라도 덜 익으면 그 값은 내일의 쌀에서 빠졌다. 그는 장작 한 토막을 반으로 쪼개고 마른 속살만 불길에 밀어 넣었다.

불문 옆에는 검날이 놓였다. 아직 손잡이도 칼집도 없는 철 조각이었다. 낮에 내려온 주문은 짧았다. 두 자 여섯 치, 무게는 아홉 냥, 칼등의 마지막 한 치를 둔하게 할 것. 주문한 사람의 이름 대신 묵은 매듭 하나가 붙어 있었다. 명하는 매듭을 보지 않으려 천으로 덮었지만,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흰 끈 끝이 드러났다.

“그릇 가마에 쇠를 함께 넣지 말랬지.”

엄노가 출입문을 발로 밀며 들어왔다. 한쪽 귀가 먹은 노인은 목소리보다 발바닥을 믿었다. 짚신을 벗고 가마 벽에 발뒤꿈치를 붙이더니 혀를 찼다.

“벽 안쪽이 벌써 떨린다. 네 쇠 때문에 내 잔이 무너지면 혼례집까지 네가 가라.”

“함께 넣지 않았네. 옆 화실에서 잔열만 받고 있어.”

“말을 구부리면 불도 구부러질 줄 아나?”

명하는 대답 대신 칼을 집게로 들었다. 철은 충분히 뜨겁지 않았다. 그릇을 지키려면 여기서 멈춰야 했다. 검날을 지키려면 불을 더 먹여야 했다. 그는 쇠를 다시 불 속에 넣으려다가 주문서의 아홉 냥이라는 글자를 보았다. 손이 가벼워진 사람이 쓰는 무게였다. 무거운 검을 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마당에서 말 울음이 끊겼다. 누군가 말을 묶지도 않고 풀어놓았다. 검을 찬 손님은 그러지 않았다. 말을 타고 온 손님도 그러지 않았다. 산길 끝에서 사람을 태운 노새가 주인을 기다리며 울었고, 처마 밑으로 흰 매듭 하나가 들어왔다.

한청은 왼손을 옷소매 안에 넣고 서 있었다.

명하는 집게를 떨어뜨릴 뻔했다. 세 해가 지났지만 젖은 머리카락을 가죽끈으로 묶는 버릇은 같았다. 눈썹 위의 작은 상처도 같았다. 달라진 것은 서 있는 위치였다. 예전의 제자는 신발을 벗고 화실로 들어왔다. 오늘의 손님은 젖은 신발로 문턱 바깥을 지켰다.

“주문한 물건을 보러 왔습니다.”

“청아.”

“한청입니다. 장부에도 그렇게 적으세요.”

엄노가 시선을 명하의 손에서 그녀의 소매로 옮겼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빈 의자 하나를 문턱까지 끌어왔다. 한청은 앉지 않았다. 검날을 턱으로 가리켰다.

“열이 부족하네요.”

“밥그릇이 같이 들어 있다.”

“그럼 날짜를 늦추시면 됩니다. 불을 높이라고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명하는 집게를 다시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과거에 불을 더 높이라던 쪽은 자신이었다. 손목을 버티지 못하면 내공을 넣으라고, 좋은 쇠는 사람의 약함을 봐주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자신이었다. 한청이 소매를 걷지 않는 동안에도 그는 그 아래의 화상을 보았다.

그는 검날을 식힘통 가장자리로 옮겼다. 찬물에 넣기 전에 결부터 확인해야 했다. 불빛을 등지고 철을 천천히 돌리자 얇은 붉은 선이 나타났다. 칼끝에서 칼등으로 올라오는 선은 정상적인 결이 아니었다. 두 줄이 휘어 만나고 그 안에 점 세 개가 찍혔다.

“저건 누가 새겼습니까?”

한청이 한 발 들어왔다. 왼손이 소매 밖으로 나왔다. 엄지 아래의 살이 울퉁불퉁하게 아물어 있었다. 그녀는 손을 감추는 대신 칼등을 가리켰다.

“새긴 적 없다.”

“이 문양을 어디서 보셨죠?”

명하는 그녀를 보았다. 청요의 도공들이 쓰는 표식도, 자신이 버린 문파의 표식도 아니었다. 두 줄이 서로 받치는 모양은 지붕 같았고, 세 점은 그 아래 사람 같았다.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선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 망치 자국이 없는 데다 철을 깎아낸 자리도 없었다.

“아는 문양인가?”

한청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기름 먹인 천에 감싼 종이였다. 거기에는 검날과 똑같은 지붕과 점 세 개가 그려져 있었다. 아래에 적힌 두 글자를 보고 명하는 집게를 다시 세게 쥐었다.

청화.

“새 문파입니까?” 엄노가 물었다.

“아직 없습니다. 사람 셋과 돈 열두 냥뿐입니다.”

한청은 종이를 접었다. 그녀가 문파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 까닭을 명하는 알았다. 소속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검을 배우려다 호위로 팔렸다. 대장장이 자식은 쇠를 배워도 문파의 병기를 만질 수 없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 셋을 데리고 산 아래에서 겨울을 났다는 소문이 있었다.

“대장장이에게 줄 표시로 오늘 처음 그렸습니다. 화실에서 만든 쇠가 아니라 제가 주문한 쇠라는 뜻으로요.”

“그런데 쇠가 먼저 알았단 말인가?”

엄노의 말에 명하는 고개를 저었다. 미래를 읽는 불 따위는 없었다. 뜨거운 철의 빛은 지금의 균열만 보여 줬다. 다만 오래전에 비슷한 선을 본 적은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검에 내공을 넣으면, 서로 다른 기운이 만난 자리에 가느다란 흔적이 생겼다. 스승은 그것을 연조인이라 불렀다.

그는 검날을 물에서 멀리했다.

“담금질을 멈추겠다.”

“왜요?”

“안쪽에 다른 쇠가 섞였어. 이대로 식히면 선을 따라 부러질 수 있다.”

한청의 눈이 집게와 명하의 얼굴을 오갔다.

“전에도 그런 말을 하셨어야 했습니다.”

불문 앞이 조용해졌다. 엄노는 식힘통 뚜껑을 닫아 주었다. 명하는 변명할 말을 찾았다가 삼켰다. 가마가 낡았다거나 새로 온 광석이 불순했다는 말은 손쉬웠다. 손쉬운 말을 택한 대가로 한청이 떠났었다.

“이번에는 안 숨기겠다.”

그는 젖은 재를 집어 보조 화실 입구를 막았다. 흰 김이 올라왔고 가마 벽에서 둔한 소리가 났다. 열이 갑자기 바뀌면서 얇은 찻잔 하나가 갈라졌다. 곧 두 번째 소리도 따라왔다. 엄노가 눈을 감았다. 명하는 그릇 수를 세지 않았다. 그 수를 세기 시작하면 다시 검날을 불 속으로 돌려 넣을 것 같았다.

“주문은 취소합니까?”

한청이 물었다.

“취소할지, 고칠지는 네가 정해라. 오늘은 값을 받지 않겠다.”

“이미 계약금 냈습니다. 물건을 제 허락 없이 부수시면 안 됩니다.”

그녀는 그을린 장부를 당겨 자신이 건넨 세 냥을 찾아냈다. 명하는 장부에 ‘불량’이라고 쓰려다가 멈췄다. 그 말은 쇠에게 죄를 넘기는 말이었다. 그는 ‘고명하가 배합을 확인하지 않음’이라고 적었다. 먹이 거친 종이를 타고 번졌다.

한청은 그 글자를 한참 내려다봤다.

처마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 사이로 쇠붙이가 부딪쳤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말부터 묶었다. 굵은 밧줄을 짧게 잡아 기둥에 두 번 감았다. 말의 얼굴에 씌운 철상단 표식을 엄노가 먼저 봤다.

“장작값 받으러 왔으면 다음 달이야.”

“오늘은 쇠를 찾습니다.”

조탁은 팔의 검은 보호대를 풀지도 않고 화실을 둘러봤다. 눈썹의 찢긴 자리로 빗물이 흘렀다. 그 뒤에 선 호위 두 명이 문턱을 좌우로 막았다. 명하는 검날을 천으로 덮으려 했으나 조탁의 시선이 이미 붉은 문양에 닿아 있었다.

“그 광석은 잘못 배달됐습니다. 상단의 물건을 돌려주십시오.”

“내가 산 물건이네. 장부를 보게.”

조탁은 장부를 보지 않았다. 한청의 소매가 아닌 왼손을 봤다. 그 시선에 한청이 검날 앞에 섰다.

“주문자가 돌려주지 않겠다면?”

“대장장이가 실수했다고 했을 텐데. 아가씨 손을 또 버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명하의 목 뒤가 굳었다. 한청의 상처를 아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상단이 그 상처를 거래에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가마의 긴 집게를 바닥에 세웠다. 집게 손잡이가 젖은 돌을 찍었다.

“손님에게 말하지 말고 나에게 말하게.”

조탁은 검을 뽑지 않았다. 품에서 한 장의 증서를 꺼냈다. 청요 뒷산의 광맥과 가마터를 철상단이 넘겨받는다는 증서였다. 도장 칸만 비어 있었다. 명하는 웃음이 나지 않아 입술을 깨물었다. 상단은 쇠를 잘못 보낸 것이 아니라, 쇠를 빌미로 가마를 사러 왔다.

“반납이 어렵다면 그릇과 장작 빚을 함께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엄노가 증서의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릇값은 네 것이 아니야. 내 것이지.”

“어르신 것은 나중에 따로—”

“내 손으로 굽는 잔을 왜 네가 먼저 정리하나?”

엄노의 목소리는 커지지 않았다. 먹은 귀 쪽으로 몸을 돌려 조탁의 대답을 일부러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문 앞의 호위를 밀고 마당으로 나가 혼례 잔을 가지러 온 마을 사람을 불렀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조탁은 증서를 다시 접었다.

“칼은 출처가 밝혀질 때까지 쓰지 마십시오.”

“쓰지 않을 겁니다.” 한청이 말했다. “부러지는 곳부터 알아야 하니까.”

조탁은 빗속으로 물러났다. 마지막 호위가 나가면서 가마의 왼쪽 바닥을 한 번 내려다봤다. 명하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타다 남은 장작이 쌓인 자리, 열여덟 해 전 스승의 부러진 칼을 묻었던 자리였다.

한청은 천으로 검날을 감쌌다. 엄노가 내민 마른 끈으로 묶고 자신의 주문서를 그 위에 놓았다.

“오늘 밤 여기 있겠습니다. 손님으로요.”

명하는 방을 내주겠다고 말하려다가 가마 밖의 빈 작업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제자가 쓰던 망치가 아직 걸려 있었다. 한청은 망치를 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가져온 짧은 칼집을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먼저 적으세요. 내일 아침까지 제가 요구할 조건이 있습니다.”

명하는 장부의 새 면을 폈다. 가마 밑에서 느린 떨림이 올라왔다. 죽은 스승의 칼이 아니라, 아직 꺼지지 않은 불이 내는 소리였다. 이번에는 그 소리를 사람의 말보다 앞세우지 않기로 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