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분의 용의자들

3화: 내가 데려온 아이
은채는 파일을 바로 재생하지 않았다.
영상은 개인 이름이 붙은 미확인 파일이었고, 로컬 캐시에서 추출된 원본이었다. 수호는 먼저 파일의 해시와 생성 시각을 저장하자고 했다. 차고지 직원은 외부 저장 장치 연결을 허가하지 않았다. 운영사 보안 규정에 어긋날 수 있었다. 은채는 파일을 복사하지 않고, 승인된 화면에서 담당자와 함께 재생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영상에는 차고지 출입구가 찍혀 있었다. 3시 17분 13초, 은채가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는 반사띠 점퍼를 입고 있었고, 작은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 화면의 시계는 중앙 서버 시각보다 37초 느렸다. 따라서 영상은 공백 분 안에 촬영됐을 수도, 바로 전후에 촬영됐을 수도 있었다.
준오의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알아봤다. “저건 준오가 어릴 때부터 차던 끈이에요.”
그녀는 화면을 더 보지 않겠다고 했다. 은채는 영상을 멈췄다. 목소리를 듣기 전에 시각 정보만 먼저 기록했다. 영상 속 은채는 카메라를 돌아보지 않고, 아이를 차고지 안쪽으로 데려갔다. 한 손에는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 아이가 준오라면 왜 데려갔어요?” 수호가 물었다.
“모르겠어.”
“네 목소리잖아.”
“내 목소리가 찍혔다는 사실과, 기억이 맞다는 건 다른 문제야.”
은채는 영상 속 행동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억이 없다고 죄를 인정할 수도 없었다.
수사관은 은채의 노트북을 압수하지 않았다. 먼저 포렌식 복제본을 만들고, 원본은 봉인해 두기로 했다. 은채는 업무 장치와 개인 장치가 같은 계정에 연결돼 있어 자료가 섞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관은 복제 범위를 정하기 전에 계정의 동기화 기록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저는 삭제 명령을 누른 기억이 없습니다.”
“기억은 조사 대상이 아닙니다. 지금은 명령이 나간 장치와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수호는 은채가 수사에 협조하되, 취재원 연락처는 별도 보호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수사관은 취재원 보호 절차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은채는 연락처를 직접 넘기는 대신, 메시지의 해시와 수신 시각을 제공했다. 취재원 본인이 동의할 때만 신원을 공개하기로 했다.
도시관제센터의 예림은 공백 분에 시간 보정 명령이 내려진다는 사실을 확인해 줬다. 명령은 정각마다 60초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서버의 시간을 한 분 늦춘 뒤 다시 맞추는 방식이었다. 그 짧은 동안의 사건은 앞뒤 기록에 중복되거나 아예 저장되지 않았다.
“그럼 실종이 아니라 기록 오류일 수 있겠네요.” 수호가 말했다.
“기록이 지워져도 사람은 사라져요.” 은채는 답했다.
예림은 해당 명령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했지만, 관리 계정 접근은 승인받지 못했다. 그녀는 개인 금고에 보관한 야간 점검표를 보여 주기로 했다. 점검표에는 매일 3시 17분에 시스템 시각을 확인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그 옆에 ‘수정 금지’라는 경고가 빨간 펜으로 적혀 있었다.
은채는 점검표를 촬영하지 않고, 예림이 직접 내용을 읽어 주는 데 동의했다. 읽는 도중 예림은 자신의 이름을 적은 줄에서 목소리를 멈췄다. 그녀는 점검표를 작성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했다. 하지만 왜 기록을 숨겼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은채는 수사관에게 자진해서 취재를 중단했던 당시 메일을 제출했다. 메일에는 하은의 보호자가 기사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말이 적혀 있었지만, 서명이 없었다. 보낸 사람은 은채 본인이었고, 수신자는 당시 편집 데스크였다. 그 아래에는 보류 사유를 확인하지 말라는 메모가 첨부돼 있었다.
“네가 기사를 멈춘 게 아니라 누군가 멈추게 했을 수 있어.” 수호가 말했다.
“그래도 내 계정에서 나갔어.”
은채는 계정 암호를 바꿨다. 새 암호를 수호에게 알리지 않고, 본인만 열 수 있는 복구 코드로 저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계정에 접근한 사람이 본인인지 아직 모른다고 기록했다. 조사관은 그 차이를 인정해 별도 항목으로 남겼다.
수호는 준오의 어머니에게 영상 속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얼굴 대신 손목 끈을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은채는 그 선택이 괜찮은지 다시 물었다. 어머니가 동의하자 수호는 화면을 손목 부분만 잘라 재생했다. 끈은 오른손에 있었다. 어머니는 영상을 보며 울었지만, 아들이 살아 있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제가 알아본 건 물건 하나예요. 제 아이가 맞다고 믿고 싶지만, 다른 아이일 수도 있죠.”
은채는 그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어머니의 확신과 의심을 모두 남겨야 했다. 수호는 화면을 더 재생하지 않고, 파일을 닫았다. 그가 무심코 ‘준오’라고 부르자 은채는 그 이름을 노트에 적어 두었다. 이름이 지워지는 현상에 대비해, 누가 그 아이를 기억하는지도 함께 보존했다.
은채는 정류장 기둥에 남은 광고지를 확인했다. 어제 붙어 있던 전단은 없었지만, 접착제 자국은 새것이었다. 누군가 실종자를 찾는 전단을 떼어 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수호는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고 청소 담당자에게 폐기 봉투를 확인해도 되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동의했고, 봉투 안에서 젖은 전단 조각을 찾았다. 이름은 번졌지만 ‘박’과 ‘준’ 두 글자가 남아 있었다.
그날 밤, 수호와 은채는 버스 정류장으로 다시 갔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보관 중이었지만, 우산의 손잡이에는 젖은 흙이 묻어 있었다. 점원은 매일 3시 17분 무렵,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계산대에 우산이 하나씩 놓였다고 했다. 그는 매장 영상을 보여 주었다. 우산은 손님이 내민 것이 아니라, 카운터 위에 갑자기 나타났다.
은채는 손대지 않고 영상을 기록했다. 우산 아래에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는 사람이 아니라 버스 정류장의 표지판 모양이었다. 누군가 우산을 들고 왔을 수도 있지만, 화면에는 입구도 출입문도 찍히지 않았다.
수호는 취재 파일을 온라인에 올려 두면 원본이 사라져도 남을 거라고 제안했다. 은채는 공개하면 준오의 위치와 가족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대신 암호화한 사본을 세 곳에 분산 보관하고, 접근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수호는 자신의 저장 장치에 하나를 보관하되, 열람 암호는 은채가 맡기로 했다.
그들은 세 번째 복사본을 예림에게 맡기려 했다. 예림은 공공기관 자료를 개인 장치에 보관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대신 점검표 원본을 금고에 계속 두고, 수사관이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이 기사에 쓰이는 것보다 원본이 남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채는 노트북의 동기화 기록에서 자신의 계정이 명령을 내린 시각을 확인했다. 그 명령은 매일 실행됐지만, 첫 실행 날짜는 8년 전이었다. 그때 은채는 어린이 실종 사건을 취재하다가 갑자기 기사를 중단했다. 당시 피해자는 문하은이었다.
그녀는 중단 사유를 기억하지 못했다. 취재 기록에는 ‘안전 문제로 보류’라고만 적혀 있었다. 담당 데스크의 서명은 자신 것이었다.
서진이 아닌 경찰 수사관에게 연락해 영상 보존을 요청했다. 준오의 어머니는 아들이 안전하다면 신고를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채는 영상이 아이의 생사를 증명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상 속에서 은채는 차고지 내부 창고로 향했다. 창고의 출입 기록에는 그 시간에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만 내부 조명 회로는 3시 17분에 48초 동안 켜졌다. 누군가 밖에서 문을 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거나, 로그가 바뀐 것이다.
차고지 경비원은 은채가 어제 왔다고 했던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기억은 나요. 아이가 울고 있었고, 기자님은 도와 달라고 했어요.” 그의 말은 영상 속 모습과 일부 맞았다. 하지만 그 시각 그는 휴게실에 있었다.
“왜 본 걸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기록이 없으면 내가 본 게 아니라고 하니까요.”
수호는 그 말을 듣고 카메라를 끄지 않았다. 그는 경비원의 동의를 받고 음성만 녹음했다. 얼굴은 찍지 않았다. 은채는 그가 자신의 과거를 증언할 수 있지만, 기억과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남겨야 한다고 했다.
로컬 캐시의 삭제가 계속 진행됐다. 운영사는 서버를 끄면 다른 자료가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은채는 삭제를 멈추기보다 중앙 서버와 분리된 백업 장치의 복사 절차를 요청했다.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남은 자료가 40퍼센트까지 줄었다.
예림은 관제센터에서 원격으로 연결해 시간 보정 명령의 기록을 확인했다. 매일 새벽 3시 17분, 누군가 서버 시계를 1분 뒤로 밀고 있었다. 명령은 관제센터 관리자 계정이 아니라, 은채의 취재용 노트북에서 발생한 것으로 기록됐다.
은채는 노트북을 열었다. 자동 동기화 스크립트가 새벽마다 실행되도록 설정돼 있었다. 그녀가 작성한 코드였지만, 마지막 수정 시각은 기억이 없는 날이었다. 스크립트는 공개 기록을 저장하는 동시에 원본의 특정 구간을 지웠다.
“네가 시간을 지운 거야?” 수호가 물었다.
“내 계정으로 명령이 나간 건 맞아.”
“그럼 이유는?”
“모르겠어. 하지만 숨기지 않을게.”
은채는 노트북을 수사관에게 넘기기 전에 저장 장치의 복제본을 만들고, 해시를 계산했다. 자신의 불리한 자료를 포함해 전체 기록을 보존했다. 수호는 그녀의 곁에 남아 절차를 지켜봤다.
복제 작업이 끝나자 영상의 마지막 프레임이 열렸다. 은채가 창고 안에서 카메라를 향해 입을 움직였다. 음성은 저장돼 있지 않았다. 입모양은 한 문장이었다.
“문을 닫아.”
그 뒤에 화면이 끊겼다. 새벽 3시 18분이 시작되자 로컬 캐시의 모든 파일이 정상 기록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