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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싣는 야간 페리2화

기억을 싣는 야간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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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선체 아래의 목소리

라희는 보관함 문을 열기 전에 모든 승객을 객실 반대편으로 이동시켰다.

캡슐은 물리적으로 닫혀 있었지만, 태윤 이름이 적힌 봉인의 상태값이 ‘열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진은 시스템에 표시된 경고를 그대로 믿지 않았다. 충격 센서와 온도 기록, 봉인 번호를 하나씩 확인했다. 다른 여섯 캡슐은 정상으로 잠겨 있었다.

“태윤 씨는 캡슐을 맡기지 않았어요.”

“그러니 라벨 오류일 수도 있어요.” 라희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열면 안 됩니다.”

나진은 태윤에게 경고 사실을 알리고, 캡슐 확인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물건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캡슐을 열거나 기억을 재생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보관함 앞에서 떨어져 있겠다고 했다.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남의 기록을 볼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죠.”

라희는 캡슐을 외부로 꺼내지 않고, 보관함 내부 카메라로 라벨을 확인했다. 봉인에는 태윤의 이름이 없었다. 센서 로그는 다른 캡슐의 데이터가 복제된 흔적을 보여 줬다. 누군가 승객 명단을 바꾸거나, 태윤의 이름을 캡슐에 덧씌운 것일 수 있었다.

파도가 거세지자 페리의 조명은 절전 모드로 전환됐다. 나진은 항로표를 바꾸고, 가장 가까운 고층 부두에 임시 정박하려 했다. 수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부두까지 가면 캡슐을 안전하게 옮길 수 있지만, 목적지 전달이 지연된다. 그대로 항해하면 선체 손상이 커질 수 있었다.

“승객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해요.”

나진은 객실에 있는 일곱 명에게 항로 변경과 캡슐 경고를 알렸다. 캡슐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운송이 늦어질 수 있다는 사실만 전달했다. 한 승객은 자신의 기억을 오늘 밤 받아야 한다고 했고, 다른 승객은 캡슐을 다시 맡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들은 각자 선택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정마루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머니의 캡슐이 다시 보관소로 돌아갈 거라고 걱정했다. 나진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 약속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인수 확인서에 목적지와 반환 조건을 적어 보여 줬다. 마루는 지연에 동의하고 좌석에 앉았다.

태윤은 파도 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일어났다. 그는 수문 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세 번째 부표 다음에 오른쪽으로 틀지 마세요.”

나진은 항로를 확인했다. 그곳은 7월 18일 사고가 났던 침수 교차로였다. 현재 표식등은 오른쪽을 가리켰지만, 태윤은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왜 아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캡슐에 있는 기억을 봤나요?” 라희가 물었다.

“아니요. 들은 적도 없어요.”

태윤은 몸을 떨었다. 나진은 조종을 맡고, 라희는 수동 조명으로 부표를 확인했다. 전자 표식이 침수 후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태윤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현재 수심 센서와 지도 데이터를 대조했다. 오른쪽 수로는 수심이 얕아져 있었다. 태윤이 말한 위험은 사실이었다.

페리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잠시 뒤 오른쪽 수로에서 부표 하나가 물에 잠겼다. 나진은 선체 아래에서 들린 충격음의 위치를 확인했다. 누군가 표식을 옮겼다기보다 수문 구조물이 움직인 것 같았다.

보관함의 경고는 계속됐다. 라희는 센서 자체가 고장났을 수 있다고 했지만, 봉인 아래 작은 긁힘을 발견했다. 캡슐을 빼내려면 봉인을 뜯어야 했다. 나진은 승객들의 개별 동의를 확인하고, 봉인 훼손 없이 보관함 전체를 잠그는 방법을 찾았다.

그때 마루의 캡슐에서도 같은 경고음이 울렸다. 태윤은 그 이름을 보고 굳었다.

“그 기억 안에 제 목소리가 있어요.”

라희는 충격 센서의 기록을 확대했다. 보관함을 두드린 힘은 파도나 부유물의 충격과 달랐다. 세 번 짧게, 한 번 길게.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됐다. 그녀는 배 안의 다른 장비에서 같은 진동이 발생하는지 확인했다. 엔진 진동은 훨씬 낮고 지속적이었다.

나진은 항로를 늦추고, 선체 외부 카메라를 띄웠다. 물속에는 부서진 간판과 케이블이 떠다녔다. 그중 하나가 배 밑을 스쳤지만 보관함까지 진동이 전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희는 기계실의 고정 볼트를 확인하러 내려갔다. 나진은 태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하지 않고, 통로가 안전한지 먼저 확인했다.

태윤은 라희를 따라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는 구조선 수리 경험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자기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나진은 동행을 허락하되, 손을 대기 전에 라희의 지시를 기다리라고 했다.

기계실에서 라희는 보관함 냉각기의 진동 흡수판이 헐거워진 걸 발견했다. 누군가 이를 두드린 게 아니라, 엔진 출력 변화가 판을 통해 전달되고 있었다. 판을 고정하면 센서 경고가 멈출 수 있었지만, 작업 중 냉각기를 잠시 꺼야 했다. 캡슐 온도가 허용치를 벗어나면 데이터가 손상될 수 있었다.

“어느 캡슐부터 옮길까요?”

“먼저 소유자에게 알리고, 격리 상태를 유지하세요.” 나진이 말했다.

승객들은 자신들의 캡슐을 어디에 둘지 각자 선택했다. 한 사람은 보관함을 열지 말아 달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안전한 위치에 옮기는 데 동의했다. 나진은 일곱 명 모두의 의견을 확인했고, 동의한 캡슐만 이동시켰다.

태윤은 기계실의 배관을 보고 난 뒤 오른쪽 밸브가 막혔다고 말했다. 라희가 확인하자 실제로 배관 압력이 올라가 있었다. 태윤은 밸브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공구를 집어 들고 곧장 돌리려 했고, 라희가 그를 막았다. 압력이 높은 상태에서 열면 뜨거운 냉각수가 분출될 수 있었다.

“당신은 이 배를 아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 기억이 없죠?”

나진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태윤은 사고 이후에 신경 치료를 받았을 수도 있고, 기억 저장 서비스를 이용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진단 기록이 없었다.

라희는 압력을 먼저 낮추고 밸브를 천천히 열었다. 냉각수는 배관을 따라 정상적으로 흘렀다. 진동이 줄었고, 보관함 센서는 경고를 멈췄다. 라희는 작업 내용을 기록하고, 캡슐의 온도 변화가 없었는지 확인했다.

“태윤 씨가 밸브를 알고 있었던 건 단서예요.” 나진이 말했다. “기억 내용은 아니고요.”

태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캡슐을 열어 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가 사건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승객의 기억은 그에게 속하지 않았다.

그때 외부 수중 카메라에 사람의 그림자가 잡혔다. 구조복을 입은 인물이 배의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산소 탱크는 없었다. 라희가 확대하자 얼굴은 태윤과 닮아 있었다.

“그건 누구죠?” 마루가 물었다.

태윤은 화면을 본 뒤 한 발 물러섰다. “내가 아닙니다.”

수중 인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선미의 부표가 다시 흔들렸다. 나진은 배를 더 가까이 붙이지 않고 구조 조명을 깜빡였다. 두 번은 접근 대기, 한 번은 응답 요청이었다. 대답 대신 물 아래에서 세 번 짧게, 한 번 길게 두드리는 신호가 돌아왔다.

라희는 그 리듬을 사고 당시 구조 기록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기록은 12년 전에 삭제됐고, 남은 데이터는 캡슐에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캡슐을 열려면 소유자 동의가 필요했다. 나진은 승객들에게 신호를 들려주지 않고, 신호가 있었다는 사실만 알렸다.

태윤은 자신이 직접 응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본인이 사고 당사자일 수 있으며, 수중의 누군가가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진은 위험을 설명했다. 부표에 접근하면 선체 아래의 잔해에 걸릴 수 있고, 수류가 방향을 바꾸면 구조가 어려워질 수 있었다.

“무전으로만 응답할 수 있어요.”

태윤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사고 때 사용했을 법한 구조 신호를 보냈다. “7호 구조선, 위치 확인 바람.”

물 아래에서 응답이 왔다. 이번에는 태윤의 목소리와 같은 음성이었다. “엔진을 멈춰.”

나진은 엔진을 끄지 않았다. 라희가 수심계와 유속계를 확인하는 동안, 나진은 보조 추진만 유지했다. 수류가 선미를 밀기 시작했다. 멈추면 배가 부표에 충돌할 수 있었다. 태윤은 자신이 기억한 말이 구조 명령인지 경고인지 모른다고 인정했다.

라희는 부표의 연결선이 선체 아래로 들어가는 걸 발견했다. 배를 그대로 움직이면 선이 프로펠러에 감길 수 있었다. 그녀는 안전줄을 매고 바깥 작업대로 나가 연결선을 절단할 준비를 했다. 나진은 그녀에게 혼자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작업대는 한 사람만 설 수 있었다.

“제가 자르고 바로 돌아올게요. 배는 현재 위치를 유지해 주세요.”

나진은 속도를 더 낮추고, 선체 위치를 고정했다. 라희는 작업대에 나가 줄을 끊지 않고 묶인 고리를 풀었다. 부표는 물살을 타고 멀어졌다. 그 아래에서 희미한 조명이 한 번 켜졌다가 꺼졌다.

부표가 멀어지자 선체의 진동은 줄었다. 라희는 연결선이 프로펠러에 닿지 않았는지 점검했고, 나진은 엔진 출력을 정상으로 되돌렸다. 세 사람은 수중 인물이 실제 사람인지, 오래된 구조 장비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좌표와 수심만 구조 당국에 전송했다.

태윤은 사고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승객의 캡슐을 열지 않겠다고 다시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캡슐에 나타난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타인의 허락 없이 답을 얻는 건 원치 않았다.
한 승객은 부표를 본 뒤 자신의 기억 캡슐에 사고 당시의 물소리가 들어 있을지 물었다. 나진은 내용은 열람할 수 없지만 캡슐의 기술적 손상 여부는 점검할 수 있다고 했다. 승객은 점검에 동의했고, 라희는 저장 상태가 정상이라고 확인했다. 기억은 손상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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