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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싣는 야간 페리1화

기억을 싣는 야간 페리

기억을 싣는 야간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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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모두가 맡긴 같은 기억

나진은 기억 캡슐 일곱 개의 봉인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야간 페리 7호는 침수된 서울의 서쪽 구역을 돌아 새벽 항만까지 운행했다. 승객은 짐을 맡기듯 기억을 맡길 수 있었다. 특정한 장면의 감각 데이터만 암호화해 캡슐에 저장하고, 목적지에서 본인이 열람하거나 지정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서비스였다. 원본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캡슐이 파손돼도 뇌를 바꾸는 일은 없었지만, 복구 과정에서 다른 기억의 소리가 섞일 수 있었다.

“전부 같은 항로로 가네요.” 정비사 오라희가 말했다.

“도착지는 일곱 군데인데, 출발 구역은 같아요.”

“기억 이름도 같습니다. 7월 18일, 동부 수문 사고.”

나진은 캡슐 라벨을 살폈다. 승객 일곱 명이 각자 기억을 맡겼지만, 모두 같은 침수 사고를 기록했다. 이름과 암호키는 달랐다. 라희는 캡슐을 보관함에 넣기 전에 온도와 충격 센서를 확인했다. 배의 흔들림이 커지면 보관함이 잠기도록 설계돼 있었다.

승객 중 누구도 다른 사람의 기억을 열람하지 않기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캡슐만 목적지로 전달하는 데 서명했다. 나진은 운송 목록에 교차 기억 묶음이라고 표시했다. 같은 사건이라고 해서 같은 기억은 아니었다.

탑승 마지막 순간, 윤태윤이 페리로 올라왔다. 그는 신분 확인을 마치고 승선권을 내밀었다. 나진은 그의 이름을 보고 굳었다. 기억 캡슐 일곱 개 중 네 개에서 사고의 주인공으로 언급된 이름이었다.

“오늘 처음 이 항로를 타십니까?”

“처음입니다.”

“7월 18일 동부 수문 사고를 기억하세요?”

“그런 사고가 있었나요?”

라희는 캡슐 보관함을 닫았다. 태윤은 사고 당시 구조선의 항해사였고, 공식 기록에는 실종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 있었다. 나진은 캡슐을 보여 주지 않고, 그의 동의를 얻어 사고 당시의 탑승 기록을 확인했다. 태윤은 기록 열람에는 동의했지만, 기억을 맡긴 승객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고를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저희는 운송만 합니다.”

“그럼 왜 제 이름을 아세요?”

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탑승객을 보호하려면 누구의 기억인지 먼저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태윤은 더 묻지 않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출항 시각이 되자 수문이 열렸다. 바닷물이 배 아래를 밀어 올렸다. 페리의 항로등은 침수된 빌딩 사이에 놓인 부표를 따라 켜졌다. 나진은 수위와 풍향을 확인하고, 라희에게 보관함의 충격 센서를 감시해 달라고 했다.

도중에 한 승객이 호출 버튼을 눌렀다. 정마루라는 소년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남긴 기억 캡슐을 목적지에서 열어도 되는지 물었다. 나진은 캡슐 주인인 어머니의 수신 동의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루는 어머니가 이미 실종됐다고 했다. 캡슐에 남은 주소를 알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억 안에 주소가 있을 수도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어요.”

“그럼 저는 왜 이걸 들고 가죠?”

“어머니가 전달하기로 선택한 것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열어 보는 건 어머니가 지정한 수신자에게만 가능합니다.”

마루는 캡슐을 돌려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목적지까지 운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진은 그 선택을 기록했다.

그때 배가 크게 흔들렸다. 라희가 보관함의 잠금 장치를 확인했다. 캡슐 일곱 개의 센서가 동시에 충격을 감지했다. 배가 파도에 흔들린 게 아니었다. 바다 아래에서 무언가가 선체를 밀었다.

태윤이 창밖을 바라봤다. “그날도 이런 소리가 났어요.”

“기억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소리는 기억납니다.”

태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진은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괜찮은지 물었다. 그는 잠시 쉬겠다고 했다. 라희는 선체에 작은 찌그러짐이 생겼다고 보고했다.

캡슐 보관함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한 개의 봉인이 풀려 있었다. 센서는 물리 충격을 기록했지만, 보관함 문은 열리지 않았다.

라벨에는 태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진은 승객들이 맡긴 캡슐의 보관 기록을 하나씩 열었다. 일곱 사람은 모두 다른 항구에서 탑승했지만, 기억을 맡긴 시각은 같은 날 23시 18분이었다. 한 시간도 안 되는 간격이었다. 그들은 같은 침수 사고를 겪었고, 같은 날 기억 보관 서비스를 신청했다. 우연일 수도 있었지만, 운송 목적지가 같다는 점은 이상했다.

라희는 캡슐이 실린 보관함의 냉각 장치를 확인했다. 온도는 일정했지만, 외부 충격을 감지한 센서가 경고를 띄웠다. 승객들이 같은 기억을 맡긴 이유와 캡슐의 라벨 오류가 연결됐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함을 열지 않고 충격 패턴만 추출했다.

“누군가 보관함을 두드린 것 같아요.”

“배 밖에서요?”

“그럴 수도 있고, 선체 구조물이 닿았을 수도 있어요.”

태윤은 자신의 좌석에 앉아 물을 마셨다. 나진이 그에게 사고를 묻지 않자, 오히려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사고 전날 구조선을 수리하고 있었고, 다음 날에는 항해를 맡기로 했다고 했다. 하지만 구조선의 이름과 동료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 캡슐에 기록된 사람들과 아는 사이인가요?”

“모르겠습니다. 그 이름들을 들으면 가슴이 아픈데, 얼굴은 떠오르지 않아요.”

나진은 그 반응을 기록에 넣을지 물었다. 태윤은 이름이나 감정은 기록하지 말고, 본인이 기억하지 못한다고만 적어 달라고 했다. 나진은 동의했다. 그의 감정은 증거로 포장할 수 없었다.

한 승객은 기억을 운송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나진은 승객을 호출해 캡슐을 되돌릴 수 있지만, 배가 기항하기 전까지는 격리 보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승객은 캡슐을 바다에 버려 달라고 요구했다.

“그 기억은 제가 겪은 일이에요. 누구에게도 다시 보이고 싶지 않아요.”

“폐기하려면 목적지 기록과 복구 가능성을 설명한 뒤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지금은 배가 항해 중이라 즉시 폐기할 수 없어요.”

승객은 불만을 보였지만, 나진은 기억을 임의로 없애지 않았다. 캡슐은 소유자의 기록이었고, 폐기 역시 숙고할 시간을 주어야 했다. 그녀는 다음 항구에 도착하면 본인 앞에서 폐기할 수 있도록 접수했다.

마루는 어머니의 캡슐을 보관함에서 떨어진 자리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같은 사고의 기억과 가까이 있으면 어머니의 기록이 오염될 것 같다고 했다. 라희는 저장 내용은 암호화되어 서로 섞이지 않지만, 심리적 불안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진은 캡슐을 다른 구획에 옮겼다.

“어머니가 이걸 맡긴 이유를 알고 싶어요.” 마루가 말했다.

“당신이 받을 사람으로 지정됐다는 것만 확인돼요.”

“그게 어머니가 저를 기억했다는 뜻일까요?”

나진은 답하지 않았다. 기억 캡슐은 기억을 보존하지만, 주인의 마음을 대신 말하지는 않았다. 마루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어머니가 자신을 떠올렸을 가능성을 놓지 못했다.

배가 첫 번째 부표를 지날 때, 항로 조명이 갑자기 꺼졌다. 라희는 전력 분배가 끊겼다고 보고했다. 나진은 수동 조명으로 방향을 확인하고, 승객들에게 좌석을 벗어나지 말라고 안내했다. 침수된 거리에서 정전이 나면 빌딩의 잔해를 볼 수 없었다.

태윤은 조명이 꺼진 방향을 바라보다가, 사고 때도 누군가 같은 문장을 외쳤다고 했다. “엔진을 멈춰.” 그는 왜 그 말이 떠올랐는지 몰랐다. 나진은 엔진 출력을 낮추고 선체 손상 여부를 확인했다.
나진은 외부 충격의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페리를 가장 가까운 고층 부두에 정박시키기로 했다. 수로 표식등이 절반쯤 꺼져 있어 항로를 계속 가면 수심이 낮은 골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라희는 정박이 늦어지면 냉각 장치가 재가동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진은 항해 속도를 낮추고 승객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승객들은 각기 다른 목적지에 도착해야 했다. 한 사람은 새벽에 의료 시설에 가야 했고, 다른 사람은 가족에게 기억을 전달하기로 약속했다. 나진은 지연이 생기는 이유와 예상 시간을 솔직하게 알렸다. 승객들은 도착이 늦어져도 항해를 계속해 달라고 했다.

태윤은 선체 충격이 났던 순간의 방향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사고 당시 구조선에서 왼쪽으로 돌았다고 말했다. 나진은 항해 기록과 비교해 보자고 했다. 그러나 현재 항로의 왼쪽은 수심이 낮았다. 태윤의 기억이 예전 사고의 방향일 수 있고, 지금의 안전한 경로는 다를 수 있었다.

“기억이 맞아도 지금은 다른 선택을 해야 해요.” 나진이 말했다.

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전 기억을 현재 명령처럼 취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라희는 수동 수심계로 좌우 수로를 확인했고, 오른쪽은 부유물 때문에 위험했다. 결국 배는 정박지까지 천천히 나아갔다.

부두에서 승객들은 내리지 않고 대기했다. 나진은 각 캡슐의 소유자에게 계속 운송을 원하는지 다시 물었다. 폐기 요청을 한 승객은 목적지 도착 뒤에 본인 앞에서 결정하겠다고 바꿨다. 그 선택은 그가 기억을 다시 맡기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나진은 두 요청을 각각 기록했다.

부두에 정박한 동안 태윤은 창밖의 수위를 바라봤다. 물에 잠긴 건물의 옥상마다 구조 표식이 남아 있었다. 그는 표식을 보며 어느 하나가 사고 날 자신이 세웠던 것 같다고 했다. 나진은 그 말을 기억 진술로 적고,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는 표시를 덧붙였다. 태윤은 자신이 확실한 것과 추측한 것을 구분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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