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졸 진무강의 검시록

3화: 감싸던 팔
붉은 매화 다섯 잎이 새벽빛에 젖어 있었다.
진무강은 청하표국 마구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종이 조각을 손바닥 위에 올려 두었다. 밤비에 젖은 종이는 가장자리가 풀렸지만 매화 문양은 번지지 않았다. 찢긴 면에는 붉은 실 한 가닥이 걸려 있었다.
"이 문양을 본 적 있소?"
무강이 묻자 노표두 곽진수는 수레 옆에서 입을 다물었다. 그는 품에서 접힌 화물 목록을 꺼냈다. 열세 상자와 약재 꾸러미 네 개가 적혀 있었지만 수레 널판에는 길이 두 자가량의 빈자리가 남아 있었다.
"목록에 없는 상자입니다. 폭이 좁고 모서리에 쇠테가 둘러져 있었어요."
"그런 물건은 없었소."
곽진수의 손가락이 목록의 접힌 자리를 계속 문질렀다.
무강은 종이 조각을 빈자리에 대 보았다. 붉은 점 하나가 수레 바닥의 못 자국과 같은 간격에 놓였다. 종이는 상자 뚜껑을 감쌌던 봉인용 크기였다.
"없었던 물건의 자국이 왜 남아 있습니까?"
곽진수는 대답 대신 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레가 강가 샛길을 다녀왔소. 막내 도윤이 몰았지. 다른 표사들은 이미 죽어 있었으니까. 상자를 내렸는지는 모르오."
서윤설이 종이 조각을 받아 들었다. 흰 장갑을 낀 손가락이 찢긴 면과 붉은 실을 차례로 눌렀다.
"실의 염료는 수레에서 나온 비단실과 같아요. 종이에는 기름과 송진을 섞은 흔적이 있습니다. 물건을 싸서 봉인할 때 쓰는 종이예요."
"백가장의 표식입니까?"
"가능성은 있지만 문양 하나로 주인을 정할 수는 없어요. 백가장의 물건을 훔쳐 썼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넘긴 사람의 표식일 수도 있으니까요."
윤설은 매화 문양과 홍매향을 분리해 보았다. 무강은 그 차이를 기록지에 적었다. 향유의 출처와 봉인의 주인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종이를 접지 않고 새 기름종이 위에 펼쳐 두었다. 왼쪽에는 마구간에서 찾은 조각의 모양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수레 바닥의 흠집과 빈자리 길이를 적었다. 봉인 종이는 세 겹으로 접혔고 마지막 접힌 면에는 손톱으로 누른 자국이 있었다. 급하게 뜯긴 것이 아니라 누군가 안의 물건을 꺼내고 남은 종이였다.
"이 상자는 수레에 실릴 때 이미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강가에서 뜯겼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무강이 말하자 윤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문양은 범인의 옷이 아니라 화물의 출처를 말할 수도 있겠네요."
"출처와 운반자는 따로 찾아야 합니다."
한도겸은 기록지를 들여다보았다. 글자를 읽는 눈이 잠시 멈췄다. 무강은 그가 백가장이라는 이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증거보다 앞서가는 이름은 나중에 기록을 오염시킬 수 있었다.
마구간 밖에서 철척 고리가 울렸다. 한도겸이 형방 이배와 관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진 포졸. 현령 사또의 명이오. 표국의 수레와 장부를 관아로 넘기시오."
한도겸이 무강 앞을 막았다.
"압수 영장은 있소?"
"현령의 명이 곧 영장이지 않소."
"그 말은 장부에 그대로 적겠소."
이배의 얼굴이 굳었다. 한도겸은 철척 손잡이를 쥔 채 수레를 가리켰다.
"임시 보존 명령은 아직 유효하다. 수레와 장부에 손대지 마라. 거부하면 사유와 시간을 기록해 상부에 올리겠다."
이배는 욕설을 삼키며 관원들을 물렸다. 무강은 봉인 조각을 봉투에 넣었다.
"도윤이 무엇을 옮겼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시신을 다시 보겠다는 거냐?"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보겠습니다."
한도겸은 한숨을 삼켰다.
"확인하고 나면 나와 함께 움직인다. 혼자 강가로 가지 마라."
도윤의 시신은 혜민당 뒤편 임시 보존실에 놓여 있었다.
서윤설은 오른손을 살폈다. 손바닥에는 무언가를 세게 끌어당긴 듯한 찰과상이 남아 있었다. 왼쪽 팔꿈치와 무릎에는 객잔 골목의 누런 흙과 다른 회색 진흙이 묻어 있었다.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도 섞여 있었다.
"강가 샛길의 진흙입니다."
윤설이 말했다.
무강은 도윤의 왼팔을 들어 올렸다. 팔 안쪽 근육은 칼을 맞기 전까지 긴장해 있었다. 소매 안쪽 솔기에는 가늘고 촘촘한 회색 삼베 섬유 세 가닥이 박혀 있었다.
"표국의 포장 자루입니까?"
"짜임이 달라요. 성인 표사의 옷감보다 얇습니다."
무강은 도윤의 몸을 옆으로 돌렸다. 목을 가른 상처는 오른쪽에서 들어와 왼쪽으로 빠졌다. 등판의 짧은 칼자국은 깊지 않았다. 도윤은 등을 보인 채 한쪽 팔을 앞으로 굽히고 쓰러져 있었다.
무강이 접힌 팔 안쪽에 손을 넣었다. 사람 한 명이 웅크릴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죽은 뒤에 만들어진 자세가 아니에요."
윤설이 도윤의 팔 안쪽을 살폈다.
"근육이 칼을 맞기 전에 굳었습니다. 누군가를 안쪽에 숨기며 몸을 틀었어요."
도윤의 손가락 사이에는 붉은 실과 같은 색의 섬유가 하나 더 끼어 있었다. 실은 손톱 밑이 아니라 마디 사이에 감겨 있었다. 도윤이 누군가의 옷을 붙잡은 흔적이었다.
무강은 팔 안쪽의 피가 굳은 방향도 확인했다.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라면 중력에 따라 팔꿈치 쪽으로 길게 번져야 했다. 그러나 핏자국은 팔 안쪽 한 지점에 눌려 있었고 그 바깥에는 다른 사람의 옷감이 마찰한 흔적이 있었다. 도윤이 쓰러지는 순간에도 팔을 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는 도윤의 몸 옆 바닥에 남은 작은 눌림 자국을 세었다. 한 곳은 무릎이 닿은 자리였고 다른 한 곳은 어깨 높이였다. 도윤보다 낮은 사람이 그 팔 안쪽에서 몸을 웅크렸다가 빠져나간 흔적이었다.
무강은 낮게 말했다.
"상자만 지킨 게 아닙니다. 상자 뒤에 있던 사람을 감쌌어요."
"그 사람이 살아서 도망쳤는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물어야 합니다."
한도겸이 곽진수를 불렀다. 노표두는 도윤의 시신을 보지 못하고 모자만 구겼다.
"표국 사람 중 사라진 사람이 있습니까?"
"소율이오. 열일곱 살 견습꾼인데 어젯밤부터 보이지 않소. 도윤의 심부름을 하던 아이요."
"왜 숨겼습니까?"
"관아가 표국 사람을 전부 데려갈까 두려웠소. 소율이 도망친 것으로 처리하면 찾을 틈이 생길 줄 알았지."
곽진수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출발 전날 밤 도윤이 소율에게 수레 바닥을 비우라고 했다는 말도 들었소. 짐을 덜 싣는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무강은 도윤의 굳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죽은 자는 상자의 내용도 소율의 행방도 말해 주지 못했다. 대신 마지막 자세 하나를 남겼다.
"강가에서 상자를 내린 뒤 도윤과 소율이 함께 돌아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살수들은 그 뒤를 따라왔고요."
한도겸의 턱이 굳었다.
"강가로 간다. 단 수레와 시신의 봉인은 유지한다."
강가 샛길은 아침 물안개에 잠겨 있었다.
무강은 수레바퀴 자국 옆에 쪼그려 앉았다. 밤새 물이 불어나 흔적 대부분을 삼켰지만 마른 갈대 아래에는 얕은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큰 짚신 자국 두 개가 강 쪽으로 향했다. 그 옆의 작은 발자국은 강으로 가지 않고 표국 쪽으로 돌아왔다. 한 곳의 진흙은 깊게 눌려 있었고 그 안에 회색 삼베 섬유가 붙어 있었다.
무강은 큰 발자국의 방향을 손가락으로 이었다. 처음 두 사람은 나란히 걷지 않았다. 앞사람이 강 쪽으로 내려가고 뒤의 사람은 세 걸음 거리를 두었다. 돌아올 때는 큰 자국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대신 작은 발자국 옆에 끌린 자국이 길게 남았다.
누군가가 뒤에서 따라붙어 아이를 낚아챘다. 도윤은 그 뒤를 막았고 살수들은 그 자리에서 표사들을 베었다. 하지만 그 결론은 발자국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유효했다. 무강은 소율이 살아 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누군가 소율을 잡아당겼습니다."
무강은 발자국을 따라 손가락으로 순서를 짚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걸었다. 뒤로 돌아온 세 번째 발자국부터는 발끝만 찍혀 있었다.
윤설이 섬유를 약병에 넣었다.
"끌려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피도 없습니다."
"혼자 달아난 흔적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안거나 업은 뒤 잠깐 내려놓았습니다."
표국 창고 문에는 낡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곽진수는 어젯밤 자신이 잠갔다고 했다. 그러나 문 안쪽에서 시작한 젖은 발자국이 창고 깊숙한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한도겸이 손을 들었다.
"먼저 봉인한다. 안에 사람이 있든 없든 흔적을 밟으면 안 된다."
무강은 문턱 안쪽에 손을 뻗었다. 희미한 홍매향과 젖은 흙 냄새가 올라왔다. 그는 붉은 종이 조각을 집어 들었다. 매화 다섯 잎 중 세 잎만 남아 있었고 문양 아래에는 검은 숫자 하나가 찍혀 있었다.
삼(三).
윤설이 종이 뒷면을 살폈다.
"어젯밤 조각과 같은 종이예요. 붉은 실도 같은 염료입니다."
창고 안쪽 봉인끈에는 끊긴 실 한 가닥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다시 잠근 흔적이었다. 상자를 찾았거나 소율을 데려갔을 것이다.
한도겸은 표국 서리에게 봉인용 종이를 가져오게 했다.
"오늘 밤까지 누구도 이 창고에 들이지 마라. 문을 여는 자는 이름과 시간을 남긴다."
멀리서 이배가 현령의 명을 외쳤지만 한도겸은 영장을 보여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무강은 숫자 삼이 찍힌 종이를 봉투에 넣고 윤설과 함께 손도장을 남겼다.
그때 창고 안쪽에서 나무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곽진수가 숨을 삼켰다. 그는 반사적으로 창고 문고리에 손을 뻗었지만 한도겸의 철척이 손등 앞을 가로막았다.
"손대지 마."
"안에 소율이 있을지도 모르오."
"있다면 더더욱 증거를 밟지 말아야 한다."
한도겸은 관원 하나를 골목 입구에 세우고 다른 한 명에게 표국 뒷문을 지키게 했다. 이배가 다시 다가와 문을 열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무강은 소리의 위치를 가늠했다. 문 바로 뒤가 아니라 창고 안쪽의 낮은 선반 근처였다.
나무가 눌린 뒤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람의 숨인지 쥐가 움직인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강은 칼자루를 잡지 않고 봉투부터 품에 넣었다. 추측으로 문을 열면 그 안의 흔적은 한 번뿐인 말도 하기 전에 지워질 터였다.
무강의 손이 봉투 위에서 멈췄다.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고 안에 무엇이 남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도겸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혼자 움직이지 마라."
"소율을 찾겠습니다."
"나와 같이 찾는다."
무강은 어둠 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도윤이 마지막으로 감싼 것은 상자였을까. 아니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었을까.
문 아래로 젖은 발자국 하나가 더 번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