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 보일러 수리공은 탑을 끄지 않는다

2화: 멈출 수 없는 압력계
압력계가 16바를 가리키는 동안, 한라온의 손은 안전밸브 위에서 떨렸다.
최도겸은 그의 팔을 잡아 내렸다. 안전밸브를 급히 열면 뜨거운 난방수가 분출할 수 있었다. 마력 압력이 역류하는 상태라면 푸른 불꽃까지 함께 튈 수 있었다.
“밸브를 열어 압력을 빼야 합니다.”
“순서가 있어. 배출구 확인, 압력 해제, 차단 밸브 고정.”
“그 순서대로 하면 늦어요.”
“빠른 조작이 빠른 수리는 아니야.”
도겸은 보조 압력계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바늘은 16.2바까지 올라갔다. 난방수 온도는 떨어지고 있었다. 열이 빠져나가는데 압력이 높아지는 건 보일러 안에서만 생긴 일이 아니었다. 탑의 방어 냉각관에서 마력이 밀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탑 설비 책임자 권재식은 관리실과 연결된 배관 지도를 다시 펼쳤다. 3구역 난방망과 방어 냉각관 사이에 우회 밸브 하나가 표시되어 있었지만, 실제 배관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밸브가 벽 안에 묻혔거나 다른 부품으로 교체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분기 밸브를 찾을 때까지 가동을 낮추는 게 낫습니다.” 도겸이 말했다.
“출력을 낮추면 방어막 냉각이 불안정해집니다.” 재식은 답했다.
“지금도 불안정합니다. 난방수 온도가 20도 아래예요.”
“보일러를 멈추면 외벽 방어율이 40퍼센트 떨어져요.”
“그럼 주민 대피를 끝내고, 냉각관만 우회하는 방안을 찾죠.”
재식은 도겸을 바라봤다. “정지 지시 전까지 보일러를 유지하라는 관리실 결정입니다.”
“지시를 남겨 주세요. 저도 현장 압력과 온도를 보고서로 올리겠습니다.”
그들은 책임을 떠넘기지 않도록 각자 본 수치를 기록했다. 재식은 관리실에서 받은 지시를 화면에 띄웠다. 도겸은 보조 계기값과 센서 사진을 붙였다. 라온은 자신의 이름으로 수동 밸브를 열려 했다는 사실을 적고, 이후에는 승인 없는 조작을 하지 않겠다고 서명했다.
3구역 주민들은 대부분 2구역 휴게실로 이동했지만, 외벽 쪽 세대 두 곳은 남아 있었다. 한 집에는 아기를 둔 부부가 있었고, 다른 집에는 이동이 어려운 노인이 혼자 있었다. 박선영은 남은 주민에게 순서를 확인했다. 엘리베이터는 방어막 이상으로 멈추어 있었고, 계단을 오르내리면 대피가 늦어졌다.
응급대원 임하경은 산소통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도겸은 외벽 쪽 세대에 임시 온수관을 연결할 수 있는지 살폈다. 주 배관은 차가웠지만, 2구역 휴게실을 지나가는 온수 우회관은 아직 따뜻했다. 그 관을 두 구역으로 나누면 휴게실 온도가 낮아질 수 있었다.
“분배하면 저쪽이 춥고, 이쪽도 충분히 따뜻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선영이 말했다.
“그래도 한 집에 열이 몰리는 것보단 낫습니다.”
“주민들이 선택하게 하죠. 대피를 원하면 계단으로 옮기고, 집에 남으면 온수관을 연결합니다.”
선영은 양쪽 주민과 통화했다. 아기 가족은 대피실로 옮기기로 했고, 노인은 집에 남되 온수관과 응급 호출 버튼을 연결해 달라고 했다. 하경은 집 안 온도를 확인하고, 산소 장비가 정상인지 점검했다. 누구도 억지로 한쪽을 선택하게 하지 않았다.
도겸과 라온은 임시 우회관을 연결했다. 라온은 나사를 조이기 전에 부품 규격을 확인했다. 첫 작업 때 놓친 순서를 다시 떠올리며 연결부를 하나씩 잠갔다. 누수가 없는지 확인한 뒤 온수를 조금 흘렸다. 관은 따뜻해졌지만, 보일러 쪽 압력계는 그대로였다.
“열은 도착했는데 압력은 안 내려가요.”
“이 회로가 압력을 빼는 데 쓰이는 건 아니니까.”
도겸은 다른 분기에서 압력을 낮추려면 배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관리실 도면에는 3구역 남쪽 배출관이 있었다. 그곳은 외벽 정비 통로로 이어지지만 방어막이 약해질 수 있어 출입을 제한했다.
재식은 관리실에 외벽 통로 접근 권한을 요청했다. 답이 오지 않았다. 도겸은 요청 시간이 적힌 화면을 저장했다. 라온은 정비팀 안쪽에서 쓸 수 있는 수동 감압장치를 꺼냈다. 하지만 장치가 현재 보일러의 압력 범위에 맞는지 라벨이 지워져 있었다.
“이건 쓰면 안 됩니다.” 도겸이 말했다.
“정비팀에서 쓰던 장치예요.”
“마지막 점검 날짜가 없잖아.”
라온은 장치를 내려놓았다. “제가 빨리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알아. 그래서 멈춘 게 잘한 일이야.”
도겸은 외벽 통로를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압력 상승을 늦추기 위해 보일러 출력을 한 단계 낮추기로 했다. 재식은 방어막이 떨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외벽 센서값은 이미 불규칙했다. 그들은 방어 담당자와 통화해 냉각 상태를 확인한 뒤, 3구역 난방 출력만 낮추고 방어 냉각은 별도 계통으로 유지하는 절충을 했다.
출력을 내리자 보일러가 떨리는 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러나 압력은 내려오지 않았다. 푸른 서리가 배관을 타고 점점 위로 번졌다. 라온은 그 흐름이 바닥 아래에서 시작해 조절실 쪽으로 향하는 걸 열화상 화면으로 확인했다.
“냉각관에서 난방관으로 역류하는 게 맞아요.”
도겸은 배관 접점에 손을 대지 않고, 센서를 붙여 진동을 기록했다. 진동은 4초 간격으로 반복됐다. 방어막이 펄스를 보내는 주기와 같았다. 방어관이 난방관에 연결되어 있다면, 압력은 방어망이 움직일 때마다 보일러 쪽으로 밀릴 수 있었다.
관리실에서 마침내 접근 허가가 내려왔다. 다만 외벽 통로는 방어막 담당자와 함께 들어가고, 5분 안에 나와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재식이 동행하기로 했고, 라온은 내부에서 압력 변화를 감시했다.
외벽 통로로 나가자 찬 공기가 헬멧 틈으로 스며들었다. 도겸은 안전줄을 걸고 배출구를 찾았다. 지도에 표시된 위치에는 새 철판이 용접되어 있었다. 덮개를 열 수 없었다. 용접선은 최근에 생긴 것처럼 깨끗했다.
“이 배출구는 왜 막았습니까?”
재식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지난달 보강 작업 때 폐쇄한 것 같습니다.”
“작업 기록이 있어야 합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때 내부 무전기가 울렸다. 라온의 목소리가 끊겨 들렸다. 압력계가 17바를 넘었고, 안전밸브가 열리기 직전이라고 했다. 도겸은 통로에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재식은 철판 아래쪽을 살피다가 손을 멈췄다.
철판 안쪽에서 푸른 불꽃이 한 번 튀었다. 배출구가 아니라, 난방관을 따라 위층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냥 압력을 빼면 안 돼요.” 재식이 말했다. “이 선이 방어 냉각관으로 바로 이어져 있어요.”
“그럼 분기 차단 위치부터 찾아야 합니다.”
도겸은 무전기로 라온에게 보일러 출력을 한 단계 더 낮추고, 밸브에 손대지 말라고 지시했다. 라온은 짧게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지시를 다시 되묻고 정확히 복창했다.
기계실로 돌아오자 압력은 17.4바까지 올라가 있었다. 안전밸브가 삐걱거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라온은 두 손으로 차단판을 붙잡았다. 도겸은 밸브를 열지 않고, 배관 흐름을 분리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했다.
그의 손전등 불빛 아래, 난방관을 따라 이어지는 푸른 선이 3구역 천장 쪽으로 갈라졌다. 불꽃이 벽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겸은 라온에게 천장 밸브의 잠금 상태를 확인하라고 했다. 라온은 사다리를 고정하고, 안전줄을 걸어 올라갔다. 손이 닿기 직전 푸른 불꽃이 한 번 더 튀었다. 그는 바로 내려왔다.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관이 너무 뜨거워요.”
“그럼 손대지 마. 열화상으로 위치만 표시해.”
라온은 화면을 돌려 도겸에게 보여 줬다. 불꽃은 밸브가 아니라 벽 안쪽의 오래된 접합부에서 번지고 있었다. 도면에는 없는 접합이었다. 누군가 보강 작업 중 방어 냉각관을 난방관에 직접 연결했을 수 있었다.
“저 연결을 자르면 압력은 빠질 겁니다.” 라온이 말했다.
“하지만 방어 냉각도 끊길 수 있어. 확인 없이 절단하지 않아.”
“그럼 무엇을 기다립니까?”
“관리실 담당자가 외벽 방어 상태를 보고, 주민 대피가 끝나는 걸 기다려. 그동안 안전한 분기 지점을 찾아.”
라온은 이를 악물었지만 다시 열화상 장비를 들었다. 도겸은 천장 관의 진동 주기와 보일러 압력 변화를 나란히 기록했다. 4초 간격의 방어 펄스가 들어올 때마다 압력은 조금씩 뛰었다. 연결관을 완전히 끊지 않고도 흐름을 낮출 수 있는 우회 밸브가 필요했다.
선영은 3구역 주민이 모두 대피했는지 확인했다. 노인은 따뜻한 카트와 하경의 도움으로 휴게실에 도착했다. 아이를 안은 부부는 담요를 덮었고, 다른 주민은 집에 남아도 된다는 설명을 들은 뒤 대피를 선택했다. 그들은 이동 중인 엘리베이터에 몰리지 않도록 계단을 나눠 사용했다.
“이제 난방을 끊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죠?” 선영이 무전으로 물었다.
“임시 공급은 유지됩니다. 본관은 압력 때문에 조정이 필요해요.”
“주민에게 그렇게 그대로 알릴게요. 다 괜찮아졌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도겸은 잠깐 눈을 감았다. 좋은 소식만 말하면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지만, 다음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압력계가 17바를 넘었고, 보일러는 출력 저하 상태라는 점을 주민 대표에게 전달했다.
관리실 방어 담당자는 3구역 외벽막이 65퍼센트로 낮아졌지만, 인접 구역이 보조 전력을 보내고 있다고 알려 왔다. 완전히 무너지기까지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을 정확히 계산할 수는 없었다. 재식은 이를 듣고 얼굴을 굳혔다.
“난방관을 분리하면 외벽막이 더 떨어질 수 있겠군요.”
“그렇다고 압력을 계속 올려 둘 수는 없습니다.”
“분기 밸브가 어디 있는지 찾겠습니다.”
재식은 처음으로 도면을 손에서 놓고 현장 점검에 합류했다. 그는 자신이 승인했던 보강 작업의 날짜를 기억해 냈다. 작업자는 방어 냉각관의 열을 난방관에 이용하면 에너지 효율이 오른다고 설명했다. 재식은 임시 연결이라고 생각했고, 영구 변경 승인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
“제가 확인했어야 합니다.”
도겸은 답하지 않았다. 사과를 듣는 것보다 지금은 안전한 분기를 찾아야 했다. 그는 재식에게 작업 당시 사용한 자재 목록과 잠금 번호를 물었다. 재식은 관리실로 돌아가지 않고, 현장에서 기억을 적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