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빛 강의 난

2화: 물밑에 잠긴 곳간
나무판에는 새벽에 배가 온다고 적혀 있었다. 복례는 강바닥 창고로 향하는 물길이 그 시간에 가장 깊어진다고 했다. 배 한 척이 들어갈 수는 있지만, 노를 잘못 젓거나 짐이 무거우면 바위에 걸릴 것이다.
순임은 곡식을 가져올 그릇을 배 안에 실었다. 연담은 그릇을 보며 자루 하나라도 건져 올리면 마을 사람 모두에게 나눌 수 있는지 계산했다. 실제 양을 모르면 분배를 약속할 수 없었다. 순임은 계산보다 먼저 굶주린 이들에게 밥을 주겠다고 했다.
“그 다음에 나눌 몫은 남겨야 해요.”
“나눌 곡식이 있는지부터 봐야죠.”
복례는 배를 물에 띄우기 전, 강바닥의 물살을 막대로 짚었다. 나무판에 적힌 방향은 틀려 있었다. 새벽에는 물이 창고 쪽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아래로 빠졌다. 누군가 시간은 맞게 적었지만, 방향을 일부러 바꿔 놓았다.
연담은 강둑을 따라 세곡선의 흔적을 찾았다. 나루의 말뚝에는 밧줄이 두 번 감겨 있었고, 한쪽 매듭은 관아에서 쓰는 방식이 아니었다. 복례는 상단의 배가 묶일 때 쓰는 매듭이라고 했다. 그녀는 예전에 그 상단의 배를 빌려 쓴 적이 있었다.
“그 배에 곡식을 실었어요?”
“실었어요. 하지만 내용은 몰랐습니다.”
“그럼 그렇게 기록할게요.”
복례는 자신이 운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숨기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아들을 먹이려 돈을 받았고, 화물이 세곡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연담은 그 진술을 적되, 상단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덧붙였다.
상류에서 배 한 척이 나타났다. 배에는 곡식 자루가 아니라 빈 술독이 실려 있었다. 배를 몬 젊은 사내는 자신을 상단의 짐꾼이라고 소개했다. 복례는 그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는 강바닥 창고를 비우러 왔다고 털어놨다.
“누가 보냈지?”
“박수찬 아전입니다.”
“창고에는 곡식이 남아 있소?” 순임이 물었다.
“모릅니다. 나는 독을 싣고 가라는 말만 들었어요.”
사내는 관아가 자신을 잡으러 올까 두려워했다. 연담은 그를 붙잡지 않고, 자신이 본 것과 직접 한 일을 나눠 말해 달라고 했다. 사내는 자신이 두 번 배를 몰았고, 한 번은 자루를 싣고 한 번은 빈 독을 옮겼다고 진술했다. 어느 자루가 세곡인지는 몰랐지만, 독 안쪽에서 쌀겨가 발견됐다.
그들은 독 하나를 열어 내용물을 살폈다. 안쪽은 깨끗했고 쌀겨만 붙어 있었다. 누군가 곡식을 꺼내고 빈 독을 다시 옮긴 것이다. 사내는 자루를 어디에 내려놨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물때마다 배가 멈추는 위치를 기억했다. 복례는 그 지점에서 물속 창고로 이어지는 밧줄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순임은 그 사내를 관아에 넘기자고 했다. 그가 운반에 참여한 건 사실이었다. 복례는 그가 명령을 받았을 뿐이라며 변호했다. 연담은 관아에 넘기기 전에 마을 사람 앞에서 진술을 듣도록 제안했다. 사내는 자신의 이름이 밝혀질까 두려워했다.
“이름을 공개하면 가족이 위험합니다.”
“이름 없이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요. 당신이 결정하세요.”
사내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운항 기록만 증언하기로 했다. 그는 언제든 진술을 철회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연담은 이름을 적지 않았고, 그가 알려 준 지점만 따로 기록했다.
새벽이 되자 복례의 배가 창고 위에 도착했다. 물이 잦아들 때 바닥에 닿은 밧줄이 팽팽해졌다. 복례는 배를 고정하고 한 사람씩 물에 들어가자고 했다. 연담은 수영을 못했지만, 자루를 묶는 방법을 배웠다. 순임은 물가에서 밧줄을 잡고, 복례가 신호를 보내면 끌어올리기로 했다.
첫 번째 자루는 돌에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복례가 물속에서 매듭을 풀려다 손을 다쳤다. 그녀는 숨이 차오르자 물 위로 올라와 기침했다. 연담은 더 내려가려 했지만, 복례는 위험하다고 막았다. 다음 물때를 기다리면 자루를 놓칠 수 있었다.
“내 아들도 기다리고 있어요.” 복례가 말했다. “그래도 여기서 당신을 같이 죽게 할 수는 없어요.”
그녀는 배 안의 긴 갈고리를 연결해 자루를 당겼다. 두 번째 시도에서 자루의 입이 찢어졌고, 쌀 몇 줌이 강물로 흩어졌다. 순임은 손을 뻗어 흘러가는 쌀을 잡으려 했지만 놓쳤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남은 자루를 먼저 올리기로 했다.
창고 안에는 자루가 열두 개 있었다. 그중 네 개는 비어 있었고, 세 개는 쌀 대신 돌을 채웠다. 남은 다섯 자루에는 관아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연담은 창고 전체를 기록하려 했지만 물이 다시 차기 시작했다. 복례는 그를 재촉했다.
“자루를 올릴 거야, 숫자를 적을 거야?”
연담은 자루 하나를 건져 올리고, 창고의 모양과 자루 수를 기억하기로 했다. 그러나 물이 차오르는 순간 그는 돌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물에 번졌다. 복례는 그를 끌어당겨 배 위로 올렸다. 순임은 한 자루를 더 올리려 했지만, 밧줄이 풀려 자루가 가라앉았다.
그들은 한 자루만 가지고 나루에 돌아왔다. 순임은 곡식을 바로 배급할 수 없다고 했다. 인장이 관아에 속하므로 증거로 보존해야 한다는 연담의 말에 화를 냈다. “우리가 열두 섬을 찾았는데 한 자루도 못 먹는다고요?”
연담은 자루를 열어 곡식을 나누기 전에 마을 대표에게 상황을 알리자고 했다. 순임은 그가 또 숫자만 생각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자루가 젖어 곡식이 상할 수 있었고, 인장을 뜯으면 증거가 훼손될 위험도 있었다.
그들은 자루를 관아 창고에 가져가지 않고, 마을 공동 우물 옆에 임시로 보관했다. 노인과 아이들에게 먼저 줄 양을 정한 뒤, 남은 곡식의 일부를 증거용으로 남기기로 했다. 순임은 그 결정에 동의했지만 자기 몫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복례의 아들이 나루에 달려왔다. 그는 어머니가 물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화를 냈다. “또 우리를 두고 곡식 찾으러 갔어요?”
복례는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가 한 일을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루 안의 곡식 일부를 아들에게 직접 맡겼다. 그는 곡식을 마을 어른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다.
연담은 자루의 인장과 쌀알의 상태를 장부에 기록했다. 강바닥의 창고 위치와 자루 수량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 정보를 알게 되면 관아가 먼저 창고를 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증거를 확인할 수 있도록 복례와 순임의 증언을 따로 받아 두었다.
그날 밤, 박수찬이 마을에 나타났다. 그는 곡식 자루가 사라졌다고 말하며 순임을 잡아가려 했다. 순임은 자루를 훔쳤다고 인정했다. 다만 굶주린 주민과 함께 나눴고, 세곡을 빼돌린 자의 기록을 확인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박수찬은 사람들을 쫓아내려 했지만, 주민들이 둘러섰다. 그들은 자루를 숨기지 않고 직접 세어 보여 줬다. 자루 안의 쌀은 이미 일부 배급됐지만, 남은 양과 받은 사람 이름은 마을 장부에 적혀 있었다.
“관아 장부에 없는 곡식은 모두 도둑질입니다.” 박수찬이 말했다.
“관아 장부의 숫자가 틀렸다면요?” 연담이 물었다.
박수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쌀자루 인장을 보자 눈길을 피했다. 그의 손에 검은 먹물이 묻어 있었다. 장부를 고친 사람의 손과 같은 빛깔이었다.
“내일 관아에서 원본을 가져오시오.” 그가 말했다.
연담은 가져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그는 장부가 누구의 것인지, 누가 열람할지 마을 사람들과 먼저 결정하겠다고 했다. 박수찬은 그를 서리 자리에서 내쫓겠다고 경고하고 돌아갔다.
복례는 강 위에서 아직 다른 배가 움직인다고 말했다. 물살 아래에서 빈 독 하나가 떠올랐다. 독 바닥에는 상단의 표식 대신 세곡 장부의 첫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 다음 운송 기록을 지우려 하고 있었다.
연담은 독 바닥의 글자를 종이에 옮기기 전에 복례에게 표식의 의미를 물었다. 상단의 상징이 아니라 관아의 창고 표찰을 본뜬 모양이었다. 복례는 그 독이 세곡을 운반하는 배에 쓰였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확정하지 않았다. 뱃사공은 독을 실은 자를 보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상자와 자루를 번갈아 지켰다. 연담은 한 사람이 밤새 서 있지 않도록 교대 순서를 적었다. 순임은 아이들에게 곡식을 나눠 주고도, 자루를 훔친 사실은 숨기지 않았다. 마을 장부에는 누가 얼마를 받았고, 누가 증거용 곡식을 남겼는지 적혔다.
그녀는 자기 몫을 거부했던 결정을 다시 생각했다. 아이들이 받은 곡식만으로는 다음 날을 버틸 수 없었다. 순임은 마을 대표와 상의해 자신의 몫을 조금 받기로 했다. 분배를 주도했다고 굶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연담은 그 정정도 기록했다.
복례는 아들과 마주 앉아 배를 운항했던 사실을 다시 설명했다. 아이는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쌀을 숨겨 나른 줄 알았다고 했다. 복례는 그때 무엇이 담겼는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아들은 화를 냈지만, 복례가 다친 손을 보고 물을 떠왔다.
“다음에는 배에 뭘 싣는지 같이 확인할 거예요.”
“내가 네게 일을 맡기겠다는 뜻은 아니야.”
“저도 엄마를 감시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같이 물어보겠다는 거예요.”
복례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배 운항은 이제 혼자 결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다음 날 수중 창고를 확인하러 갈 때는 마을 대표와 연담이 함께 타기로 했다. 물때가 나쁘면 되돌아오고, 구조 자루는 한 번에 하나만 올리기로 했다.
관아의 서리는 박수찬이 원본 장부를 가져오라고 명령한 사실을 마을에 알렸다. 그는 자신이 해고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원본과 사본을 따로 보관하고, 숫자가 바뀐 흔적을 다른 서리 두 명에게 보여 주기로 했다.
그 중 한 명은 연담의 스승이었다. 스승은 그가 예전에 허위 수량을 베껴 썼던 일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연담에게 자신의 서명을 기록에 남겨도 좋다고 했다. 당시 장부를 확인하라는 말을 듣고도 넘긴 책임이 있었다.
연담은 스승에게 원본을 공개할지 묻기 전에, 먼저 배급을 기다리는 주민에게 알리자고 했다. 장부를 갑자기 열면 관리들이 증거를 없애고 주민을 잡아갈 수 있었다. 순임은 천천히 공개하면 또 하루를 굶게 된다고 반대했다.
그들은 오늘 밤 자루 하나를 나누고, 내일 해가 뜨면 주민들이 함께 관아로 가기로 했다. 배급받은 곡식의 양과 장부를 나란히 놓고 질문한다. 순임은 아이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말라고 했고, 대신 가족 수만 공개하겠다고 했다.
강 건너에서 노 젓는 소리가 났다. 복례는 물살을 듣고 배 한 척이 비어 있다고 말했다. 빈 배는 상류에서 내려왔고, 짐을 내린 흔적이 없었다. 누군가 수중 창고의 자루를 옮기지 못하고, 증거를 지우려 했을 수 있었다.
연담은 장부 상자를 품에 넣었다. 이번에는 자기 혼자 원본을 들고 가지 않았다. 순임이 한쪽을, 스승이 다른 쪽을 잡았다. 증거는 서로 다른 사람의 손에 나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