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의 만년 하급 포졸

3화: 푸른 흙의 창고
형방의 문이 열리자 약재 냄새와 피비린내가 한꺼번에 흘러나왔다.
진우와 장칠이 들것을 안으로 옮겼다. 배진구의 시신은 흰 천에 덮여 있었지만 신발만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진우는 들것을 내려놓으며 발끝으로 신발 밑창을 살짝 가렸다.
"검시대에 올려라."
윤하린이 앞장서서 말했다.
강진백은 문턱을 넘지 않은 채 형방을 훑었다. 그의 뒤로 두 명의 감찰무사가 따라 들어왔다. 세가의 푸른 전포는 습한 관아 안에서도 지나치게 말끔했다.
"검시는 짧게 끝내라."
강진백이 품에서 봉한 문서를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
"배진구는 남궁세가의 호위무사다. 사인은 심장 관통. 범인은 남궁검법을 흉내 낸 자로 보인다. 이 정도면 세가 내부 보고에는 충분하다."
진우가 옆에서 하품했다.
"그럼 검시관은 왜 부르셨습니까? 종이에 답이 다 적혀 있는데요."
강진백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네놈은 또 무엇이냐?"
"들것을 든 사람입니다. 시체가 무거워서요."
"입을 다물어라."
강진백의 손이 검자루로 향했다. 하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형방 안에서는 칼을 뽑을 수 없습니다. 검시를 방해하시면 공무 방해로 기록하겠습니다."
"기록? 관아의 기록은 관아가 불타면 함께 사라진다. 작은 현령 하나가 세가와 맞서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형방 안의 포졸들이 굳었다. 서문태는 탁자 앞에 앉아 강진백이 가져온 문서를 읽고 있었다. 손가락이 문서 가장자리를 한 번 눌렀다가 떨어졌다.
"사또."
하린이 낮게 불렀다.
서문태는 문서를 접어 강진백 쪽으로 밀었다.
"정오 전까지 검시를 마치시오. 사망 원인과 현장 이동 여부를 기록하고 시신은 세가에 인도하겠소. 이후의 조사는 세가에 맡기겠소."
하린의 눈이 커졌다.
"아직 신발 밑창과 의복도 살피지 않았습니다."
"포두."
서문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관아 안에는 네 식구만 있는 것이 아니오. 이곳의 포졸과 서리들은 세가의 칼을 막을 수 없소. 우선 시신을 지켜야 하오."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진우는 서문태의 시선을 보았다. 명령을 내리면서도 관인을 쥔 손은 놓지 않고 있었다.
'정오 전까지라면 한 시진이 남았다.'
진우는 검시대 옆으로 다가가 배진구의 신발 끈을 풀었다.
"신발은 그대로 둬라. 세가의 물건이다."
"그럼 밑창에 붙은 흙도 세가의 물건입니까?"
진우가 신발을 들었다. 말라붙은 흙 사이에서 푸른 알갱이가 번들거렸다.
하린은 검시대에 종이를 깔았다. 진우가 나무 꼬챙이로 신발 밑창의 홈을 긁자 흙이 조금씩 떨어졌다.
"산길의 진흙이다. 비가 온 뒤라면 당연히 묻을 수 있다."
강진백이 코웃음 쳤다.
진우는 흙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산길 흙은 마르면 가루가 됩니다. 이건 물기가 빠져도 손가락 사이에서 늘어집니다."
하린이 고개를 숙였다.
"망령골의 붉은 마사토와도 색이 다릅니다."
"색이 조금 다른 흙으로 시신을 붙잡고 늘어질 셈이냐?"
"흙 한 줌이 아니라 시신을 움직인 길입니다."
진우의 말이 형방 안에 떨어졌다.
"배진구는 사당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손등의 수포가 그렇게 말하지요. 시신을 옮긴 사람이 산길과 다른 흙을 밟았다는 뜻입니다."
장칠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포두님. 저 흙이라면 동편 폐창고 뒤 물길 흙과 비슷합니다요. 지난겨울에 장작을 가지러 갔다가 발이 무릎까지 빠졌는데 색깔이 꼭 저랬습니다."
하린이 몸을 돌렸다.
"동편 폐창고?"
"예. 예전에 곡물을 쌓던 곳입니다. 물길이 새서 비워 뒀고 문서고에서도 멀지 않습니다."
하린은 사당 앞에서 퍼 온 붉은 흙을 종이 한쪽에 놓았다. 진우가 푸른 흙과 붉은 흙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붉은 흙은 곧 부슬부슬 흩어졌다. 푸른 흙은 물을 삼킨 뒤 끈적한 덩어리로 뭉쳤다. 그 안에서 작은 흰 조각이 반짝였다.
"물길 바닥의 패각층이 섞였습니다. 산에서 생긴 흙이 아닙니다."
진우가 곧 덧붙였다.
"예전에 동편 창고에서 쥐를 잡다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하린은 그를 잠깐 바라보다가 종이를 접었다.
"동편 폐창고를 확인해야 합니다."
"안 됩니다."
서문태가 잘랐다.
"시신 밑창의 흙이 관아 안쪽을 가리킵니다. 관아가 사건 장소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뒤질 수 없소. 세가 무사가 관아에서 죽었다는 말이 되면 운수현은 세가의 적이 됩니다."
"사실을 기록한다고 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린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서문태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작은 관인을 꺼냈다.
"한 시진만 주겠소. 동편 폐창고를 확인하되 수색 목록을 작성하고 인장을 찍으시오. 물건 하나라도 함부로 건드리면 포두 네가 책임지시오."
강진백이 비웃었다.
"관아의 창고를 뒤져 세가의 살인 장소로 만들겠다는 것이냐?"
"살인 장소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수사입니다."
하린이 답했다.
"내 사람 하나를 따라붙이겠다. 수색 범위를 넘으면 중단시킬 것이다."
"좋소. 그 무사가 관아 물건을 훼손하면 세가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겠소."
강진백의 웃음이 멎었다.
진우는 검시대 아래에서 손을 털었다. 푸른 흙 한 알이 손바닥 주름에 남아 있었다.
동편 폐창고는 관아 담장 끝에 붙어 있었다.
문에는 오래된 봉인이 두 겹으로 붙어 있었다. 하나는 창고 폐쇄를 알리는 관아 인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마 때 수리를 마쳤다는 서리의 확인 도장이었다.
하린이 봉인을 살폈다.
"두 번째 인장이 찢겼다가 다시 붙었습니다."
"비에 젖은 겁니다."
창고 열쇠를 가져온 서리 고만석이 대답했다. 마른 체격에 손가락이 짧은 사내였다.
진우는 문 아래를 바라보았다. 문턱의 틈에는 푸른 흙이 얇게 눌어붙어 있었다. 바깥쪽보다 안쪽에 더 많았다.
'문이 닫힌 뒤에도 사람이 드나들었다.'
하린이 관인을 들어 보였다.
"수색을 시작합니다. 누구도 문 안의 물건을 옮기지 마십시오."
고만석이 열쇠를 꽂았다. 자물쇠는 한 번에 열리지 않았다. 그가 두 손으로 힘을 주자 철컥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자 눅눅한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창고 안에는 낡은 곡물 자루 몇 개와 부서진 나무 선반만 남아 있었다. 바닥 안쪽에는 물이 번진 검은 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하린이 쪼그려 앉았다.
"최근에 닦은 흔적입니다."
"고인 물을 치운 겁니다."
고만석의 얼굴이 굳었다.
"바닥의 발자국까지 지우지는 않습니다."
하린이 붓 끝으로 바닥을 쓸었다. 검은 물자국 아래에서 희미한 발뒤꿈치 자국이 나타났다. 발자국은 안쪽 벽까지 이어졌다.
진우는 벽돌 두 장이 다른 것보다 새것인 것을 보았다. 그 아래에는 녹슨 쇠고리와 짧은 포승이 놓여 있었다.
감찰무사가 포승을 걷어찼다.
"오래된 물건이다."
하린이 포승에 손을 대려 하자 감찰무사가 팔을 뻗었다.
진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옆으로 비켜섰다. 포승은 감찰무사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하린의 붓이 그 위를 스치며 붉은 가루를 묻혀 냈다.
"녹물일 수도 있습니다."
하린은 가루를 봉투에 넣었다.
"검시관에게 보내겠습니다. 피라고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버리지도 않겠습니다."
강진백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군."
"누구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모두의 말을 기록하는 겁니다."
그 순간 창고 뒤편에서 금속음이 울렸다.
철컥.
고만석이 고개를 돌렸다.
"뒤쪽에는 문이 없습니다."
진우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창고 뒤편으로 돌아가자 물길을 덮은 나무 격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격자 아래로 푸른 진흙이 이어졌다.
발자국 하나가 물길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멈춰라!"
하린이 외쳤다.
진우가 두 걸음 내딛는 순간 통로 안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낡은 선반 위의 기둥이 기울어졌다.
"포두님, 뒤로!"
진우가 하린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기둥이 그 자리를 덮쳤다. 하린은 바닥을 굴러 피했고 진우는 벽을 짚었다. 손바닥이 찢어졌지만 신음하지 않았다.
통로 끝에서 발소리가 멀어졌다.
감찰무사가 검을 뽑으며 통로로 들어가려 했다. 진우는 바닥에 떨어진 포승을 주워 그의 발목에 던졌다.
포승이 한 바퀴 감기며 감찰무사의 발을 묶었다. 무사가 휘청거리다 벽을 짚었다.
"무슨 짓이냐!"
"좁은 데서 검을 휘두르면 다칩니다요."
진우가 포승을 당기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하린은 그 사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벽면의 푸른 진흙과 나무 격자 안쪽의 그을음을 살폈다.
"여기에서 뜨거운 물이나 증기를 만들었습니다."
바닥에는 솥을 받쳤던 둥근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벽돌 사이에는 잘린 밧줄 조각이 끼어 있었다. 진우가 손을 뻗자 하린이 손목을 막았다.
"장갑을 쓰세요."
"저는 손이 깨끗합니다."
"그래서 더 쓰셔야 합니다."
하린은 천 조각으로 밧줄을 감싸 봉투에 넣었다. 통로 안쪽에는 빈 선반 하나가 더 있었다. 오래된 장부가 놓였던 자국만 남았고 자물쇠는 새것이었다.
"장부를 보관하던 곳입니다."
하린이 낮게 말했다.
진우는 도주자가 남긴 발자국 가장자리의 흰 가루를 보았다. 형방 문서고 바닥에 깔린 석회와 같은 색이었다.
'도주자는 창고에서 끝나지 않았다. 형방 쪽으로 돌아갔다.'
하린이 그의 옆에 섰다.
"진우 포졸. 방금 무엇을 보셨습니까?"
진우는 손바닥의 피를 소매 안으로 감췄다.
"창고가 오래 비어 있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 정도가 아닐 텐데요."
진우는 빈 선반을 가리켰다.
"장부가 사라졌습니다. 이건 누구나 볼 수 있는 단서 아닙니까?"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새 자물쇠와 선반의 빈 자국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멀리서 형방 종이 울렸다.
한 번.
곧 두 번 더 울렸다. 서문태가 정한 검시 마감 시각을 알리는 종이었다.
진우는 종소리가 끝나기 전에 형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포두님. 이제 시신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이 생겼습니다."
하린이 포승을 고쳐 쥐었다.
"무엇입니까?"
진우는 빈 선반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사라진 장부와 그 장부를 찾으러 돌아간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