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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의 만년 하급 포졸2화

남궁세가의 만년 하급 포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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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손등의 붉은 수포

두구두구두구!

산골짜기를 뒤흔드는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열두 필의 준마가 안개를 찢으며 사당 앞마당으로 쇄도했다.

기마대의 중심에서 말고삐를 잡아챈 사내는 푸른 비단 전포에 은실 청룡을 수놓은 옷차림이었다. 허리에는 남궁세가 감찰대 특유의 육중한 호위장검을 차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감찰무사 강진백이었다.

"관아의 잡졸들이 벌써 몰려들었군."

강진백이 말안장에서 뛰어내리며 차갑게 내뱉었다.

뒤따른 감찰무사 열두 명도 일제히 말에서 내려 사당 입구를 에워쌌다. 묵직한 검집이 부딪히며 서늘한 쇠붙이 소리를 냈다.

관아의 포졸들이 질겁하며 물러섰다. 장칠이 진우의 옷소매를 슬그머니 잡아당겼다.

"진 형님, 남궁세가 감찰대입니다요. 저 무시무시한 자들이 여긴 대체 어찌 알고……."

진우는 하품을 삼키는 척 눈을 가늘게 떴다.

'강진백. 도윤 형님의 직속 감찰대 녀석이군.'

가문에서 자신을 죽은 자로 처리했던 비극의 밤 이후 3년 만에 마주하는 가문의 얼굴이었다.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았으나 겉으로는 겁먹은 시골 포졸의 표정을 지었다.

강진백이 성큼성큼 걸어와 끊어진 사슬을 짓밟았다.

"사당 안의 시신은 남궁세가의 호위무사 배진구다. 즉시 시신을 인도하고 현장을 넘겨라."

오만한 명령조였다.

그 앞을 가로막고 나선 것은 윤하린이었다. 하린은 품에 수첩을 안은 채 앞으로 나섰다.

"멈추십시오. 이곳 운수현 망령골은 대연 조정의 영토이며 운수현 관아의 관할 구역입니다."

강진백의 눈썹이 꿈틀했다.

"계집 포두 하나가 관할을 운운하는가? 세가의 무인이 변을 당한 일에 일개 고을 관아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사망자가 세가 무인이든 황실 종친이든 관내 변사체는 형률에 따라 현령 나으리의 입회하에 초검을 마쳐야 합니다. 그것이 국법입니다."

하린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강진백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손이 장검 손잡이에 얹히며 무거운 내력이 뿜어져 나왔다.

스스스숙.

날카로운 살기가 앞마당 공기를 갈랐다. 하린의 뺨 위로 식은땀이 흘렀다. 신참 포두의 패기로 버텼으나 일류 고수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내기는 턱없이 버거웠다.

그 찰나에 헐렁한 그림자 하나가 둘 사이에 비틀거리며 끼어들었다.

"아이고 나으리들! 칼자루는 잠시만 거두어 주십시오!"

진우였다. 진우는 싸리빗자루를 짚고 서서 흙탕물이 튄 신발을 터는 흉내를 냈다.

"사당 바닥이 진흙투성이인데 칼부림이라도 나면 흙물이 사방으로 튑니다요. 나으리의 고운 청룡 전포에 흙물이 묻으면 빨래하는 아낙만 골병듭니다."

"뭐냐 이 미천한 자는?"

강진백이 살기등등하게 내려다보았다. 진우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운수현 삼방의 만년 하급 포졸 진우라고 합니다. 우리 사또께서 저기 계시는데 포두 아가씨가 어려서 법조문만 외다 보니 어르신 심기를 거스른 모양입니다. 사또 얼른 이리 와 보십시오!"

진우의 손짓에 뒤편의 서문태가 헛기침을 하며 걸어 나왔다. 서문태의 눈빛은 바늘처럼 곧았다.

"감찰무사 강 공. 세가의 비통함은 이해하나 국법이 살아 있는 한 정식 검시 문건 없이는 시신을 넘길 수 없소. 사인을 확인하고 검안서를 작성한 뒤 세가에 정식 인도하겠소."

강진백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세가의 무력으로 작은 관아를 누를 수는 있어도 공식 검안을 무력으로 뭉개면 조정에 빌미를 주게 된다.

"좋다. 딱 반 시진을 주겠다."

강진백이 검자루에서 손을 뗐다.

"그 안에 시신을 수습해 나오지 않으면 감찰대가 직접 사당을 부수고 들어가겠다."


강진백이 물러서자 하린은 곧바로 진우의 옷자락을 낚아채듯 이끌었다.

"진우 포졸, 따라오세요."

하린은 포졸들을 문밖에 세워둔 뒤 진우를 끌고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육중한 문이 닫히며 감찰대의 시선이 차단되었다. 사당 안은 곰팡내와 피비린내가 뒤엉켜 있었다. 결가부좌를 튼 배진구의 시신이 그늘 속에서 굳어 있었다.

하린이 진우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예? 갑자기 무슨 정체 말씀이십니까? 저는 쌀 두 말 받는……."

"시치미 떼지 마세요!"

하린의 목소리가 낮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당신은 강진백이 살기를 뿜어내는 정확한 맥점을 파고들어 흐름을 끊었어요. 흙탕물 핑계를 대면서요."

"아이쿠 포두님도 참. 장검에 맞을까 봐 다리가 후들거려 비틀거렸을 뿐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하린이 제단 아래 바닥을 가리켰다.

"빗물 자국 위에 향로 재가 떨어져 있다는 걸 당신이 짚어냈습니다. 내가 바닥을 세 번이나 훑었을 때도 못 보던 걸 당신은 문지방에 서서 단번에 알아챘어요. 평범한 하급 포졸이 그럴 수 있습니까?"

진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신참이라 융통성은 없어도 눈치는 빨랐다. 진우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포두님. 십 년 동안 마당 비질만 해 보십시오. 젖은 흙 위에 마른 잿가루가 얹힌 건 비질깨나 한 놈이면 눈에 바로 밟힙니다. 그리고 저런 잔재주보다 지금 훨씬 급한 게 있지 않습니까?"

진우가 시선을 돌려 배진구의 시신을 가리켰다.

"저 무사 나으리의 손등 말입니다."

하린의 시선이 시신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하린은 무릎을 꿇고 시신의 손을 살폈다.

"손등의…… 붉은 수포."

"예. 저게 아주 고약한 놈입니다."

진우가 다가와 쭈그리고 앉았다. 표정에서 헐렁함이 걷히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배진구의 오른손 손등과 검지 부근에는 붉고 투명한 잔물집들이 촘촘하게 돋아나 있었다. 살갗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얇은 표피 아래 진물이 차올라 있었다.

"화상 아닙니까? 불에 덴 자국 같은데……."

"불에 닿았다면 가죽이 타고 털이 그을렸겠지요. 하지만 손등 솜털은 멀쩡하고 표피만 익어 수포가 잡혔습니다."

진우가 나지막하게 짚었다.

"불꽃이 아니라 펄펄 끓는 뜨거운 증기나 약물에 데었을 때 생기는 흔적입니다. 무언가 끓어넘치는 통을 잡으려 했거나 증기를 손으로 막으려 했을 때 생기는 모양이지요."

하린이 사당 안을 둘러보았다. 금이 간 박석 바닥과 거미줄 얽힌 천장, 찬 재만 남은 향로.

그 어디에도 화로나 약탕기는 없었다.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메말라 있었다.

"이 사당 안에는 증기를 뿜어낼 만한 불씨나 뜨거운 물 따위는 없어."

"그렇지요. 게다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데어야 피가 돌아 붉은 수포가 생깁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에는 증기를 부어도 이런 수포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형부 검시 지침에 적힌 생전 화상과 사후 화상의 차이였다.

"그렇다면 배진구는 죽기 직전에 이 수포가 생겼다는 뜻입니까?"

"예. 숨이 붙어 있을 때 증기가 가득 찬 곳에 있었고 손등에 물집이 잡힌 채로 심장에 칼을 맞았습니다."

진우가 사당 벽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 폐사당 어디에 끓는 가마솥이나 약탕관이 있습니까? 문은 1년 동안 잠겨 있었는데요."

하린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숨이 새어 나왔다.

"배진구는 이 사당 안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무공을 겨루다 죽은 게 아니로군요."

"그렇습니다. 배진구는 뜨거운 증기가 솟구치는 다른 장소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범인은 어젯밤 비가 그친 뒤 시신을 이곳으로 옮겨와 결가부좌를 틀어 앉혀 놓은 겁니다."

"남궁세가의 검법을 쓰는 고수와 비무를 벌이다 패배한 것처럼 보이도록?"

"그렇지요. 치밀하게 꾸며낸 위장극입니다."

하린은 등줄기에 오한을 느꼈다. 밀실 살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관아와 세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현장을 조작한 것이었다.


하린은 수첩을 꺼내 먹 묻은 붓으로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 사망자 배진구의 오른손 손등에 생전 발생한 고열 증기 수포 확인.
  • 사당 내부에는 화기 및 열원 일체 부재.
  • 사당 내부 살해가 아닌 외부 타살 후 시신을 운반하여 안치한 위장 현장으로 판단됨.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사당 문짝이 거칠게 흔들렸다.

쾅!

"반 시진이 다 되어 간다! 관아 쥐새끼들아 아직도 뭉개고 있는 것이냐!"

강진백의 고압적인 목소리였다. 문틈 사이로 감찰대 무사들의 시퍼런 도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하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강진백에게는 이 사실을 숨겨야 합니다. 저들은 체면을 위해 시신을 빼앗아 서둘러 화장하려 할 테니까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어서 들것으로 옮기시지요."

진우가 시신의 하반신으로 손을 뻗었다. 시신의 가죽 신발을 잡는 순간 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당 바닥의 흙은 붉은빛의 마사토였다. 그런데 배진구의 신발 밑창 틈새에 단단히 눌어붙은 흙은 붉은색이 아니었다.

'이건…… 푸른 흙?'

물기를 머금어 짙은 청회색을 띤 끈적한 진흙. 망령골 산비탈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흙이었다.

'운수현에서 이 푸른 찰흙이 나오는 곳은 단 한 군데뿐이다. 물길이 지하로 흐르는 관아 동편…….'

진우의 심장이 서늘하게 뛰었다. 배진구가 살해당한 장소는 먼 곳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매일 드나드는 관아 근처였다.

"진우 포졸! 멍하니 있지 말고 드세요!"

하린의 재촉에 진우는 신발 밑창의 푸른 흙을 소매로 가리며 얼른 들것을 잡았다.

"예 예! 갑니다요 포두님!"

끼이익.

사당 문이 열리며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들것이 모습을 드러내자 강진백과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쥐며 다가왔다.

"시신을 넘겨라. 남궁세가의 마차로 호송하겠다."

하린이 수첩을 높이 들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현장 검시 결과 타살의 명백한 모순이 발견되었습니다. 대연 형률에 따라 운수현 관아 형방으로 이송해 정식 검시를 진행합니다!"

"네년이 감히……!"

강진백의 살기가 폭발하려는 찰나 서문태가 붉은 관인이 찍힌 문서를 들이밀었다.

"감찰무사는 들으시오. 본관이 방금 성도 관찰사부로 급전을 쳤소. 세가 무사의 억울한 피살을 관아가 수사하겠다고 보고했소. 시신을 강탈하겠다면 공무 방해와 반역으로 간주하겠소!"

서문태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강진백의 턱이 굳었다. 관찰사부의 이름 앞에 세가의 무력도 명분을 잃었다.

"……좋다."

강진백이 이를 갈았다.

"관아 형방으로 가자. 만약 세가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관아 전체가 피를 토하게 될 것이다."

강진백이 말머리를 돌렸다.

진우는 들것을 멘 채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들것 위 시신의 신발 밑창에 눌어붙은 푸른 흙이 진우의 시선 끝에서 푸르스름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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