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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의 만년 하급 포졸4화

남궁세가의 만년 하급 포졸

남궁세가의 만년 하급 포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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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피 묻은 포승

뎅— 뎅— 뎅—.

정오를 알리는 형방의 마감 종소리가 운수현 관아 안마당을 무겁게 울렸다. 세 번째 쇠북 소리가 잦아들 무렵 진우와 윤하린은 숨을 몰아쉬며 형방 문턱을 넘었다.

형방 안의 공기는 살얼음판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검시대 옆에는 남궁세가 감찰무사 강진백이 장검을 짚은 채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뒤편으로 푸른 전포를 걸친 감찰무사들이 양옆을 호위하듯 메웠다.

"정오다."

강진백이 서문태 현령을 내려다보며 서늘하게 내뱉었다.

"약조한 종이 세 번 울렸다. 배진구의 시신을 즉시 세가의 수레로 인도하라. 사또는 검안서 하단에 관인을 찍고 시신 인도 확인서를 넘기면 된다."

서문태는 관복 소매 속에서 관인을 쥔 채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감찰대의 서슬 퍼런 기세에 형방 서리들과 늙은 포졸들은 벽 쪽으로 물러나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서문태가 천천히 관인을 들어 올리려던 찰나 하린이 성큼 앞으로 걸어 나왔다.

탁!

하린은 가죽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들을 검시대 모퉁이에 단호하게 내려놓았다.

흙탕물이 말라붙은 짧은 밧줄 토막과 붉은 얼룩이 진 쇠고리였다.

"멈추십시오, 감찰무사님. 시신을 넘기기 전에 확인해야 할 중대한 물증이 있습니다."

강진백의 미간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계집 포두가 아직도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구나. 폐창고 바닥에서 주워 온 낡은 오랏줄 쪼가리가 배진구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관아가 시신을 넘기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꼴이 가관이군."

"억지가 아닙니다. 망령골 사당은 살해 장소가 아닙니다. 배진구는 관아 동편 폐창고에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하린의 단호한 음성에 형방 안이 술렁였다.

강진백이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근거 없는 헛소리다. 그 녹슨 쇠고리와 썩은 줄이 감금의 증거란 말이냐?"

진우가 하품을 쩍 늘어놓으며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아이고 무사 나으리. 붉다고 해서 다 쇳녹은 아닙니다요. 동편 폐창고는 문이 꽉 닫혀 있어서 비가 들이치지 않았거든요. 바람도 안 통하는 곳에서 쇠고리에만 저리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묻을 리가 있겠습니까."

강진백의 사나운 눈길이 진우를 꿰뚫을 듯 쏘아보았다.

"미천한 포졸 놈이 또 혓바닥을 놀리는구나."

하린은 물러서지 않고 형방 의생을 불렀다.

"의생 어르신, 식초와 따뜻한 물을 가져오십시오."

의생이 떨리는 손으로 사기그릇을 받쳐 들고 다가왔다. 하린은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린 온수에 적신 흰 한지를 밧줄 토막의 붉은 얼룩 위에 덮었다.

잠시 후 한지 위로 짙은 암갈색 얼룩이 배어 나왔다.

시큼한 식초 향 사이로 불에 탄 단백질 특유의 비릿한 혈향이 미세하게 번졌다.

"이것은 쇳녹이 아닙니다."

의생이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피입니다! 그것도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바싹 말라붙은 사람의 생전 혈흔입니다요!"

형방 서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린은 지체 없이 배진구의 시신으로 다가가 양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등의 붉은 수포 바로 아래 손목 안쪽에 깊게 눌린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거친 마찰로 살갗이 벗겨진 채 굳어버린 결박흔이었다.

하린이 수거해 온 밧줄을 시신의 손목에 대었다.

밧줄의 굵기와 올 풀림의 각도가 손목의 상처와 빈틈없이 맞아떨어졌다.

"배진구는 심장을 찔리기 전, 이 밧줄로 양 손목을 결박당한 채 고열의 증기에 노출되었습니다. 손목의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몸부림치며 흘린 피가 바로 이 밧줄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린의 목소리가 형방 벽을 때렸다.

"사당에서 피를 흘리며 즉사했다면 손목에 이런 마찰혈흔이 남을 수 없습니다. 배진구는 관아 동편 폐창고에 산 채로 묶여 있었습니다!"

물리적 증거 앞에 형방 안은 깊은 침묵에 빠졌다.

강진백의 턱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장검을 쥔 그의 손가락에 파랗게 힘이 들어갔다.

"관아 폐창고에 묶여 있었다고? 그렇다면 운수현 관아 놈들이 세가의 호위무사를 납치해 감금하고 도륙했다는 뜻이냐? 일개 고을 관아가 감히 세가를 상대로 반역을 꾀했단 말인가!"

강진백의 호통과 함께 감찰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반쯤 뽑아 올렸다.

서걱!

서늘한 검신이 칼집을 빠져나오는 소리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서문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책상을 세차게 내리쳤다.

"말을 삼가시오, 감찰무사! 관아는 세가 무사를 납치한 적이 없소! 오히려 관아의 영역을 무단 침범해 살인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중이오!"

그 험악한 틈바구니에서 진우가 흙 묻은 짚신을 털털 털며 문지방 쪽을 턱짓했다.

"근데요 사또. 창고 뒤 물길 통로에서 달아난 놈이 흘린 가루 말입니다요. 꼭 형방 문서고 바닥에 쥐 잡는다고 뿌려 둔 석회 같던데요. 방금 들어오면서 보니까 문서고 문턱에도 흰 가루가 뚝뚝 떨어져 있더군요."

진우의 말에 형방 서리 고만석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문서고는 늘 빗장을 질러 잠가 두고 제가 열쇠를 품에 지니고 있었습니다요!"

"그럼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될 일 아닙니까."

진우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하린이 등불을 낚아채듯 들고 형방 안쪽 문서고로 향했다. 서문태와 강진백도 굳은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문서고 철문 앞바닥에는 진우의 말대로 푸른 진흙과 흰 석회 가루가 뒤섞인 젖은 버선발 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빗장은 걸려 있었으나 쇠자물쇠 틈새에 기름을 먹인 얇은 철편 자국이 역력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묵은 종이 먼지와 눅눅한 습기가 훅 끼쳐왔다.

하린과 서문태가 촛불을 비추며 서가를 살폈다. 관내 호적과 토지 대장, 공물 수납 장부는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러나 가장 깊숙한 안쪽 서가에 이르렀을 때 하린의 발길이 우뚝 멈췄다.

나무 선반 한 칸이 휑하게 비어 있었다. 먼지가 닦여 나간 네모난 빈자리 옆에 쓰러진 나무 팻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대연 216년~217년 운수현 이송 죄수 명부]

하린이 숨을 들이켰다.

"이송 죄수 장부…… 지난 1년간 군역이나 타 관아 호송대로 넘겨진 중죄인들의 명부 한 권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폐창고 안쪽 비밀 선반에 찍혀 있던 장부 자국의 치수와 문서고 선반의 빈칸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고만석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으며 바닥을 기었다.

"소, 소인은 모르는 일입니다! 장부는 분명 어제까지도 제자리에 꽂혀 있었습니다요!"

하린의 눈빛이 분노로 타올랐다.

"살인자는 배진구를 살해하기 전, 폐창고에 감금하고 이 장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창고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지하 물길을 통해 형방으로 되돌아와 장부를 빼돌려 달아난 것입니다!"

강진백이 차갑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탈주한 죄수 놈의 원한 살인이로군. 관아가 죄수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세가의 무사까지 변을 당한 것이다. 사또, 이 무능과 직무 유기에 대해 세가가 엄중히 문책할 것이다!"

감찰무사들이 서문태를 압박하듯 다가왔다.

관아 서리들이 공포에 질려 웅성거리는 가운데 진우가 검시대에 놓여 있던 피 묻은 밧줄을 집어 들었다.

"이거 참 이상하네요."

진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린이 돌아보았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겁니까?"

진우는 밧줄 끝의 매듭을 허공에 들어 올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희 같은 시골 관아 포졸들은 죄수를 묶을 때 오랏줄로 십자 매듭을 엮지 않습니까. 관아 규격 매듭이라야 나중에 풀기도 쉽고 죄수 몸에도 상처가 덜 나니까요. 근데 이 줄 끝을 보십시오."

진우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거칠게 꼬인 매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노끈 세 가닥을 교차해 비틀어 짠 뒤 끝마디를 안쪽으로 깊숙이 쑤셔 박은 기괴한 형태였다.

"이건 관아 매듭이 아닙니다. 줄을 당길수록 올이 살 속을 파고드는 삼중 역매듭입니다요. 죄수가 억지로 풀려고 비틀수록 매듭이 뼈마디를 부러뜨릴 듯 조여들지요."

진우는 하품을 삼키는 척하며 무심하게 덧붙였다.

"험한 산길이나 달리는 말 위에서 흉악범을 호송할 때 쓰는 방식 아닙니까. 대연국 북방 변경군이나 특수 호송 병졸들이 쓰던 결박법이지요."

형방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늙은 포졸 하나가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맞습니다! 저 매듭이 맞습니다요! 저도 삼십 년 전에 북방 군역을 살 때 호송대 군관에게 저 매듭을 배웠습니다! 일반 백성이나 고을 포졸들은 흉내도 못 내는 군영 매듭입니다!"

하린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군영 출신……."

배진구를 묶고 장부를 훔쳐 달아난 자는 평범한 시골 도적이나 원한을 품은 탈주범이 아니었다.

군영에서 전문적인 살상과 호송 훈련을 받은 자였다.

그 순간 강진백의 눈빛이 무섭게 번뜩였다.

살기 어린 시선이 검시대를 벗어나 진우의 얼굴에 가시처럼 꽂혔다.

"네놈."

강진백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진우를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일개 시골 하급 포졸 놈이 북방 군영의 특수 결박법을 어찌 그리 소상히 꿰뚫고 있는 것이냐?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파아아앗!

강진백의 장포가 펄럭이며 육중한 장검 손잡이가 진우의 멱살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일류 고수의 내력이 실린 매서운 손놀림이었다.

"으악! 사또 살려 주십시오!"

진우는 기겁하며 뒤로 벌렁 자빠졌다.

쿠당탕!

약재 궤짝을 들이받으며 요란하게 엉덩방아를 찧는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꼴사나운 넘어짐 속에서 진우의 몸은 강진백의 장검 코끝을 불과 반 치 차이로 비껴 지나가 있었다.

"손을 거두십시오!"

하린이 수첩을 가슴에 품은 채 강진백과 진우 사이를 가로막았다.

"공무를 수행 중인 관아의 포졸에게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대연국 조정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서문태 역시 차가운 분노를 터뜨렸다.

"물러서시오, 감찰무사! 배진구의 시신은 세가의 요청대로 지금 즉시 인도하겠소. 하지만 관아 문서고를 침탈하고 장부를 탈취한 자는 관내의 중범죄자요. 이 사건은 관아의 존망이 걸린 사안이니 본관이 조정의 율법에 따라 끝까지 추적할 것이오!"

서문태의 결연한 기세에 강진백도 더는 손을 뻗지 못했다. 시신을 확보한 마당에 관아와 정면으로 유혈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세가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강진백은 바닥에 나뒹굴어 먼지를 터는 진우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좋다. 시신은 거두어 가겠다."

강진백이 장검을 거두며 냉혹하게 읊조렸다.

"하지만 똑똑히 기억해라. 운수현 관아가 세가의 명예에 흠집을 내려 한다면, 그 대가는 이 고을 전체가 치르게 될 것이다."

감찰무사들이 배진구의 시신을 흰 천으로 싸 들것에 실었다. 관아 마당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세가의 기마대가 시신을 싣고 멀어져 갔다.

폭풍이 지나간 형방 마당.

하린이 흙투성이가 된 진우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진우 포졸, 괜찮으십니까?"

"아이고 엉덩이야. 월급 쌀 두 말 받아서는 뼈마디 성할 날이 없겠습니다요."

진우는 엄살을 부리며 하린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하린은 진우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방금 전 넘어지던 움직임…… 우연이었을까?'

신참 포두의 날카로운 눈매 속에 짙은 의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골 하급 포졸의 게으른 껍질 아래 언뜻언뜻 스치는 비범함. 그러나 진우는 바보처럼 헤벌쭉 웃으며 옷에 묻은 먼지만 털어낼 뿐이었다.

진우의 시선이 문서고 뒤편 화단으로 향했다.

축축한 흙 위에 희미하게 찍힌 군영식 보폭. 그리고 사색이 된 채 떨고 있는 서리 고만석의 손가락.

'북방 군영의 결속법, 그리고 사라진 죄수 장부.'

진우의 귓가에 3년 전 비극의 밤 스승 남궁현도가 피를 토하며 남겼던 마지막 경고가 서늘하게 맴돌았다.

'진혁아, 세가의 칼만 경계해서는 안 된다. 장부 뒤편에서 죽은 자들의 이름을 지우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있다.'

어둠 속에서 운수현을 옭아매는 음모의 실타래가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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