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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안내방송이 내 과거를 읽는다2화

장례식장 안내방송이 내 과거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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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스피커 안에 남은 목소리

예비 앰프의 메모리 카드에는 파일이 하나도 없었다. 신태경은 파일 목록을 세 번 새로 고쳤고, 장치 자체도 두 번 재부팅했다. 마지막에는 컴퓨터를 끄고 헤드폰으로 아날로그 출력을 확인했다. 카드에서 잡음 한 줄이 들렸다. 그 끝에 누군가 숨을 들이마셨다.

“팀장님, 여기 들어온 음성이 있어요.”

오민석은 방송실 문 앞에서 멈췄다. “파일은 없다고 했잖아.”

“파일명은 없습니다. 파형만 남아 있어요.”

“복구할 수 있겠어?”

“시도는 해 볼게요.”

태경은 필터를 걸지 않았다. 잡음을 없애면 목소리 일부가 사라질 수 있었다. 원본의 소리를 먼저 보존하고, 복사본으로만 작업했다. 파형을 키우자 한 문장이 뭉개진 소리로 떠올랐다.

“...네가 손을 놓은 게 아니야.”

그는 재생을 멈췄다. 문장은 분명 혜원의 목소리 같았지만, 다른 말소리와 겹쳐 끝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민석은 헤드폰을 벗었다.

“예전에 이 파일을 들었어요?”

민석은 대답을 미뤘다. “몇 주 전에 앰프 교체하다가 이상한 음성을 들었어.”

“왜 말 안 했어요?”

“혜원이 장례를 준비 중인 줄 몰랐지. 네가 알아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건 제가 정할 일이에요.”

“네가 누나 목소리를 듣고 무슨 일을 할지 내가 몰랐다는 뜻이야.”

태경은 눈을 들었다. “그 말은 저를 위해 숨긴 게 아니네요.”

민석은 손가락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눌렀다. “맞아. 내 일자리를 지키려고 숨겼어. 예비 앰프는 교체 대상이었고, 이상 음성이 보고되면 장비가 폐기됐을 거야. 혜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했어.”

“그럼 지금은 왜 말해요?”

“누나 장례식에서 네가 그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민석은 변명하지 않았다. 태경은 그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헤드폰 안에 남은 잡음이 신경 쓰였다. 혜원이 말한 “네가 손을 놓은 게 아니야”는 그가 스스로에게 매일 되풀이했던 문장과 달랐다. 누나는 그의 손을 놓았다고 믿었고, 그는 누나를 놓았다고 믿었다.

“카드를 복구하되 원본은 건드리지 않을게요.”

“가족에게 들려줄 거야?”

“어머니가 원하지 않으면 들려주지 않겠어요.”

“그럼 왜 복구하지?”

“제가 들은 소리를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누나가 남긴 말을 제 마음대로 바꾸지 않으려고요.”

장례식장 복도에서 조문객의 발소리가 났다. 빈소 7번의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태경은 방송실에서 일어나 스피커가 연결된 구역을 확인했다. 빈소 7번의 앰프는 정상 작동 중이었다. 하지만 채널 옆 작은 표시등은 마이크를 켜지 않았는데도 붉게 켜져 있었다.

그는 방송실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콘솔의 음량을 천천히 낮췄다. 스피커 불빛이 꺼지자 빈소 7번 안쪽에서 짧은 숨소리가 들렸다.

“누나?”

대답은 없었다. 태경은 빈소 문 앞까지 걸어갔다. 문 안에서는 어머니와 정미 이모가 나누는 작은 대화가 들렸다.

“그 애가 방송을 들었어?” 정미가 물었다.

“혜원이가 한 말이야.” 어머니가 답했다. “태경이한테는 듣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 애도 그날 거기 있었잖아.”

“열 살이었어.”

“그래서 더 기억해야 해.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태경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 멈췄다. 어머니의 말을 더 들을 수 없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가족의 대화를 엿들은 사람이 된다. 그는 복도 끝으로 돌아가 안내표지를 정리했다.

저녁 무렵, 혜원의 관을 옮길 시간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사회자에게 빈소 이름을 읽지 말아 달라고 다시 부탁했다. 사회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태경을 바라봤다.

“빈소 번호만 안내하겠습니다.” 태경이 말했다.

“그럼 혜원이는 여기 없는 사람이 되잖아.” 정미가 반문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이름을 말하면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까지 떠오를 거야.”

“그 말이 그렇게 무서워?”

“나는 그 아이를 잃었어. 또 잃고 싶지 않아.”

정미는 더 다투지 않았다. 빈소 안으로 돌아가 혜원의 영정 옆에 작은 손수건을 놓았다. 태경은 그 손수건을 알아봤다. 어린 시절 저수지에서 누나가 그의 얼굴을 닦아 주던 것과 같은 무늬였다.

태경은 방송실로 가서 예비 앰프 카드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새 파일은 없었다. 그는 필터를 한 단계씩만 적용해 잡음의 형태를 나눴다. 음성은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한 사람은 어린 혜원, 다른 한 사람은 더 낮고 떨리는 어른의 목소리였다.

“태경아, 손 놓지 마.”

“누나, 미안해.”

태경은 재생을 멈췄다. 어른의 목소리는 자기 것이었다. 지금보다 높고, 물에 잠긴 듯 가늘었다. 그는 그날 누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기억이 없었다. 기억 속의 자신은 누나 손을 놓고 도망쳤다.

민석이 뒤에서 말했다. “그 음성은 네가 남긴 것 같네.”

“왜 장례식장에서 재생됐을까요?”

“누군가 예약했을 수도 있고, 시스템이 오래된 파일을 불러왔을 수도 있어.”

“파일은 없었어요.”

“그럼 장비가 기억하는 소리겠지.”

“장비는 기억하지 않아요. 저장하거나 보내죠.”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로그를 확인하는 거고.”

태경은 녹음 파일을 저장하되 가족 공유 폴더에는 올리지 않았다. 별도의 암호화된 사본을 만들고, 생성 시각과 수정 이력을 보존했다. 누나의 음성을 누구에게 들려줄지는 자신이 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먼저 물었다. “방송실에서 누나 목소리가 나왔어요. 들려 드릴까요?”

선자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못 들어.”

“알겠어요.”

“네가 들었니?”

“네.”

“뭐라고 했어?”

태경은 그 문장을 그대로 말할지 잠시 고민했다. 어머니는 들을 준비가 안 됐고, 누나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제가 손을 놓은 게 아니라고 했어요.”

선자는 빈소 의자에 앉았다. “그 아이는 늘 네 편을 들었지.”

“어머니는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그날 네 손을 봤어.”

“제가 놓았어요?”

선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빈소 앞에 놓인 손수건을 만졌다. “나는 네가 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럼 왜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네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선자는 손수건을 접었다 폈다. “그날 네가 먼저 물에 들어간 건 맞아. 혜원이가 발을 헛디딘 걸 보고 뛰어들었지. 나는 네가 누나를 데리고 나온 줄 알았어.”

“그런데요?”

“네가 물가에 혼자 돌아왔어. 혜원이는 한참 뒤에 정미가 찾아냈지.”

“제가 누나를 놓고 온 거잖아요.”

“네가 놓았는지, 혜원이가 네 손을 놓았는지는 아무도 못 봤어. 나는 네가 떨고 있는 것만 봤다.”

“그래서 누나가 했던 말을 숨겼어요?”

“네가 누나를 두고 왔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어. 그 뒤로 그 애는 네 앞에서 사고 얘길 하지 않았지.”

“누나가 그렇게 말했어요?”

“아니. 정미가 그러더구나. 혜원이는 네가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그럼 다음엔 같이 나오자’고 했대.”

태경은 그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기억 속에서 누나는 물에 잠겨 있었고, 그는 혼자 해안에 올라와 있었다. 그 뒤에 누나가 한 말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머니는 왜 정미 이모에게만 물었어요? 저한테는 묻지 않았잖아요.”

“네가 너무 작았어. 열 살이었고, 손톱에서 피가 났어. 그 얘길 더 하면 네가 다시 물에 들어갈 것처럼 울었어.”

“그 뒤로는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선자는 눈을 감았다. “기다린 게 아니야. 나도 겁이 나서 피했어.”

그녀는 손수건을 태경에게 건넸다. 천에는 작은 파란 물고기 무늬가 있었다. 혜원이 어린 동생의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감아 줬던 손수건이었다. 태경은 그날 물에 들어가기 전 누나가 자기 손을 잡았다는 감각을 처음 떠올렸다.

“누나는 제 손을 놓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럼 그 말을 믿어도 돼.”

“그 말을 들려 드릴까요?”

선자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말로만 들을게. 기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아직 무서워.”

태경은 녹음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물어볼게요. 어머니가 준비되면.”

선자는 손수건을 놓지 않았다. “네가 먼저 준비되면.”

태경은 그 대답에 화를 낼 수 없었다. 자신도 묻지 않았다. 누나가 살아 있을 때도, 어머니와 둘이 남았을 때도, 사고 이야기는 항상 다음으로 미뤘다.

민석은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태경은 다시 방송실로 향했다. 빈소 7번의 앰프는 꺼져 있었고, 복도 채널도 분리돼 있었다. 그런데 헤드폰에서 아무도 재생하지 않은 짧은 파형이 튀었다.

“엄마, 태경이가 먼저 물에 들어갔어.”

그 말은 누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태경은 헤드폰을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방금 그날을 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기억을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안에 있던 목소리가 장비를 통해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재생 파형을 다시 살폈다. 저장된 흔적은 없었고, 입력 채널도 닫혀 있었다. 이번에는 음성을 복사해 두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한 문장을 장비에 묶어 두면, 그녀의 허락 없이 다시 듣게 될 것 같았다. 태경은 시각만 적고 헤드폰을 벗었다. 복도에 나가자 빈소 7번의 불이 낮게 켜져 있었다.

그는 빈소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제가 내일도 물어봐도 돼요?”

문 안에서 잠깐 정적이 흐른 뒤, 선자가 말했다. “네가 물어봐도 나는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너는 들을 수 있겠니?”

태경은 문에 이마를 대었다.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번엔 도망가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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