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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안내방송이 내 과거를 읽는다3화

장례식장 안내방송이 내 과거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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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누나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신태경은 빈소 7번의 안내 마이크를 손에 들고도 스위치를 올리지 못했다. 장례가 끝나기 전 마지막 안내를 해야 했다. 어머니는 빈소 안에서 조문객에게 물을 건네고 있었고, 이정미 이모는 영정 옆의 꽃을 정리했다. 민석은 방송실에서 구역별 음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태경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장례식장 복도로 나왔다. 7번 빈소의 문패에는 ‘신혜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을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소리 내어 읽는 것만 어려웠다.

그는 빈소 앞 의자에 앉았다. 머릿속에서는 방송 문구가 돌아갔다. “조문객 여러분께 안내드립니다. 신혜원 님의 빈소는…” 그 뒤가 이어지지 않았다. 음향기사가 자기 누나 이름을 읽지 못하다니, 웃기는 일이었다.

정미 이모가 빈소에서 나와 옆에 앉았다. “이름을 부르면 정말 누나가 돌아올 것 같니?”

“아니요.”

“그럼 왜 못 읽어?”

“제가 부르면 그 사람이 정말 없다는 게 확정될 것 같아서요.”

정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부르는 건 보내는 일이 아니라, 있었던 사람을 확인하는 일이야.”

“이모는 저수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요?”

“네가 물에 먼저 들어갔고, 혜원이가 뒤따라 들어갔어. 너는 나왔는데 혜원이는 안 보였지. 내가 물에 들어가서 그 애를 끌어냈어.”

“누나가 제 손을 잡고 있었어요?”

정미는 잠시 생각했다. “처음엔 네가 혜원이 손을 잡고 있었어. 그런데 물살이 세져서 네가 미끄러졌고, 그 애가 네 손목을 놓친 뒤 옷자락을 잡았지. 내가 도착했을 때는 둘 다 물속에 있었어.”

태경은 숨을 삼켰다. 그 기억 속에서 그는 누나의 손을 놓고 도망쳤다. 하지만 누나는 그를 놓친 게 아니라, 옷자락을 끝까지 잡고 있었다.

“왜 그때 아무도 그렇게 말 안 해 줬어요?”

“네가 누나 손을 놓았다고 말했어. 혜원이는 네가 물가에 올라온 뒤에야 정신을 차렸고. 선자 언니는 널 혼내고 싶지 않았어.”

“그럼 누나는 제가 먼저 손을 놓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애는 네가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네가 미안하다고 할 때마다 ‘다음엔 같이 나오자’고 했지.”

“그 말이 어디에 남아 있어요?”

“너희 둘 기억에.”

정미는 일어나 빈소 안으로 돌아갔다. 태경은 그 말이 방송에서 들린 문장과 겹치는 것을 느꼈다. 누나는 기계에 자신의 말을 남겼지만, 그 말이 누구에게 들리기를 바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 선자가 복도 끝에서 다가왔다. 그녀는 태경의 옆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정미가 말했니?”

“네.”

“네가 먼저 물에 들어간 건 맞아.”

“누나 손을 놓진 않았어요.”

“그랬을지도 몰라.”

“어머니는 봤잖아요.”

“나는 네가 물가로 올라오는 걸 봤어. 혜원이는 정미가 끌어냈고. 누가 누구를 놓쳤는지는 보지 못했어.”

“그래서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거예요?”

선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별개의 일이야.”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을 서로 엇갈려 잡았다. “혜원이가 죽기 며칠 전에 내게 전화를 했어. 태경이랑 함께 저수지에 가고 싶다고 했지. 너는 거절했다고 하더구나.”

“그런 전화 못 받았어요.”

“네가 못 받았다고 했어.”

“누나가 전화한 적도 기억 안 나요.”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너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을 숨겼어. 네가 또 죄책감을 느낄까 봐.”

“무슨 말을 했는데요?”

선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정미 이모가 건넨 손수건을 무릎 위에서 펼쳤다. 파란 물고기 무늬가 젖어 있었다. “그 아이는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어.”

“누구 이름을요?”

“자기 이름.”

태경은 어머니를 바라봤다.

“장례식장에서 방송을 할 때, 혜원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어.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들으면 저수지에서 마지막으로 잡지 못한 순간이 떠올라서….” 선자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누나를 잡지 못한 게 아니에요.”

“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느냐?”

“알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면, 그 사람이 없는 자리가 더 또렷해져.”

“그럼 같이 불러요.”

선자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먼저?”

“아니요. 제가 먼저 할게요.”

그들은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영정 속 혜원은 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사진을 골랐었다. 어머니는 검은 액자 테두리를 만지다가 손을 내렸다. 정미 이모는 봉투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저수지 둑에서 남매가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혜원은 태경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 주고 있었다.

“이 사진은 누가 찍었어요?” 태경이 물었다.

“네 아버지.” 선자가 답했다. “그날 저수지에 같이 갔던 건 가족 모두였어.”

“아버지도 물에 들어갔어요?”

“그때는 이미 떠난 뒤였어.”

정미가 어머니를 바라봤다. “선자 언니.”

선자는 사진을 내려놓았다. “내가 혜원 이름을 부르지 못한 건 그 아이가 죽어서가 아니야. 마지막으로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거든. 사고가 난 뒤에 내가 저수지에서 계속 혜원을 불렀는데, 정미가 아이를 끌어올릴 때까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그래서 이름을 부르면 그때로 돌아갈 것 같았어요?”

“그래. 네가 부르면 내가 듣게 될까 봐.”

“제가 누나 이름을 부르면 어머니도 같이 부를 수 있어요.”

선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경은 정미 이모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이모가 먼저 말해 주세요.”

“혜원아.”

정미는 영정 앞에 서서 누나의 이름을 불렀다. 어머니의 입술이 떨렸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태경은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는 일도 각자의 차례가 필요했다.

“엄마, 누나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듣지 않아도 돼요. 오늘은 누나가 여기 있었다고 말하는 것만 해요.”

선자는 사진을 손에 들었다. “혜원아, 태경이 네 손을 놓은 게 아니라고 했지.”

그 말은 이름이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막혀 있던 기억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선자는 사진을 영정 아래에 놓고, 한 번 숨을 골랐다. 태경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방송실로 향했다.

태경은 마이크를 들고 방송실로 갔다. 민석이 그를 막지 않았다. 대신 복도와 빈소 7번의 채널을 분리했다. 방송이 장례식장 전체가 아니라 가족이 있는 빈소에만 닿도록 했다.

“준비됐어?” 민석이 물었다.

“아직요.”

“그럼 기다려.”

태경은 헤드폰을 쓰지 않았다. 스피커를 통해 자기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빈소 문 앞에 선 어머니와 이모를 보았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듯했다.

태경은 마이크를 켰다. “누나.”

첫 단어는 낮고 짧았다. 방송실의 바늘이 조금 움직였다. 그는 숨을 골랐다.

“혜원 누나. 나야.”

빈소 안에서 어머니가 손수건을 입에 대었다. 정미 이모는 고개를 숙였다. 태경은 더 말하려 했지만, 할 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어릴 적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누나는 저수지에서 그를 끌어낸 뒤 젖은 옷을 털며 웃었다.

‘다음엔 같이 나오자.’

태경은 그 문장을 자신의 말로 바꾸지 않았다. “누나가 그날 그렇게 말했대. 내가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이름을 부르지 못한 것도 미안해. 하지만 이제 부를게.”

그는 방송 안내문을 읽었다. “조문객 여러분께 안내드립니다. 신혜원 님의 빈소는 7번입니다. 혜원 누나를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음향은 정상적으로 송출됐다. 복도 스피커에서는 아무런 다른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태경은 마이크를 껐다. 어머니는 빈소 안으로 들어가 영정 앞에 섰다.

“혜원아.” 그녀가 말했다.

그 한마디 뒤로 어머니는 울었다. 정미 이모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태경은 둘을 안지 않았다. 가족이 서로의 손을 잡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어머니가 손수건을 반으로 접어 그에게 내밀었다. 태경은 받으면서 어릴 적처럼 손목에 묶지 않았다. 대신 손에 쥐고, 이번에는 먼저 놓지 않았다. 천은 오래된 물 냄새가 났다.

장례 절차가 끝난 뒤, 민석이 방송실에서 예비 앰프 카드를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어.”

“뭔데요?”

“혜원이 남긴 파일에서 송출 예약이 잡혀 있어. 오늘 자정.”

“어떤 빈소로요?”

“예약된 빈소가 아니야. 번호가 0으로 되어 있어.”

태경은 장례식장 스피커 배치도를 펼쳤다. 0번 구역은 없었다. 대신 오래된 방송실 문 아래에 연결되지 않은 스피커 한 대가 있었다. 그는 그 스피커에 전원을 넣지 않았다.

“그 방송을 재생할까요?” 민석이 물었다.

태경은 어머니에게 전화하려다가 멈췄다. “아니요. 내일 다시 물어볼게요.”

“혜원이 음성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요. 오늘은 듣지 않을게요.”

그는 예비 앰프 카드의 예약을 취소하지 않았다. 대신 자정 전에 방송실에 와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어머니와 정미에게도 그 선택을 알렸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낡은 스피커의 전원등이 저절로 켜졌다. 태경은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방송실 문을 열어 둔 채, 누구도 혼자 듣지 않게 기다렸다.

스피커에서는 혜원의 목소리가 아니라 낯선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날 저수지에 한 사람 더 있었어.”

태경은 어머니를 바라봤다. 선자는 입을 열었지만,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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