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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안내방송이 내 과거를 읽는다1화

장례식장 안내방송이 내 과거를 읽는다

장례식장 안내방송이 내 과거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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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빈소 없는 안내방송

빈소가 배정되지 않은 구역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신태경은 마이크를 끄고도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태경아, 손 놓지 마.”

그 문장은 누나가 열 살 때 저수지에서 했던 말이었다. 장례문화원의 빈 복도에는 조문객도 없었고, 빈소 문패는 아직 비어 있었다. 방송실 믹서의 입력등은 꺼져 있었다. 그런데 목소리는 천장 스피커를 타고 세 번 반복됐다.

태경은 헤드폰을 벗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스피커 그릴 아래에는 먼지 한 줄이 떨어져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그릴을 두드렸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민석 팀장님!”

시설팀장 오민석이 복도 끝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왜 그래?”

“몇 번 빈소 방송이 나왔죠?”

“아직 예약이 없는데.”

“방금 0번 구역에서 음성이 들렸어요.”

민석의 얼굴이 굳었다. “0번은 없잖아.”

“그러니까요. 스피커 회선을 확인해 주세요.”

태경은 방송실로 돌아가 믹서의 구역 출력을 하나씩 내렸다. 1번부터 12번까지, 엘리베이터, 복도, 주차장. 모든 채널은 대기 상태였다. 본선 앰프의 레벨도 0이었다. 그는 예비 앰프 전원을 내리고, 벽면에 붙은 음향 로그를 확인했다. 지난 밤 1시 17분, 예비 장비 테스트 기록이 있었다. 민석의 서명이 붙어 있었다.

“이건 누가 테스트했어요?”

민석이 로그를 보더니 말했다. “내가 아니야. 내가 야간 교대 전에 확인했지.”

“서명은 팀장님 필체예요.”

“내가 안 했다고.”

태경은 종이에 남은 잉크를 문질렀다. 글씨는 번지지 않았다. 누군가 민석의 서명을 흉내 낸 것이었다.

그때 장례식장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혜원의 장례를 오늘 저녁에 치르겠다는 가족 연락이었다. 태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나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가 맡은 장례식장에서 장례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가족이 먼저 와.” 민석이 말했다. “오늘은 네가 현장 맡지 않아도 돼.”

“오히려 제가 해야 해요. 누나가 어떤 방송을 원했는지 알아야 하니까.”

“장례 준비와 장비 점검은 다르다.”

“제가 누나 목소리를 가장 잘 알아요.”

민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태경은 헤드폰을 다시 걸고 빈소 배정표를 확인했다. 신혜원, 36세. 빈소 7번. 방송 문구는 어머니가 직접 작성해 왔다. ‘조문객 여러분은 빈소 7번으로 와 주십시오.’ 평범하고 짧은 안내였다.

저녁이 되자 어머니 김선자가 도착했다. 그녀는 검은 옷 소매를 여러 번 쓸어내렸고, 태경을 보자 장례식장 직원에게 먼저 물었다.

“방송은 조용하게 해 주세요. 혜원이는 큰 소리 싫어했어요.”

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빈소 7번만 안내되도록 설정할게요.”

“그 아이 이름은 방송에서 읽지 말고.”

“누나 이름을 빼면 조문객이 못 찾아요.”

“빈소 번호만 말하면 돼.”

어머니는 더 말하지 않았다. 태경은 그녀의 손에 쥔 낡은 열쇠를 보았다. 저수지 사고 뒤로 집에 있던 창고를 잠갔던 열쇠였다. 누나는 그 창고에 들어가려 할 때마다 어머니와 싸웠다.

빈소 7번의 국화가 놓이고, 조문객들이 한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경은 방송실에서 복도 마이크를 켰다.

“조문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드립니다. 신혜원 님의 빈소는 7번입니다.”

음성은 정상적으로 나갔다. 방송을 마치고 마이크를 내리자, 다른 스피커에서 같은 안내가 한 번 더 흘렀다. 하지만 빈소 번호는 7이 아니었다.

“조문객 여러분, 0번 빈소로 와 주십시오.”

태경은 다시 믹서의 전원을 확인했다. 0번 채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복도 스피커가 켜져 있었다. 민석이 방송실로 들어와 본선과 예비 앰프를 모두 껐다. 목소리는 멈췄다.

“전원선 자체를 뽑자.” 민석이 말했다.

태경은 장비 뒤편으로 들어가 케이블을 하나씩 뽑았다. 예비 앰프에서 작은 열기가 느껴졌다. 전원이 꺼져 있는데도 장치가 따뜻했다. 그는 뒷면 덮개를 열었다. 안쪽 메모리 슬롯에 오래된 녹음 카드가 꽂혀 있었다.

“이건 언제 들어간 거죠?”

“모르겠어.”

태경은 카드를 빼려 했지만 민석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기록 먼저 남겨. 장비가 뜨거워. 파일이 손상될 수 있어.”

“누나 목소리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해.”

태경은 방송실 벽의 시계를 확인했다. 이상 방송은 매번 1시 17분에 기록되었다. 누나가 숨진 시각은 새벽 1시 17분으로 신고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민석에게 말하자, 팀장은 앰프 덮개를 닫았다.

“그 시간은 장례식장과 상관없어. 단순한 숫자일 수도 있어.”

“지금까지는 숫자였죠.”

“네가 누나를 잃은 날과 장비 고장이 겹쳤다고 해서 같은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야.”

“고장이 아니면요?”

민석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 더더욱 로그를 지우면 안 돼.”

태경은 장비 일지에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민석의 필체를 흉내 낸 서명도 사진으로 남겼다. 그동안 그는 늘 소리를 고치고 나서 기록했다.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고치지 않은 채, 들은 것을 그대로 남겼다.

태경은 카드를 꺼내 방송실 책상에 놓았다. 그때 복도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경아, 빈소를 비워야 해.”

“왜요?”

“혜원이 이름을 방송에서 부르지 말라니까.”

“이미 조문객들이 왔어요.”

“이름이 나오면 안 돼.”

태경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누나를 장례 치르는데 누나 이름을 부르지 말라면, 사람들이 누구를 보내러 왔는지 어떻게 알아요?”

“혜원이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방송을 좋아하지 않았어.”

“누나는 방송실에서 일했잖아요.”

“일이 좋아서 한 건 아니야. 네가 음향 일을 시작할 때 도와주려고 했던 거지.”

태경은 복도에서 어머니를 보았다. 선자는 빈소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든 열쇠를 꽉 쥐고 있었다.

“그럼 왜 누나가 남긴 목소리를 숨겨요?”

“숨기는 게 아니야. 그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뿐이야.”

“누나 목소리를요?”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나한테 남긴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어머니는 입술을 눌렀다. 태경은 그 말을 더 캐묻지 못했다. 빈소 안에서는 조문객이 들어와 절을 했고, 사회자의 작은 마이크가 켜졌다. 태경은 방송실로 돌아가 복도 음량을 낮췄다. 어머니가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장례식의 조용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누나가 어머니한테 어떤 말을 남겼어요?”

선자는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빈소 문을 닫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태경은 복도에 남아 장례식장 안내 문구를 다시 확인했다. 종이에 적힌 이름을 지우지 않기로 했지만, 아직 어떤 문장이 어머니를 그토록 겁먹게 했는지는 물을 수 없었다.

태경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빈소에 들어가지 않고 복도에서 멈춰 있었다. 문 안에는 혜원의 영정과 국화가 놓여 있었다. 이름 없는 장례를 치르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선자 언니.” 복도 끝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정미 이모가 젖은 우산을 접으며 들어왔다. 그녀는 혜원과 태경이 어릴 때 같은 동네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혜원이한테 국화가 예쁘다고 말해 주고 싶었는데, 문 앞에서 발이 안 떨어지네.”

어머니는 고개를 숙였다. 정미는 태경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장례식장 방송을 맡았다고 들었어. 혜원이가 네 목소리를 제일 잘 알아봤지.”

“누나가 제 목소리를요?”

“네가 어릴 때 물에 빠졌던 날에도, 그 애가 널 불렀잖아. 네가 대답을 안 해서 내가 먼저 뛰어들었고.”

태경은 숨을 멈췄다. 그의 기억에는 누나가 손을 놓았다는 장면만 남아 있었다. 물가에 있던 어른의 목소리, 누군가 뛰어드는 소리, 젖은 돌의 감촉은 기억하지 못했다.

“누나는 저를 잡고 있었어요?”

정미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건 선자 언니가 더 잘 알 거야.”

선자는 정미의 우산을 받아 벽에 세웠다. “오늘은 그 얘기 하지 말자.”

“오늘이 아니면 언제 해?”

“혜원이 보내고 나서.”

“보내고 나면 정말 말할 수 있겠어?”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미는 더 밀어붙이지 않고 빈소로 들어갔다. 태경은 누나의 장례식에 온 사람이 기억을 하나씩 들고 왔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 각자 손에 든 기억은 같은 날의 다른 조각이었다.

태경은 마이크를 들어 빈소 번호만 다시 안내했다. “조문객 여러분, 7번 빈소로 와 주십시오.”

대답은 없었다. 복도 스피커에서 낮은 잡음이 났다. 그 뒤로 어린 혜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태경이가 손을 놓았어.”

어머니의 손에서 열쇠가 떨어졌다. 금속이 바닥에 부딪혀 한 번 울렸다. 태경은 그 소리가 저수지 물가에서 들은 돌멩이 소리와 같은 박자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어머니를 보았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숙였다. 민석은 방송실 문을 닫았다. 누군가 듣지 못하게 막으려는 행동이었다.

“그 문장은 어디서 나왔어?” 태경이 물었다.

“네가 기억하는 문장이야.”

“어머니도 기억해요?”

그녀는 열쇠를 주우며 말했다. “오늘은 누나를 보내는 날이야. 그 이야기 하지 마.”

태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빈소 안으로 들어간 뒤, 그는 녹음 카드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파일 목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파형도 없었다. 하지만 재생 버튼을 누르자, 빈소 안내음과 함께 혜원의 숨소리가 들렸다.

“태경아, 나 아직 여기 있어.”

파일은 즉시 꺼졌다. 장비 로그에는 재생 기록이 남지 않았다. 태경은 헤드폰을 벗지 않았다. 누나의 이름을 부르면 방송이 대답할 것 같았지만, 그는 아직 그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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