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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자리의 증언1화

불이 난 자리의 증언

불이 난 자리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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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검게 남은 분전반

공장에 도착했을 때 불은 꺼졌지만, 안쪽에서 아직 뜨거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서은결은 출입 통제선 밖에서 방염복의 목깃을 잠갔다. 소방대원들이 호스를 말아 옮기는 동안, 공장 앞 도로에는 구급차 한 대가 남아 있었다. 야간조 작업자 윤 씨가 연기를 들이마시고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말만 들었다. 그는 화재 원인을 묻기 전에 구조가 끝났는지 확인했다.

“건물 동쪽 적재실은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내부 조사 허가 나기 전까지 들어가지 마세요.” 현장 지휘관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안전 확인 뒤 서쪽 작업장부터 보겠습니다.”

은결은 수첩 첫 줄에 도착 시각과 현장 통제자를 적었다. 한빛 플라스틱 공장 대표는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정기훈 안전관리 이사는 안전모를 벗지 않은 채 말했다. “작업자가 개인 열풍기를 켜 둔 채 자리를 비운 것 같습니다. 창고 쪽에서 먼저 불이 났고, 생산 라인까지 번졌어요. 설비를 복구해야 하니 오늘 안에 원인을 정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원인을 정리하는 시간은 현장이 정합니다. 지금은 발화 지점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기훈의 턱이 굳었다. “직원들 출근을 언제부터 시킬 수 있는지 정도는 알려 주셔야 합니다.”

은결은 답하지 않았다. 현장은 공장 측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결론을 내리는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먼저 바닥의 물과 소방수가 흐른 방향을 보고, 화재가 크게 번진 생산동과 창고 사이의 문을 확인했다. 문은 불에 휘어 열려 있었지만 손잡이에는 손상이 덜했다. 불길이 문틈을 지나간 흔적은 있었으나, 그 자리가 시작점인지 확산 경로인지는 아직 몰랐다.

생산동 밖의 작은 작업실에는 용융된 플라스틱이 바닥에 굳어 있었다. 타 버린 포장 상자와 장갑이 물에 젖어 눌어붙었다. 은결은 허가된 통로에서 작업대와 열풍기의 위치를 살폈다. 열풍기는 작업대 아래에 엎어져 있었다. 플러그는 빠져 있었고, 외부 케이블은 검게 탔지만 그을음만으로 열풍기가 불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사진을 찍고 주변의 물건을 손대지 않았다.

“이게 원인 아닙니까?” 기훈이 뒤에서 물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확인할 게 더 있습니다. 전원 연결 상태와 주변의 열 흔적을 비교해야 합니다.”

기훈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 작업자들 개인 전열기 쓰지 말라고 공지했어요. 저 사람은 말을 안 들은 거죠.”

은결은 그 문장을 수첩에 적지 않았다. 그가 설명한 말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회사 입장이었다. 대신 공지 날짜와 게시 장소, 교대조에 전달된 방법을 물었다. 기훈은 “반장들이 구두로 얘기했다”고 대답했다.

그때 붉은 작업 장갑을 낀 여성이 통제선 쪽으로 걸어왔다. 김보라라는 이름표가 반쯤 그을려 있었다. 그녀는 야간조 반장이고, 눈 밑에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열풍기 얘기는 틀렸어요.”

기훈이 돌아섰다. “보라 씨, 조사 중이니까 기억나는 것만 말해요.”

“저 기억나요. 분전반에서 불꽃이 세 번 튀었어요.” 보라는 손바닥을 펴 보였다. 손끝에 작은 물집이 잡혀 있었다. “그 다음에 창고 쪽이 밝아졌어요.”

은결은 보라를 통제선 바깥의 임시 조사 자리로 안내했다. “불꽃을 본 위치가 어디였습니까?”

“작업장 입구요. 교대 기록 확인하러 가다가 봤어요.”

“시각은요?”

“새벽 두 시 십오 분쯤.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벽시계가 멈췄으니까.”

“그 다음에는 어디로 이동했습니까?”

보라는 기훈을 한 번 바라봤다. “윤 씨를 찾으러 갔어요. 작업실에서 기침 소리가 났거든요.”

“열풍기 위치는 직접 봤습니까?”

“불이 났을 때는 못 봤어요. 나중에 소방대가 꺼진 뒤에 봤죠.”

기훈이 끼어들었다. “열풍기는 그 작업실에서 썼습니다. 보라 씨가 착각했을 수 있어요.”

은결은 그에게 기다려 달라고 손을 들었다. “두 분의 진술을 따로 듣겠습니다. 김 반장님, 왜 지금 말씀하십니까?”

보라는 한참 동안 장갑 끝을 만졌다. “제가 봤다고 하면 야간조가 위험한데도 일한 걸로 몰릴 거예요. 계약직은 다음 달에 바뀌어요. 제가 이름을 남기면 다른 사람도 같이 잘릴 수 있어요.”

은결은 사건을 대신 해결해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약속은 할 수 없었다.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초기 사실 확인입니다. 정식 진술과 이름 공개 범위는 조사 절차에 따라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다만 현장 흔적과 맞지 않으면 기록에서 확인이 필요하다고 표시해야 합니다.”

“제가 거짓말한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기억이 정확한지 함께 맞춰 보자는 뜻입니다.”

보라는 붉은 장갑을 벗고 손목 안쪽의 작은 화상 자국을 보여 줬다. “그때 여기까지 열기가 왔어요. 불꽃이 튀고 나서 차단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은결은 위치를 확인해 수첩에 기록했다. 보라가 가리킨 분전반은 열풍기 작업대보다 복도 쪽에 있었다. 초기에 그곳은 소방 호스와 잔해에 가려졌다. 현장 지휘관에게 접근 가능한지 다시 물었고, 허가가 나기 전까지 기다렸다. 기훈은 휴대전화를 확인하다가 “직원들이 현장 사진을 퍼뜨리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다. 은결은 사진이 외부로 나가지 않게 관리하겠지만, 공장 내부 직원이 위험 신고를 공유할 권리까지 자신이 막을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한 시간 뒤 안전 담당자가 서쪽 통로를 확인했다. 은결은 동료 감식관과 함께 분전반 쪽으로 들어갔다. 플라스틱 외함은 녹아내렸고, 위쪽보다 아래쪽 배선이 더 깊게 손상돼 있었다. 차단기 손잡이는 내려가 있었지만, 열로 변형된 상태라 차단 시점을 보여 주는지는 더 살펴야 했다. 전선 한 가닥은 단자 부근에서 구슬처럼 녹아 있었다. 그녀는 바로 원인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전기 감식 담당자에게 함께 보자고 요청했다.

“열풍기 회로와 같은 선로일까요?” 동료가 물었다.

“배선도와 실제 연결이 맞는지부터 봐야 해요. 증설 흔적도 확인해야 합니다.”

기훈은 허가된 구역 바깥에서 그 말을 듣고 다가왔다. “이 라인은 지난달에 설비를 추가하면서 손봤어요. 업체가 점검했다고 들었습니다.”

“점검 서류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회사 자료라 당장 드리기 어렵습니다.”

“수사와 감식에 필요한 자료 요청이 정식으로 오면 제출하셔야 합니다.”

기훈은 대답을 미뤘다. 보라는 조사 자리에서 다시 장갑을 꼈다. 은결은 그녀에게 물 한 병을 건넸다. “제가 봤다고 말하면, 윤 씨 치료비는 누가 내나요?”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없어요.” 은결은 솔직히 말했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원인을 보라 씨 책임으로 적지 않겠습니다. 조사 결과도 회사 입장과 같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보라는 웃지 않았다. “그럼 제가 말한 것도 그대로 남겨 주세요. 정리해서 예쁘게 고치지 말고.”

은결은 진술 메모에 보라가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따옴표 안에 썼다. “세 번 튀었다”, “차단기가 떨어지는 소리”라고 적은 뒤, 본인이 확인한 사실과 목격자의 말을 다른 칸에 나눴다. 보라는 그 기록을 확인하더니 마지막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제 이름은 일단 빼 주세요. 정식으로 말할 때 다시 생각할게요.”

은결은 이름란을 비워 두었다. 그녀가 조사를 거부하지 않도록 남길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이었다. 다만 현장에서 무언가를 더 옮기려는 인부가 보였다. 기훈은 생산동 복구를 위해 그을린 제어반을 옮겨도 되냐고 물었다. 은결은 부품과 전선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훈은 답 대신 작업반장을 불렀다. 지게차가 제어반 앞으로 다가왔다. 은결은 통제선 쪽으로 뛰어갔다. “잠깐만요. 그 부품은 조사 대상입니다.”

“공장 가동하려면 길을 비워야 해요.” 기훈이 말했다. “계속 멈춰 세울 수는 없습니다.”

은결은 인부 앞에 섰다. “옮기면 회로 연결 상태와 위치가 사라집니다. 이 부분은 경찰과 함께 인계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지게차가 멈췄다. 그때 보라가 조사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저 전기실, 불나기 전날에도 타는 냄새 났어요. 제가 문자 보냈어요.”

기훈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은결은 그를 바라보지 않고 보라에게 물었다. “문자를 보냈다면, 지금 가지고 있습니까?”

보라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읽지 않은 메시지 하나가 새벽 1시 58분에 전송된 것으로 남아 있었다. 받는 사람은 안전관리팀 단체방이었다. 불꽃이 세 번 튀기 전, 누군가는 이미 냄새를 맡고 있었다.

기훈은 보라의 화면 가까이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단체방은 제가 관리합니다. 개인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제 와서 단체방이었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보라가 휴대전화를 가슴 쪽으로 당겼다. “제가 누굴 탓하려고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열풍기 때문이라고만 쓰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은결은 메시지의 시각과 수신자 수를 보라가 읽어 주는 만큼만 기록했다. 화면을 촬영하거나 휴대전화를 넘기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증거로 제출할지는 정식 절차에서 보라가 설명을 들은 뒤 선택할 수 있었다. 기훈은 “확인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날 단체방에 답이 없었어요?” 은결이 물었다.

“야간조 메시지가 너무 많았습니다. 제가 전부 보는 건 아니니까요.”

보라는 입술을 눌렀다. “그럼 누구한테 보내야 했죠? 반장은 퇴근했고, 설비 쪽 전화는 안 받았어요. 제가 라인을 세웠으면 오늘 제 자리가 있었을까요?”

기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은결은 그 침묵도 원인이라고 적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알았는지, 누가 답할 책임이 있었는지 확인할 질문으로 남겼다. 기훈은 결국 보라의 휴대전화 화면을 보지 않기로 하고, 제어반 주변에 접근하지 말라고 작업반에 지시했다. 지게차 운전자가 엔진을 껐다. 잠시 뒤 빗방울이 방수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보라가 화면을 잠갔고, 은결은 기록의 마지막 줄에 “정식 자료 요청 필요”라고 적었다. 그 문장은 결론이 아니라, 다음에 누가 답해야 하는지 묻는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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