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교수가 제자들을 너무 잘 키움

3화: 고장 난 골렘을 고쳐라
끼익, 끼익.
낡은 나무 바닥이 규칙적인 마찰음을 토해냈다.
루멘 왕국력 812년 3월 초의 서늘한 아침 햇살이 창살 틈새로 부서져 내리는 아르켈 마탑 동쪽 별관 제9 강의실.
유진 에르하르는 삐걱거리는 교탁 의자에 몸을 묻은 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새벽에 겪었던 소멸의 인장 발작 탓에 가슴 한구석이 여전히 뻐근했다. 체온은 겨우 끌어올렸지만 머릿속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무거웠다.
당장이라도 연구실 침대로 기어들어가 온종일 잠이나 자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도저히 눈을 붙일 수 없게 만들었다.
“스승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구석의 묵은 때까지 말끔히 벗겨 내겠습니다.”
쉭, 쉭.
카일 로웬이 땀을 비 오듯 쏟으며 바닥을 맹렬하게 걸레질하고 있었다.
손바닥에는 밤새 검을 휘두르느라 터진 물집과 피딱지가 엉겨 붙어 있었다. 몰골은 엉망진창이었으나 금빛 눈동자만큼은 사교 집단의 광신도처럼 번뜩였다.
유진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기숙사 가서 씻고 좀 자라고 했잖아.”
“스승님의 존귀한 공간이 먼지에 방치되는 꼴을 어찌 두고 보겠습니까. 제자로서 첫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면 검을 쥘 자격도 없습니다.”
“스승 소리 좀 그만해라. 듣는 사람도 없는데 닭살 돋으니까.”
“겸양을 미덕으로 삼으시는 깊은 뜻조차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카일이 걸레를 쥔 채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대답했다.
유진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쫓아내려고 대충 던진 과제를 하룻밤 만에 끝내고 오더니 이제는 아예 자신을 평생 모실 은둔 고수로 떠받들고 있었다.
이러다간 조용한 은퇴는커녕 남은 3년 내내 이 열혈 검사 지망생의 뒤치다꺼리나 하다 피를 토할 판이었다.
‘빨리 다른 녀석이라도 자퇴시켜서 폐강 조건을 채워야 해.’
임시 지도반 규정상 정원의 절반 이상이 출석을 거부하거나 학업을 포기하면 반은 공식적으로 해산된다.
카일이 나가지 않겠다면 오늘 합류할 두 번째 문제아를 어떻게든 내쫓아야 했다.
‘마도공학부의 마리아 벨로아.’
유진은 주머니 속에 구겨 넣어 두었던 배정 통지서를 만지작거렸다.
마도공학부 작업장을 폭파해 징계를 먹은 공작가 방계의 문제아.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타인을 깔보는 완벽주의자라 들었다.
그런 귀족 영애라면 이런 먼지투성이 폐강 직전 반을 견디지 못할 터였다. 조금만 자존심을 긁거나 터무니없는 과제를 던져 주면 제 발로 행정실로 뛰어가 배정 취소원을 낼 것이 분명했다.
또각, 또각.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 저편에서 규칙적이고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망설임 없이 똑바로 뻗어나오는 발소리만으로도 걸어오는 이의 오만한 태도와 빈틈없는 성정이 드러났다.
카일이 걸레질을 멈추고 번개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의 손이 허리춤의 낡은 검자루로 내려앉았다.
벌컥.
노크도 없이 제9 강의실의 문이 열렸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적갈색 장발이 어깨 뒤로 흘러내렸고 콧날 위에는 은테 안경이 차갑게 빛났다. 최고급 원단으로 재단된 제복은 먼지 한 톨 묻어 있지 않았으며 허리에는 값비싼 마도구 부품이 담긴 가죽 공구함이 매달려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그녀의 오른팔이었다.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 정교한 황동과 강철로 엮인 기계 장갑이 착용되어 있었다. 손가락 관절이 움직일 때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나직한 금속음과 푸른빛 마나의 스파크가 튀었다.
마도공학부의 이단아 마리아 벨로아였다.
마리아는 교실 문턱에 멈춰 서서 안경을 검지로 살짝 밀어 올렸다. 그리고 강의실 내부를 둘러보더니 가차 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 소문보다 훨씬 더 끔찍하군요. 환기 마법진 하나 작동하지 않는 폐건물이라니. 쇳가루 냄새 때문에 폐가 썩어 들어갈 지경이네요. 마탑 행정부의 징계 방식도 참으로 저열하기 짝이 없어요.”
마리아는 구두 굽을 딱딱거리며 교탁을 향해 걸어왔다.
카일이 땀에 젖은 몰골로 걸레를 든 꼴을 훑어본 그녀의 입술 끝에 차가운 비웃음이 걸렸다.
마리아는 품에서 붉은색 결재 서류 한 장을 꺼내 유진의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마도공학부 2학년 마리아 벨로아입니다. 통보서는 이미 받으셨겠죠, 유진 에르하르 교수님.”
유진은 의자에 늘어진 채 흐리멍덩한 눈으로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공식 출석 확인서였다.
마리아는 턱을 치켜들며 싸늘한 격식체로 말을 이었다.
“작업장에서 발생한 사소한 계산 착오를 빌미로 이런 낙제생 수용소에 처박아 두다니 기가 차는군요. 하지만 교수님께서도 저 같은 골칫덩어리를 떠맡아 시간 낭비하고 싶진 않으시겠죠. 매주 출석부에 서명만 해 주십시오. 제 연구는 가문의 개인 공방에서 계속 진행할 테니 교수님께서는 저를 유령 취급하시면 됩니다.”
초면에 대놓고 출석 조작을 요구하는 당돌함. 상대를 교수 취급조차 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였다.
유진은 기가 막히기보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드는군.’
성질만 조금 더 긁어 주면 오늘 안으로 자퇴서를 집어던질 기세였다.
하지만 유진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쿠웅!
거센 바람과 함께 카일이 교탁 앞으로 성큼 걸어 나왔다.
“무례하다, 마리아 벨로아. 네놈의 그 오만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릴 곳이 아니다. 은둔하신 위대한 스승님 앞에서 그 천박한 태도를 당장 거둬라.”
마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위대한 스승? 하! 검술학부에서 마나 제어도 못 해 쫓겨난 결함품이 하루아침에 사이비 교주의 광신도가 되었군요. 소문은 익히 들었어요, 카일 로웬. 마나 폭주를 주체하지 못해 칼끝 하나 똑바로 가누지 못하던 버림받은 칼잡이. 그런 낙제생이 기초이론학부의 병약한 하급 교수에게 매달려 구원을 바란다니 눈물겨운 삼류 희극이네요.”
카일의 눈썹이 사납게 치솟았다.
손잡이를 쥔 손등에 파란 핏줄이 돋았다. 보통 때였다면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마나를 폭주시킨 채 검을 뽑아 들었을 터였다.
그러나 카일은 검을 뽑지 않았다.
스으읍.
카일은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새벽 공터에서 스승이 보여 주었던 그 찰나의 가르침. 마나의 쓸데없는 소음을 지워 내고 시각의 족쇄를 끊어냈던 그 서늘한 감각이 카일의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분노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카일의 몸 주변을 흔들던 거친 기류가 거짓말처럼 한곳으로 응축되며 흔들림 없는 고요를 만들어냈다.
찌르르!
그 순간 마리아의 오른팔에 장착된 기계 장갑에서 날카로운 금속 경고음이 울렸다.
손목 부분에 박혀 있던 청색 감응 마정석이 붉은빛으로 번쩍이며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
마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계 장갑의 분석 회로가 카일의 마나를 측정하고 있었다.
폭주하는 거친 파동이 감지되어야 정상이었다. 학부 보고서에 적힌 카일 로웬의 마나는 언제나 잉여 출력이 넘쳐흘러 주변을 파괴하는 불량품이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소년에게서는 그 어떤 불안정한 마나의 누출도 잡히지 않았다.
마치 모든 힘이 칼날 중심의 얇은 궤적으로 완벽하게 정렬된 채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한 기이한 정적.
‘보고서와 전혀 달라. 마나가 정돈되어 있어?’
마리아의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맺혔다. 계산식에 오차가 발생한 순간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때 귀를 후비는 나른한 목소리가 두 사람의 신경전을 뚝 끊어 놓았다.
“야. 시끄러워.”
유진이 교탁에 턱을 괸 채 하품을 삼켰다.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 복도에서 머리채를 잡고 뒹굴든 칼로 쑤시든 상관 안 할 테니까 내 귀청 떨어지게 교실에서 고함지르지 마라.”
카일이 흠칫 놀라며 즉시 검자루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의 면전에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마리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유진을 노려보았다.
자신이 그렇게 무례하게 굴었는데도 교수는 화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그저 귀찮아 죽겠다는 듯 풀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뿐이었다.
마리아는 입술을 짓씹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교수님. 제 제안에 대해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매주 서류에 서명만 해 주신다면……”
“싫은데.”
유진이 단칼에 잘랐다.
“내가 왜 네 거짓 출석부에 서명을 해 줘야 하지? 서류 조작하다 감사에 걸리면 내 퇴직금 날아가잖아.”
유진은 책상에 놓인 서류를 툭 쳐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여긴 기초이론학부 특별 지도반이야. 내 결재 없이는 출석도 없고 학점도 없어. 네가 벨로아 공작가든 뭐든 내 알 바 아니고 내 반에 들어온 이상 내 규칙을 따라야 해.”
마리아의 뺨이 수치심과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가문의 이름을 대놓고 무시당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것도 마탑에서 가장 무능하기로 유명한 만년 하급 교수 따위에게.
“지금 절 가르치겠다는 뜻입니까? 마도공학의 기본 공식조차 다루지 않는 기초이론학부 교수 따위가 감히 벨로아의 수석을 가르치겠다고요? 교수님이 기계 회로의 연산 구조에 대해 단 한 줄이라도 아시는 게 있긴 합니까?”
도발이었다. 하지만 유진에게는 그런 유치한 자존심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리아가 분노로 펄펄 뛰는 모습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좋아. 아주 잘 걸려들었어.’
이런 오만한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를 건드렸을 때 가장 쉽게 무너진다. 절대로 풀 수 없는 불가능한 벽을 들이밀어 주면 스스로 절망하고 도망치기 마련이었다.
유진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교탁 구석에 놓아두었던 낡은 캔버스 가방 속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제7 연구실 구석의 잡동사니 상자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물건 하나가 손끝에 걸렸다.
쿵!
유진이 꺼내 든 쇳덩어리가 교탁 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마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게 뭡니까?”
탁자 위에 놓인 것은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기괴한 소형 골렘이었다.
구형의 몸체는 시커먼 그을음과 녹으로 뒤덮여 있었고 황동으로 된 관절 다리 세 개는 제멋대로 뒤틀려 있었다. 무엇보다 가슴 한가운데에 박힌 마나 제어 코어는 새까맣게 타버린 채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득했다.
외벽을 따라 드러난 동선과 룬 회로는 쥐가 갉아먹은 것처럼 끊어지고 뒤엉켜 있었다.
유진이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골렘의 찌그러진 머통을 툭툭 치며 말했다.
“과제다.”
“……과제라고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마도공학에 자신이 넘치면 이거 한번 켜 봐.”
마리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장난치십니까? 이건 이미 코어가 과부하로 깨져서 내부 마나 경로가 완전히 불타 버린 폐기물입니다. 마탑의 폐기물 처리장에서도 거들떠보지 않을 쓰레기라고요. 이걸 고치느니 부품을 전부 녹여서 새로 만드는 게 백 배는 빠릅니다!”
“그럼 못 하겠다는 거네?”
유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턱을 괴었다.
“벨로아 가문의 대단한 천재라길래 뭐 좀 다른 줄 알았더니 고작 고장 난 골렘 하나 앞에서 징징대는 수준이었군. 그래, 수준에 안 맞으면 억지로 할 필요 없어. 못 하겠으면 당장 짐 싸서 나가. 행정실로 달려가서 이 반 못 해 먹겠다고 배정 취소원 제출해. 나도 귀찮은 학생 억지로 붙잡고 있을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완벽한 축객령이었다.
마리아의 숨이 턱 막혔다. 자존심이 맹렬하게 요동쳤다.
마도공학부에서 쫓겨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런 폐급 교수에게 ‘수준이 안 된다’는 소리를 듣다니. 그것도 평민 낙제생 카일 로웬이 지켜보는 앞에서!
“……누가 못 한다고 했습니까?”
마리아의 눈동자에 서슬 퍼런 오기가 타올랐다.
찰칵!
그녀가 오른손을 가볍게 털자 기계 장갑의 손가락 마디가 열리며 초정밀 마나 핀셋과 미세 드라이버가 튀어나왔다.
“반나절이면 충분합니다. 이따위 조잡한 고철 덩어리, 완벽하게 기동시켜서 교수님 코앞에 대령해 드리죠. 대신 제가 성공하면 출석 서명은 물론이고 이번 학기 내내 제 연구에 단 한마디도 간섭하지 마십시오!”
“마음대로 해.”
유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나절? 일주일이 지나도 못 켤 거다.’
그 골렘은 평범한 고철이 아니었다.
8년 전 유진이 소멸의 인장에 걸리기 전 제7 연구실에서 공백술의 마나 소거 원리를 기계 회로에 적용해 보려다 실패했던 기괴한 실험 잔해였다.
마나를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마나를 강제로 비워 내도록 뒤틀려 설계된 결함투성이 구조.
일반적인 마도공학 이론을 맹신하는 모범생일수록 절대로 그 회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를 싸매고 씨름하다가 결국 울면서 도망치게 될 터였다.
유진은 외투를 툭툭 털며 강의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럼 난 연구실 가서 쉴 테니까 알아서들 해라. 나갈 때 문이나 잘 잠그고 가.”
끼이익.
유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강의실 안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남았다.
카일은 문이 닫힌 방향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스승님이시다.”
“……뭐?”
마리아가 렌치를 든 채 카일을 쏘아보았다.
카일이 진지한 표정으로 찌그러진 골렘을 가리켰다.
“나에게 눈을 감으라 하셨던 것처럼 너에게도 네 오만을 깨부술 거대한 시련을 던지신 거다. 그 고철 속에 담긴 비전을 깨닫지 못한다면 너는 스승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
“헛소리 집어치워요!”
마리아는 씩씩거리며 골렘의 상부 덮개를 사납게 뜯어냈다.
“이따위 싸구려 폐기물에 무슨 심오한 비전이 있다는 건지…… 내가 당장 뜯어서 증명해 보이겠……”
말을 잇던 마리아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덮개가 열린 골렘의 내부.
먼지와 그을음 밑으로 드러난 회로의 배치를 본 순간 마리아의 숨이 멎었다.
“……어?”
마리아의 턱이 굳어졌다.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회로가 불탄 것이 아니었다. 동선이 엉망으로 꼬인 것도 아니었다.
마도공학부의 교과서나 벨로아 가문의 수천 권의 비전서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괴망측한 설계였다.
마나를 증폭시켜야 할 주 회로의 결절점이 의도적으로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증폭 룬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마나를 공급하는 보조 도선들은 전부 출구가 없는 막다른 허공을 향해 뻗어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절대로 마나가 흐를 수 없는 엉터리 배선.
그런데.
‘……왜 회로가 살아 있지?’
안경 너머 마리아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기계 장갑의 분석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그 텅 빈 공간들.
비워진 구멍들이 서로 맞물리며 마치 거대한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주변의 잉여 마나를 저절로 빨아들여 삼키고 있었다.
마나를 채워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었다. 마나를 비워 냄으로써 스스로 순환의 궤도를 완성하는 미지의 연산 구조.
“이게…… 대체 뭐야?”
마리아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전율이 흘러내렸다.
이것은 고장 난 쓰레기가 아니었다. 기존 마도공학의 근본 법칙을 정면에서 비웃고 있는 미지의 금서급 마도 설계였다.
“교수님…… 대체 정체가 뭡니까?”
먼지 쌓인 제9 강의실의 적막 속에서 마리아의 떨리는 중얼거림이 흩어졌다.
복도를 유유히 걸어 내려가던 유진은 자신의 뒤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착각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그저 평온한 낮잠을 기대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