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교수가 제자들을 너무 잘 키움

4화: 비워야 움직이는 기계
치이익!
아르켈 마탑 동쪽 별관 제9 강의실의 어둑한 공기 속에서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콜록! 콜록!”
마리아 벨로아는 매캐한 그을음을 손등으로 거칠게 밀어내며 기계 장갑을 낀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에 물려 있던 정밀 마나 인두의 촉이 붉게 달아올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수십 개의 황동 도선과 룬 조각, 분해된 톱니바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놓인 구형 골렘은 여전히 싸늘하게 식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 말도 안 돼.”
마리아는 은테 안경을 신경질적으로 밀어 올렸다. 콧등에 묻은 검은 쇳가루 따위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유진 에르하르 교수가 빈정거리며 교실 문을 나선 뒤로 마리아는 단 한 발자국도 강의실을 벗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반나절이면 고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벨로아 공작가 방계의 수석이자 마도공학부에서 기계 회로의 천재라 불리던 자신이었다.
비록 실험 사고로 연구실을 날려 먹고 이곳으로 쫓겨왔으나 기계의 뼈대와 마나 경로를 다루는 실력만큼은 마탑의 정교수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눈앞의 고철 덩어리는 그녀의 모든 상식을 철저하게 짓밟고 있었다.
“어째서 마나가 돌지 않는 거지?”
마리아는 이를 악물며 골렘의 흉부 코어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가문의 정통 마도공학 공식에 따라 가장 완벽한 수리 방식을 적용했다.
끊어진 결절점에 새로운 마나 공급선을 촘촘하게 덧대었고 동력이 부족하지 않도록 삼중 증폭 룬을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마나를 더 많이, 더 강하게 밀어 넣어야 기계가 깨어난다는 것은 마도공학의 절대적인 제1원칙이었다.
그런데 마나를 주입할 때마다 골렘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증폭된 마나가 결절점에 닿는 순간 내부 회로가 비명을 지르며 과열되었고 마나를 거부하듯 역류를 일으키며 코어가 터져 나갔다.
벌써 네 번째 폭발이었다.
‘더 많은 마나를 넣을수록 회로가 거부하고 있어…….’
마리아의 머릿속에 불길한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마도공학부 지하 작업장.
가문의 가주인 벨로아 공작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거대한 출력을 쥐어짜다 마나 폭주를 일으켰던 그날의 끔찍한 폭발.
학부 교수들은 마리아가 욕심을 부려 안전 제어식을 건너뛰었다며 비난했고 가문은 부끄러운 결함품이라며 그녀를 이곳으로 내팽개쳤다.
‘내 계산이 틀렸던 건가? 마나를 통제하지 못한 내 미숙함 때문이었나?’
가슴 밑바닥에서 차가운 열등감과 자책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자신이 평생 옳다고 믿어 왔던 가문의 가르침이 눈앞의 작은 폐기물 하나 앞에서 완벽하게 가로막혀 있었다.
“젠장……!”
마리아가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정적이 내려앉은 강의실에 날카로운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초조해 보이는군.”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교실 구석에서 흘러나왔다.
마리아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강의실 뒤편의 희미한 촛불 아래 카일 로웬이 정좌한 채 앉아 있었다.
소년은 밤새 단 한 번도 눕지 않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무릎 위에 낡은 장검을 올려두고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땀방울이 턱선을 타고 뚝뚝 떨어졌지만 소년의 호흡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리아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쏘아붙였다.
“남의 일에 참견 마세요. 낙제생 칼잡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닙니다.”
“스승님의 과제를 앞에 두고 있으니 남의 일이 아니지.”
카일이 천천히 눈을 떴다.
금빛 눈동자 속에는 어제의 불안과 살기 대신 흔들리지 않는 깊은 고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카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탁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차가운 물 한 컵을 꺼내 마리아의 책상 모서리에 툭 내려놓았다.
“목이나 축여라. 그러다 쓰러지겠다.”
“……동정 따위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요.”
마리아가 차갑게 쏘아보았지만 카일은 신경도 쓰지 않고 팔짱을 꼈다.
그의 시선이 책상 위에 엉망으로 널브러진 골렘과 불타 버린 황동 선로들을 향했다.
카일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어제 아침의 내 꼴을 보는 것 같군.”
“뭐라고요?”
“나 역시 그랬다. 검술학부에서는 언제나 마나를 더 많이 쥐어짜 검을 감싸라고 가르쳤지. 힘이 부족하면 마나를 두 배로 쏟아붓고 출력이 밀리면 온몸의 혈관을 쥐어짜라고 했다.”
카일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아나? 마나가 내 몸속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궤적을 찢어발겼다. 칼을 휘두를 때마다 근육이 터질 것 같았고 정작 칼끝은 단 한 치도 똑바로 뻗지 못했지.”
마리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겪고 있는 상황과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았다.
마나를 더 쏟아부을수록 회로는 과열되고 골렘은 침묵했다.
카일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때 스승님께서 내 검을 손가락 하나로 건드리셨다. 그리고 말씀하셨지. 쓸데없는 소음이 너무 많다고.”
“소음……?”
“그래. 눈으로 칼끝을 쫓으며 마나를 억지로 맞추려 드니까 온몸이 굳는 거라고 하셨다. 불필요하게 끓어오르는 힘을 모조리 비워 내고 오직 필요한 길만 남기라고 하셨지.”
카일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스승님께서 네게 주신 시험도 다르지 않을 거다. 너는 지금 그 고철에 네 욕심과 마나를 억지로 쑤셔 넣으려 하고 있어. 선을 더 긋고 룬을 더 새기는 게 답이 아니라면 반대로 해 봐라.”
“반대로……?”
“비워 보는 거다. 스승님께서 가리키신 길은 언제나 텅 빈 곳에 있었으니까.”
카일은 말을 마치고 다시 교실 구석으로 걸어가 바닥에 정좌했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적막이 다시 교실을 집어삼켰다.
마리아는 멍하니 물컵을 내려다보았다.
‘비워 낸다……?’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었다.
마도공학은 결핍을 채우는 학문이다. 회로가 비어 있으면 도선을 연결해야 하고 동력이 부족하면 증폭 룬을 더 촘촘하게 새겨 넣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비워 내라니?
마리아는 헛웃음을 삼키며 골렘의 내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각이 달라져 있었다.
‘잠깐…….’
마리아의 동공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기계 장갑의 분석 렌즈를 통해 확대된 회로의 밑바닥.
그곳에는 지금까지 결함이라고 여겼던 기괴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나 증폭 룬이 있어야 할 자리가 둥글게 파여 비어 있었다. 보조 도선들은 출구가 없는 허공을 향해 뻗어 나가다 뚝 끊겨 있었다.
일반적인 공학자의 눈에는 명백한 불량 배선이었다.
하지만 카일의 말을 곱씹으며 그 텅 빈 구멍들을 다시 바라보았을 때 마리아의 뇌리에 번개가 내리쳤다.
‘도선이 끊긴 게 아니야.’
마리아의 숨이 턱 막혔다.
‘도선이 허공을 향해 뻗어 있는 건 마나를 밖으로 뿜어내기 위함이 아니었어. 대기 중에 떠도는 미세한 마나의 흐름을 안쪽의 빈 공간으로 빨아들이기 위한 흡입구였던 거야!’
비어 있는 둥근 결절점.
그것은 마나를 채우지 못해 방치된 구멍이 아니라 주변의 잉여 마나를 소용돌이치게 만들어 스스로 압축시키는 ‘공백의 소용돌이’였다.
그곳에 억지로 새로운 룬을 새기고 마나를 밀어 넣었으니 소용돌이가 깨지며 역류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마리아의 입술 사이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선로를 덧대고 룬을 채울수록 골렘은 숨이 막혀 죽어가고 있었다.
교수가 교탁 위에 무심하게 던져 놓았던 그 고철은 마나를 강제로 주입해 움직이는 노예가 아니었다.
스스로 숨을 쉬며 주변의 공간을 비워 냄으로써 순환을 완성하는 기적의 구조체였다.
‘교수님은 이걸 알고 계셨어.’
마리아의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 무기력한 은발의 교수는 마리아가 어떤 벽에 부딪혀 있는지 한눈에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가문의 주입식 교육에 갇혀 무조건 마나를 퍼붓기만 하던 마리아의 오만한 집착.
그 한계를 깨부수기 위해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비움의 교본’을 과제로 던져 준 것이었다.
“내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마리아의 눈동자에 맹렬한 열기가 차올랐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마나 인두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치익, 치이익!
인두의 푸른 불꽃이 골렘의 내부를 훑었다.
마리아는 자신이 몇 시간 동안 공들여 새겨 넣었던 삼중 증폭 룬을 가차 없이 녹여 지워버렸다.
찰칵, 챙!
초정밀 핀셋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보조 도선들을 하나씩 뜯어냈다.
선을 더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불필요하게 엉켜 있던 탐욕의 흔적들을 하나씩 깎아내고 지워나가는 정화의 과정이었다.
가문의 비전서에 적혀 있던 금과옥조 같은 공식들을 마리아는 제 손으로 직접 부수어 나갔다.
하나의 선을 끊어낼 때마다 골렘 내부의 숨통이 트였다.
둘, 셋, 넷.
불필요한 선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잉여 회로를 잘라냈을 때.
화아아악!
기괴한 정적이 교실을 감쌌다.
골렘의 중심부에 남아 있던 텅 빈 결절점들이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마나를 전혀 주입하지 않았는데도 대기 중의 먼지와 마나 입자들이 나선형을 그리며 골렘의 빈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귓가를 간지럽히는 맑고 서늘한 기동음이 울려 퍼졌다.
구형 본체에 새겨진 황동 선로들이 마치 살아 있는 혈관처럼 푸른 마나를 실시간으로 순환시키고 있었다.
기적이었다.
외부의 동력원 없이 오직 내부의 공백만으로 스스로 동력을 생산하는 자율 순환 연산 구조.
벨로아 가문의 극비 서고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된 고대 금서의 한 구절이 마리아의 뇌리를 스쳤다.
[가장 위대한 회로는 채움으로써 완성되지 않는다. 신의 섭리를 담는 그릇은 언제나 비어 있는 곳에서 태어난다.]
마리아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이게…… 공백의 비전…….”
마리아는 떨리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기초이론학부의 이름 없는 하급 교수.
마탑의 버림받은 낙제생들이 모이는 폐건물의 임시 담당자.
그 모든 것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유진 에르하르는 마탑 평의회조차 감히 헤아리지 못할 초월적인 경지에 도달한 채 속세를 비웃으며 숨어 살던 진짜 대현자였던 것이다.
“스승님…….”
마리아의 입에서 절로 터져 나온 호칭이었다.
창밖으로 붉은 아침 햇살이 서서히 번져 오고 있었다.
루멘 왕국력 812년 3월 초의 맑은 아침.
아르켈 마탑 동쪽 별관 복도를 걸어오는 유진 에르하르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웠다.
“후아암.”
유진은 나른한 기지개를 켜며 품에서 출석부 서류를 꺼내 들었다.
간밤에는 소멸의 인장 발작도 없었고 각혈도 하지 않았다.
약간의 미열과 가슴의 뻐근함은 여전했으나 지난 며칠간 겪었던 극심한 통증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는 컨디션이었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열 시간을 내리 푹 자고 일어난 덕분이었다.
‘마리아 그 콧대 높은 녀석, 지금쯤 짐 싸서 가문으로 돌아갔겠지.’
유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골렘은 8년 전 자신이 소멸의 인장에 걸리기 직전 공백술의 소거 원리를 시험해 보려다 완전히 망가뜨려 내버린 결함품 중의 결함품이었다.
마나를 채우면 무조건 터지도록 꼬여 있는 회로를 마도공학부의 엘리트 모범생이 어떻게 고치겠는가.
밤새 끙끙 앓다가 제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도망쳤을 것이 분명했다.
학생 넷 중 둘이 떨어져 나가면 반은 공식적으로 폐강이다.
카일 녀석 하나만 적당히 달래서 다른 학부로 돌려보내면 다음 주부터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퇴직 준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출석부에 결석 체크 딱 해 두고 행정실에 폐강 신청서나 내러 가야겠군.”
유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제9 강의실 문고리를 잡았다.
끼이익.
경쾌하게 문을 밀어젖히며 유진이 교탁을 향해 무심하게 소리쳤다.
“어디 보자, 아직도 고물 붙잡고 징징대……”
말을 잇던 유진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
유진의 눈동자가 갈 길을 잃고 허공에서 굳어 버렸다.
강의실 한가운데.
교탁 위에 얹혀 있던 고철 덩어리가…… 서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뒤틀려 있던 황동 관절 다리 세 개가 완벽한 삼각 구도를 이루며 교탁을 딛고 서 있었고 검게 그을렸던 구형 본체는 매끄러운 푸른빛을 은은하게 내뿜고 있었다.
삐빅, 삐비빅.
골렘의 머리통 부분에 달린 둥근 유리 렌즈가 맑은 기계음을 내며 돌아갔다.
골렘은 문가에 멈춰 선 유진을 발견하더니 짧은 세 다리를 까딱거리며 유진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마치 스승을 영접하는 어린아이처럼 완벽하게 정중한 인사였다.
유진의 뇌리가 하얗게 백지화되었다.
‘……어?’
유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손등으로 눈꺼풀을 비볐다.
다시 보아도 골렘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외부의 마나선도 마석 전선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골렘 내부의 텅 빈 구멍들이 대기 중의 마나를 스스로 빨아들이며 아름다운 자율 순환을 돌리고 있었다.
‘이게 왜…… 진짜 켜져?’
유진의 턱이 덜컥 떨어졌다.
그건 자신이 8년 전에 실패하고 내버린 폐기물이었다. 마나를 비워 내는 회로의 매듭을 풀지 못해 그냥 구석에 던져 두었던 고철 덩어리였단 말이다.
그런데 그걸 하룻밤 만에 고쳤다고?
“스승님.”
떨리는 목소리가 교탁 옆에서 울려 퍼졌다.
유진이 삐걱거리는 로봇처럼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마리아 벨로아가 서 있었다.
그녀의 꼴은 카일의 첫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단정했던 적갈색 머리칼은 헝클어져 어깨 위로 흩날렸고 은테 안경 너머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옷소매는 온통 검은 그을음과 쇳가루 범벅이었다.
하지만 충혈된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광기 어린 환희와 벅찬 전율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리아는 유진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오더니 치맛자락을 쥐고 깊게 무릎을 굽혔다.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비움의 섭리를…… 마침내 해독했습니다.”
마리아의 목소리가 감격으로 떨려 나왔다.
“가문의 어리석은 증폭 공식에 눈이 멀어 있던 제게 진정한 마도공학의 새 지평을 열어 주셨습니다. 불필요한 선을 지우고 헛된 마나를 비워 냈을 때 비로소 기계가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뭐?”
유진이 멍청하게 되물었다.
마리아는 멈추지 않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맹세하듯 외쳤다.
“평생 스승님의 발치를 따르겠습니다. 이 위대한 비전을 제 손으로 완성하여 스승님의 이름이 세상 모든 마도공학의 정점에 서게 만들겠습니다!”
철컥.
그때 뒤편에서 카일이 검을 차며 성큼 걸어 나왔다.
카일 역시 감격에 젖은 얼굴로 유진을 우러러보며 외쳤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저 오만하던 마리아마저 스승님의 한없는 자비와 가르침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니…… 잠깐만……”
유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두 사람의 눈빛.
카일의 맹목적인 광신에 이어 이제는 마리아까지 종교적인 열광으로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자퇴는커녕 두 녀석 모두 유진의 곁에 뼈를 묻을 기세였다.
‘망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서늘한 공포가 치밀어 올랐다.
조용히 서류나 정리하다 퇴직금을 챙겨 시골로 내려가려던 유진 에르하르의 은퇴 계획은 이제 완벽하게 파탄 나고 있었다.
파드득!
그때 교실 창문 틈새로 또 한 마리의 금속 전령새가 요란하게 날아들었다.
마탑 행정부의 붉은 봉투가 유진의 발치에 툭 떨어졌다.
[기초이론학부 특별 지도반 3차 배정 통보]
- 대상자: 루카 페른 (정령학부)
- 사유: 정령 폭주 사고 및 통제 불능.
바닥에 떨어진 통보서를 내려다보며 유진은 뒷목을 잡았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제9 강의실 안에서 유진의 깊은 신음이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