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집 골목의 세 가지 국물

2화: 장부에 남은 골목 몫
민재는 세탁소 문을 열고도 한동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어제 장부에서 본 ‘골목 몫’이라는 글씨가 자꾸 떠올랐다. 정배는 다림질판 위에 셔츠를 펼치며 손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스팀이 천장을 향해 뿜어 올랐다.
“아버지 조리 노트가 여기 있습니까?”
정배는 다리미를 내려놓지 않았다. 셔츠의 소매선을 따라 손목을 움직이고 나서야 민재를 봤다.
“네 아버지는 노트를 남한테 맡기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장부에는 세탁소 이름이 적혀 있어요. 국밥집도요. 골목 몫은 뭡니까?”
정배는 손님에게 셔츠를 건넨 뒤 안쪽 창고로 들어갔다. 그는 낡은 서류 봉투를 꺼냈지만 곧 열지 않았다. 민재가 자신을 믿지 못하면 보여 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민재는 아버지가 쓰러진 뒤 가게에 남겨 둔 것을 찾으러 왔지, 동네 사람들 사정을 캐려는 게 아니라고 답했다. 정배는 그 말에 웃지 않았다.
“네가 찾는 게 노트라면, 누구한테 왜 갔는지부터 물어야지. 네 아버지가 누구한테 뭘 맡겼는지 묻는 건 다른 일이다.”
민재는 서류 봉투를 보며 한 발 물러났다. 대신 장부 한 장을 복사해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정배는 자기 가게 이름이 적힌 부분만 보여 줄 수 있다고 했다. 민재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세탁소 거래 내역과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가 함께 있었다. 정배는 필요한 날짜를 종이에 옮겨 쓰고, 적힌 내용을 다시 확인해 달라고 했다. 민재는 날짜와 금액을 대조했다. 골목 몫은 매달 같은 액수가 아니었다. 비가 많이 온 달에는 돈이 늘었고, 가게가 쉬는 기간에는 줄었다.
“공동 수리비였어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정배는 봉투를 열어 오래된 영수증을 보여 줬다. 골목 배수관을 고칠 때 각 가게가 형편에 따라 부담한 돈이었다. 공사비가 예상보다 커져 일부는 서씨 만두가 대신 냈다. 아버지는 다른 가게에서 갚는 돈을 ‘골목 몫’이라고 적었다. 민재는 아버지가 돈을 빌려 줬다는 사실을 몰랐다. 정배는 그 돈이 아직 다 갚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내라고 재촉한 적은 없었다.
“왜 우리한테 말을 안 했죠?”
“네 아버지가 너희 남매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저희를 빼놓는 게 배려라고 생각했나 보네요.”
“그건 네가 직접 물어봐.” 정배가 영수증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난 네 아버지 대신 대답하지 않겠다.”
민재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가게 후계자로 부르면서도 돈과 결정의 이유를 알려 주지 않았다. 정배는 반대로 사실의 일부만 보여 주고, 그 이유를 자신이 말해 주지 않았다. 민재는 그 차이가 정배의 선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그는 복사본 대신 정배가 확인해 준 날짜와 금액을 자기 장부에 기록했다.
가게로 돌아오자 민아가 배추와 두부를 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아버지의 의식이 잠깐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다만 말은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움직였다고 했다. 민아는 손을 움직인 방향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짧은 기억을 붙잡고 뜻을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민재는 아버지가 조리 노트를 어디 두었는지 물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깨면 물어봐야 해.” 민아가 말했다. “우리가 추측하는 동안 누군가한테 빚을 갚으라고 잘못 말할 수도 있어.”
그날 점심, 세탁소 정배가 가게로 왔다. 그는 주문하지 않고 문 옆에 서서 국물만 달라고 했다. 민재는 어제보다 덜 쓴 맑은 국물을 내놓았다. 정배는 한 숟가락 먹고 소금이 조금 많다고 했다. 민재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했다고 반박하려다, 오늘 국물은 자신이 간을 봤다고 정정했다. 정배는 그 말을 듣고 그릇을 비웠다.
“네 아버지 국물에는 말린 표고가 들어갔어. 매일 넣은 건 아니지만.”
민재의 손이 멈췄다. 그가 아는 레시피에는 표고가 없었다. 정배는 그 말이 레시피를 넘기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가게마다 국물은 달랐지만, 골목 사람들은 서로의 냄비를 맛보며 필요한 것을 배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때 세 집이 같은 날 육수를 끓여 보고, 각자 자기 손에 맞는 재료를 찾자고 제안했다. 그것이 장부에 적힌 ‘셋째 국물’의 시작이었다.
“그러면 세 번째 국물은 누구 거죠?”
“아직도 그걸 네 아버지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배는 돈을 내고 나갔다. 민재는 그릇을 씻으면서도 그 질문을 곱씹었다. 아버지가 세 집의 국물을 모아 하나의 비법을 만들었다면, 자신이 그걸 찾아 가게에 돌려놓을 수 있을까. 아니면 각자의 국물을 제멋대로 합치는 셈일까.
오후에 민아는 병원 근무를 앞두고 가게에 잠깐 앉았다. 그녀는 민재에게 골목 배수 공사 분담금 통지서를 보여 달라고 했다. 민재는 정배가 말한 예전 수리비를 설명했다. 민아는 가게 돈이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확인하려면 장부와 영수증을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민재는 정배가 다른 점포의 거래 내역은 보여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아는 그 결정이 맞다고 했다. 대신 임대인 대리인에게 공사 자료를 요청하고, 서씨 만두가 부담한 비용만 따로 확인하자고 제안했다.
민재는 가게의 옛 장부를 펼쳤다. 아버지는 금액 옆에 날짜만 적어 두었고, 영수증은 따로 묶지 않았다. 민재는 자신이 기억하는 수리 시기와 날짜를 대조했다. 어느 날은 춘희가 국밥집 배수구를 고쳤다는 말을 들었고, 다음 달 장부에는 큰돈이 빠져 있었다. 그는 그 돈이 빚을 갚은 건지, 새 공사비를 낸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걸 손님한테 보여 줄 건 아니지?” 민아가 물었다.
“아니. 먼저 대리인한테 원본을 확인해 달라고 할 거야. 숫자가 맞으면 그때 필요한 만큼만 공개하지.”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는 설명을 들었다고 해서 바로 누군가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찾는 일과 골목의 돈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겹쳐 있었지만 같은 일은 아니었다.
오후 네 시에는 임대인 대리인이 공사 업체의 견적서를 들고 왔다. 민아는 병원으로 떠나기 전이라 자리에 함께 앉을 수 있었다. 대리인은 누수 공사 전체 비용과 점포별 분담액이 적힌 표를 펼쳤다. 민재는 서씨 만두의 몫이 다른 점포보다 큰 이유를 물었다. 대리인은 가게 앞 배수구와 연결된 구간이 길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견적서에는 공용 배관 교체 비용과 특정 점포의 배수구 보수 비용이 한 항목으로 묶여 있었다.
“이 두 작업은 책임 범위가 다르잖아요.” 민아가 말했다.
대리인은 업체가 한 번에 작업하면 비용이 줄어든다고 답했다. 민아는 작업이 한 번이라는 것과 비용을 한 점포가 부담하는 것은 별개라고 짚었다. 민재는 숫자를 다시 적어 보았다. 공용 배관은 건물주가 부담해야 할 부분이 있었고, 점포 안쪽 연결부는 각 가게가 책임질 수 있었다. 아직 정확한 현장 확인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에 대리인은 업체에 항목별 견적을 다시 요청하겠다고 했다.
“그럼 다음 주까지 분담금 계획을 못 내는 건가요?” 대리인이 물었다.
“확인 안 된 금액을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확인되는 부분은 기한 안에 답하겠습니다.” 민아가 말했다.
민재는 동생이 돈을 미루려는 게 아니라 책임을 나누려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대리인은 표에 정정 예정이라고 표시하고 서명했다. 민재도 자신이 이해한 범위와 아직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구분해 메모했다. 가게를 지키려면 무조건 고개를 숙이거나 맞서기보다, 어떤 비용인지 먼저 확인해야 했다.
저녁 장사 전, 민재는 표고를 한 줌 불려 맑은 국물에 넣었다. 너무 오래 끓이지 않고, 끓기 직전 건져 낸 멸치와 다시마의 향을 따로 적었다. 표고가 들어가자 국물의 단맛이 깊어졌다. 그러나 정배가 기억하는 맛과 같은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민재는 메뉴판에 새 국물이라고 쓰지 않고, 시식용 한 그릇이라고 적었다.
춘희가 가게에 들렀다. 그녀는 한 숟가락 먹고 표고 향이 너무 앞선다고 했다. 민재는 짜증이 났지만, 왜 그렇게 느끼는지 묻기로 했다. 춘희는 멸치 향이 빠지기 전에 표고를 넣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자신의 국밥집에서는 표고를 마지막에 잠깐 담갔다 뺀다고 했다. 민재는 그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았다. 우선 시간과 양을 기록해 다음 냄비에서 비교하기로 했다.
춘희는 한 번 더 국물을 맛보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정배에게도 자기 국물의 재료를 알려 준 적이 없다고 했다. 세 사람은 각자의 맛을 숨기지 않았지만, 통째로 넘기지는 않았다. 민재는 아버지가 왜 서로의 조리 노트를 한데 모으지 않고, 세 집의 이름을 따로 적어 두었는지 조금은 이해했다.
가게 문을 닫을 무렵 민재는 대리인에게 자료 확인 일정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다. 그가 갚아야 할 돈이 있다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아직 모르는 비용은 추측으로 채우지 않겠다고 썼다. 민아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고 보내기 전에 금액을 단정하지 않은 점이 좋다고 했다.
민재는 장부의 ‘골목 몫’ 옆에 물음표를 지우지 않았다. 확인한 날짜만 새로 적었다. 정배는 셋째 국물이 아버지 한 사람의 비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라진 노트는 누구의 손에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다음 날 춘희에게도 같은 날짜를 확인해야 했다.
민재는 불을 끄고 빈 냄비를 씻었다. 세 집이 함께 만든 국물의 맛보다 먼저, 서로 돈을 주고받았던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했다. 그는 냄비를 엎어 말리고, 장부를 펼쳐 놓은 채 가게를 나섰다. 그 아래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세 집 이름 옆에는 같은 날이 적혀 있었다. 그날은 아버지가 병원으로 실려 가기 사흘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