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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집 골목의 세 가지 국물1화

만두집 골목의 세 가지 국물

만두집 골목의 세 가지 국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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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아버지의 빈 냄비

아버지의 빈 냄비는 가게에서 가장 큰 냄비였다. 서민재는 그 안에 물을 받아 끓이고도 한참을 들여다봤다. 불을 올렸는데도 냄비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세 가지 육수를 끓이던 아버지가 쓰러진 뒤 처음 맞는 월요일이었다. 병원에선 의식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가게를 닫으면 단골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고, 문을 열면 아버지의 맛을 그대로 내놓을 수 없었다.

새벽 다섯 시, 민재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멸치 상자에는 손글씨가 붙어 있었다. ‘맑은 국물, 볶지 말 것.’ 그 아래에는 다시마와 무가 날짜별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쓰던 조리 노트는 보이지 않았다. 레시피를 외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민재는 자신이 간장 넣는 시점조차 정확히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우선 냄비를 씻고, 무와 멸치를 넣었다. 아버지가 하던 대로라면 물이 끓기 전에 멸치를 건져야 했다.

가게 문에 ‘오늘부터 임시 영업’이라고 쓴 종이를 붙이자 옆집 국밥집의 유춘희가 고무장갑을 낀 채 나왔다. 칠십대인 춘희는 민재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골목 가게들을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녀는 냄비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가스 불부터 낮췄다.

“뚜껑 덮으면 안 돼. 멸치 비린내가 빠져야지.”

“아버지는 뚜껑을 덮으셨어요.”

“네 아버지는 마지막 십 분에만 덮었어. 너는 지금 처음부터 덮었잖니.”

민재는 변명하려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춘희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진 뒤로 그녀는 늘 문턱에만 서 있었다. 민재가 이유를 물었지만 춘희는 “내가 말할 일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첫 손님은 오전 여덟 시에 들어왔다. 인근 세탁소를 하는 오정배였다. 그는 늘 고기만두와 맑은 국물을 시켰지만, 오늘은 국물 한 숟가락을 삼키고 표정을 바꿨다.

“민재야, 이건 네 맛이냐?”

“제가 끓였으니 제 맛이겠죠.”

“그럼 네 아버지 맛이라고 팔면 안 되지.”

정배는 계산대에 돈을 놓고 나갔다. 민재는 그릇을 걷으며 그 말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손님들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대로 하라면서, 조금만 달라져도 틀렸다고 했다. 그는 오늘의 국물을 ‘민재식’이라고 써 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간판에는 아직 ‘서씨 만두’가 걸려 있었다.

정배가 나간 뒤 민재는 만두피 반죽을 꺼냈다. 아버지는 전날 만든 반죽을 하루 더 숙성시키곤 했지만, 지금 통에는 오늘 아침에 급히 치댄 것만 남아 있었다. 민재는 밀대로 밀어 본 첫 장이 가장자리에서 갈라지는 걸 보고 물을 한 숟갈 더 넣었다. 두 번째 반죽은 손에 붙었다. 그는 밀가루를 더 뿌리고 다시 치댔다. 손바닥에 묻은 밀가루가 땀과 섞여 반죽이 미끄러웠다.

세탁소에서 다림질을 맡기러 온 손님이 문을 열었다가 냄비 냄새를 맡고 멈췄다. 그녀는 아버지가 있을 때 늘 김치만두를 포장해 갔는데, 오늘은 “속이 너무 맵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 민재는 냉장고에서 김치소를 꺼내 맛을 봤다. 아버지가 남긴 소에는 새우젓이 들어가 있었고, 민재는 그걸 몰랐다. 손님은 새우 알레르기는 없지만 짠맛이 강하면 아이가 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민재는 소를 새로 볶아 간을 낮추겠다고 했다. 포장 손님은 기다릴 수 있다고 했지만, 그가 무리해서 새 소를 만들면 점심 장사가 늦어질 게 분명했다. 그는 이미 만든 소를 그대로 팔지 않고, 오늘은 김치만두를 메뉴에서 뺐다. 대신 고기만두와 두부만두만 내놓겠다고 설명했다. 손님은 아쉽다고 했지만,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없다면 사지 않겠다고 했다. 민재는 포장 주문을 취소하고 돈을 돌려줬다.

그 손님이 나간 뒤 그는 메뉴판의 김치만두 옆에 ‘오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손님이 원하는 맛을 맞출 수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 그래도 재료를 모르는 채 괜찮다고 말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냉장고에 남은 소를 버릴지 고민하자, 민아가 오기 전에 그는 날짜와 재료를 표시해 밀폐 용기에 넣었다. 아버지에게 확인하기 전까지 다른 음식에 섞지 않기로 했다.
점심 장사를 앞두고 동생 서민아가 병원에서 돌아왔다. 간호사인 민아는 밤근무를 마친 얼굴로 앞치마를 둘렀다. 그녀는 아버지의 입원비와 가게 임대료를 매주 표로 정리하고 있었다. 민재가 손님에게 국물이 달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민아는 그릇을 하나 맛봤다.

“멸치가 오래 끓었어. 쓴맛이 올라왔어.”

“너는 병원 일이나 신경 써.”

“병원 일도 국물도 내가 맛을 봤으니까 말하는 거야.”

민아는 조리 노트가 있던 선반을 살폈다. 거기에는 먼지가 네모나게 남아 있었다. 누가 노트를 가져갔는지 아느냐고 묻자 민재는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 가기 전날 그 노트를 들고 골목으로 나간 것 같다고 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몰랐다. 민아는 골목 사람들을 의심하기 전에 아버지에게 물어야 한다고 했지만,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레시피를 넘기지 않고도 가게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민아는 계산대 아래 서랍에서 병원비 봉투를 꺼내 숫자를 다시 셌다. 민재는 그 봉투에 가게 돈을 보태겠다고 했지만, 민아는 봉투를 접어 자기 가방에 넣었다. 지난달 야간 수당으로 마련한 돈이었다.

“가게 돈이 모자라면 병원비부터 줄일 수는 없어.”
“내가 형이라고 다 책임지겠다는 말은 안 했어.”
“그런데 네가 맨날 먼저 결정하잖아. 임시 영업도, 메뉴도, 납품도.”

민재는 자기 선택이 동생을 보호한다고 믿었던 걸 떠올렸다. 민아는 가게를 넘겨받으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간호 근무를 마친 뒤 와서 장부를 정리할 뿐이었다. 민재는 임대료와 병원비를 한꺼번에 떠안는 대신, 대리인에게 분담금 계획을 함께 세울 시간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민아는 그 말을 들은 뒤에야 표를 다시 펼쳤다. 그녀는 필요한 금액을 말했고, 민재는 자신의 예상 매출을 과장 없이 적었다.
오후에 가게에 찾아온 건 임대인 대리인이었다. 건물 누수 공사비 가운데 상가 분담금이 밀렸고, 월세도 한 달 넘게 늦었다는 통지서를 내밀었다. 민재는 아버지가 퇴원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대리인은 공사 일정은 이미 정해졌고, 늦어진 비용을 다른 점포가 대신 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다음 주까지 분담금 계획을 내지 않으면 계약 갱신 심사에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재는 서랍에서 통장과 장부를 꺼냈다. 지난달 매출은 버틸 만해 보였지만, 병원비를 내고 나면 공사 분담금까지 감당하기 어려웠다. 점심 장사를 늘리려고 값싼 냉동 만두를 함께 팔자는 민아의 제안도 생각났다. 아버지의 만두만 고집하다 가게 문을 닫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당장 납품업체에 전화하려다가 멈췄다. 냉동 제품을 쓰면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간판에 붙은 ‘매일 빚는 만두’라는 문구는 거짓말이 된다.

춘희가 작은 보온통을 들고 다시 문 앞에 섰다. 안에는 자기 국밥집의 맑은 육수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맛을 흉내 내라고 가져온 게 아니라, 냄비를 비우고 다시 시작할 때 비교해 보라고 말했다. 민재는 도움을 받는 대신 레시피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춘희의 얼굴이 굳었다.

“네 아버지한테 내가 빚진 것도, 받을 것도 없어.”

“그럼 왜 도와줘요?”

“같은 골목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니까.”

춘희는 보온통을 두고 돌아섰다. 민재는 그 국물을 자기 냄비에 섞지 않았다. 먼저 한 숟가락 맛보고, 염도와 향을 장부 여백에 적었다. 멸치와 무에서 낸 맛은 비슷했지만, 춘희의 국물에는 대파 뿌리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차이가 누군가의 손버릇이라는 것을 알았다.

민아가 퇴근 준비를 하며 아버지 병실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는 의식 변화가 없다고 했다. 민재는 전화기를 받아 들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가게에서 국물이 실패했다고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가 들을 수 있다면, 적어도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 손님이 빠진 뒤 민재는 냄비를 비우고 다시 물을 받았다. 멸치를 볶지 않고, 끓기 직전에 건졌다. 불을 낮춘 다음 다시마를 넣고 시간을 쟀다. 첫 냄비보다 쓴맛이 덜했지만, 아버지의 맛과 같지는 않았다. 그 차이를 숨기지 않으려고 메뉴판에 ‘오늘의 맑은 국물’이라고 적었다. ‘아버지의 비법’이라고 쓰는 대신, 그가 오늘 직접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민아는 문구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도 네가 만들 거야?”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야지.”

“좋네. 다만 장부에 오늘 재료비도 정확히 적어. 돈 없다고 레시피를 바꾸면 나중에 손님한테 설명 못 해.”

민재는 쌀통 옆 서랍에서 오래된 장부를 꺼냈다. 아버지의 필체는 단정했지만, 최근 석 달은 재료값과 매출이 맞지 않았다. 어떤 날은 멸치와 다시마가 평소보다 두 배로 적혀 있었고, 어떤 날은 ‘골목 몫’이라는 모호한 지출이 있었다. 민재가 그 항목을 가리키자 민아는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장부 뒤쪽에는 접힌 종이 한 장이 끼어 있었다. 종이는 국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고, 아버지의 글씨로 날짜와 세 집 이름이 적혀 있었다. 춘희의 국밥집, 정배의 세탁소, 그리고 서씨 만두. 맨 아래에는 ‘셋째 국물은 다시 묻지 말 것’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민재는 종이를 펼쳐 보려 했지만, 아버지가 왜 노트를 들고 골목에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민아가 그 문장은 레시피가 아니라 사람 이름 같다고 말했다. 민재는 내일 세탁소에 가서 정배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아버지 맛을 돌려놓으려는 일이 아니었다. 사라진 노트와 장부의 빈칸을 확인하려는 일이었다.

가게 문을 잠그기 전 그는 냄비 뚜껑을 덮지 않았다. 김이 빠져나가며 부엌의 창을 희미하게 흐렸다. 그 너머 골목 끝에서 춘희가 불을 끄고 있었다. 민재는 내일 아침 그녀에게 다시 묻기로 했다. 같은 국물을 얻으려는 질문이 아니라, 세 집 이름이 왜 한 장에 나란히 적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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