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전문 변호사의 첫 연애

2화: 당사자 이름을 가린 뒤
법원 기록실은 태경에게 추가 서류를 요청했다. 세린은 공적 열람 절차를 안내하는 역할만 맡았고, 심사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태경은 어머니의 개명 전후 이름을 확인할 자료를 추가로 제출했다. 며칠 뒤 그는 세린에게 서류가 정리됐다고 알려 왔다. 두 사람은 사건 이야기를 법원 안에서만 나누기로 했다.
조정 일정표에는 날짜와 회의실 번호, 참석자 구분만 남아 있었다. 세부 진술은 비공개였다. 태경은 그 기록을 보고 어머니가 조정실에 세 번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예상보다 오래 기록을 바라봤다.
“세 번이면 많이 온 건가요?”
“사건마다 다릅니다. 횟수만으로 결과나 감정을 추정할 수는 없어요.” 세린이 말했다.
“그렇겠죠.”
그는 메모를 하지 않았다. 기록을 촬영할 수 없었고, 열람한 내용을 밖으로 반출할 수도 없었다. 태경은 기억에 의존해 자신이 본 것을 적으려다, 담당자의 안내를 듣고 펜을 내려놓았다.
“확인한 절차만 개인적으로 기억해도 되나요?”
“열람 범위와 법원의 안내를 따르셔야 합니다. 가족에게 필요한 내용이라면 담당자에게 문의하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린은 그가 원하는 답을 제공하지 않았다. 태경은 어머니가 왜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어 했지만, 기록에서 그 마음을 대신 읽을 수는 없었다.
법원 밖으로 나온 뒤 그는 세린에게 커피를 권했다. 이번에는 사건과 관계없는 얘기만 하겠다고 했다. 세린은 카페가 아니라 법원 맞은편 공원 벤치에서 잠깐 이야기하자고 했다. 공원에는 점심을 먹는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당신은 다큐멘터리를 왜 찍어요?” 세린이 물었다.
“사람들이 남긴 말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싶어서요. 그런데 기록하는 일이 그 사람을 다시 끌어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자주 잊습니다.”
“어머니 기록이 필요한 이유는요?”
“어머니가 남긴 편지가 아버지 집에 있었어요. 그 편지가 조정 기록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건 추측이에요.”
“네. 그래서 기록만 확인했어요.”
그는 편지를 공개하거나 촬영할 생각이 없다고 다시 말했다. 세린은 그 말을 믿고 싶었지만, 믿음이 검증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태경은 자신이 편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실에 알리고, 열람 자료와 혼동되지 않게 보관하겠다고 했다.
한편 법원 기록실의 정명자 사서는 세린에게 오래된 메모를 보여 줬다. 세린 어머니가 조정 당사자에게 기록 보관 기간과 열람 절차를 안내한 흔적이었다. 명자는 어머니가 사적인 부탁으로 문서를 빼내거나 숨긴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럼 이 메모는 태경의 어머니에게 한 안내인가요?”
“이름이 일치하는지는 기록실이 확인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가족 관계는 당사자가 증명해야 합니다.”
“제 어머니가 어떤 생각으로 안내했는지는 알 수 없겠죠.”
“그건 기록에 없어요.”
세린은 어머니가 친절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 상상은 자료가 아니었다. 그녀는 메모를 돌려주고, 보관 기록만 남겼다.
태경은 일부 일정표에서 어머니의 서명 날짜를 확인했다. 그는 세 번째 방문 뒤에 아버지의 재산 분할 합의가 마무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게 어머니가 원하는 결과였는지, 상황에 밀려 수용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 없다면,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세린이 말했다.
“아버지는 그 얘길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편지에도 답을 쓰지 않았어요.”
“그럼 그분에게도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알아요.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마음까지 없어지진 않네요.”
세린은 그 말을 이해했다. 그녀 역시 어머니가 왜 법원에서 일했는지,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의 기록을 꺼내 보지 않았다.
“그 마음이 있다고 해서 오늘 답을 얻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태경은 고개를 숙였다. “세린 씨는 항상 변호사처럼 말하네요.”
“변호사로 일할 때는 그렇게 말해야 하니까요.”
“그럼 변호사가 아닐 때는요?”
세린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는 웃으며 물러섰다. 세린은 그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질문을 멈출 줄 안다는 사실은 기억했다.
그날 오후, 태경은 다큐멘터리 촬영 허가를 다시 신청했다. 이번에는 법원 조정실을 촬영하는 대신, 조정 절차를 설명하는 일반 인터뷰를 요청했다. 세린은 출연을 거절했다. 변호사로서 자신의 사건이나 가족 경험을 다큐멘터리 콘텐츠에 섞고 싶지 않았다. 태경은 거절을 받아들이고 다른 변호사를 섭외했다.
“세린 씨가 출연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말은 당연해요.”
“그렇죠. 그래도 말하고 싶었어요.”
그는 촬영 계획서에서 세린의 이름을 삭제했다. 그 과정은 작은 일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안도했다.
일주일 뒤 태경의 열람 범위는 확정됐다. 그는 일정표 외에 조정 절차 안내문도 받았다. 조정 기록은 일부만 볼 수 있었지만, 그 안에 편지와 관련된 정보는 없었다. 태경은 어머니의 편지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편지를 아버지에게 돌려줄지, 자신이 보관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왜 나한테 그걸 말하죠?” 세린이 물었다.
“당신이 내 어머니의 기록을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서요.”
“그럼요?”
“그냥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세린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법원 복도에서 태경은 그녀의 속도를 맞추며 걸었다. 그는 카메라를 들지 않았고,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기록이 남지 않는 이야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가 물었다.
“중요할 수는 있죠. 그렇다고 모두 기록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사람을 어떻게 기억해요?”
“함께 있었던 사람이 자기 기억을 가지고 있겠죠. 그 기억도 서로 다를 수 있고요.”
태경은 걸음을 멈췄다. “그럼 제가 어머니를 기억하는 방식도 틀릴 수 있겠네요.”
“틀렸다기보다, 당신이 가진 일부일 수 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태경은 받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한참 보고는 전원을 끄지 않은 채 주머니에 넣었다.
“받을래요?”
“나중에요.”
“그 선택도 괜찮아요.”
그는 그녀를 바라봤다. “변호사 아닌 말 같네요.”
“그럴 수도 있죠.”
태경은 다음 주에 다시 만날 수 있냐고 물었다. 세린은 사건이 아닌 사적인 약속이라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태경이 법원에서 본 일정표는 어머니의 사건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는 세린에게 일정표에 적힌 날짜가 왜 세 번으로 나뉘었는지 물으려다, 약속한 경계를 떠올리고 질문을 멈췄다. 대신 기록실에 일반 문의를 넣었다. 일정표의 표기는 조정 당사자 수나 감정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 그는 그 답변을 받아 적지 않고,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남겼다.
세린은 태경의 다큐멘터리 신청서를 검토하는 담당자가 아니었지만, 그가 신청 과정에서 자신의 직무를 이용하지 않도록 절차를 안내했다. 태경은 이메일로 담당자 연락처를 받고, 세린을 참조에서 뺐다. 그가 공식 경로를 선택한 건 촬영의 독립성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작품이 약해지지 않을까요?” 그가 나중에 물었다.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죠. 기록을 쓰지 못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빈 의자와 복도만 찍으면 밋밋할 거예요.”
“그럼 왜 빈 의자를 찍는지 설명하면 되겠죠.”
태경은 그 말을 듣고 촬영 계획을 다시 썼다. 기록에 접근할 수 없는 이유와 당사자 동의가 필요한 이유를 작품의 주제로 삼기로 했다. 그는 법원 내부를 촬영하는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공개된 절차를 설명하는 시민단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린의 이름은 인터뷰 후보에서 제외했다.
세린은 그가 경계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의 어머니가 그를 위해 기록을 남겼을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메모는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절차 안내였다. 그 사실은 어머니를 덜 특별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했다는 증거였다.
태경의 아버지는 전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태경은 여러 번 연락하지 않고, 편지를 돌려받을 의향이 있는지 한 번만 물었다. 답이 없으면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세린은 그가 답을 얻지 못했을 때도 자신의 결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봤다.
며칠 뒤 아버지는 짧은 문자로 편지를 보내 달라고 했다. 태경은 원본을 우편으로 보내기 전에 봉투 상태를 촬영해 자신만의 기록으로 보관하고 싶다고 했다. 세린은 그 선택을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편지 속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가 들어 있을 수 있으니 공유 폴더에 올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태경은 자기 기기에 보관하고, 전달 완료 뒤에는 수신자에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는 다큐멘터리의 촬영 범위를 줄이고, 공개 자료와 인터뷰를 구분한 동의서를 만들었다. 촬영에 응한 시민은 자신의 말이 어떤 맥락으로 편집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세린은 문구를 읽어 주고, 법률 자문이 아니라 일반적인 표현 검토라고 선을 그었다. 태경은 그 차이를 이해하고 최종 자문은 외부 변호사에게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