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전문 변호사의 첫 연애

3화: 아직 보내지 않은 편지
세린은 태경의 메시지를 받은 뒤 이틀 동안 답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재촉하지 않은 것이 고마우면서도, 자신이 왜 망설이는지 생각했다. 법원 기록실에서 그를 만난 일, 어머니의 서랍에서 메모를 발견한 일, 다큐멘터리의 촬영이 모두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업무상 이해관계를 분리해야 했다.
태경에게 만나자고 답하면서 조건을 분명히 했다. 법원 사건이나 기록 신청에 관한 문의는 공식 담당자에게 할 것, 어머니에 관한 사적인 정보를 요구하지 않을 것, 다큐멘터리에 자신의 이름이나 이야기를 넣지 않을 것. 태경은 동의했다. 둘은 법원에서 먼 작은 미술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시실에는 오래된 가족사진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이름 없이 배열되어 있었다. 태경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떠올렸고, 세린은 작품을 보고 자신의 어머니를 연상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기억을 말했다. 태경은 어머니가 늘 사진을 찍지 않으려 했다고 했고, 세린은 어머니가 사진을 정리할 때 날짜를 뒤에 적었다고 했다.
“당신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태경이 물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었지만, 집에서는 말을 아꼈어요. 그게 같은 성격인지 아직 모르겠어요.”
“내 어머니도 그랬어요. 사람들 앞에서는 단호했는데, 집에서는 자기 얘기를 거의 안 했죠.”
“어머니를 설명하는 건 쉽지 않네요.”
“사랑하는 사람인데도요.”
그들은 전시를 천천히 둘러봤다. 태경은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 세린은 그 점을 확인하고 나서야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법률 상담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전시 후 태경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세린과 떨어진 곳으로 가지 않고, 그녀 앞에서 통화해도 괜찮은지 먼저 물었다. 세린은 듣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자리를 옮겨 통화했다. 약 10분 뒤 돌아온 그는 아버지가 편지를 돌려받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보내 줄 거예요?”
“그럴 생각입니다. 하지만 편지 내용은 아버지에게 묻지 않으려고요.”
“아버지에게 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네요.”
“답을 듣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분이 말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는 편지를 봉투에 다시 넣어 우편으로 보내기로 했다. 주소는 확인했고, 받는 사람이 동의한 상태였다. 세린은 그 선택이 조정 기록과 무관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태경도 편지를 법원 자료로 등록하지 않았다.
며칠 뒤 세린의 어머니 메모에 대한 기록실 회신이 왔다. 그 메모는 조정 당사자의 서류 열람 절차를 안내한 일반 업무 기록이었다. 누군가를 특별히 도왔거나 기록을 숨겼다는 증거는 없었다. 세린은 어머니가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상상하고 싶었지만, 기록만으로 그걸 증명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메모를 정리해 어머니의 서랍에 다시 넣었다.
태경은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촬영했다. 그는 조정 절차를 설명하는 변호사와 일반 시민의 경험을 담았지만, 어머니의 사건은 넣지 않았다. 편지의 존재도 언급하지 않았다. 시사회 초대장이 세린에게 왔지만, 참석은 선택 사항이었다. 세린은 태경에게 참석 여부를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사회에서 태경은 관객에게 기록을 남기는 사람의 책임을 말했다. 공개 동의가 없으면 개인의 이야기를 넣지 않았고, 촬영이 불가능한 곳은 빈 공간을 찍었다. 작품은 어머니의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세린은 그가 자신의 경계를 존중했다고 느꼈지만, 그걸 사랑의 증거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상영이 끝난 뒤 태경은 그녀에게 물었다.
“어땠어요?”
“조정 절차를 설명하는 장면이 좋았어요. 다만 한 사람의 경험을 대표 사례처럼 제시한 부분은 조금 더 맥락이 필요해 보여요.”
“그 장면은 다시 편집할게요.”
“내가 변호사라서 하는 평가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듣고 싶어요.”
그는 피드백을 방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린은 그 모습에서 함께 일할 때의 신뢰와 사적인 호감이 다르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몇 주 후 태경의 아버지는 편지를 받았다고 연락했다. 그는 편지에 답장을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태경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태경은 그 정도의 답이 자신에게 충분한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세린은 그가 답을 원할 권리와 상대가 답하지 않을 권리를 함께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신은 늘 둘 다 맞다고 하네요.”
“둘 중 하나를 지우면 변호사 일이 단순해지겠죠. 사람 일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럼 우리 관계도요?”
세린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우리 관계는 법원 기록이 아니에요.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 물어봐야 해요.”
“그럼 묻겠습니다. 다시 만나고 싶어요. 사건도 촬영도 빼고요.”
“저도 그래요. 다만 지금은 천천히 알고 싶어요.”
태경은 동의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기 전에 물었고, 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손은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크게 약속하지 않았고, 과거를 모두 설명하지도 않았다.
다음 주 두 사람은 또 만났다. 세린은 법원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태경은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메모는 서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편지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 두 기록 모두 두 사람의 관계를 대신 결정하지 않았다.
세린은 어머니의 기록을 계속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해가 완성되어야만 자신이 다음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날 밤, 그녀는 태경에게 다음 약속의 시간을 먼저 보냈다.
토요일 오후, 미술관 앞에서 볼까요?
태경은 곧 답했다.
좋아요. 이번엔 제가 커피를 살게요.
“한쪽이 늘 사면 안 된다”고 세린은 답했다. 그는 다음 장소는 그녀가 고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약속은 기록될 필요가 없었지만, 둘은 각자의 달력에 적었다.
며칠 뒤 기록실에서 또 다른 문의가 왔다. 어머니의 사건 기록에 대해 열람 신청을 하려는 유족이 있었고, 신청서에는 공개 범위가 적혀 있지 않았다. 세린은 자신의 가족 관계를 신고하고 사건 업무에서 빠졌다. 명자가 다른 담당자를 배정했다. 그녀는 개인적인 호기심보다 공정한 절차를 먼저 택했다.
태경은 그 소식을 듣고 세린이 사건에서 빠진 선택을 존중했다. 둘은 주말에 만났고,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전부 묻지 않았다. 그날 세린은 태경의 카메라를 처음으로 들여다봤다. 렌즈는 꺼져 있었고, 기록할 화면은 비어 있었다.
“오늘은 이걸 안 써요.” 태경이 말했다.
“알아요.”
“왜 보고 싶었어요?”
“당신이 사람을 찍지 않을 때 어떤 표정인지 궁금해서요.”
태경은 웃었다. 그는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그녀와 함께 미술관을 나왔다. 둘은 다음 만남의 장소를 걸으며 정했다. 어머니의 편지는 아직 보내지지 않은 채 가족의 서랍에 남았고, 세린과 태경은 새로 쓰는 문장을 천천히 만들어 가고 있었다.
세린은 어머니의 서랍에서 발견한 메모를 다시 보관 상자에 넣었다. 기록실에서 확인한 안내 기록과 개인 서랍의 쪽지는 서로 다른 자료였다. 그녀는 둘을 한 이야기를 증명하는 퍼즐처럼 맞추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가 누군가를 도왔다는 사실은 남지만, 태경의 가족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태경에게 어머니의 사적인 기록을 더 찾지 않겠다고 말했다. 태경은 자신도 편지를 다큐멘터리에 넣지 않겠다고 답했다. 둘은 서로의 가족사를 사랑의 증거로 삼지 않기로 했다.
주말 만남에서 태경은 카메라를 꺼내지 않고, 세린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있을 때 변호사 역할을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는 감각을 처음 느꼈다.
미술관을 나온 뒤 두 사람은 전시관 앞 벤치에 앉았다. 세린은 태경에게 다음 달에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태경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그 약속을 기록해도 될까요?”라고 농담처럼 물었다가, 곧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적지 않을게요”라고 덧붙였다.
“개인 달력에만 적어요.”
“그러겠습니다.”
그는 날짜를 확인한 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세린은 그가 기억을 기록으로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날의 만남은 법원 메모나 다큐멘터리 파일에 남지 않았다. 두 사람만 알고 있는 약속으로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온 세린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의 조정 기록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주말에 함께 식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뒤 괜찮다고 답했다. 세린은 그 자리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먼저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다.
다음날 태경은 촬영 동의서를 다시 확인했다. 인터뷰 참여자가 공개 범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했다. 그가 제작하는 다큐멘터리는 예정대로 공개되었고, 세린의 어머니 사건은 포함되지 않았다. 세린은 시사 후 태경에게 피드백을 전했다. 그는 듣고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을 골랐다. 그들의 대화는 사랑 고백보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작은 선택으로 쌓였다.
두 사람은 그날 저녁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약속은 주말이었다.
그녀는 약속을 개인 일정표에 적고, 업무용 파일을 닫았다.
다음 만남에는 전시회 밖을 함께 걷기로 했다.
세린은 그 약속을 다시 확인하고 가방을 챙겼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둘은 천천히 걸었다.
함께.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