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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5화

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

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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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매일 오는 손님

“내일도 이 자리에 와도 되겠나.”

아델리아는 씻어 둔 거름망을 엎어 놓은 채 카시안을 바라보았다.

그가 떠난 뒤에는 차를 마신 잔을 씻고 젖은 발자국을 닦고 문틈에 박은 쐐기가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카시안은 지금 당장 내일의 자리를 묻고 있었다.

“정식으로 문을 연 뒤라면 손님은 누구든 오셔도 돼요.”

카시안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정식 개장 전에는?”

“오늘처럼 눈이나 비를 피하는 경우만요. 차를 내드릴 수는 있지만 공작가의 이름으로 자리를 예약할 수는 없어요.”

“예약을 부탁한 적은 없다.”

“그럼 더 쉬워요. 오신 순서대로 앉으시면 됩니다.”

아델리아는 그의 앞에 놓인 잔을 치웠다. 잔 바닥에는 청록색 물이 한 모금 정도 남아 있었다. 카시안이 손을 뻗었지만 그녀가 먼저 잔을 들었다.

“그리고 한 잔을 드신 뒤에는 몸 상태를 확인할 거예요. 많이 마시면 졸릴 수 있으니까요. 이 차가 상흔을 낫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카시안은 잠시 침묵했다.

“통증이 줄었다.”

아델리아의 손이 잔을 든 채 멈췄다.

“얼마나 줄었나요?”

“칼끝이 박힌 것 같던 감각이 무뎌졌다. 숨을 참지 않아도 될 만큼.”

카시안은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장갑 안의 손가락이 천천히 굽혀졌다. 완전히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손목을 타고 검은 통증이 남아 있었고 은회색 눈 아래에는 피로가 짙었다.

“얼마나 지속됐어요?”

“차가 식을 때까지.”

짧은 대답에 아델리아는 그가 효과를 과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치료라면 나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카시안은 잠시 편해졌다고만 했다.

“그럼 매일 오셔도 돼요. 다만 손님으로 오세요.”

그 말이 떨어지자 카시안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공작가의 하인이나 기사도 데려오지 마세요. 제가 부탁하지 않은 수리도 하지 마시고요.”

카시안은 아델리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차 값은 정식 개장 뒤에 받을 거예요. 그전에는 장부에 시험 손님으로 기록하겠습니다.”

“시험 손님이라…….”

“싫으시면 안 오셔도 됩니다.”

“아니. 그 이름으로 적어라.”

아델리아는 장부를 펼쳤다. 날짜와 시간 그리고 메뉴를 적을 칸을 만들었다.

“성함은 어떻게 적을까요?”

“카시안으로 쓰세요. 성은 필요 없다.”

“제가 알고 싶은 건 오늘 무엇을 드셨는지와 얼마나 쉬었는지예요. 작위를 적으면 장부가 손님보다 공작을 먼저 보게 되니까요.”

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델리아는 첫 줄에 ‘카시안’이라고 적었다.

그의 잔을 씻는 동안 바깥의 눈발이 조금 잦아들었다. 카시안은 문 쪽으로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내일 오겠다.”

“눈이 그쳤다면 길이 미끄러울 거예요.”

“알고 있다.”

“그런데도요?”

카시안은 장갑을 고쳐 끼며 대답했다.

“그래도 오겠다.”

그는 문밖으로 나갔다. 아델리아는 닫힌 문에 손을 대고 잠시 서 있었다.

이전이라면 그가 왜 다시 오려는지부터 생각했을 것이다. 마음이 남았는지 죄책감 때문인지 스스로 답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손님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은 그쳤지만 연구소 앞길은 허리까지 쌓인 눈으로 막혀 있었다.

아델리아는 삽을 들고 정문에서 창고까지 좁은 길을 냈다. 오르만은 유리 지붕 아래에 남은 눈의 무게를 확인하고 있었고 마리는 상인조합 주방 검사 접수를 하러 일찍 떠났다. 온실에는 발을 디딜 때마다 눈이 녹는 소리와 삽날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만 번졌다.

정오가 조금 지났을 때 정문 종이 울렸다.

아델리아는 손을 털고 문으로 갔다. 카시안은 전날과 달리 후드를 쓰지 않았다. 검은 머리 위로 녹다 만 눈이 몇 조각 붙어 있었고 한 손에는 작은 장작 묶음이 들려 있었다.

“이건 뭔가요?”

“주방 난로에 쓸 장작이다.”

“제가 주문한 건 아니에요.”

“내가 샀다. 선물이 아니라 개인 구매다.”

그는 외투 안쪽에서 접힌 영수증을 꺼냈다. 온실 지구의 장작 상점 이름과 금액 그리고 구매자의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아델리아는 영수증을 받아 확인한 뒤 장부 옆에 내려놓았다.

“개인 구매로 기록할게요. 다음부터 필요한 건 제가 주문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카시안은 순순히 장작을 놓았다.
“눈이 녹으면 금 간 부분으로 물이 샐 수 있다.”

카시안의 시선이 천장으로 올라갔다.

“위험을 알려 주시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누구를 부를지와 언제 고칠지는 제가 정합니다.”

그는 금이 간 유리와 붉은 분필선을 차례로 살폈다. 군인에게 익숙한 점검의 눈이었다. 아델리아는 그가 남쪽 구역으로 향하기 전에 나무 막대 앞을 가로막았다.

“저쪽은 폐쇄 구역이에요.”

“검은 가루가 있는 곳인가.”

아델리아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카시안은 대답 대신 막대에서 물러났다.

“바닥의 색이 다르군.”

그가 알아차린 것이 무엇인지 아델리아는 묻지 않았다. 카시안도 설명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남은 침묵은 어제보다 덜 날카로웠다.

“차를 드시겠어요?”

“그래.”

“오늘도 한 잔입니다.”

카시안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어제도 한 잔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한 잔이에요.”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 아델리아는 찻통에서 마른 마음잎을 덜었다.

“한 잔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따뜻한 물을 더 드릴게요. 차를 더 드시는 건 안 됩니다.”

“효과가 약해질까 봐 그러는 건가.”

“반대예요. 차가 통증을 없애는 게 아니니까요. 불편함을 잠시 낮춘 뒤에는 몸이 스스로 쉬어야 해요.”

카시안은 입을 다물었다. 아델리아는 찻잔을 그의 앞으로 밀었다.

“제가 그 상흔을 잘 아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아는 범위만 말씀드리는 거예요. 낫는다고 약속하지도 않을 겁니다.”

카시안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렸다.

“알겠다.”


두 번째 마음잎 차는 첫날보다 천천히 마셨다.

카시안은 오른손으로 잔을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두었다. 손가락을 한 번 접을 때마다 장갑 가죽이 미세하게 당겼다.

아델리아는 창가에 놓인 마음잎 화분을 살폈다. 어린 잎에는 어제보다 짙은 청록빛이 돌았다. 따뜻한 주방의 기운을 받은 줄기가 곧게 섰다.

“저 잎을 따서 차로 쓰면 효과가 더 좋나?”

“모르겠어요. 살아 있는 잎을 바로 따서 마신 기록은 없어요. 지금은 한 장뿐이라 실험할 수도 없고요.”

아델리아는 화분과 카시안 사이에 안내문 초안을 놓았다.

“마음잎은 불안으로 호흡이 가빠지는 사람의 긴장을 잠시 낮출 수 있어요. 통증이나 병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수확한 뒤에는 식물이 회복할 시간도 필요하고요.”

“그걸 손님들에게도 보여 줄 건가.”

“네. 효과를 감추고 싶지는 않지만 크게 부풀리고 싶지도 않아요.”

카시안은 초안을 읽었다. ‘필요한 만큼만 드세요’라는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네가 만든 문장인가.”

“제가 지킬 약속이에요.”

그 순간 카시안이 잔을 내려놓았다. 숨이 아주 짧게 끊겼다. 어깨가 굳고 왼손이 무릎 위에서 움켜쥐어졌다.

아델리아는 달려가 손을 붙잡지 않았다. 대신 따뜻한 물주전자를 그의 가까이에 밀었다.

“차가 식어서 그런가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온다.”

“그럼 더 주실래요?”

카시안은 찻잔을 보았다. 잔에는 아직 한 모금이 남아 있었다.

“더 주지 않겠다고 했지.”

“오늘은요.”

카시안은 따뜻한 물을 따라 천천히 마셨다.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걷는 게 도움이 되나?”

“모르겠어요. 그래도 계속 앉아서 이를 악무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어요. 안전선 안쪽으로만 걸으세요.”

카시안은 창가에서 주방 쪽으로 이어진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걸음은 일정했지만 왼발을 내디딜 때마다 속도가 조금 늦어졌다. 아델리아는 두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바닥의 이 선은?”

“금이 간 유리 아래를 표시한 거예요. 이 선을 넘으면 안 됩니다.”

“내가 너보다 먼저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럴 수도 있어요. 그래도 선은 지켜 주세요.”

카시안은 붉은 분필선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다시 창가로 돌아왔다. 카시안은 의자에 앉아 남은 물을 마셨다. 통증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처럼 몸을 웅크리지는 않았다.

아델리아는 장부에 적었다.

‘마음잎 차 한 잔. 차가 식은 뒤 상흔 통증 재발. 추가 차 대신 따뜻한 물과 보행.’

그녀는 마지막에 한 줄을 더했다.

‘손님이 스스로 선택함.’

카시안이 장부를 보았다.

“그것도 적나.”

“제가 대신 쉬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너는 예전에도 그랬나.”

아델리아의 펜 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차갑게 식은 찻잔과 그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이유를 묻지 못했던 시간이 잠시 떠올랐다.

“예전에는 제가 많이 대신하려고 했어요.”

그녀는 장부를 덮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카시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사과를 하려는 듯 입술이 열렸다가 닫혔다.

“물 더 드릴까요?”

“아니. 이걸로 됐다.”


해가 낮은 지붕 너머로 기울 무렵 카시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장작값을 장부에 올려 달라고 다시 말했지만 아델리아는 개인 구매란에 영수증 번호를 적는 것으로 끝냈다.

정문 앞에서 그가 외투를 여몄다.

“내일은 무엇을 가져오면 되나.”

“아무것도요. 차를 드시고 싶으면 오세요.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먼저 말하겠습니다.”

카시안은 문고리를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매일 오겠다.”

아델리아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매일요?”

“차가 통증을 잠시 낮춰 준다. 그리고 이곳은…….”

그는 말을 고르듯 온실 안을 돌아보았다. 금이 간 유리와 분필선 그리고 아직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의자 네 개가 보였다. 그럼에도 창가의 마음잎에는 늦은 빛이 남아 있었다.

“조용하다.”

아델리아는 그가 말하지 않은 문장을 억지로 채우지 않았다. 조용해서 오는지 차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카시안이 말할 때까지 그의 몫이었다.

“매일 오셔도 규칙은 같아요.”

“알겠다.”

“공작가의 일은 밖에 두고 오세요. 제가 다른 손님을 맞이할 때는 기다려 주시고요.”

카시안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기다리는 건 할 수 있다.”

그가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아델리아는 문틈을 닫고 빗장을 확인했다. 카시안은 이번에도 혼자 눈길을 걸어갔다.

아델리아는 장부의 새 줄에 적었다.

‘시험 손님 카시안. 마음잎 차 한 잔. 재방문 의사 있음. 매일 방문 예정.’

‘매일 방문 예정’이라는 글자를 바라보자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기다릴 사람이 생긴다는 건 카페를 여는 일과 다른 종류의 긴장을 가져왔다.

그때 정문 밖에서 다시 종이 울렸다.

카시안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문 너머에 선 사람의 그림자는 그보다 가늘고 키가 작았다. 여행자용 망토 아래로 옅은 금빛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베르데 글라스입니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눈 녹은 길 위에서 들려왔다.

아델리아는 장부를 닫고 문 쪽으로 향했다. 마음잎이 작은 잎을 세우며 창가의 빛을 한 번 흔들었다.

어떤 손님이 다음으로 쉬어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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