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4화

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

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

AD
스폰서 광고

4화: 눈을 피하는 자리

출입종이 울렸지만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델리아는 문틈으로 들어오는 눈을 발끝으로 밀어냈다. 바람이 처마 밑의 종을 흔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길 끝에 보이던 가로등마저 하얗게 지워졌다.

그녀는 빗장을 끝까지 밀어 보았다. 나무가 젖어 마지막 한 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주방으로 돌아오자 화덕에 남은 불이 볼을 데웠다. 부속 창고의 지붕은 유리 대신 판석을 얹어 놓은 구조였다. 아델리아는 낮에 셋이 끼니를 때웠던 작업용 탁자를 그 아래로 조금 더 밀었다.

마리가 덮어 둔 바구니에는 허브 버터 사브레가 여섯 개 남아 있었다. 아델리아는 바구니 옆에 작은 양철 찻통을 내려놓았다.

집을 떠날 때 챙겨 온 개인 물건이었다. 겨울 초입에 시장에서 산 건조 마음잎 두 잔분이 밀봉된 종이봉투 안에 남아 있었다. 봉투의 구입일과 보관 기한을 확인한 뒤 상점 표시까지 내일 시험할 차 목록에 옮겨 적었다.

화분의 어린 마음잎은 잎을 한 장 펴고 있었다. 아직 저 작은 것을 딸 수는 없었다.

아델리아는 화분 받침을 천으로 두르고 주방 문간에 두었다. 불에 너무 가깝지도 않고 찬바람이 직접 닿지도 않는 곳이었다. 손끝에 스치는 청록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오늘 밤만 잘 넘기자.”

대답처럼 출입종이 또 울렸다.

이번에는 그 뒤로 둔탁한 소리가 세 번 이어졌다. 바람은 저렇게 고른 간격으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아델리아는 등잔을 들었다. 문을 손바닥 너비만큼 열자 검은 외투의 어깨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깊은 후드와 목도리 사이로 눈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옷깃에는 문장이 없었다.

“아직 영업하지 않습니다.”

“잠시 눈을 피할 수 있겠나.”

손에 든 등잔이 기울었다.

삼 년 동안 닫힌 방문 너머에서도 알아들었던 목소리였다.

아델리아는 등잔을 고쳐 쥐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 내일 마리와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 하나에 자신이 또 대답을 기다리던 복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공작님.”

카시안은 목도리를 조금 내렸다. 등잔빛에 드러난 입술이 창백했다.

“왜 그런 차림이세요?”

“공작가 사람이 드나든다는 말이 도는 건 원치 않을 것 같아서.”

그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 기다렸다. 아델리아는 눈을 가린 후드 끝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알아보지 못한 척 차를 내어 줄 수는 없었다.

“들어오세요. 눈은 문간에서 털어 주세요.”

카시안이 문턱을 넘자 좁은 입구가 갑자기 작아졌다. 아델리아는 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다. 빗장은 여전히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후드도 벗으셔도 돼요. 지금은 저뿐이에요.”

젖은 천 아래에서 검은 머리와 은회색 눈이 드러났다. 카시안의 시선이 곧바로 유리 지붕으로 올라갔다. 금이 간 유리 아래에는 붉은 분필선이 남아 있었다.

“눈이 더 쌓이면 위험하겠군. 오늘은 다른 곳에서 지내는 편이…….”

“잠시 피하시겠다고 하셨죠.”

아델리아의 목소리에 그가 입을 다물었다.

“저는 유리 아래에 머물지 않을 거예요. 주방 문간에 자리를 만들어 뒀어요. 그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앞장서서 분필선 바깥으로 걸었다. 남쪽 구역을 막은 나무 막대도 그대로였다. 카시안의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지만 아델리아는 이유를 대신 짐작하지 않았다.

“안전 검사는 아직입니다. 오늘 차를 드려도 영업을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알겠다.”

아델리아가 의자를 꺼내려던 순간 등 뒤에서 문짝이 울렸다. 걸쇠만으로 버티던 문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카시안이 몸을 돌렸다.

“내가 보지.”

아델리아는 선반에서 나무 쐐기를 집었다.

“문을 잡아 주세요. 틈은 제가 막을게요.”

그는 한 걸음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손이 문판을 눌렀다. 아델리아는 발치로 밀려든 눈을 쓸어내고 접은 천을 문틈에 댔다. 쐐기를 밀어 넣자 나무가 더는 덜컹거리지 않았다.

그녀가 손을 떼라고 하자 카시안은 천천히 문에서 물러났다. 왼손의 손가락이 바로 펴지지 않았다. 그는 장갑 끝을 당겨 손목까지 덮었다.

“고맙습니다.”

“이 정도는…….”

카시안은 말을 끝내지 않았다.

아델리아는 손바닥으로 문을 한 번 밀어 확인했다.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남은 쐐기를 자기 앞치마 주머니에 넣은 뒤 카시안에게 주방 쪽을 가리켰다.


탁자는 두 사람이 앉으니 빈 곳이 거의 없었다.

아델리아는 바구니를 선반으로 옮기고 물을 끓였다. 카시안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대지 않았다. 코트 소매에서 떨어진 물이 바닥의 마른 천을 조금씩 적셨다.

그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젖은 어깨가 짧게 들렸다. 문을 막던 손도 탁자 아래로 숨긴 채였다.

아델리아는 양철 찻통을 열었다.

“따뜻한 물과 마음잎 차가 있어요. 무엇으로 드릴까요?”

카시안의 시선이 작은 화분으로 향했다.

“그 잎을 따는 건가?”

“아니요. 이 아이는 쉬어야 해요. 전에 사 둔 찻잎이 조금 있어요.”

그녀는 건조 잎이 든 봉투를 보여 주었다. 봉투를 열자 부서진 풀잎에서 엷은 향이 났다. 습기나 곰팡이 냄새는 없었다. 아델리아는 찻숟가락을 봉투 옆에 내려놓았다.

“숨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많이 마시면 졸릴 수 있고요.”

카시안은 종이봉투를 잠시 바라보았다.

“차로 하지.”

그제야 아델리아는 한 잔분을 거름망에 덜고 나머지를 다시 싸 두었다. 끓인 물을 찻주전자에 옮겨 한김 식힌 뒤 거름망을 담갔다. 마른 잎이 물을 머금으며 펴지고 연한 청록색이 퍼졌다. 모래시계를 뒤집고 뚜껑을 닫았다.

기다리는 동안 접시에 사브레 두 개를 놓았다.

“내가 아는 과자는 아니군.”

“마리가 오늘 만들었어요. 여기서 제과를 맡은 제 동업자예요.”

“동업자.”

카시안은 그 말을 한 번 되풀이했다.

아델리아는 접시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누구를 들였는지 설명하고 허락받아야 할 것 같은 오래된 버릇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대신 과자 이름을 말했다.

“허브 버터 사브레예요. 식었어도 맛있어요.”

카시안이 과자 하나를 집었다. 가장자리가 부서지며 작은 부스러기가 접시 위로 떨어졌다. 구운 통밀 향 뒤로 로즈마리의 맑은 향이 올라왔다.

“괜찮군.”

아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조금 올렸다.

“맛있다고 전해도 되겠어요?”

카시안은 입안의 것을 다 삼키고 대답했다.

“그렇게 전해 줘.”

마지막 모래가 떨어졌다. 아델리아는 거름망을 꺼내 작은 접시에 놓았다. 주전자의 차를 그의 잔에 따르고 자기 잔에는 따뜻한 물을 채웠다.

카시안이 두 잔을 내려다보았다.

“너는 안 마시나.”

“저는 아직 정리할 게 있어요. 졸리면 곤란하니까요.”

그녀는 찻통을 닫아 선반 안쪽에 넣었다. 잔 하나를 가득 채우는 데 필요한 잎의 무게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내일 새로 살 수 있을지도 폭설이 그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카시안은 오른손으로 잔을 들었다. 입술이 닿기 직전에 멈췄다.

“차 값은.”

“받지 않아요. 오늘은 눈을 피하는 분께 드리는 거예요.”

“그래도.”

“돈을 받을 때가 되면 가격표부터 붙여 둘게요. 오늘은 넣어 두세요.”

카시안의 손이 코트 안으로 향하다 멈췄다. 아델리아는 재촉하지 않고 자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예전에는 그가 잔을 들지 않으면 이유를 혼자 찾았다. 차가 식었는지 맛이 옅은지 몇 번이고 살폈다. 오늘은 그의 잔을 그대로 두었다.

마실지는 그의 몫이었다.

마침내 카시안이 차를 마셨다.

한 모금 뒤에 두 번째 모금이 이어졌다. 잔을 내려놓을 때 받침과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아델리아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 사브레 하나를 반으로 갈랐다.

“필요한 만큼만 드세요.”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주방 문간까지 날아오던 문틈의 휘파람 소리는 멎어 있었다.


카시안은 잔의 온기를 오른손에 붙들고 있었다.

길목에서 온실을 바라볼 때에는 잠시 확인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정문의 개업 예정 공고 아래에는 아델리아 벨로아라는 이름만 적혀 있었다. 표식을 가린 채 창가의 그녀를 확인하고 담장 뒤로 물러났었다.

그런데 바람이 거세질수록 금이 간 지붕이 떠올랐다. 돌아와 문 앞에 섰을 때는 오래 잠들지 못한 몸이 추위에 굳어 있었다. 눈을 피하게 해 달라는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사브레의 단맛이 가신 혀끝에 차의 풀 향이 남았다. 삼킬 때마다 따뜻한 기운이 목 아래로 내려갔다. 향이 옅어지는 동안 그도 모르게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장갑 안의 왼손에는 아직도 송곳이 박힌 것 같은 통증이 남아 있었다. 차를 마셨다고 검은 상흔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통증이 오기 전에 저도 모르게 멎던 호흡이 조금 길어졌다.

그는 처음으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델리아는 그 움직임을 보고도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따뜻한 물주전자를 탁자 한쪽으로 당겨 놓았을 뿐이었다.

카시안은 잔에 남은 차를 보았다. 겁을 내는 것은 전장에서 끝났다고 여겼다. 그런데 작은 잔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오른손의 힘을 조금 빼자 잔 손잡이를 누르던 엄지가 느슨해졌다.

아델리아가 장부를 펼쳤다. 펜촉이 종이 위를 짧게 움직였다.

“무엇을 적나.”

“쓴 재료요. 마리와 같이 보는 장부라 빠뜨리면 안 돼요.”

그녀는 남은 찻잎이 한 잔분이라고 적고 사용한 거름망을 씻으러 일어났다. 카시안은 탁자 아래에서 왼손을 천천히 폈다. 장갑 속의 통증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그는 손을 접었다가 조금씩 풀었다.

상흔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다음 숨까지 이를 악물고 버틸 필요는 없었다.

아델리아가 돌아와 화분을 살폈다. 잎 한 장을 가진 작은 식물 아래로 천 끝을 밀어 넣었다. 잎을 따지 않은 그 손이 조금 전 그의 잔 앞에서 멈췄던 모습과 겹쳤다.

돌아가자는 말도 사람을 보내겠다는 말도 이 탁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카시안은 입술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아델리아가 씻은 거름망을 엎어 놓는 동안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잔을 쥐고 있는 것뿐이었다.

카시안은 목에 걸린 말을 고르느라 식어 가는 차를 한 번 더 마셨다.

“아델리아.”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부르면 언제나 돌아볼 사람이라는 생각을 그는 이제 할 수 없었다.

“내일도 이 자리에 와도 되겠나.”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