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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3화

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

이혼하고 온실 카페나 차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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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낡은 오븐과 두 사람의 온기

이른 아침의 연구소는 간밤의 냉기를 품고 있었다.

아델리아는 빗자루로 바닥의 묵은 먼지를 쓸어내고 걸레로 주방 선반을 닦았다. 부속 창고는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곳곳에 거미줄이 엉켜 있었고 선반 구석은 습기로 부풀어 있었다.

주방 한가운데에는 벽돌을 둘러 만든 무거운 주물 오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짝의 경첩은 붉게 녹슬어 있었고 내부 화덕 바닥에는 재가 눌어붙어 있었다.

“사장님, 이 오븐을 살리려면 연통부터 뜯어내야 합니다.”

오르만이 낡은 부지깽이로 오븐 안쪽을 긁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화덕 안쪽에 금이 가 있어서 불을 때도 열이 한쪽으로만 쏠릴 겁니다. 빵을 구우면 겉은 타고 속은 설익기 십상이에요.”

아델리아는 오븐 상판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쇠의 감촉 너머로 오래전 불을 머금었던 흔적이 희미하게 전해졌다.

“수리공을 부를 돈은 아껴야 해요. 일단 긁어내고 틈새는 내화 점토로 메워 보죠.”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개업 예정 공고는 붙이셨지만 당장 손님에게 내놓을 빵 한 조각 굽지 못하면 찻집 문을 어떻게 엽니까?”

오르만의 걱정은 타당했다. 식물의 차만으로는 온전한 휴식을 주기 어려웠다. 따뜻한 차 한 잔 곁에 얹을 소박하고 포근한 빵이나 구움과자가 절실했다.

그때 연구소 정문 쪽에서 맑은 놋쇠 종소리가 울렸다. 어제 아델리아가 달아 둔 작은 출입종이었다.


문 앞에 선 사람은 붉은 곱슬머리를 둥글게 묶은 젊은 여성이었다.

어깨에 묵직한 가죽 가방을 메고 앞치마를 둘둘 만 채 나타난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펄럭였다. 어제 상인조합 게시판에 붙였던 바로 그 공고문 사본이었다.

“여기가 베르데 글라스 맞나요?”

목소리는 맑고 거침이 없었다. 뺨에 흩뿌려진 주근깨가 생기를 더했다.

“네, 맞습니다. 제가 점주인 아델리아 벨로아입니다.”

아델리아가 걸레를 내려놓으며 다가가자 여인은 아델리아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재빨리 훑었다. 귀족 특유의 단정한 몸가짐과 낡은 작업용 앞치마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상인조합 공고를 봤어요. 식물 연구소 자리에 휴식 찻집을 연다고 쓰여 있더군요. ‘치료가 아닌 휴식’이라는 문구가 꽤 마음에 들어서 와 봤는데…….”

여인은 온실 안쪽을 둘러보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네요. 천장 유리는 절반이 금이 갔고 바닥엔 금줄이 쳐져 있고 주방 창고 쪽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나잖아요.”

오르만이 기침을 콜록하며 끼어들었다.

“저,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아, 소개가 늦었네요. 마리 로웬이라고 합니다. 중앙 시장 제과 길드 소속 제과사예요.”

마리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성큼성큼 주방 창고로 걸어 들어갔다. 주물 오븐의 손잡이를 잡아 흔들어 보고 선반의 기울기를 손바닥으로 재는 동작이 능숙했다.

“벽돌 화덕은 단열이 엉망이고 작업대는 나무가 비틀렸어요. 밀가루를 보관할 건조실도 없네요. 이런 주방에서 제과를 하겠다는 건 물 없이 수영하겠다는 소리예요.”

마리의 직설적인 평가에 오르만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아델리아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적이 정확하네요. 보시다시피 이제 막 정리를 시작한 참이라 설비가 많이 부족합니다.”

아델리아의 태도가 너무나 덤덤하자 오히려 마리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보통 귀족 출신 고용주들은 평민 기술자가 현실을 지적하면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마리가 팔짱을 끼며 아델리아를 응시했다.

“귀족 아가씨들이 취미로 찻집을 열었다가 석 달도 못 가 문 닫는 걸 수없이 봤어요.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제과사한테는 말도 안 되는 화려한 케이크를 만들라며 쥐어짜죠. 전 그런 놀음에 장단 맞춰 줄 생각 없습니다.”

마리의 목소리 끝에 묻어나는 경계심과 지친 기색을 아델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품은 날 선 말들은 공격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벽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아델리아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장부를 펼쳐 마리 앞에 내밀었다.

“이곳은 제 생활이 걸린 일터예요.”


마리는 의아한 눈으로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종이 위에는 1코퍼 단위까지 빼곡하게 적힌 수리 비용과 자재비, 그리고 이혼 공고 기간 동안 묶여 있는 위자료 예치금 현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이걸 저한테 왜 보여주시는 거죠? 고용주가 장부를 고용인에게 까 보이는 법은 없어요.”

“마리 씨를 단순한 고용인으로 부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델리아는 창가의 의자를 권하며 마주 앉았다.

“지금 제 형편으로는 시장 기준의 넉넉한 월급을 꼬박꼬박 드리기 어렵습니다. 수리비와 기본 식기 구비만으로도 빠듯하니까요.”

“그럼 무급으로 일하라는 건가요?”

“아닙니다. 동업을 제안하고 싶어요.”

마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동업이요?”

“네. 베르데 글라스의 음료와 식물 관리는 제가 전담합니다. 대신 마리 씨는 제과와 주방 운영의 전권을 맡아 주세요. 메뉴 개발과 레시피 소유권은 온전히 마리 씨의 이름으로 남길 겁니다.”

아델리아는 펜을 들어 장부의 빈 면에 숫자를 적었다.

“재료비를 제외한 제과 매출의 일정 비율을 매달 정산해 드리겠습니다. 카페가 자리를 잡으면 주방 설비도 마리 씨가 원하는 규격으로 가장 먼저 교체할 것을 계약서에 명시하죠.”

마리는 입술을 앙다물고 한참 동안 장부의 숫자를 계산했다.

머릿속에서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빠가 진 빚 때문에 당장 큰 목돈이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매달 꾸준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절실했다. 무엇보다 귀족의 입맛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이름의 빵을 구울 수 있다는 조건은 가슴을 강하게 흔들었다.

“그럼 ‘치료가 아닌 휴식’이라는 원칙은 제과에도 적용되는 건가요?”

마리가 날카롭게 물었다.

“마법 식물을 마구 갈아 넣어 약효를 낸다거나 이상한 환각을 일으키는 디저트는 굽지 않을 겁니다. 그건 제과가 아니라 가짜 약장수 짓이니까요.”

아델리아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예요. 이곳에 온 손님이 따뜻한 차와 빵 한 조각을 먹으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맛. 식물의 효능은 그저 지친 마음의 긴장을 살짝 풀어주는 향기면 충분합니다.”

마리는 아델리아의 맑은 녹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거짓이나 계산된 가식이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요. 대신 계약서는 지금 당장 쓰죠. 제과 메뉴의 결정권과 수익 배분율을 공증받을 수 있게 명확히 적어 주세요.”

“물론입니다.”

두 사람은 탁자 위에 종이를 펼치고 조항을 하나하나 다듬었다.

수익 분배 비율과 재료비 정산 주기, 주방 위생 관리 책임까지 빈틈없이 적어 내려갔다. 계약서 하단에 아델리아 벨로아와 마리 로웬의 서명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서명을 마친 마리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약도 끝났으니 이제 일해야죠. 놀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마리는 가방에서 굵은 소금과 식초, 철 수세미를 꺼냈다.

“오르만 씨는 연통 바깥의 그을음을 털어내 주시고 사장님은 내화 점토를 이겨 주세요. 전 화덕 내부의 기름때를 벗겨낼 테니까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휘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아델리아는 마리의 지시에 따라 붉은 흙과 점토를 물에 개어 반죽했다. 마리가 철 수세미로 오븐 안쪽을 문지르자 묵은 때가 씻겨 나가며 단단한 붉은 벽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델리아는 점토를 들고 오븐 깊숙한 곳의 갈라진 틈을 꼼꼼하게 메웠다.

손끝으로 흙의 점성과 습도를 느끼며 틈새를 채워 넣는 동안 식물의 청음과 비슷한 미세한 온기가 손바닥을 간질였다. 불을 품을 흙이 기분 좋게 숨을 쉬는 듯한 감각이었다.

“사장님, 흙 다루는 솜씨가 제과 반죽 치대는 사람 못지않네요.”

마리가 땀을 닦으며 감탄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흙을 만지는 일이 가장 익숙하거든요.”

청소를 끝내고 마른 장작을 화덕에 넣었다. 부싯돌을 튕기자 작은 불씨가 장작 끝에 옮겨붙었다.

처음에는 매캐한 연기가 새어 나왔지만 마리가 댐퍼를 조절하자 연기는 말끔히 연통으로 빠져나가고 화덕 안에서 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오븐이 서서히 달아오르며 주방의 서늘한 냉기를 밀어냈다.

“첫 불치고는 훌륭하네요. 이제 첫 메뉴를 시험해 보죠.”

마리는 가방에서 묵직한 버터 덩어리와 빻은 통밀가루, 비정제 사탕수수 설탕을 꺼냈다.

“어떤 빵을 구울까요?”

아델리아가 묻자 마리가 창가를 가리켰다.

“온실 뜰에 로즈마리와 박하가 조금 남아 있던 걸 봤어요. 거센 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은 허브들이죠. 잎을 조금 따 주실 수 있나요?”

아델리아는 창가로 가 온실 화단에 손을 얹었다.

추위 속에서도 꿋꿋하게 향을 품고 있던 로즈마리가 시원하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었다. 아델리아는 마음잎의 화분을 흘끗 보았다. 마음잎은 따뜻한 온기가 흘러들어오자 잎을 활짝 펴고 있었다.

“마음잎은 아직 어려서 딸 수 없지만 로즈마리는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어.”

아델리아는 잎 끝을 정성스럽게 솎아내 주방으로 가져왔다.

마리는 버터를 부드럽게 으깨고 설탕을 섞은 뒤 체 친 통밀가루를 더했다. 잘게 다진 로즈마리 잎이 반죽 속에 점점이 박혔다.

“이건 ‘허브 버터 사브레’예요. 화려하진 않지만 씹을수록 고소하고 허브 향이 입안에 은은하게 퍼지죠. 식은 차에도 따뜻한 차에도 잘 어울려요.”

마리가 능숙하게 둥근 원통 모양으로 반죽을 빚어 칼로 도톰하게 썰어냈다.

무쇠 팬에 가지런히 올린 반죽이 달궈진 오븐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자 주방 틈새로 형언할 수 없이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번져 나갔다.

버터가 녹아내리며 내는 풍성한 향과 구운 곡물의 구수한 내음, 그리고 로즈마리의 맑은 숲 향이 엉켜 연구소 전체를 채웠다. 삭막했던 공기가 단숨에 온기로 물들었다.

오르만이 냄새를 맡고 홀린 듯 주방 문가로 다가왔다.

“세상에, 이 폐허 같던 창고에서 이런 냄새가 나다니요.”

마리가 두꺼운 헝겊을 쥐고 오븐 문을 열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황금빛 사브레가 무쇠 팬 위에서 바삭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겉은 바삭하게 부서질 듯했고 가장자리는 옅은 갈색으로 완벽하게 익어 있었다.

마리는 과자를 식힘망에 얹고 아델리아에게 갓 구운 과자 하나를 건넸다.

“조심하세요, 뜨거워요.”

아델리아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사브레를 받아 호호 불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하고 부서지는 식감 뒤로 짙은 버터의 풍미가 혀를 감쌌다. 텁텁하지 않은 단맛과 함께 뒤이어 터져 나오는 로즈마리의 청량한 향이 기름진 맛을 산뜻하게 잡아주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따스함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삼 년간 차가운 응접실에서 식어버린 차를 마시며 삼켜야 했던 외로움이 이 작은 과자 한 조각의 온기에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맛있어요, 마리.”

아델리아가 진심으로 감탄하자 마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주근깨 덮인 뺨이 발그레해졌다.

“흥, 제가 만든 건 당연히 맛있죠. 사장님이 온도를 잘 봐주신 덕도 있고요.”

마리도 과자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합격이에요. 우리 카페의 첫 구움과자로 올리죠.”

두 사람은 남은 과자를 바구니에 담고 따뜻한 찻물을 끓여 온실 창가 테이블로 가져갔다.

마주 앉아 차와 과자를 나누는 동안 창가의 마음잎이 미세하게 청록빛을 깜빡이며 살랑였다. 마치 주방에서 피어난 따스한 온기와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축복하는 듯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마리가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내일은 상인조합에 들러서 주방 검사 일정을 잡을게요. 그동안 사장님은 손님 자리 탁자를 닦아 두세요.”

“고마워요, 마리. 조심히 가세요.”

마리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정문을 나섰다.

혼자 남은 아델리아는 온실 문을 닫고 창가에 섰다.

밖을 내다보자 하늘빛이 잿빛으로 짙어지며 매서운 북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 끝에 실린 차가운 공기가 유리창을 톡톡 두드리더니 하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늦겨울의 갑작스러운 폭설 조짐이었다.

아델리아는 마음잎 화분을 바람이 닿지 않는 안쪽으로 옮겨 놓았다.

온실 바깥의 어두워진 길목, 흩날리는 눈보라 너머로 검은 외투를 입은 장신의 인영이 우뚝 서서 연구소 창가를 응시하다가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아델리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난로의 불씨를 다독였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눈송이가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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