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형사의 마지막 목격자

1화 비가 멎기 전
서울청 지하 주차장 천장에서는 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다.
서진혁은 운전석에 앉은 채 손목시계를 눌렀다. 오전 여섯 시 사십 분이었다. 목요일의 공기는 아직 마른 콘크리트 냄새가 났다.
내일이면 비가 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죽었다.
진혁은 셔츠 소매를 내리고 차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서 한도윤이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구겨진 셔츠 소매가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
“밤새 여기 있었냐?” 도윤이 컵 하나를 내밀었다. “얼굴이 시체보다 더 하네.”
“오늘 야간 비번 바꿔.”
“누구 거랑?”
“네 거랑.”
도윤은 웃으려다 진혁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유는?”
“내일 새벽에 해온대병원 근처로 가지 마.”
“형사님.” 도윤이 종이컵을 자기 쪽으로 다시 끌어갔다. “잠을 못 잔 건 알겠는데 점괘는 수사 기법 아니야.”
진혁은 대답하지 않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건판 한쪽에는 전날 접수된 실종 전단이 붙어 있었다. 오명수. 백야원 후원회 전 간사. 사진 속 남자는 말끔한 정장에 웃는 얼굴이었다.
내일 새벽에는 그 웃는 얼굴이 빗물에 잠겨 있었다.
전단을 떼려던 손이 멈췄다. 지난번에는 이 남자를 찾는 데 시간을 썼다. 이번에는 찾는 일이 아니라 붙잡는 일이 필요했다.
당직 전화가 울렸다.
“강력2팀? 해온대병원 응급실 뒤편에 폭행 추정 환자 하나 들어왔습니다. 신고자가 간호사인데 현장에서 수상한 남자를 봤다고 합니다.”
진혁은 수화기가 놓이기도 전에 밖으로 나갔다.
“환자 이름도 안 들었잖아.” 도윤이 뒤를 따랐다.
“오명수일 거야.”
도윤의 발걸음이 뚝 멎었다. “뭐?”
“그리고 검은 우산을 든 남자를 봤을 겁니다.”
“무전에 그런 말 없었는데.”
진혁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금속문에 비친 자기 얼굴이 낯설었다. 설명하면 미친 사람처럼 들릴 것이다. 설명하지 않으면 내일 또 누군가가 죽는다.
어느 쪽도 도윤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해온대병원 응급실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젖은 우비와 소독약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뒤편 출입문 쪽에서 구급대원이 들것을 밀고 있었다. 남자의 목에는 가는 압박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오명수였다.
들것 옆의 여자가 산소 마스크를 고쳐 쥐었다. 긴 머리를 단정히 묶은 여자였다. 오른손 검지에 난 오래된 화상 흉터가 파란 장갑 끝으로 드러났다.
“윤서린 씨입니까?”
여자는 놀란 눈으로 진혁을 봤다. “네. 제가 신고했습니다.”
“누가 그를 이렇게 했습니까.”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들어오는 사람을 봤습니다.”
서린은 환자의 맥을 확인하고서야 손을 뗐다. 손끝은 침착했지만 시선이 두 번이나 출입문으로 갔다.
“검은 우산을 들고 있었어요. 바깥은 맑았는데요.”
“얼굴은?”
“우산 아래라 못 봤습니다. 장갑을 꼈어요. 검은 장갑인데 젖지 않았어요.”
진혁은 출입문 아래를 봤다. 벽에 검은 우산 하나가 기대어 있었다. 우산 끝에도 손잡이에도 물기가 없었다.
손잡이에는 흰 분필로 그린 작은 원이 있었다.
도윤이 그 우산 앞으로 다가가 증거 봉투를 꺼냈다. “누가 물건 두고 간 거네.”
“무슨 말을 했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서린의 눈썹이 가볍게 움직였다. “저한테 한 말은 아니에요.”
“들었으면 말해 주십시오.”
“환자한테 말했어요. 마지막은 늦지 않게 하라고.”
들것 위 오명수의 손가락이 난간을 긁었다. 남자가 억지로 눈을 떴다. 진혁의 소매를 붙든 손에 힘이 거의 없었다.
“명단은… 내가 안 갖고 있어.”
“무슨 명단입니까?”
“백야원.”
심전도 경보가 울렸다. 의료진이 들것을 밀며 진혁을 비켜 세웠다.
그 단어만 남았다. 백야원.
일곱 해 전 화재 현장에서 들었던 비명과 휘어진 철문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긁었다. 진혁은 숨을 고르고 우산을 바라봤다. 그 안쪽에는 금색 테두리의 초대장이 꽂혀 있었다.
백야원 후원 만찬. 오늘 밤 열 시. 재개발 구역 폐쇄 상가 지하 연회장.
수신인은 오명수였다.
“이 사람 보호부터 붙여.” 진혁이 말했다.
도윤은 초대장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영장도 없고 신변 위협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내가 책임질게.”
“그 말이 제일 불안해.”
서린이 들것이 사라진 복도를 잠시 보다가 진혁에게 물었다.
“형사님은 그분이 백야원과 관련 있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지금은 모르는 게 낫습니다.”
서린의 표정이 단단하게 굳었다. “모르면 위험한 사람도 있어요.”
진혁은 그 말에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아는 것조차 누구를 구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오명수는 중환자실 관찰실로 옮겨졌다. 진혁은 문 앞 의자에 앉아 출입 기록을 확인했다. 도윤은 병원 보안팀과 통화하며 자꾸만 진혁을 곁눈질했다.
“오명수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부터 확인해야지. 사람 하나에 이렇게 매달리는 건 처음 보는데.”
“그 사람은 오늘 밤 죽는다.”
도윤이 통화를 끊었다. “그 말을 또 할 거면 근거도 같이 내놔.”
“없어.”
“없는데 왜 확신해?”
진혁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복도 창문에 흐린 하늘이 비쳤다. 내일의 비를 지금 말해도 도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여러 번 봤다고 말하면 더더욱 믿지 않을 것이다.
“한 번만 믿어 줘.”
도윤은 한참 뒤에야 작게 욕을 했다. “그 한 번 때문에 징계 먹어도?”
“그래.”
“진짜 미친 소리인 건 아는데.” 도윤은 보호자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래도 네가 이렇게 말하면 내가 안 움직일 수가 없잖아.”
그 말이 진혁의 속을 더 무겁게 눌렀다.
윤서린이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복도로 나왔다. 한쪽은 도윤에게 건넸고 나머지 하나는 진혁 앞에 놓았다.
“카페인은 안 드시는 줄 알았는데요.” 도윤이 말했다.
“형사님 표정이 그쪽보다 더 위급해 보여서요.”
서린은 진혁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제가 위험하다는 근거가 뭡니까?”
“우산을 든 남자가 당신을 봤습니다.”
“그것만으로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경찰이 보호해 준다는 말은 안 하시네요.”
진혁은 종이컵 가장자리만 쥐었다. 보호해 주겠다는 말은 쉽게 꺼내기 싫었다. 그 말은 너무 자주 틀렸다.
“오늘은 퇴근하지 마십시오. 제 동료가 병원 주변에 남겠습니다.”
“그건 제 선택이죠.”
“맞습니다.”
서린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선택은 윤 간호사가 하세요. 대신 위험한 사람을 봤다는 사실은 잊지 마십시오.”
그때 관찰실 안에서 금속성이 짧게 울렸다.
진혁이 뛰어 들어갔을 때 침대는 비어 있었다. 산소 줄은 바닥에 늘어져 있었고 창문은 안쪽 잠금쇠까지 걸려 있었다. 복도 CCTV도 끊긴 흔적이 없었다.
침대 옆 바닥에는 손목시계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초침은 오전 여섯 시 사십 분에서 멎어 있었다.
도윤이 시계를 집어 들었다. “배터리도 새건데.”
진혁은 창밖을 봤다. 주차장 진입로를 빠져나가는 검은 승합차가 보였다. 오명수의 차였다.
“폐쇄 상가.”
“거기 간다고?” 도윤이 물었다.
“명단을 받으러.”
“그 사람이 직접 말했어?”
“아니.”
진혁은 이미 문을 나서고 있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겠다는 다짐이 뼈에 박혔다.
재개발 구역에는 자정이 지나서야 비가 시작됐다.
폐쇄 상가는 철제 펜스 너머에서 꺼진 눈처럼 서 있었다. 도윤은 무전으로 지원 인력을 부르면서도 출입구를 지켰다.
“혼자 내려가지 마.”
“오명수부터 찾는다.”
“둘이 같이 찾으면 되잖아.”
진혁은 펜스 안쪽 어둠을 봤다. “넌 위를 봐. 누가 나오는지.”
도윤이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작전인데 그게.”
“이번에는 그렇게 해야 해.”
지하 계단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진혁은 벽을 짚고 천천히 내려갔다. 아래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오명수의 전화였다.
소리를 따라간 끝에는 빈 점포가 있었다. 바닥에 검은 우산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 오명수가 쓰러져 있었다. 목에는 가느다란 끈이 감겨 있었다.
“오명수 씨.”
진혁은 남자의 맥을 짚었다. 약했다. 아직 살아 있었다.
우산을 걷어 내는 순간 뒤에서 총성이 터졌다.
왼쪽 옆구리가 뜨겁게 찢어졌다. 진혁은 벽으로 밀려나며 권총을 뽑았다. 계단 위에 검은 우산이 서 있었다. 우산 아래의 얼굴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경찰!”
대답 대신 발소리가 멀어졌다.
진혁은 피가 스며드는 셔츠를 누르며 계단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그때 휴대전화 불빛이 지하 입구에서 흔들렸다.
윤서린이었다.
“형사님!”
그녀는 비에 젖은 채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진혁은 서린보다 먼저 우산이 사라진 방향을 봤다. 범인은 이미 없었다.
“왜 여기 있습니까.”
“오명수 씨가 제 번호로 전화를 했어요. 형사님이….”
서린의 말이 끊겼다. 그녀는 그의 옆구리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곧바로 무릎을 꿇고 셔츠 위에 손을 얹었다.
“도윤 형사님 불렀어요. 누르세요. 힘 빼지 말고.”
진혁은 그녀의 손을 덮었다. 오른손 검지의 화상 흉터가 차가운 빛 아래 선명했다.
“여기서 나가.”
“환자 두고 못 갑니다.”
“당신은 환자 아니야.”
“그럼 제가 결정할게요.”
서린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손은 물러나지 않았다. 진혁은 그 짧은 말에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이번에도 혼자 결정하려 했다는 사실이 너무 늦게 보였다.
멀리서 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울리는 발소리도 가까워졌다.
그러나 진혁의 시야는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손목시계가 빗물 속에서 굴렀다. 초침이 한 칸 움직였다.
여섯 시 사십 분.
서울청 지하 주차장 천장에서는 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졌다.
진혁은 운전석에서 눈을 떴다. 손목시계는 목요일 오전 여섯 시 사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피가 묻지 않은 셔츠를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윤서린부터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