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엘리베이터 0층은 지상으로 간다

1화: 없는 층의 점검등
박시원은 버튼 수를 두 번 셌다.
해저도시 남부 승강기의 층 버튼은 여덟 개였다. 대합실이 있는 일 층과 아래 생활 구역 일곱 곳. 패널 맨 아래 검은 칸은 버튼이 아니라 막음판이었다. 도면에도 그렇게 나왔다. 그런데 야간 점검을 시작한 뒤 검은 칸 안에서 흰 숫자 하나가 켜졌다.
시원은 그 숫자를 누르지 않았다. 작업용 장갑으로 패널 모서리를 짚고 관제실에 현재 상태를 알렸다. 야간 운영 관제사 임세라는 승강기를 점검 운전으로 바꿨지만 새 버튼이 생기게 하는 명령은 없었다고 했다.
“테스트 표시가 아닙니까?”
그녀가 물었다. 시원은 자기 장비에서 보낸 명령을 읽어 줬다. 점검등 확인, 문 감지 시험, 위치 센서 대조. 새 층을 만들거나 표시를 변경하는 명령은 없었다.
“사진 보낼게요. 현재 차는 일 층에 있습니다.”
시원은 버튼과 바닥 층 표시가 같이 나오게 촬영했다. 버튼에는 영, 위쪽 운행 표시에는 일. 위치 센서도 일 층 정지 상태였다. 세라는 사진을 받자 아무 말 없이 몇 초를 보냈다.
“운행표에 영 층은 없습니다.”
“제 도면에도 없습니다.”
대합실 너머에서는 밤새 돌아가는 순환 펌프 소리가 났다. 이 도시는 물 아래 있었지만 시민들이 머무는 구역의 공기는 지상 생활에 맞게 유지됐다. 구역 바깥의 압력과 안쪽의 압력이 다르므로, 승강기 출입구마다 별도 수밀문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고장 하나가 바깥의 물을 곧장 끌어들이지 않게 나눈 구조였다.
시원은 현재 구역의 수밀 상태부터 확인했다. 모든 값은 정상 범위였고, 차 안의 압력도 대합실과 같았다. 그 사실만으로 새 버튼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출입 제한 표지와 차단대를 가져와 승객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늦은 귀가객 한 사람이 다른 승강기를 찾다가 항의했다.
“낮에도 막더니 밤에도 막아요?”
시원은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고 대체 통로의 위치를 알려 줬다. 세라가 다른 차의 운행을 늘렸다. 일부 시민이 더 기다리게 됐지만, 이상 표시를 켜 둔 차에 사람을 태울 수는 없었다.
차 안에 남은 시원은 검은 막음판 아래의 나사를 확인했다. 점검 기록에 표시된 부품 번호와 같았다. 오래전 누군가 다른 부품을 붙였을 가능성은 아직 남았다. 그는 패널 전원을 분리하기 전에 관제실과 현재 로그를 저장했다.
“먼저 꺼 보면 원인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원본부터 남기죠.”
세라의 말에 시원은 동의했다. 전원 리셋으로 문제가 사라진 척하는 일은 익숙했다. 원인을 모른 채 운행을 재개하면 다음 야간 근무자가 같은 문제를 만났다.
세라가 최근 이동 기록을 열었다. 차의 위치 센서와 문 열림 시각은 정상적으로 쌓여 있었다. 전날 밤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새벽 두 시 사십삼 분의 문 닫힘 다음에, 목적 층 도착 기록이 하나 비어 있었다. 다음 문 열림은 일 층이었다.
“한 번 갔다 온 것 같은데 이동 층이 안 나옵니다.”
시원은 차가 멈춘 시간을 계산했다. 일반 왕복 운행보다 길었다. 다만 위치 센서가 고장 나도 그런 공백이 생길 수 있었다. 그는 주 위치 센서와 보조 센서 자료를 비교했다. 두 센서 모두 같은 시간 동안 층을 보고하지 않았다.
“신호선을 공유합니까?”
세라가 물었다. 시원은 도면을 열어 아니라고 답했다. 다른 경로에서 같은 통신 허브로 들어가므로 허브 장애일 수도 있었다. 로그 공백은 없는 층을 갔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무엇이 같이 멎었는지 확인할 단서였다.
야간 구조 잠수사 백이안이 점검 요청을 받고 왔다. 그는 평상복 위에 현장 보호복을 걸치고 있었다. 시원은 그에게 바로 물속으로 나갈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승강기가 존재하지 않는 표시를 내고 있으므로 인접 압력 구역을 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안은 계측기와 수밀문 상태를 확인했다.
“차 바깥 통로는 현재와 같습니다. 이 값을 믿을 수 있는지도 같이 확인하겠습니다.”
그는 센서가 정상이라고 표시하는 것과 실제 상태를 대조했다. 사람이 서로 다른 일을 확인하자 시원은 차 안에 집중할 수 있었다. 패널 막음판은 만졌을 때 차가운 금속이었다. 숫자만 보였을 뿐 버튼처럼 튀어나오지 않았다.
“제조사 진단 화면은 뭡니까?”
세라가 물었다. 시원은 제조사 코드에도 영 층이 없다고 답했다. 비상층이나 자동 복귀층의 내부 코드와도 달랐다. 그러나 화면 숫자를 만든 회로가 어디인지 아직 찾지 못했다. 그는 나사를 풀어 패널 뒤를 보는 작업 계획을 전달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시원은 문 열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바깥 대합실이 보여야 했다. 문 너머에서 햇빛이 들어왔다. 눈이 부셔서 차 안의 점검등이 약해 보였다. 낮은 회색 담과 가로수, 자전거 한 대가 있는 거리였다.
시원은 뒤로 물러났다. 차 밖에 있어야 할 이안도 보이지 않았다. 무전기에서는 이안이 자기 앞 문은 닫혀 있다고 말했다.
“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대합실이 아닙니다.”
시원은 말하는 동안 비상 정지 상태를 확인했다. 차가 움직인 흔적은 없었다. 센서 역시 일 층이었다. 그는 문 밖으로 발을 내밀지 않았다. 거리 바닥의 작은 흰 선이 문턱 바로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선을 넘어가는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세라가 관제 카메라를 확인했다. 외부 카메라에는 닫힌 승강기 문과 이안이 있었다. 차 내부 카메라에는 시원의 등과 밝아진 문 쪽이 보였지만, 풍경은 노출이 날아가 흰 화면으로 나왔다.
“차에서 떨어져 계세요. 다시 닫힐 때 손을 넣지 마시고요.”
그녀가 말했다. 시원은 가장 먼 벽에 등을 붙이고 자기 현장 카메라를 들었다. 밝기를 조절하자 거리가 영상에 나타났다. 사람이 보는 환각이라면 카메라에는 안 찍힐 것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러나 장비 자료가 변조될 가능성까지 없앤 결과는 아니었다.
거리 안쪽에서 바람이 불었다. 시원의 작업복 끝이 흔들렸다. 기계실 팬이 아닌 방향에서 온 바람이었다. 계측기는 문턱 부근의 공기 상태를 현재 대합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표시했다. 바깥이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릴 정도의 자료는 아니었다.
이안이 말했다.
“시원 씨 위치는 내부에서 확인됩니다. 제 쪽 문은 여전히 닫혀 있습니다. 문을 열도록 조작하진 않겠습니다.”
시원은 대답하면서 바닥을 보았다. 문턱 가까이에 장갑 하나가 있었다. 손목에 초록 띠가 붙은 성인용 장갑. 그는 몸을 숙이지 않고 확대 촬영했다. 장갑 위에 물방울이 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작은 물방울이 햇빛을 받으며 흔들렸다.
거리 끝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젊은 여자였다. 교복은 아니고 회색 점퍼에 얇은 가방을 멘 모습이었다. 여자가 가까워질수록 가로수의 잎이 멎었다. 자전거 앞바퀴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시원은 이름부터 외쳤다.
“여기 계신 분, 돌아오시는 겁니까?”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시원의 옷에 적힌 정비팀 표식을 보고 두 손을 들었다. 왼손에는 작은 종이봉투가 있었다.
“문이 또 닫힐까요?”
“지금 얼마나 유지될지 모릅니다. 무리해서 뛰지 마세요.”
시원은 자신이 해법을 모른다는 것을 그대로 말했다. 여자가 문턱에 닿을 때 차 안의 압력 표시가 짧게 흔들렸다. 이안에게 상태를 알리자 그는 현 구역 압력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차 안에서만 생긴 변화였다.
여자는 문턱에 발을 올리고, 차 안 바닥을 확인한 뒤 들어왔다. 시원은 그녀가 완전히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멀리 있는 벽 쪽으로 안내했다. 거리의 햇빛이 가늘어졌다. 문이 닫힌 뒤에야 숫자 영이 꺼졌다.
두 사람은 같은 차 안에 있었고, 문밖 대합실의 이안이 호출 버튼을 누르자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문이 열렸다. 시원은 먼저 내리지 않고 여자와 이안의 위치를 확인했다. 카메라에도 두 사람이 모두 보였다.
“현 구역으로 복귀한 사람 두 명 확인했습니다.”
세라가 말했다. 시원은 여자에게 자기가 처음부터 이 차에 있었고, 그녀는 문 밖에서 들어왔다고 구분해 알렸다. 둘이 함께 어디를 갔다 왔다고 정리하면 기록이 틀렸다.
여자의 이름은 윤하나였다. 열아홉 살이고, 전날 야간 교양 수업 뒤 승강기에 탔다고 했다. 누른 버튼은 생활 구역 삼 층이었다. 문이 열렸을 때 지상 거리처럼 보여서 다른 도시 구역인 줄 알고 내렸다.
“거기서 얼마나 계셨습니까?”
하나는 시계를 봤다. 그녀는 삼십 분쯤이라고 했다. 현재 날짜를 알려 주자 얼굴이 굳었다. 도시 기록으로는 거의 하루가 지나 있었다. 시원은 그 시간 차이를 무전으로 알리고 필요한 확인을 운영실과 의료 담당자에게 맡겼다.
하나는 종이봉투를 열려고 했다. 안에는 빵처럼 보이는 물건이 있었다. 이안은 그것을 먹지 않도록 잠시 보관 방법을 설명했다. 시원은 현장 사진을 남긴 뒤 봉투를 전달하는 것을 도왔다. 모든 낯선 물건을 증거라며 빼앗는 대신, 왜 확인이 필요한지 알려 주었다.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한테 연락해도 되죠?”
세라가 그녀의 보호자가 실종 신고를 했다고 전했다. 시원은 통화할 수 있게 현장 단말을 빌려줬다. 하나가 직접 번호를 누르는 동안 그는 전날 승객 명부를 받아 봤다. 하나와 함께 탔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남영우, 배수 설비 기술자. 그도 아직 근무지에 도착하지 않았다.
하나의 전화가 연결됐다. 단말 너머 여자가 급하게 딸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그녀가 소리를 키웠다. 엄마가 또 이름을 불렀지만 하나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화면에 엄마가 맞아요.”
하나가 아주 작게 말했다. 화면에는 영상 통화에 응답한 여자의 얼굴이 나왔다. 두 사람의 눈과 턱 모양이 닮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누구 목소리예요?”
시원은 단말 고장인지 확인했다. 스피커에서는 분명한 사람 목소리가 나왔다. 하나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겠다고 했다. 다만 어머니의 목소리로 알아볼 수 없었다.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하나는 화면을 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자기가 딸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시원은 그 옆에 서서 아무 설명도 할 수 없었다.
승강기 패널의 검은 칸이 다시 잠깐 빛났다. 영이라는 숫자 아래 아주 작은 점검등이 켜졌다. 도면상으로는 그 등을 연결할 선이 없었다.
시원은 차단대의 잠금을 다시 확인했다. 사라진 승객 한 명과 돌아온 승객 한 명. 문이 열렸던 시간 동안 위치 센서에는 일 층만 남아 있었다. 그는 자기 기록의 제목을 고쳤다.
표시 오류가 아니라, 문 밖 공간 불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