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구름 목욕탕의 마지막 온수1화

구름 목욕탕의 마지막 온수

구름 목욕탕의 마지막 온수

AD
스폰서 광고

1화: 온수 배급표

온도계의 붉은 선이 38도 아래로 내려갔다. 모아는 손을 씻던 손님의 수도꼭지를 잠갔다.

“조금만 더 쓰면 되는데요.”

“죄송하지만 지금부터 미지근한 물만 나옵니다.”

“목욕탕이 온수를 아끼면 어떡해요?”

“아끼는 게 아니라 나눠 쓰는 중이에요.”

손님은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탕에서 나왔다. 구름 목욕탕의 대욕장에는 김이 얇게 맴돌았다. 천장 창문 너머로 구름 아래 마을의 작은 불빛이 보였다. 온천수 배관은 섬 아래로 내려가 식수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목욕탕에서 온수를 오래 쓰면 아래쪽 샘의 수압이 떨어졌다.

모아는 새 배급표를 벽에 붙였다. 오전에는 노인 손님, 점심에는 식당 종업원, 저녁에는 산길을 오르는 운송인. 한 사람당 온수 사용 시간은 12분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표의 절반이 지워져 있었다.

“주인님이 줄을 바꾸셨어요?”

목욕탕 주인 순덕은 장부를 덮었다. “아침에 태오가 아래 샘 압력이 떨어진다고 연락했어. 물이 줄면 시간표도 바꿔야지.”

“그럼 손님들한테 먼저 말해야 해요.”

“말했어. 그래도 저마다 이유가 있더라.”

탕 안쪽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노인 손님 하나가 물에서 일어나려다 미끄러졌다. 모아는 달려가 팔을 받쳤다. “천천히요. 발판이 젖었어요.”

“다리가 아파서 조금 더 담그고 싶었어.”

“온수는 더 못 드리지만, 따뜻한 수건을 가져올게요.”

그녀는 수건을 보일러 덮개 위에 올려 데웠다. 손님은 따뜻한 천을 무릎에 둘렀다. 온수가 줄어도 덜 아프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모아는 그 사실을 손님에게 알려 주고, 사용 시간을 배급표에 적었다.

대욕장에서 나오던 한 손님이 배급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은 물이 부족하다면서요. 우리 집까지 오는 온수도 줄어드나요?”

그의 집은 목욕탕 아래쪽 공동주택이었다. 온천수는 욕탕을 지난 뒤 식수 전처리조에 들어가고, 남는 열은 난방관으로 흘렀다. “식수 쪽은 태오 씨가 관리합니다. 온수 양을 줄이면 난방도 약해질 수 있어요.”

“어머니가 집에 계십니다. 추위를 잘 타세요.”

모아는 온수 시간을 늘려 주겠다고 말하려다 멈췄다. 한 집에 더 주면 다른 집의 수압이 줄 수 있었다. “제가 집에 가서 난방관 온도를 확인할게요. 우선 목욕탕에서 따뜻한 수건을 가져가세요.”

그 손님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도 필요하겠죠. 수건만 가져가겠습니다.”

모아는 그가 수건을 받아 가는 걸 보고, 따뜻한 물이 꼭 수도꼭지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 생각했다. 온수 배급표에 ‘가정 난방 점검’ 칸을 추가했다.

순덕은 장부에서 난방관 사용량을 찾아 줬다. “이 칸은 매일 적지 않았어. 온도가 일정하다고 생각했거든.”

“사람이 달라지면 필요한 온도도 달라져요.”

“그럼 누가 돌아다니며 확인하지?”

“제가 할게요. 하지만 직원들에게 분담해야 해요. 수습공 혼자 모든 집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아래 마을에서 온 태오가 바로 현장 확인을 제안했다. 그는 온도계와 물통을 챙겨 주거지 배관을 돌았다. 끝집의 수도꼭지에서는 맑은 물 대신 녹물이 먼저 나왔다. 모아는 물을 마시지 않도록 주민에게 알리고, 관을 한동안 흘려보내도록 했다. 한 집은 배관이 낡아 뜨거운 물이 벽 안으로 새고 있었다. 태오는 밸브를 잠그며 말했다.

“목욕탕에서 온수를 줄이면 이쪽 압력은 올라갈 줄 알았는데, 누수 때문에 계속 빠져나갔어요.”

“그럼 배급표만 바꿔선 안 되겠네요.”

“누수 수리도 일정에 넣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 집 밸브를 닫고, 내일 부품을 가져오죠.”

집주인은 벽에 난 젖은 얼룩을 만졌다. “난방이 끊기면 아이가 추울 텐데.”

모아는 목욕탕의 데운 수건을 건넸다. “오늘은 이걸로 버텨 주세요. 부품이 준비되는 대로 저희가 다시 올게요.”

“이번엔 약속을 장부에 적어 주게.”

모아는 정비 날짜와 담당자를 적었다. 온수 사용량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새는지 찾아야 했다. 그녀는 그 기록을 보일러 점검표에도 옮겼다.

순덕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다음 주 근무표에 넣자. 정비 인력을 한 명 더 부를게.”

모아는 그 결정을 배급표에 기록했다. 물을 아끼라는 말만으로는 필요한 사람을 가려낼 수 없었다. 사용량과 불편, 대체 방법을 함께 확인해야 했다.

보일러실에서 둔탁한 떨림이 들렸다. 그녀는 렌치를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구리 보일러의 압력계가 노란 구간에 걸려 있었다. 배관을 따라 손을 대자 한쪽 이음새가 미세하게 떨렸다.

“기찬아, 밸브 잠갔어?”

견습공 기찬이 반대쪽에서 나타났다. “잠갔어요. 그런데 압력이 다시 올라갑니다.”

“급수량은?”

“정상이에요. 압력 조절판이 조금씩 밀려요.”

모아는 고정 나사를 조였다. 진동이 잠깐 잦아들었지만, 금속 안에서 새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귀를 가까이 대지 않고 긴 나무봉을 배관에 붙였다. 떨림이 나무를 타고 손목에 전해졌다.

“보일러에 금이 갔을 수 있어.”

“물이 새는 건 못 봤어요.”

“겉으로 안 보일 수도 있어. 지금은 가동을 낮추자.”

“그러면 저녁 손님에게 온수가 부족해요.”

“부족한 걸 숨기면 더 위험해.”

모아는 순덕에게 보일러 검사를 요청했다. 순덕은 장부를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문을 닫으면 수입이 없어. 직원들 일당도 못 줘.”

“검사를 미루면 터질 수도 있어요.”

“정비 비용이 얼마인지 알아?”

“부품을 열어 봐야 해요.”

“그동안 온천수를 빼면 아래 마을 식수도 끊겨. 태오가 아침에 경고했어.”

모아는 보일러실 문턱에 섰다. “그럼 같이 방법을 찾아야죠. 물을 전부 빼지 않고 압력을 낮출 수 있는 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설비는 없어.”

“만들 수 있습니다.”

순덕은 그녀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그랬지. 혼자 기계를 만지다가 작은 누수를 크게 만들었다고.”

모아는 목이 굳었다. “그때는 제가 밸브를 너무 세게 잠갔어요.”

“당신 혼자 한 일이 아니야. 인력이 모자라 점검을 미룬 내 책임도 있어.”

“그래도 제가 숨겼죠.”

순덕은 장부를 덮었다. “그럼 이번엔 숨기지 말자.”

손님들이 하나둘 탕에서 나왔다. 몇몇은 남은 온수를 더 달라고 따졌고, 몇몇은 아래 마을을 위해 시간을 줄이겠다고 했다. 한 아이는 엄마에게 오늘은 물장난을 못 하냐고 물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대야에 남은 따뜻한 물을 건넸다.

모아는 모든 요구를 같은 기준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노인 손님은 온열 치료가 필요했고, 운송인은 저녁에 산길을 넘어야 했다. 순덕은 목욕탕을 완전히 닫지 않으면서 보일러를 쉬게 할 시간을 확보하자고 했다. 모아는 시간표를 다시 작성했다. 온수는 치료실과 샤워실에 우선 배정하고, 대욕장은 미지근한 물로 전환했다. 아래 마을의 식수 시간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대로면 손님들이 환불을 요구할 거야.” 순덕이 말했다.

“그럼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모아는 탕으로 나가 직접 배급표를 읽었다. 손님들은 불만을 드러냈다. 한 남자는 목욕탕이 돈을 받고 물을 아낀다며 비난했고, 다른 이는 그래도 치료실을 먼저 채운 건 잘한 결정이라고 했다. 모아는 변명하지 않고 압력계 수치를 보여 줬다.

“보일러에 균열이 의심됩니다. 오늘 안에 점검할게요. 지금 닫으면 환불하겠지만, 안전을 확인할 때까지 온수 사용을 줄여야 합니다.”

“수리하는 동안 문을 닫나요?”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요?”

모아는 질문에 놀랐다. “배관과 물길을 아는 분이 있다면, 점검을 함께해 주세요.”

입구에서 태오가 젖은 장화를 털었다. 그는 아래 마을 물길지기였다. “보일러를 열면 온천수를 빼야 합니다. 그 시간엔 식수정 압력이 떨어질 겁니다.”

“얼마나 오래요?” 모아가 물었다.

“완전히 빼면 여섯 시간. 우회 배관이 있으면 두 시간 안에 다시 돌릴 수 있어요.”

“우회 배관을 만들 수 있습니까?”

“도면이 있으면요.”

모아는 벽에 붙은 배관도를 바라봤다. 도면에는 아래 마을로 향하는 관이 한 줄뿐이었다. 그러나 보일러실의 낡은 벽 뒤에는 막힌 보조관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예전에 쓰던 배관일지도 몰랐다.

“보조관을 확인해 볼게요.”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 관은 폐쇄됐습니다. 안에 녹이 차 있을 수 있어요.”

“열기 전에는 몰라요.”

“열면 오염된 물이 식수정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럼 배수 방향을 바꾸면요?”

그는 대답을 못했다. 모아는 공구함을 들었다. “혼자 열지 않을게요. 당신과 기찬이 같이 봐 주세요.”

태오는 목욕탕 안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남은 온수를 나눠 쓰고 있었다. 그는 보일러실로 내려왔다. “수도꼭지부터 잠그고 압력을 빼겠습니다. 그다음 관을 열죠.”

세 사람은 밸브를 하나씩 잠갔다. 모아는 배관 끝에 압력계를 연결하고, 기찬은 오래된 도면에 없는 관의 위치를 표시했다. 태오는 식수정 쪽 밸브를 잠갔다. 작업은 천천히 진행됐다.

금속 덮개를 열자 벽 속에 오래된 배관이 나타났다. 관의 표면에는 구름 모양 부식이 퍼져 있었고, 한 지점에서 물방울이 맺혔다.

모아는 손을 멈췄다. “이건 보일러에서 새는 물이 아니에요.”

태오가 관을 살폈다. “온천수와 식수 사이의 연결관입니다. 이게 터지면 두 물이 섞입니다.”

기찬은 압력계를 가리켰다. 바늘이 다시 노란 구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보일러 균열이 더 벌어지는 것 같아요.”

멀리 아래 마을에서 수압 경보 종이 울렸다. 온천수가 이미 식수정으로 역류하고 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