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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인간은 하루만 산다1화

복제 인간은 하루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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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마지막 꿈

류현은 폐기 로그의 시간을 확인하다가 복제체의 눈을 마주쳤다.

한서-47은 배양실 침상에 누워 있었다. 활동 종료까지 4분. 그의 폐 기능은 급격히 떨어졌고, 심박수는 불규칙했다. 현은 생체 신호를 저장한 뒤 장비를 끄려 했다. 복제체는 재난 구조 훈련을 위해 만들어졌고, 24시간이 지나면 세포 노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연명 장비는 준비돼 있었지만 연구소 규정상 제공할 수 없었다.

“기술자.” 한서가 말했다. “꿈을 기록해 줘.”

현은 폐기 로그를 멈췄다. 복제체는 깨어난 뒤 같은 꿈을 말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기본 기억팩에 포함된 훈련 영상의 잔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꿈의 내용은 매번 달랐다. 한서-47은 구체적인 장소와 행동을 말했다.

“바닥에 검은 물이 있었어. 빨간 문. 누군가 넘어졌고, 다른 사람이 문을 잠갔어.”

“그 장소를 본 적 있습니까?”

“몰라. 꿈에서 봤어.”

현은 녹음 장치를 켰다. 꿈은 복제체가 기억을 새로 구성하는 과정일 수 있었다. 그는 꿈을 감정서에 쓰지 않고, 생체 로그와 별도 파일로 저장했다. 한서는 그곳에 죽은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바닥에 이름표가 떨어져 있었지만 이름은 읽지 못했다.

한서는 구조 훈련에서 위험 구역에 진입하는 복제체였다. 원본 기억팩은 구조 언어와 장비 사용법만 전달됐다. 개인 기억이나 연구소 내부 기록은 포함되지 않아야 했다. 현은 기억팩의 해시를 확인했다. 승인된 자료와 일치했다.

“지금부터 몇 분 남았어?” 한서가 물었다.

“세 분입니다.”

“그럼 내가 하는 말을 기록해야지. 폐기 로그만 볼 게 아니라.”

현은 그 말을 듣고 장비의 종료 절차를 멈췄다. 복제체에게 마지막 4분을 더 주는 것은 규정 위반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서가 남긴 정보는 이미 시작된 안전 조사와 관련이 있었다. 그는 연구소 윤리 담당자 서윤에게 긴급 연락을 했다.

서윤은 몇 분 뒤 배양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복제체의 발언을 보존하되, 인위적인 질문으로 꿈의 내용을 바꾸지 말라고 지시했다. 한서는 자신의 이름을 한서라고 선택했으며, 번호로만 기록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서윤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고 기록 양식에 이름란을 추가했다.

“당신이 죽으면 로그가 삭제됩니까?” 한서가 물었다.

“생체 데이터는 자동 폐기됩니다.”

“그럼 꿈도 사라져요?”

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폐기 로그를 보존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연구소는 복제체의 생체 정보를 일정 기간 후 제거해 원본 개인 정보와 혼합되지 않도록 했다. 한서는 그 규칙을 이해했지만, 자신이 남긴 말을 지워도 된다고 동의한 적은 없었다.

서윤은 복제체의 동의가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음성 기록을 보관하려면 별도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한서는 현에게 자신의 꿈을 수사에 써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이 남지 않더라도 다음 복제체가 같은 꿈을 꾸면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다.

“다음 한서도 나처럼 생각할까요?”

“모릅니다.”

“그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현은 그 말을 기록했다. 다음 복제체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가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서는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에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아직 가 보지 못한 바깥 훈련장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서윤은 연구소장 권상필에게 임종 전 복제체를 외부로 이동시켜도 되는지 승인을 요청했다. 상필은 안전과 계약을 이유로 거절했다. 한서는 그 대화를 듣고 눈을 감았다.

“괜찮아. 내가 못 가면, 네가 대신 가서 빨간 문을 찾아.”

한서의 심박수가 떨어졌다. 현은 마지막 기록을 저장하려 했지만, 시스템은 폐기 절차를 시작했다. 그는 승인된 생체 로그를 지우지 않은 채, 꿈의 음성 파일만 별도 보존함에 넣었다.

폐기 화면에 경고가 떴다. ‘미승인 기억 데이터 감지.’

그 아래에는 한서가 말하지 않은 문장이 자동으로 입력돼 있었다.

‘문을 열지 마. 원본이 아직 안에 있어.’

현은 경고 문장을 화면에서 지우지 않았다. 폐기 로그의 자동 서명도 남겨 두고, 별도의 분석 파일에 발견 시각을 적었다. 그 문장은 꿈의 기록과 달랐다. 한서는 말하지 않은 내용을 시스템이 입력했다. 데이터가 이전 실험에서 복사됐거나, 누군가 원격으로 로그를 수정했을 수 있었다.

서윤은 기록을 연구소 서버 밖으로 보내기 전에 복사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서버 관리자 권한은 상필에게 있었다. 현은 외부 저장 장치를 연결할 수 없었지만, 복제체의 의료 기록을 담당하는 독립 장비에는 쓰기 보호된 보존 구역이 있었다. 그는 데이터를 읽기 전용으로 복사하고, 해시를 출력했다.

한서는 눈을 감은 채 숨을 골랐다. 그는 현에게 꿈이 사실인지 묻지 않았다. “나는 누구를 죽였나요?”

“아직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한 적 없습니다.”

“그럼 누가 죽었어요?”

현은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름을 모른다고 말했다. 한서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원본과 복제체가 같은 기억을 나눌 수 있는지 물었다.

“기본 기억팩은 구조 훈련만 전달합니다. 개인 기억은 전달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내가 그 문을 알아요?”

현은 연구소의 기억팩에 접근할 권한이 없었다. 그는 한서에게 가능한 원인을 설명했다. 장비 결함, 외부 정보 유입, 기억팩의 오염, 꿈의 우연. 어느 것도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한서는 그 설명을 듣고도 자신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서윤은 활동 시간과 신체 상태를 알렸다. 한서는 연구 기록을 남기는 데 동의했고, 꿈을 수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다만 그의 말이 다음 복제체의 명령으로 쓰이지 않기를 바랐다. 서윤은 동의 범위를 문서에 적었다.

그녀는 상필에게 복제체의 생체 기록 보존을 요청했다. 상필은 하루 수명 정책이 임상 승인 조건이라고 답했다. 데이터를 보존하면 복제체를 원본과 구분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였다. 서윤은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록과 인격 동일성은 다른 문제라고 반박했다.

현은 한서의 활동 시간을 보며 다음 작업을 미뤘다. 연구소는 오늘 새 구조 복제체를 배양하려고 했지만, 기억팩 확인 전에는 중단해야 했다. 상필은 일정이 지연되면 다음 구조 훈련이 취소된다고 했다. 현은 그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말했다.

한서는 짧게 웃었다. “내가 하루밖에 못 사는데, 네가 내 시간을 대신 쓰지는 마.”

현은 자신이 결정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한서가 말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본인이 정하도록 했다. 한서는 훈련장 바깥을 보고 싶었지만, 시설을 나가면 보안 규정 위반이 될 수 있었다. 서윤은 안전 구역 안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다.

승인은 거부됐다. 상필은 배양실에서 벗어난 복제체가 연구소 밖으로 나가면 법적 책임이 발생한다고 했다. 한서는 그 말을 듣고 직접 나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창문으로 바깥 훈련장을 보여 달라고 했다. 현은 배양실의 차광막을 걷었다. 한서는 처음으로 연구소 밖의 인공 하늘을 보았다.

그는 색을 설명해 달라고 했고, 현은 실제 하늘과 다르다고 말하며 정확히 묘사했다. 한서는 짧은 시간 동안 그 풍경을 지켜봤다.

폐기 카운트다운은 0에 가까워졌다. 화면에는 마지막으로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원본은 아직 안에 있어.”

서윤은 한서에게 지금도 선택을 바꾸고 싶으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녹음은 중단할 수 있고, 이름도 번호로 되돌릴 수 있었다. 한서는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말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깨어날 누군가가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내가 나라는 걸 기록해 주세요. 다음 사람을 나라고 부르지는 말고요.”

현은 그 요청을 기록 양식의 제목에 적었다. 복제체의 생체 데이터는 자동 폐기되지만, 동의한 말은 별도의 증언으로 남길 수 있었다. 서윤은 보관 기간과 열람 권한을 설명했고, 한서는 본인이 사망한 뒤 연구소가 자료를 공개하기 전에 윤리 심사를 거치도록 요청했다.

폐기 절차는 멈췄지만, 한서의 몸은 계속 쇠약해졌다. 현은 연명 장비를 연결할 수 없다는 규정을 다시 확인했다. 한서는 그 규정을 알고 있었고, 연장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시간에 바깥 하늘을 보고 싶다고 했다. 창문이 없다는 걸 확인한 현은 조명 패널을 천천히 밝게 조절했다.

현은 조명 패널을 밝히는 손을 멈췄다. 한서가 바깥을 본다고 해서 하늘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복도 끝의 훈련장 조명은 차광막에 흐릿한 푸른색을 비췄다. 서윤은 의자를 침상 가까이 가져왔다. 한서는 앉은 채로 보는 편이 좋다고 했다. 현이 받침대를 밀자 바퀴 하나가 걸렸다. 한서는 직접 손을 뻗어 풀어 보려 했고, 손끝은 손잡이에 닿지 못했다. 현이 대신하려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요. 이건 내가 해 볼게요.”

한서는 왼손으로 침대 난간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숨이 짧아졌고 모니터의 경고음이 빨라졌다. 서윤이 산소 공급량을 높이려 했지만 그는 눈으로 먼저 물었다. 더 버티는 게 자신의 선택인지 확인하는 눈이었다. 서윤은 장비를 건드리지 않고 기다렸다. 한서는 팔에 힘을 주어 침상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 짧은 동작 뒤에 땀이 맺혔다.

현이 훈련장 조명을 한 단계 올렸다. 차광막 너머로 낮은 인공 구름과 안전 그물이 보였다. 한서는 구름 모양을 묻고, 현은 장비를 시험할 때마다 같은 위치에서 멈추는 조명이라고 알려 줬다. “그러면 저건 날씨가 아니라 고장 난 장치네요.” 한서는 웃었다. 그가 웃는 사이 경고음은 다시 느려졌다. 그는 잠깐 더 보기로 했고, 서윤은 그 선택을 활동 기록에 적었다.

폐기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았지만, 현은 화면을 침상 쪽으로 돌려 놓았다. 한서는 숫자를 보지 않아도 남은 시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음성 기록을 들려 달라고 했다. 녹음 속 목소리는 현재보다 또렷했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낯선 사람처럼 들렸다. 한서는 중간에 멈추지 말라고 했다. 끝까지 들은 뒤, 파일 이름에 자기 이름이 적혔는지 직접 확인했다. “됐어요. 다음 사람에게 이걸 들려주진 마세요. 다음 사람은 그 사람의 말을 해야 하니까.”

서윤은 동의서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 주었다. 한서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은 파일을 보존함에 넣고, 복제체 폐기 로그가 자동으로 지워지는 것을 지켜봤다. 화면에 뜬 미승인 문장은 지워지지 않았다. 한서는 차광막 너머의 푸른 빛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꿈에서 본 문이 아니라 자신이 본 풍경을 기록해 달라고 했다. 현은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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