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매일 새벽 백업된다

2화: 복구되지 않는 사람
한규는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관제실로 달렸다.
병원 전력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응급실의 보조 발전기가 7초 동안 과부하를 견뎠다. 의사들은 환자가 다치지 않았다고 했고, 배지민은 복구망이 예정된 복구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규는 로그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지민은 종이를 받아 읽었다. “이 글씨를 누가 썼는지 알아?”
“윤서아라고 했어.”
“기록에는 없어.”
“사람이 기록에 없다고 없는 건 아니야.”
지민은 한규를 노려보았다. “그 말, 네 동생 일 이후로는 네가 제일 싫어했잖아.”
재민은 15년 전 지하차도 침수 때 구조 요청을 보냈다. 도시 백업망이 시범 운영 중이어서 교통 경보와 배수 장치는 복구됐지만, 재민이 보낸 무전 기록은 서버 오류로 사라졌다. 그의 시신은 찾았지만, 마지막 통화의 내용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한규는 오류를 고치며 그 밤을 되풀이하는 기분으로 살아왔다.
“서아가 동생 이름을 알고 있었어.”
“누군가 네 과거를 조사했을 수 있어.”
“그 사진은 15년 뒤 날짜였어.”
지민은 사진이 가짜일 수 있다고 했다. 한규는 진위를 조사하려면 사진 원본을 확보해야 했다. 그가 통로로 돌아갔을 때 서아는 사라져 있었다. 벤치 아래에는 손바닥 크기의 메모리 조각이 붙어 있었다. 도시 장비에 쓰이지 않는 구형 저장 매체였다.
메모리는 암호화되어 있었다. 한규는 관제실의 격리 단말기로 열어 보았다. 파일 하나가 재생됐다. 화면에는 한규의 얼굴이 조금 늙은 채 나타났다. 그의 왼쪽 손목에는 똑같은 화상 흉터가 있었다. 영상 속 한규는 카메라를 피해 고개를 숙였다.
“만약 네가 이걸 보고 있다면, 백업망은 아직 살아 있겠지. 이 기록은 복구 대상에서 빠져 있다. 서아가 너를 찾을 거야. 그 애가 딸이라고 말하면 믿지 마. 그리고 믿지 말라는 내 말도 믿지 마.”
영상이 끝나기 전 경보가 울렸다. 외부 단말기가 저장 매체를 읽으려는 접근을 감지했다. 지민은 즉시 연결을 끊으라고 했다. 한규가 플러그를 뽑자 화면이 꺼졌다. 메모리는 뜨거웠다. 데이터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마지막 4초가 손상됐다.
그때 오도현이 관제실 문을 열었다. 그는 시민 기록 보존 활동가로, 백업에 삭제된 출입 기록을 수집하고 있었다. 지민은 출입 권한을 묻고 그를 막아섰다. 도현은 한규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이 여자 본 적 있죠?” 사진에는 서아가 혼자 서 있었다. 찍힌 장소는 한규가 방금 떠난 지하도였다. 날짜는 15년 전.
“그 사진 누가 줬어요?” 한규가 물었다.
“기록 없는 사람을 기록하는 게 내 일이니까.”
“사람을 공개하기 전에 동의를 받아야죠.”
도현은 사진을 거두지 않았다. “이 사람을 찾으면 잃어버린 기록을 찾을 수 있어요.”
지민은 도현을 내보내려 했다. 그때 관제실 화면에 모든 도시 구역의 백업 상태가 떴다. 내일 새벽 복구 예정 목록에 ‘단절 구역 7’이 추가되어 있었다. 구역 7은 15년 전 재난 뒤 봉쇄된 지하차도였다. 재민이 마지막으로 무전을 보낸 장소이기도 했다.
한규는 단말기의 상세 정보를 열었다. 백업의 예약 명령은 시청 서버에서 승인됐다. 하지만 시작 시각은 새벽 3시 17분이었다. 지하도의 오래된 시계가 멈춘 시간과 같았다.
“그 구역은 왜 복구가 필요하죠?” 도현이 물었다.
“안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지민이 답했다.
“아무것도 없다는 기록부터 확인해야 해요.” 한규는 작업복을 집어 들었다.
지민이 그의 앞을 막았다. “현장에 가려면 병원 망의 안전 점검을 마쳐야 해. 지금은 도시 복구가 우선이야.”
“기록이 덮이면 다시는 못 찾아.”
“병원 전력이 흔들리면 환자가 위험해.”
한규는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병원 망을 우회 점검하고, 지하 구역에는 단독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지민은 승인하지 않았다. 도현은 출입문을 열고 먼저 나갔다. 그가 가져온 사진 뒷면에는 다른 글씨가 있었다. ‘재민이 문을 열어 줬다.’
한규는 동생이 누구에게 문을 열어 줬는지 몰랐다. 그의 손이 떨렸다. 지민은 그에게 출동 위치를 묻고, 안전 동행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한규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새벽 3시 전에 지하차도에 도착했다. 출입문은 쇠사슬로 잠겨 있었지만, 안쪽에서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규는 쇠사슬을 자르려는 도현을 말렸다. 먼저 구조 신호를 확인해야 했다. 문 아래로 오래된 먼지가 밀려 나왔다. 그 사이로 젖은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종이에는 한규의 이름과 함께 낯선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늘도 백업하지 마. 이번에는 내가 안에서 기다릴게.’
그 글씨는 서아의 것이었다. 그리고 종이 맨 아래에는 한규 자신이 쓴 날짜가 있었다. 15년 전, 재민이 사라진 날.
지민은 한규가 적어 둔 날짜를 다시 봤다. 재민의 실종 신고가 접수된 날과 맞았다. 그러나 경찰 기록에는 한규가 현장에 간 흔적이 없었다. 그는 사고 다음 날부터 구조망 유지보수 교육을 받았고, 그 사이 재민의 방은 가족이 정리했다. 한규는 늘 그때 자신이 병원에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 종이가 네 글씨라면, 네가 직접 썼을 수도 있어.” 지민이 말했다.
“내가 그날 거기 갔다고?”
“사고 뒤에 기억이 흐려졌을 수 있잖아.”
“내가 동생을 버리고 나왔다는 뜻일 수도 있고.”
지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한규는 그 침묵을 답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도시 복구망의 사고 대응 문서를 요청했다. 문서상 구조대는 지하차도에 진입하지 않았고, 수동 잠금 기록도 없었다. 그런데 출입문의 금속 경첩에는 안쪽으로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한규는 기록 대신 흔적을 확인하자고 했다.
그들은 현장 점검으로 돌아갔다. 도현은 이미 쇠사슬을 손대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종이를 보고 “이건 15년 전 종이가 맞아요”라고 말했다. 문서 보존 활동을 하며 오래된 재질을 식별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한규는 그 말을 증거로 삼지 않고, 종이를 전문 감식에 보내겠다고 했다. 도현은 동의했지만 사진 촬영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기록이 사라지면 자신도 믿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문 바깥의 전력 단말기는 정지 상태였다. 한규가 커버를 열자 안쪽에서 눌린 신분증이 나왔다. 이름은 한규가 아니라 ‘김영서’. 재난망 등록에 없는 이름이었다. 사진 속 여자는 서아와 닮았지만 훨씬 어려 보였다. 도현은 신분증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움츠렸다. “이 사람은 내 어머니예요.”
도현은 어머니가 재난 뒤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공식 기록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했지만, 그는 한 번도 이사한 주소를 찾지 못했다. 그가 모은 백업 누락 사례 중 몇 건은 모두 같은 시간대에 발생했다. 지하차도 구조대의 진입 기록이 사라진 시각이었다. 한규는 도현이 서아를 공개하려는 이유를 이해했다. 그가 찾는 것은 유명한 미스터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마지막 장소였다.
“왜 지금까지 내게 말하지 않았어?” 한규가 물었다.
“네가 이 시스템을 고치는 사람이니까. 내가 조작됐다고 생각할까 봐.”
“기록이 없다는 건 조작의 증거가 아니야. 그러니 현장을 더 봐야 해.”
지민은 단말기의 전원을 분리했다. 벽 뒤에서 작게 딸깍 소리가 났다. 잠금장치가 전기 없이도 한 번 움직인 것이다. 한규가 안쪽을 비추자 녹슨 연결선에 새 절연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누군가 최근에 손을 댔다. 도현은 사진을 찍었고, 지민은 조사를 위해 봉인 표식을 붙였다.
그때 관제실에서 긴급 호출이 왔다. 남부 병원의 예비 전력은 계획보다 빨리 소모되고 있었다. 지민이 돌아가야 했다. 한규는 혼자 남겠다고 했지만, 지민은 도현에게 안전 동행을 부탁하고 관제 지시를 받으라고 했다. 도시의 다른 쪽에는 실제 환자들이 있었다. 지하차도의 흔적이 중요해도, 지금 이들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지민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한규에게 수동 복구 키를 건넸다. “새벽 3시 17분 전에 선택해. 시스템이 구역을 덮기 시작하면 나도 멈출 권한이 없어.”
한규는 키를 받았지만 바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문 안쪽에서 다시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두 번, 쉼, 한 번. 재민의 신호와 달랐다. 이번에는 누군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한규는 다른 두드림을 듣고 잠금 해제 레버를 찾았다. 레버는 침수 센서 뒤에 숨겨져 있었고, 당기면 문이 안쪽으로 열린다. 그러나 문 너머의 수압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는 지민에게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무전을 보냈다. 응답은 잡음뿐이었다. 지하 단절 구역은 도시망의 복구 대상에서 제외돼 통신도 약해지고 있었다.
도현이 문에 귀를 댔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두드리고 있어요.”
한규는 손전등을 꺼서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문 아래를 봤다. 틈으로 물이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바람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들은 문을 열어도 물이 쏟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민은 로프를 문틀에 묶고, 도현은 뒤에서 당길 준비를 했다. 한규가 레버를 잡았다. 금속은 차가웠고, 손목의 흉터가 욱신거렸다.
그가 당기자 잠금쇠가 풀렸다. 문은 2센티미터 움직인 뒤 멈췄다. 안쪽에서 누군가 레버를 밀고 있었다. 한규는 힘을 주지 않고 멈췄다. “우리가 문을 열어도 괜찮습니까?”
두드림은 한 번, 쉼, 두 번으로 바뀌었다. 동의인지 구조 신호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 한규는 문을 더 열지 않고, 바깥에서 도착할 구조대에 위치를 알렸다. 그때 관제망에서 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원 전력은 우회했어. 7분 동안은 버틸 수 있어.” 그들은 문을 열지 않고도 기다릴 시간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