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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매일 새벽 백업된다1화

도시는 매일 새벽 백업된다

도시는 매일 새벽 백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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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새벽 세 시의 여자

한규는 도시를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어제의 도시를 다시 덮어쓰는 사람이었다.

밤 열한 시 사십 분, 서울 복구망 관제실에는 따뜻한 커피 대신 냉각 팬의 바람이 돌았다. 한규는 한강 북쪽 구역의 교통 신호를 검사했다. 자정 백업까지 20분. 도로의 신호, 공공 와이파이, 병원 전력 분배는 이전 스냅샷과 비교되어야 했다. 복구망은 물리적인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다. 도시가 망가질 만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기반시설의 상태값을 하루 전 안정된 기록으로 맞췄다. 사람들은 계속 잠들고, 깨고, 늙었다. 신호등과 기록 서버만 전날로 돌아갔다.

“3구역 교차로, 오늘도 같은 오류.” 배지민이 화면을 가리켰다. “새벽 3시 17분에 보행 신호가 11초 빨리 바뀌어.”

“어제도 그랬죠.” 한규가 말했다.

“어제는 어제가 아니야. 백업 뒤에는 데이터가 없어진다고.”

지민은 맞았다. 한규는 같은 오류를 매일 발견했지만, 복구 기록에는 오늘 처음 나타난 것처럼 적혔다. 시스템은 도시를 고쳤고, 고친 일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는 오류 코드를 메모장에 손으로 적었다. 종이는 백업 대상이 아니었다.

관제실 벽에는 재난망 도입 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폭우로 지하차도가 잠기고, 구급차가 교차로에서 발이 묶인 밤이었다. 한규의 동생 한재민은 그 사고의 현장에 있었다. 도시가 백업망을 도입한 뒤 같은 폭우는 여러 번 사전 경보로 막혔다. 한규는 시스템이 사람을 살린다고 믿었다. 틀린 값을 바로잡으면 누군가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자정이 되자 모니터 전체가 푸른색으로 잠겼다. ‘상태 복구 완료.’ 도로의 신호가 이전 스냅샷으로 돌아갔다. 교통 기록은 덮였고, 관제실의 종이만 남았다. 한규는 보행 신호 오류를 다시 확인했다. 11초 빨랐다.

그는 검증을 위해 현장으로 내려갔다. 문제 구역은 오래된 지하 상가와 환승 통로가 만나는 곳이었다. 전광판 시각은 오전 3시 15분. 통로에는 청소 로봇 하나와 막차를 놓친 사람 몇 명이 있었다. 한규가 휴대 계측기를 대자 보행 신호가 켜졌다. 숫자는 정확했다. 그런데 통로 끝의 안내 시계는 3시 17분을 가리켰다.

한규는 시계를 뜯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전원선은 연결되어 있었지만, 시간 서버에 등록되지 않은 장비였다. 기둥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그 시계는 매일 두 분씩 늦어요.”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한규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의 교통카드 기록은 단말기에 없었다. 출입 게이트는 작동했고 통로 카메라도 그녀를 촬영했지만, 얼굴 인식 결과는 빈칸이었다.

“이 구역에 왜 있어요?”

“당신이 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제 이름을 압니까?”

“한규. 왼손 손목에 화상 흉터가 있어요. 재민 씨는 오른쪽 손잡이를 싫어했죠.”

한규가 계측기를 내려놓았다. 동생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묻기 전에, 여자는 손목 시계를 풀었다. 손목 안쪽에는 낡은 밴드 자국이 있었고, 자국 아래에 작은 원형 흉터가 있었다. 그녀는 흉터를 감추듯 소매를 당겼다.

“당신 누구야?”

“윤서아.”

“여기 거주 기록이 없어.”

“그게 이 시스템이 하는 일이잖아요. 기록할 수 없는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한규는 관제실로 돌아가 검색을 시도했다. 서아의 주민 기록, 출입 기록, 병원 기록은 모두 조회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허공에서 생긴 사람일 수는 없었다. 그는 도시 백업 이전까지 거슬러 복구 로그를 열었다. 이상한 건 시스템이 기록을 지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등록된 적이 없었다.

그는 다시 통로로 내려왔다. 서아는 벤치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 앞에 종이컵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따뜻했고, 하나는 이미 식어 있었다. 한규가 컵에 손을 대자 그녀가 물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걸 마셔요?”

“오늘 처음 여기 왔어.”

“당신은 늘 그렇게 말해요.”

서아는 사물함에서 낡은 사진을 꺼냈다. 한규와 젊은 여자가 도시 백업망의 초기 설계실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한규는 사진 속 자신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개발자가 아니라 유지보수자로 입사했다. 사진의 뒷면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42년 6월 19일. 지금보다 15년 뒤였다.

“이 사진을 어디서 구했어?”

“제가 보관했어요.”

“그럼 미래에서 왔다는 얘기야?”

“미래라고 부르면 편하겠죠.” 서아가 말했다. “당신의 딸이에요.”

한규가 웃으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 아이는 없었다. 가족 기록은 백업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이 없다고 존재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는 사진을 빼앗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계측기와 함께 찍었다. 조작 흔적을 확인할 수 있게 데이터 원본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내가 뭘 해야 해?”

“오늘 새벽 백업을 중지해요.”

그 말은 도시의 안전망을 끊으라는 뜻이었다. 지민은 병원 전력과 지하철 신호가 백업에 의존한다고 설명했었다. 한규는 그 위험을 안다고 말했다. 서아는 그 위험도 안다고 했다. 그녀가 멈추려는 것은 복구가 아니라 ‘누가 오류로 분류되는지’를 정하는 기준이었다.

“백업이 작동하면 누군가의 기억이 지워지는 건 아니야.”

“기억은 남아요. 그 사람의 선택을 증명할 기록이 사라지죠.”

서아는 통로 벽을 두드렸다. 오래된 시계가 3시 17분에서 멈춰 있었다. “내일 새벽에도 이 시계는 여기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 이 자리에서 기다렸던 사람은 기록에 없을 거예요.”

한규의 단말기에 지민의 호출이 떴다. 관제실에서 대규모 복구 경고가 발생했다. 도시 남부 병원 전력망이 백업 직후 끊겼다는 신호였다. 한규는 계측기를 들고 계단으로 뛰었다. 서아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가 돌아봤을 때, 벤치는 비어 있었고 종이컵 한 개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다.

병원 전력은 7초 뒤 정상화됐다. 복구망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기록했다. 한규는 현장 로그를 저장하려 했지만 파일은 0바이트였다. 그가 손으로 적어 둔 오류 코드 옆에, 누군가 연필로 한 줄을 더 썼다.

‘내일 같은 자리. 백업 전에.’

그 글씨는 서아의 것이었다. 종이에는 기록되지 않은 시간의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는 메모리 조각을 주머니에 넣은 채 통로를 한 바퀴 돌았다. 기록이 없으면 흔적이 없다고 가정하는 버릇을 고쳐야 했다. 서아가 앉았던 벤치 아래에는 종이컵 받침이 두 장 겹쳐 있었다. 하나는 눅눅했고, 하나는 막 꺼낸 것처럼 따뜻했다. 한규는 손등으로 컵을 건드리지 않고 온도계를 가져왔다. 36도. 사람이 방금 들고 있었던 온도였다. 통로의 카메라 기록에는 빈 벤치만 남아 있었다.

그는 보안 담당자의 호출을 기다리는 대신 현장 주변의 기기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오래된 시계, 자동판매기, 공중전화. 셋 다 복구망에 연결되지 않았다. 공중전화 수화기에는 발신음이 없었지만, 동전 반환구 안에 접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 “재민은 마지막까지 문을 붙들고 있었어”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서아의 글씨인지 확인하려고 사진을 찍고, 손자국을 남기지 않게 투명 봉투에 넣었다.

관제실에서 지민이 내려왔다. 그녀는 메모리를 만지지 않은 채 한규의 설명을 들었다. “이게 진짜라면 도시 백업보다 먼저 확인할 게 있어. 그날 지하차도에 생존자가 더 있었는지.”

“재민이 한 명을 구했을지도 몰라.”

“그럼 왜 기록에 아무도 없어?”

“그걸 찾으려는 거야.”

지민은 보행 신호 오류를 직접 확인했다. 다음 신호까지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은 침수 경보 센서를 열었다. 내부 회로는 말끔했지만, 단말기의 배터리 날짜가 15년 전으로 멈춰 있었다. 누군가 정기 점검 표시를 갱신하면서 실제 전지를 교체하지 않았다. 한규는 단순한 시간 오류가 아니라, 과거 상태로 돌아간 기록처럼 보인다고 했다. 지민은 센서를 떼어내지 말고 현장 상태를 유지하자고 했다.

서아는 그들이 말하는 사이 반대편 계단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빈손이 아니었다. 그녀는 투명한 봉투에 사진을 넣어 가져왔다. 사진 속 지하차도 바닥에는 물이 차 있었고, 뒤편의 비상문에는 한규의 이름이 적힌 낙서가 보였다. 촬영 날짜는 재난 당일이었다. 한규가 사진을 가까이 보려 하자 서아는 봉투를 가슴에 안았다.

“이걸 보면 당신이 기억할 줄 알았어요.”

“기억이 나지 않아.”

“그게 백업이 하는 일이에요. 기억은 남는데, 그 기억이 어디에서 왔는지 연결할 자리를 없애요.”

한규는 사진을 요구하지 않았다. 서아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도 말하지 않으려 했다. 대신 그녀는 내일 새벽 백업이 지하차도 한 구역을 다시 덮을 것이며, 그때 현재 상태를 고정하지 않으면 남은 흔적이 사라질 거라고 했다. 도시 시스템은 물리적인 과거를 되돌리지 않았지만, 문·전력·출입 기록을 그 시점에 맞게 초기화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다시 들어갈 길까지 사라질 수 있었다.

“도시 전체를 끄라는 말은 아니야?” 지민이 물었다.

“한 구역이면 돼요. 하지만 그 구역에 백업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시스템은 그 사람을 오류로 처리할 거예요.”

서아는 손에 든 사진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지하도에서 묻은 것치고는 너무 붉은 흙이었다. 한규는 말없이 손수건을 건넸다. 서아는 받지 않았다.

한규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는 종이컵과 센서, 사진 봉투의 시각을 기록해 관제 시스템 바깥의 저장 장치에 복사했다. 백업이 끝나도 남을 수 있는 데이터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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