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외과 천재의 분초 회귀

4화: 설명되지 않는 표지자
수술실 모니터의 심전도 파형이 한 번 흔들렸다.
정상 QRS 뒤에 가느다란 푸른 선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도윤은 손을 씻던 동작을 멈췄다.
“또 보였나?”
태준이 물었다.
“심전도에서만 나타났습니다. 지금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도윤은 마취과 모니터와 동맥압 파형을 번갈아 봤다. 심박수는 78회. 혈압은 126에 74였다. 박성호의 상태는 안정적이었다.
강민석이 팔짱을 풀었다.
“모니터 선부터 바꾸죠. 환자는 안정적인데 화면 하나로 수술 계획을 흔드는 건 위험합니다.”
“화면 하나만 본 게 아닙니다.”
도윤이 12유도 심전도를 가리켰다. V4에서 V6로 갈수록 QRS 폭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눈에 띄는 부정맥은 아니었지만 수축이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흔적은 남아 있었다.
“심방세동 병력 때문일 수 있습니다.”
민석이 말했다.
“그 설명만으로는 전벽의 수축 지연이 맞지 않습니다.”
태준은 둘의 말을 끊지 않고 화면을 내려다봤다.
“확인 가능한 것만 말해.”
도윤은 경식도 초음파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좌심실 전벽이 수축을 시작하는 순간 중격 쪽의 움직임이 아주 조금 늦었다. 판막 역류가 심해 좌심실이 늘어난 환자에게서 흔히 생기는 변화라고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지연은 반복됐다.
“박성호 씨는 판막 역류가 주된 문제입니다. 다만 심폐기에서 이탈할 때 심방과 심실의 수축이 어긋나면 저출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성형 결과와 전기적 동기화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따로 확인한다는 건?”
“심폐기 유량을 갑자기 줄이지 않고 경식도 초음파와 동맥압을 함께 보겠습니다. 임시 심박동 와이어를 준비하고 전해질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완전 이탈하지 않겠습니다.”
민석이 도윤의 손을 힐끗 봤다. 오른손 검지가 수술복 위에서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 계획을 세운 사람이 바늘을 잡을 수는 있겠습니까?”
수술실의 소음이 한순간 작아졌다.
도윤은 손을 내려다봤다. 떨림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태준이 모르면 안 되는 정도였다.
“지금은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는 말은 수술 중에 바뀔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태준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도윤아. 손이 흔들리면 숨기지 마라. 네가 집도를 맡는 건 내가 네 상태와 환자 위험을 함께 보고 결정한다.”
도윤은 하린의 얼굴을 떠올렸다. 혼자 알아낸 사람처럼 굴면 또 같은 방식으로 무너질 수 있었다.
“떨림이 커지면 바로 알리겠습니다. 민석 선생은 노출과 흡인을 맡고 교수님은 이탈 기준을 보십시오.”
민석의 입술이 굳었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대신 이상 소견을 더 숨기지 마십시오.”
태준은 모니터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시작한다. 푸른 선의 의미는 아직 모른다. 모르는 걸 이유로 수술을 멈추지도 말고 아는 척하며 진행하지도 마라.”
흉골을 절개하고 흉곽을 연 뒤 수술야가 확보됐다. 좌심방은 넓어져 있었고 승모판 후엽 가운데가 좌심방 쪽으로 처져 있었다.
“P2 탈출입니다. 건삭 하나가 끊겼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과 일치한다. 판륜을 먼저 확인해.”
심폐기가 연결되면서 동맥압 파형이 기계적인 리듬으로 바뀌었다. 심장은 차가운 심정지액을 받아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모니터는 전기적 지연에 관한 답을 줄 수 없었다.
도윤은 후엽의 처진 부위를 들어 올렸다. 끊어진 건삭 주변의 조직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석회화가 넓지는 않았다.
“성형 가능합니다.”
“판단 근거는?”
“후엽의 움직임이 남아 있고 접합면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치환으로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도윤은 인공 건삭을 걸 위치를 표시했다.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힘으로 눌러 없애려 하지 않았다. 팔꿈치를 수술대에 기대고 호흡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민석이 흡인관의 위치를 바꾸며 말했다.
“장력은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실 끝이 시야를 가리면 말하세요.”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도윤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건삭 길이 18밀리미터. 여기서 잡겠습니다.”
태준이 그의 손을 지켜봤다.
“천천히.”
도윤은 바늘을 통과시켰다. 손이 멈추는 순간마다 수술실의 소리가 또렷해졌다. 흡인기의 낮은 진동과 심폐기의 회전음과 마취과 모니터의 알람 대기음이 각각 다른 방향에서 들려왔다.
두 개의 인공 건삭을 고정하고 판륜 성형 링을 걸었다. 태준이 매듭의 장력을 확인했다.
“좋아. 물을 채워서 접합을 보자.”
좌심실에 식염수를 주입하자 후엽이 전엽과 맞물렸다. 새는 물줄기는 미세했다.
“잔류 역류는 경도 이하로 보입니다.”
마취과 의료진이 경식도 초음파를 확인했다.
도윤은 안도하지 않았다. 판막이 닫히는 것과 심장이 피를 내보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체온 올리기 시작합니다. 이탈 전에 전해질 결과를 다시 주세요.”
그는 임시 심방 심박동 와이어를 잡았다. 이 와이어가 수술 뒤 심장의 박동을 대신할 수도 있었다.
민석이 도윤의 손목 가까이에서 흡인관을 받쳤다. 손 떨림이 바늘 끝에 전달되지 않도록 움직임을 나눈 것이었다.
도윤은 그 사실을 알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심폐기 유량이 서서히 줄었다.
박성호의 심장에 따뜻한 피가 돌아가자 미세한 떨림이 심실 벽을 타고 퍼졌다. 몇 초 뒤 심전도에 느린 파형이 나타났다.
“자발 리듬 나옵니다. 분당 48회.”
“혈압 52에 31.”
도윤은 경식도 초음파 화면을 봤다. 좌심실은 차오르고 있었다. 승모판 역류는 경도였다. 그런데 전벽의 수축이 늦었고 QRS는 넓게 벌어졌다.
“심폐기 유량 유지하세요. 아직 완전 이탈하지 않습니다.”
민석이 말했다.
“판막은 고쳐졌는데 압력이 안 올라옵니다.”
“판막 문제와 전기적 동기화를 분리해서 보겠습니다. 심장이 늦게 수축하고 있어요.”
태준이 유량계를 확인했다.
“전해질.”
“칼륨 3.2, 마그네슘 1.6입니다.”
“보충 지시합니다.”
도윤은 임시 와이어를 연결했다.
“심방 포착부터 확인하고 80회로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자극에 심방 파형이 따라왔다. 그러나 모든 박동이 심실 수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혈압은 48까지 더 떨어졌다.
“포착이 간헐적입니다.”
민석이 말했다.
“심방과 심실의 지연이 길어졌습니다.”
모니터 한쪽에 다시 가느다란 푸른 선이 나타났다. 거의 같은 순간 동맥압 파형도 한 박자 늦게 꺾였다.
도윤의 시선이 화면에 붙었다.
“도윤아.”
태준이 불렀다.
“파형을 쫓지 마라. 환자를 봐.”
도윤은 시선을 경식도 초음파로 돌렸다. 좌심실은 채워지고 있었다. 다만 전벽과 중격의 수축이 서로 다른 속도로 이어졌다.
“저출력의 주된 원인은 잔류 역류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전도 지연으로 박출 타이밍이 어긋난 상태로 보입니다. 심폐기 유량을 유지한 채 보정하겠습니다.”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용량 약물 보조. 심방 박동을 다시 맞추고 2분 뒤 재평가한다.”
약물이 들어가고 마그네슘과 칼륨 보충이 시작됐다. 민석은 시간과 압력을 읽으며 숫자를 불렀다. 도윤은 자극 세기를 조금씩 조절했다.
두 번째 재평가에서 심방 포착이 일정해졌다. QRS는 여전히 넓었지만 혈압은 78에 46으로 올라왔다.
“초음파상 역류 경도. 좌심실 수축은 느리지만 진행됩니다.”
마취과 의료진이 말했다.
태준은 심폐기 유량을 더 줄였다.
“이번엔 절반.”
도윤은 수치를 확인했다. 86에 52. 산소포화도는 안정적이었다.
“이탈 가능합니다. 단 임시 심박동을 유지하고 중환자실에서 계속 감시하겠습니다.”
태준이 마지막으로 도윤을 봤다.
“판막만 고친 게 아니군.”
“판막을 고쳤기 때문에 전기적 문제를 따로 볼 수 있었습니다.”
도윤의 목소리가 잠겼다. 손의 떨림은 아직 남아 있었다.
박성호는 임시 심박동과 약물 보조를 받으며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새벽 두 시를 넘긴 뒤 수술실 문이 닫혔다. 도윤은 그제야 손을 씻는 물줄기 아래서 떨림을 확인했다.
주머니 속 호출기가 울렸다.
“도윤 선생님. 중환자실의 이서진 교수님이 바로 통화해 달랍니다.”
서진은 중환자실 옆 처치실에서 도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린의 침상은 유리문 너머에 있었다. 전극을 새로 붙인 모니터는 정상 리듬을 보이고 있었다.
“하린은요?”
“재발은 없습니다. 그런데 추가 혈액검사에서 이상한 게 나왔어요.”
서진은 출력물을 건넸다. 심근 손상 수치는 전기 충격 뒤에 예상할 수 있는 범위였다. 하지만 추가 분획 검사 아래에 붉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반복 반응성 확인. 일반 심근염 패널로 의미 판정 불가.
“무슨 검사입니까?”
“응급실에서 보낸 검사가 아니에요. 하린의 입원 전 보관 혈청을 검사실에서 다시 돌렸습니다. 같은 반응 밴드가 두 번 나왔어요.”
도윤은 결과지 아래의 채취 시각을 확인했다. 입원 사흘 전 오후 4시 12분. 병원에 오기 전이었다.
“환자나 보호자가 알고 있습니까?”
“연구용 보관 검체에 동의했다는 서류는 있는데 어떤 항목을 검사했는지는 원본을 봐야 합니다. 전산에 넘어온 의뢰서에는 이 코드가 있어요.”
서진이 결과지 가장자리를 짚었다.
R-7 선별군 / 외부 협력기관 의뢰.
도윤의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하린의 모니터에 번졌던 푸른 선과 태준이 보여 준 오래된 기록이 겹쳐졌다.
“표지자가 병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서진이 먼저 말했다.
“현재 위험도도 모릅니다. 다만 환자에게 설명되지 않은 검사가 있었다면 확인해야 해요.”
도윤은 결과지를 접지 않고 다시 펼쳤다.
“재검을 요청합시다. 같은 검체만 돌리지 말고 새 혈액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래 의뢰서와 동의서 원본을 보존해 주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방금 검사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진의 표정이 굳었다.
“박재현 이사실에서 본검사 결과를 보류해 달라고 했어요. 연구 검증 전의 중간 자료라서 공식 차트에 넣으면 안 된답니다.”
도윤은 유리문 너머 하린을 바라봤다. 소녀는 잠든 채였고 모니터의 초록색 파형은 일정했다.
“환자에게 위험할 수 있는 정보를 이사실이 먼저 보류할 권한은 없습니다.”
“위험하다고도 아직 말할 수 없죠.”
“그러니까 더더욱 원자료가 필요합니다.”
서진은 차트에 시간을 기록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시각과 보류 요청을 받은 시각을 나란히 적었다.
“도윤 쌤. 지금 우리에게 있는 건 이상 반응 하나와 R-7 코드 하나예요. 이걸 진단처럼 말하면 하린에게 해가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덮을 수는 없어요.”
도윤은 한참 동안 결과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기록에 있던 푸른 선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박재현이 왜 하린의 시료를 따로 분류했는지도 알아야 했다.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린에게 설명할 수 있는 사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검사실에 원자료 보존 요청을 넣고 환자 보호자에게 추가 채혈과 검사 목적을 설명하겠습니다. R-7은 확인 전까지 진단명이 아니라 의뢰 코드로만 기록하죠.”
서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처치실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세림대병원 이사실이었다.
서진이 수화기를 들었다.
“이서진입니다.”
잠시 듣던 그녀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졌다.
“원자료를 보내 달라고요? 그건 환자안전 기록입니다. 공식 절차로 요청하세요.”
서진은 전화를 끊고 도윤을 바라봤다.
“원본을 지금 넘기라는군요. 그리고 하린의 추가 채혈은 보류해 달랍니다.”
도윤은 유리문 너머 모니터를 보았다. 정상 파형의 끝에서 아주 가느다란 잔선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서진도 그 화면을 놓치지 않았다.
“저 선과 혈액 표지자가 연결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직은 못 합니다.”
도윤은 결과지를 품에 넣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다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서진은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도윤은 수술실에서 빠져나온 손을 다시 바라봤다. 떨림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혼자 붙잡고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