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떠보니 바이오 벙커의 보안 관리자

5화: 봉쇄의 시작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는 일정했다.
하나, 둘, 셋.
서진의 호흡 박자에 맞춰 젖은 공기가 폐포를 드나드는 소리가 등 뒤 어둠 속에서 겹쳐 울렸다. 통제실 바닥재가 미세하게 삐걱거렸다.
서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당황해서 몸을 돌리는 순간 거리가 좁혀진다. 보안 관리 수칙 제4조에 따라 미확인 위협과 조우했을 때는 시각적 확인보다 격리벽 확보를 우선해야 했다.
그는 M-1 통로 입구 안쪽 벽면에 부착된 비상 수동 격벽 레버를 잡았다. 두꺼운 무쇠 손잡이를 체중을 실어 아래로 내리꽂았다.
콰앙!
천장에서 육중한 강철 격벽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닥 홈에 격벽 하단이 깊게 물리며 통제실과 M-1 통로 사이가 물리적으로 차단되었다.
격벽이 닫히기 직전 검은 그림자가 틈새로 짓쳐 들었다.
쾅!
격벽 반대편에서 거대한 충격음이 터졌다. 두께 15센티미터의 합금판이 안쪽으로 부풀어 올랐다. 끼기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발톱이 강철을 긁어내리는 마찰음이 이어졌다.
서진은 수동 잠금 빗장 두 개를 연달아 질렀다. 빗장이 홈에 단단히 박히자 격벽의 요동이 겨우 멎었다.
단말 화면의 표시등이 깜빡였다.
[M-1 통로 입구 격벽 수동 폐쇄]
[통제실 구역 차단 완료]
[격벽 외벽 지속 압력 감지]
손목의 관리자 팔찌가 불규칙하게 진동했다. 피부에 닿은 센서 단자가 서진의 급격한 혈압 상승을 경고하고 있었다. 서진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맥박을 가라앉혔다. 통제실과 연결된 비상 퇴로는 이제 완전히 끊어졌다.
그는 단말기를 들어 대피소 B-7의 수치를 확인했다.
해나와 교신을 시작한 시점에서 26분이 남아 있었다. 격벽을 폐쇄하는 데 이미 8분이 흘렀다. 남은 비상 산소는 약 18분이었다.
바닥의 희미한 백색 유도선이 어두운 통로 안쪽으로 뻗어 있었다. 1퍼센트 전력을 소모해 켜둔 최소 경로 표시선이었다. 전력 잔량은 여전히 13퍼센트였고 냉동 수면실 냉각등도 안정적이었다.
M-1 통로는 성인 한 명이 겨우 걸을 만큼 좁았다. 배관과 케이블이 얽힌 벽면 곳곳에 10년 전 손톱으로 긁어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치직.
상부 환기 배관 안쪽에서 둔탁한 진동이 울렸다. 배관을 타고 흐르는 냉각수 소리 틈새로 거대한 유기체가 기어가는 박동이 섞여 있었다. 놈은 격벽을 뚫는 대신 환기 덕트를 통해 전방으로 우회하고 있었다. 공기 흐름을 쫓아 통로 반대편 출구를 노리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서진은 보폭을 넓혀 통로를 질주했다. 통로 끝에 이르자 둥근 원형 강철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수동 압력문 A-12]
[연구 1구역-연구 2구역 연결 경계]
M-1 통로 쪽 기압은 0.98기압이었지만 문 너머 연구 2구역의 기압은 0.71기압이었다. 기압 차이로 인해 수동 핸들이 굳게 물려 있었다.
통로 벽면 스피커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치이익.
《연구 2구역과의 차압 0.27기압이 확인되었습니다. 강제 개방 시 에어락 파손 확률 84퍼센트입니다.》
이사벨 렌의 음성이었다.
《관리자 권한 백업 복구를 승인하십시오. 자동 차압 조절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거절한다. 수동 조작으로 해결한다.”
《승인을 거부할 경우 윤해나 연구원의 생존 확률은 12퍼센트 미만입니다. 잔여 산소 11분 30초입니다.》
“기억 복구는 네 통제권을 살리려는 수단일 뿐이다.”
서진은 문 하단의 배관으로 몸을 숙였다. 다목적 렌치로 수동 균압 밸브의 봉인선을 끊고 손잡이를 돌렸다.
피슈우우욱!
좁은 틈새로 고압 공기가 빠져나가며 파열음이 통로를 채웠다. 통로 쪽 공기가 연구 2구역으로 빨려 들어가며 기압이 변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배관 표면에 하얗게 성에가 얼어붙었다. 쇳덩이를 뚫고 전해지는 한기가 장갑 속 손가락을 얼얼하게 파고들었다.
쇄골 아래의 수술 흉터가 기압 급변으로 욱신거렸다. 서진은 통증을 참으며 밸브를 쥐었다. 압력 바늘이 서서히 노란색 균형 영역으로 내려앉았다.
0.85, 0.80, 0.74.
양쪽 압력이 평형을 이루자 배출음이 잦아들었다. 문 경첩의 1단계 수동 봉인 레버는 이미 내려가 있었다. 해나가 약속대로 안쪽 잠금을 한 단계 풀어둔 것이었다.
철컥!
서진이 중앙 핸들을 힘껏 젖히자 기어가 돌아갔다.
[A-12 압력 평형 완료]
[연구 2구역 환경: 저산소 상태]
[B-7 비상 산소 잔량: 07분 18초]
원형 강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싸늘하고 메마른 공기가 훅 끼쳐왔다. 염소 소독약 냄새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공기였다.
연구 2구역 복도는 처참했다. 깨진 배양관 유리 파편이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고 검붉은 점액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서진은 총기를 당겨 쥔 채 사각지대를 관찰하며 빠르게 전진했다.
모퉁이를 돌자 비상 대피소 B-7의 해치가 나타났다. 해치 상단의 경보등이 붉은빛을 깜빡였다.
삐- 삐- 삐-
산소 고갈 전자음이 가늘게 울렸다. 외부 산소 농도는 이미 12퍼센트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서진은 해치 앞으로 달려가 주먹으로 철판을 두드렸다.
탁. 탁-탁.
보안 지침에 규정된 관리자 식별 신호였다.
“윤해나. 보안 관리자 한서진이다. 문을 열어.”
내부에서 미약한 마찰음이 바닥을 긁었다.
“해나. 들리면 잠금을 풀어.”
안쪽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빗장이 떨리는 소리가 났다. 무거운 몸을 바닥에 끌며 다가오는 기척이었다.
철컹.
쇠 빗장이 아래로 떨어졌다. 서진은 즉시 외부 레버를 젖히고 해치를 열었다. 희박한 공기가 빠져나오며 바닥에 쓰러진 윤해나가 보였다.
대피소 내부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벽면에 부착된 소형 산소 공급기 게이지는 이미 붉은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고 바닥에는 비어 있는 식량 팩 몇 개가 뒹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버텨온 처절한 흔적이었다.
먼지 묻은 청색 연구복과 오른쪽 눈 아래의 작은 점 그리고 창백하게 질린 입술. 그녀는 마스크 연결부가 끊어진 빈 산소 튜브를 손에 쥐고 있었다.
서진은 무릎을 꿇고 그녀의 상체를 받쳤다. 맥박이 매우 약하고 빨랐다. 저산소증으로 인한 혼수 전조였다.
서진은 허리 파우치에서 비상 보조 산소 팩을 꺼내 마스크를 해나의 입에 밀착시켰다.
“해나. 숨 쉬어. 깊게 들이쉬어.”
차가운 입술 사이로 고농도 산소가 밀려 들어갔다.
쿨럭! 쿨럭쿨럭!
해나가 격렬하게 기침을 터뜨리며 몸을 뒤틀었다. 감겨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들어 올려졌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서진의 얼굴에 멎었다.
서진의 짧게 깎은 머리와 왼쪽 손목의 관리자 팔찌가 비쳤다. 해나의 눈동자가 경악과 분노로 흔들렸다.
“……한서진?”
목이 완전히 갈라져 쇳소리가 나왔다.
“정신이 드나. 구조하러 왔다.”
그러나 해나는 불에 닿은 것처럼 서진의 팔을 거칠게 밀쳐냈다.
“손 치워!”
해나는 벽을 등지고 물러서며 서진을 노려보았다.
“정말 네가 왔어. 뻔뻔하게 그 얼굴로 걸어 들어왔어.”
“대피소 산소가 끝났다. 여기서 나가야 해.”
“나가?”
해나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닫았잖아. 십 년 전 봉쇄 0시에 전 구역 비상 차단벽을 네 손으로 내렸다고!”
해나의 떨리는 손가락이 서진의 관리자 팔찌를 가리켰다.
“우리가 살려달라고 애원했어. 복도에 갇혀서 격리문 유리창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고. 그런데 넌 통제실 모니터로 우릴 내려다보면서 차단 레버를 끝까지 잠가버렸어!”
서진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통제실에서 보았던 첫 번째 기억 잔상이 해나의 말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살균 가스가 터져 나올 때 네가 마지막으로 한 짓이 뭔지 알아?”
해나의 목소리가 울분에 젖어 갈라졌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1번 출구 엘리베이터 동력 케이블을 잘라버렸어. 단 한 명도 나가지 못하게 시설 전체를 관짝으로 만들었다고!”
서진은 왼쪽 쇄골의 수술 봉합 흉터를 매만졌다. 0시 기록과 11분의 공백. 그는 기억 상실을 핑계로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 명령은 내가 내린 것이다. 책임도 내가 진다.”
“책임? 네가 무슨 수로 책임을 져! 죽은 동료들이 살아 돌아와?”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살아 있다.”
서진이 해나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내가 문을 닫았다면 이번에는 내가 연다.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해나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그때였다.
쿠구구궁!
방금 통과해 온 압력문 A-12 쪽에서 거대한 진동과 함께 폭음이 터졌다. 벽면 배관들이 터지며 고압 증기가 뿜어 나왔다. 덕트를 타고 우회했던 미등록 생체 신호가 A-12 상부 격벽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서진의 단말기가 붉은빛을 토해냈다.
[경고: 통로 M-1 구조적 붕괴 발생]
[A-12 경계 구역 완전 차단]
[통제실 방면 복귀 경로 소실]
콘크리트 분진과 매캐한 타는 냄새가 복도로 밀려들었다. 뒤엉킨 고전압 전선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며 시커먼 연기를 뿜어냈다. 통제실의 센서 감시도 M-1의 경로 표시도 이제는 완전히 끊어졌다.
M-1 통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콘크리트 잔해와 뒤엉킨 전선이 통로를 틀어막았다. 통제실로 돌아가는 길은 사라졌다.
해나가 품속에서 방수 씰로 밀봉된 은색 연구 데이터 캡슐을 꺼내 쥐었다.
“복귀로는 막혔어. 소리를 듣고 다른 것들이 몰려올 거야.”
서진은 머릿속으로 지도를 펼쳤다. 4구역과 5구역은 오염이 심각했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3구역으로 내려간다. 식당과 보급 창고가 있는 구역이다. 식량과 물을 확보하고 우회로를 찾는다.”
해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거긴 경비 구역이야. 네가 십 년 전에 켜둔 자동 방어 드론들이 보급 창고를 지키고 있어. 접근하는 생명체는 전부 벌집으로 만드는 살상 수칙이 살아 있다고.”
서진은 차갑게 식은 관리자 팔찌를 쥐었다.
“내 권한으로 해제한다.”
“네 권한이 안 먹히면?”
“부순다.”
서진이 손전등을 켜 복도 끝을 비추었다.
멀리 3구역으로 이어지는 철제 비상문 너머에서 규칙적인 모터 구동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붉은색 탐색 광선 하나가 어두운 바닥을 천천히 훑으며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