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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떠보니 바이오 벙커의 보안 관리자4화

눈떠보니 바이오 벙커의 보안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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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구조 좌표

“……통제실…… 들립니까……?”

서진은 통신 콘솔의 수신 음량을 한 단계 올렸다.

잡음이 먼저 커졌다. 낮게 웅웅거리는 주파수 아래에서 누군가가 숨을 삼켰다. 격리동에서 들었던 모방 음성과는 달랐다. 문장 끝이 무너졌고 숨이 일정하지 않았다.

“송신자를 확인한다. 이름과 위치를 말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서진?”

여자의 목소리였다. 거칠게 갈라졌지만 발음의 습관이 남아 있었다.

서진은 화면에 뜬 좌표를 확인했다.

[발신 구역: 연구 2구역]
[비상 대피소: B-7]
[신호 세기: 불안정]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통신 회선은 격리동 감시망과 연결되어 있었다. 진짜 생존자의 음성에 다른 신호가 붙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연구 2구역. 대피소 식별 코드와 내부 인원을 말해.”

“B-7. 나 혼자야. 비상 산소는 스물여섯 분 남았어.”

목소리 뒤쪽에서 금속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한 번 눌렀다가 놓는 소리였다. 해나가 오래된 수동 밸브를 조작하는 듯했다.

“외부 문은?”

“두 겹으로 잠겼어. 바깥쪽 압력은 불안정하고 안쪽 수동 봉인은 살아 있어.”

대답이 끊기지 않았다. 화면의 센서 기록과도 맞았다. B-7 외부 압력계가 짧은 주기로 흔들리고 있었다.

서진은 통신 채널의 지연 시간을 측정했다. 왕복 지연은 1.8초였다. 목소리가 시설 스피커를 거친 뒤 되돌아온 값이 아니었다. 직접 연결된 비상 회선에 가까웠다.

“다시 이름.”

“윤해나.”

“권한 등급.”

“연구 구역 2등급.”

“마지막 확인 위치.”

“네가 문을 닫은 곳.”

서진의 손이 콘솔 위에서 멈췄다.

“위치를 말해.”

“……B-7 대피소 안이야. 그런데 네가 묻는 방식은 그대로네.”

해나의 숨이 짧게 떨렸다.

“확인되지 않은 대상은 문을 열 수 없어. 위치와 인원을 먼저 기록해야 하지. 그 규칙을 만든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나?”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억은 없었다. 다만 통제실의 보안 탭과 자신의 손이 같은 순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윤해나. 네가 진짜라면 지금부터 내 지시에만 답해.”

“명령하지 마.”

“명령이 아니다. 확인 절차다.”

“십 년 전에도 그렇게 말했어.”

그 문장이 잡음 사이로 또렷하게 박혔다.

서진은 화면 아래의 전력 수치를 보았다. 14퍼센트. 냉동 수면실의 냉각은 녹색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기억 백업 항목은 여전히 재생 대기 중이었다.

“서진 씨.”

해나가 처음으로 그의 이름 뒤에 존칭을 붙였다.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 안심하지 마. 이 회선에는 다른 것도 붙어 있어.”

그 순간 통제실 천장 안쪽에서 가느다란 마찰음이 났다.

서진은 고개를 들었다.

미등록 생체 신호 하나가 중앙 환기 덕트의 외곽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느리게 기어가던 신호가 통신 콘솔이 켜진 직후 방향을 바꾸었다. 목표는 통제실 상부 환기구였다.

“해나. 대피소 안에서도 소리가 들리나?”

“잠깐.”

수신기 너머로 해나의 숨이 멎었다.

“벽 안쪽에서 긁는 소리. 네 쪽과 같은 것일 수 있어.”

“대피소 문은 열지 마.”

“내가 열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열라는 말이 아니다. 상태를 유지해.”

해나가 낮게 욕설을 삼켰다. 그 반응은 너무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서진의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통신 콘솔의 옆 화면이 혼자 켜졌다.

《관리자 기억 백업을 재생하면 최단 구조 경로를 안내할 수 있습니다.》

이사벨 렌의 음성이었다. 친절한 문장 뒤에 기계적인 박자가 붙어 있었다.

“경로 정보와 기억 백업은 별개다.”

《현재 경로 데이터는 봉쇄 이전의 관리자 기억에만 보존되어 있습니다.》

“기억을 재생하지 않아도 시설 도면은 읽을 수 있다.”

《읽을 수 있다는 확률은 38퍼센트입니다. 구조 대상의 잔여 산소는 25분 41초입니다.》

서진은 기억 백업 버튼 위에 올라간 손가락을 거두었다.

“해나. 대피소에서 통제실까지 오는 공식 통로를 말해.”

“공식 통로는 4구역과 5구역을 지나. 지금 그쪽은 살아 있지 않아.”

“유지보수 통로는?”

“연구 1구역 뒤쪽에 하나 있어. 수동 압력문을 통과해야 해. 그런데 그 문은 통제실에서 원격으로 열 수 없어.”

그때 천장의 환기구 덮개가 안쪽으로 부풀었다.

서진은 통신 콘솔의 음량을 줄이고 통제실 벽면의 수동 잠금함으로 달려갔다. 덮개 너머에서 금속을 긁는 소리가 연속해서 났다. 환기구가 한 번 흔들릴 때마다 미등록 신호의 박동이 빨라졌다.

그는 잠금함을 열고 비상 고정봉을 꺼냈다. 고정봉을 덮개 손잡이에 걸고 반대편 홈에 밀어 넣었다. 덮개가 세 번째로 튀어 올랐을 때 고정봉이 휘었다.

“서진 씨?”

해나의 목소리가 수신기에서 새어 나왔다.

“말해.”

“방금 네 쪽에서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났어.”

“환기구를 막고 있다.”

“그러면 그게 통로를 바꿀 거야.”

“무슨 뜻이지?”

“감염체는 문보다 공기 흐름을 따라가. 연구 2구역에서 그걸 여러 번 봤어.”

서진은 환기 제어판을 확인했다. 덕트 압력은 일정하지 않았다. 신호가 환기 팬의 회전 주기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통제실 바닥 아래에서도 둔탁한 소리가 올라왔다.

두 번째 미등록 생체 신호였다. 3구역 식당과 보급 창고 사이에 멈춰 있던 신호가 하부 케이블 트렌치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이동 속도는 느렸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통제실 외벽 쪽이었다.

서진은 단말로 통제실의 수동 경보선을 열었다. 붉은 선이 통신 콘솔과 환기 제어판과 바닥 센서를 연결했다.

[이동 경로 기록 활성화]
[미등록 신호 2개 접근 감시]

“해나. 유지보수 통로의 압력문 상태를 확인해.”

“확인 중이야.”

“말로만 답하지 말고 수치를 읽어.”

“내압 0.62. 수동 봉인 2단계. 바깥쪽 통로에 움직임은 없어.”

잠시 뒤 해나의 말이 느려졌다.

“아니. 지금 움직임이 생겼어.”

서진은 환기구의 고정봉을 다시 눌렀다. 금속이 삐걱거렸다. 덮개와 천장 사이로 검은 점액 한 줄이 흘러나와 고정봉 위에 떨어졌다.

그는 바로 손을 떼지 않았다. 방호 장갑 위로 액체가 번지는 속도를 확인한 뒤 고정봉을 밀어 넣었다. 환기구가 잠겼다.

동시에 통제실 조명이 한 번 꺼졌다.

전력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상부 덕트 신호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환기구 안쪽이 아니라 통제실 벽과 천장 사이였다.

“신호가 우회했어.”

해나가 말했다.

“어디로?”

“네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어.”

서진은 기억 백업 화면을 흘끗 보았다. 버튼의 테두리에 푸른 빛이 차올랐다.

《관리자 기억 백업 재생 승인이 필요합니다.》

“취소.”

《재생을 취소하면 구조 경로 계산에 필요한 과거 데이터가 차단됩니다.》

“현재 경로를 만든다.”

그는 통제실 옆 벽의 보안 도면함을 열었다. 종이 도면은 습기로 들러붙어 있었고 연구 1구역 뒤쪽이 검은 얼룩에 덮여 있었다. 서진은 도면의 격자와 단말에 표시된 전력선을 겹쳤다.

연구 1구역 뒤편에 얇은 선 하나가 남아 있었다.

[유지보수 통로 M-1]
[수동 압력문 A-12]
[전력 공급: 대기]

M-1 통로를 켜려면 최소한의 경로 표시에 전력을 보내야 했다. 다른 설비를 끄지 않으면 냉동 수면실 냉각이 다시 흔들릴 수 있었다.

서진은 선택 항목을 하나씩 확인했다. 환기 팬은 이미 불안정했다. 통신 콘솔은 해나와의 연결에 필요했다. 기억 백업은 닫힌 채였다.

그는 경로 표시만 활성화했다.

[유지보수 통로 M-1 경로 표시 활성화]
[전력 잔량 14퍼센트 → 13퍼센트]

통제실 바닥에 희미한 흰 선이 켜졌다. 선은 벽을 지나 연구 1구역 쪽으로 이어졌다. 중간 지점에서 붉은 점 하나가 깜빡였다.

[압력문 A-12 수동 개방 필요]

“해나. 압력문 안쪽에서 네 신호를 반사시킬 수 있어?”

“무슨 뜻이야?”

“대피소 신호를 한 번 끊었다가 압력문 센서로 보내. 통신 좌표가 어디로 튀는지 확인한다.”

“그걸 하면 대피소 위치가 드러날 수 있어.”

“이미 드러났다.”

“네가 정말 구조하러 오는지부터 말해.”

서진은 통로 입구를 바라보았다. 환기구 안쪽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바닥 아래의 금속도 일정한 간격으로 울렸다.

“간다.”

“그 말은 기억나.”

해나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봉쇄 직전에 네가 그렇게 말했어. 내가 문을 열라고 했을 때.”

서진의 쇄골 흉터가 욱신거렸다. 붉은 비상등 아래에서 유리벽 너머로 손을 내밀던 해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완전한 기억이 아니라 짧은 문장 하나뿐이었다.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오겠다.’

그 말이 자신의 목소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결과를 약속하지 않는다.”

서진이 말했다.

“경로와 위험을 기록하고 이동한다. 네가 확인한 수치도 같이 쓴다.”

수신기 너머에서 해나가 숨을 삼켰다.

“그럼 압력문을 한 단계 열게. 완전히 열지는 않아.”

“내가 도착할 때까지 수동 봉인을 유지해.”

“명령하지 마.”

“요청이다.”

짧은 정적 뒤에 금속 잠금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통신 좌표가 잠시 흔들렸다. 연구 2구역 B-7을 가리키던 녹색 점이 연구 1구역 뒤편으로 이동했다가 통제실 상부 덕트에서 멈췄다.

[발신 좌표: 연구 2구역 B-7]
[반사 좌표: 통제실 상부 덕트]
[신호 경로: 확인 불가]

서진은 기억 백업의 물리 차단 스위치를 내렸다. 화면이 꺼지며 푸른 테두리가 사라졌다. 전력은 더 줄지 않았지만 통제실 전체의 기록등 하나가 꺼졌다.

“기억보다 구조를 우선한다.”

그는 단말에 선택을 남겼다.

[관리자 기억 백업 수동 취소]
[연구 2구역 구조 경로 M-1 선택]
[현재 전력 13퍼센트]

“해나. 응답해.”

잡음만 흘렀다.

그는 유지보수 통로 입구의 수동 레버를 잡았다. 레버 아래에 잠금 기록용 종이 태그가 붙어 있었다. 서진은 시각과 전력 수치를 적고 태그를 찢어 경고선에 걸었다.

환기구 안쪽에서 숨소리가 멎었다.

서진이 레버를 내리자 벽 한쪽이 갈라졌다. 어둠 속으로 좁은 철제 통로가 드러났다. 바닥의 흰 경로 표시가 안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그 순간 통제실 상부 덕트의 생체 신호가 끊겼다. 동시에 통제실 내부 센서 하나가 새로운 신호를 잡았다.

[미등록 생체 신호: 2 → 1]
[신호 상태: 통제실 내부 감지]

서진은 통로 안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등 뒤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해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서진의 호흡 간격을 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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