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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떠보니 바이오 벙커의 보안 관리자3화

눈떠보니 바이오 벙커의 보안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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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첫 번째 잔상

통제실의 두꺼운 방폭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닫혔다.

문틈 사이로 스며들던 긁는 소리와 기괴한 목소리가 단번에 끊겼다. 전실과 통로를 채우고 있던 서늘한 기운 대신 기름 냄새와 타버린 먼지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서진은 문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골랐다. 왼쪽 쇄골의 봉합 흉터가 욱신거렸다.

“전실 차단 완료.”

혼잣말로 절차를 읊으며 손목 단말을 확인했다.

전력 잔량 15퍼센트. 산소 31일 치. 식량 47일 치.

변하지 않은 숫자들 사이에서 유독 한 구역의 표시등이 붉은빛 섞인 노란색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냉동 수면실: 냉각 순환 압력 저하]
[보존 캡슐 내부 온도: 영하 14도 → 영하 9도 상승 중]
[경고: 영하 4도 도달 시 생체 조직 손상 개시]

격리문 패널의 권한 모사를 막으려 전원선을 끊은 대가였다. 캡슐 안에는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이 잠들어 있었다. 인원 목록에는 자신뿐이었지만 열두 개 캡슐 중 일부에는 분명 미약한 생체 신호가 흐르고 있었다.

서진은 통제실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앙 콘솔의 대형 모니터 세 대가 푸르스름한 잔광을 뿜어냈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키보드 위로 굵은 글씨 두 줄이 깜빡였다.

[관리자 기억 백업: 재생 준비]
[미등록 생체 신호: 2]

기억 백업.

단어 하나가 서진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10년 동안 벙커가 닫혔는지 봉쇄 0시의 11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 단추 하나면 확인할 수 있었다.

손가락이 엔터 키 위에 닿았다.

하지만 누르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과거를 향한 갈증보다 눈앞의 노란 경고등이 먼저였다.

“관리자의 첫 번째 책무는 시설과 인원의 보존이다.”

가르쳐 준 적 없는 원칙이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기억은 살아남은 뒤에 찾아도 늦지 않았다. 캡슐의 냉각이 꺼지면 안에 잠든 사람들은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한다.

서진은 엔터 키에서 손을 떼고 보조 콘솔로 시선을 돌렸다.

미등록 생체 신호 둘의 위치를 먼저 확인했다. 격리동 안에서 들리던 세 겹의 불규칙한 신호와는 달랐다.

첫 번째 신호는 통제실 상부를 지나는 중앙 환기 덕트 외곽에서 천천히 기어가듯 움직였다. 박동수가 인간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느렸다. 두 번째 신호는 3구역 식당과 보급 창고로 이어지는 하부 통로 구석에 멈춰 있었다.

둘 다 통제실로 즉각 침입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덕트 차단 밸브 정상. 하부 통로 차단벽 닫힘.”

서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다. 대신 콘솔 하부의 철제 덮개를 열었다. 굵은 먼지와 함께 기침이 터져 나왔다.

안쪽에는 벙커 전력을 수동 제어하는 비상 배전반이 있었다. 10년 동안 굳어버린 그리스와 녹이 단자마다 엉겨 붙어 있었다.

주 차단 레버는 ‘오프라인’ 위치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말의 조명을 비추자 손잡이에 강한 충격으로 비틀린 자국이 드러났다. 누군가가 억지로 레버를 부러뜨리려 했던 흔적이었다.

“강제로 당기면 단자가 부러진다.”

손잡이가 부러지면 통제실 전원선이 완전히 끊긴다. 보조 라인을 수동으로 바이패스 결선해야 했다.

배전반 구석에 예비용 구리 접점 케이블 두 가닥이 걸려 있었다. 피복은 굳었지만 심선은 온전했다.

문제는 부하였다. 남은 15퍼센트의 전력망은 불안정했다. 부하 균형 없이 연결하면 서지 전압이 발생해 캡슐 제어 기판을 태워버릴 수 있었다.

각 구역의 실시간 전력 소모량을 정밀하게 읽어야 했다.

서진은 왼손의 관리자 팔찌를 바라보았다. 푸른 표시창이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감시망 동기화.

카메라와 센서뿐 아니라 전력선과 압력 도관까지 하나의 신경망처럼 읽어내는 기능이었다. 머리 한구석에 묵직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90초를 넘기지 마라.’

뇌리에 박힌 경고를 되새겼다.

“30초 안에 끝낸다. 전력 부하만 확인하고 끊는다.”

서진은 배전반 진단 단자에 관리자 단말의 연결선을 꽂았다. 팔찌와 단말이 맞닿으며 딸깍 소리가 났다.

동기화 버튼을 눌렀다.

순간 시야 전체가 흑백으로 반전되었다.

망막 위로 수천 개의 푸른 회선이 거미줄처럼 펼쳐졌다. 지하 600미터의 입체 배선도가 서진의 뇌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동기화 11초.

통제실 배전반 전압은 190볼트. 냉동 수면실로 향하는 케이블 전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냉각 펌프 회전수가 기준치의 40퍼센트까지 떨어져 있었다.

동기화 23초.

서진은 전력선의 흐름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이상한 점이 보였다. 차단 구역이어야 할 5구역 생체 배양동과 격리동 심부로 미세한 전력이 지속해서 누설되고 있었다.

단순한 누전이 아니었다. 일정한 주기로 맥동하듯 전력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부하가 지하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동기화 34초.

목표로 했던 바이패스 회로의 안전 용량을 확인했다. 보조 배전선 3번과 7번을 연결하면 서지 없이 냉각 펌프를 재가동할 수 있었다.

‘연결을 끊어야 한다.’

서진이 해제 명령을 내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삐이익―.

고막을 찢는 듯한 고주파 잡음이 뇌수를 관통했다.

통제실 메인보드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신호들이 서진의 신경 패턴과 충돌했다. 차단되지 않은 데이터의 급류가 의식을 휘감았다.

단순한 감시망 신호가 아니었다. 10년 전 그 자리에 새겨졌던 신경 기억의 파편이었다.

눈앞의 통제실 벽면이 일그러졌다.

먼지 쌓인 콘솔 대신 새것처럼 번쩍이는 기판들이 나타났다. 붉은 비상등이 사방에서 회전하고 귀가 먹먹할 정도의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경보. 4구역 격리 파괴. 전 구역 긴급 폐쇄 프로토콜 발령.》

공기 중에 매캐한 화학 약품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서진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운 손이 비상 차단 레버를 쥐고 있었다. 손가락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서진아! 안 돼! 문을 내리면 안 돼!”

등 뒤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서진은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잔상 속의 자신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시야 한구석에 흰 연구원 가운을 입은 여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땀에 젖은 머리칼 사이로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보였다. 오른쪽 눈 아래에 찍힌 작은 점.

윤해나였다. 10년 전의 그녀였다.

“이 문을 닫으면 밖에서 아무도 못 들어와! 하지만 안에서도 못 나간다고!”

해나가 피 묻은 손으로 유리벽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녀의 뒤편 어두운 복도에서 사람 형태를 벗어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비명이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기억 속의 서진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

“알고 있어. 그래서 닫는 거다.”

“서진아!”

“여기서 새어나가면 벙커만으로 끝나지 않아. 지상이 끝장난다.”

쾅!

기억 속의 서진이 망설임 없이 비상 차단벽 레버를 끝까지 내렸다. 육중한 강철문이 떨어져 내리며 해나의 절규를 삼켜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암전.

동기화 59초.

기억 잔상 사이로 검은 파동이 침투했다. 뇌 속에서 누군가가 비웃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네가 닫았잖아. 네가 모두를 가뒀잖아.’

격리동 변이체의 쉰 목소리가 기억 잔상과 뒤엉키며 두개골을 쥐어짰다. 관자놀이에서 핏줄이 터질 듯한 격통이 밀려왔다.

입안 가득 비릿한 쇠 맛이 찼다. 잇몸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끊어야 해!’

동기화 71초. 72초.

서진은 온 힘을 다해 왼팔을 휘둘렀다. 단말의 케이블이 단자에서 강제로 뜯겨 나갔다.

푸른 빛망울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시야가 원래의 어둡고 고요한 통제실로 되돌아왔다.

“허억, 쿨럭!”

서진은 콘솔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위액 섞인 침을 뱉어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근육이 경련했다.

두개골을 쪼개는 두통 속에서도 방금 본 장면들이 뇌리에 낙인처럼 남았다.

자신이 문을 닫았다.

도망치기 위해서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재앙이 바깥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료들의 비명을 등 뒤로 흘리며 스스로 문을 잠갔다.

그것이 10년 전 자신이 내린 마지막 보안 명령이었다.

“……하.”

갈라진 신음이 메마른 입술 틈새로 새어 나왔다.

서진은 떨리는 손으로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충격과 혼란이 가슴을 후려쳤지만 바닥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통제실 벽면의 냉각 온도계가 영하 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계치까지 앞으로 2도.

더 지체하면 냉동실 안의 생명들이 죽는다.

서진은 이를 악물고 벽을 짚고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발걸음을 옮겼다. 배전반 하부로 다시 기어들어가 준비해 두었던 구리 접점 케이블을 집어 들었다.

동기화 중에 확인했던 번호가 머릿속에 선명했다.

보조 배전선 3번. 그리고 7번.

그는 케이블의 단자를 수동 결선함에 밀어 넣었다. 구리선 끝이 맞물리며 파란 불꽃이 튀었다. 손가락 끝에 따끔한 전류가 흘렀다.

“바이패스 체결 완료.”

서진은 콘솔 옆에 붙은 보조 전력 스위치를 힘껏 올렸다.

철컥!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통제실 바닥 아래에서 발전 모터가 회전하는 진동이 울렸다.

천장의 먼지가 부슬부슬 떨어졌다.

잠시 깜빡거리던 비상등이 밝아진 주황색 불빛으로 안정되었다.

[비상 보조 전력 활성화]
[냉동 수면실 냉각 루프 정상 압력 도달]
[보존 캡슐 내부 온도: 영하 6도 → 영하 18도 안정화 중]

노란색으로 불안하게 깜빡이던 수면실 표시등이 차분한 녹색으로 바뀌었다.

서진은 길게 숨을 내쉬며 배전반 덮개를 닫았다.

단말 화면을 켜서 자원 변화를 확인했다.

전력 잔량은 15퍼센트에서 14퍼센트로 줄어들었다. 1퍼센트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냉동 캡슐의 위기는 넘겼다. 산소는 여전히 31일 치였고 식량도 47일 치 그대로였다.

서진은 단말의 보안 일지에 짧게 기록을 남겼다.

[통제실 비상 배전 바이패스 연결 완료. 전력 14퍼센트. 수면실 냉각 정상화. 동기화 중 미확인 기억 잔상 유입 확인.]

기록을 저장하자 굳어 있던 손가락에 조금씩 감각이 돌아왔다.

자신이 과거에 무슨 짓을 저질렀든 지금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을 지키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치지직―.

적막하던 통제실 한구석에서 찢어지는 듯한 잡음이 튀었다.

비상 전력이 공급되면서 구석에 꺼져 있던 통신 콘솔의 수신기가 살아난 것이었다.

서진은 번개처럼 몸을 돌렸다.

벽면에 매달린 오래된 스피커가 먼지를 털어내며 진동판을 떨고 있었다. 불규칙한 전파 노이즈 사이로 미약한 주파수 신호가 잡혔다.

치직, 치지직…… 통제실…… 들립니까……?

목소리였다.

격리동 변이체가 흉내 내던 기괴한 음성이 아니었다. 통신 회선의 잡음에 묻혀 뚝뚝 끊어지고 거친 숨소리와 떨림이 그대로 묻어나는 살아 있는 인간의 목소리였다.

……여기는…… 연구 2구역…… 비상 대피소…… 신호가 닿는다면…… 제발 응답해 줘요…… 서진 씨……

서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통신 화면 한쪽에 미약한 발신 좌표가 녹색 점으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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