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떠보니 바이오 벙커의 보안 관리자

2화: 목소리의 주인
서진은 격리문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문을 세 번 두드린 소리가 아직 전실 벽 안쪽에 남아 있었다. 금속을 타고 번진 진동이 발바닥까지 올라왔다.
“한서진.”
이번에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굵었다. 오래 잠긴 목을 억지로 열어 만든 소리 같았다.
“대답해. 안에 사람이 있다.”
서진은 문 아래를 보았다. 어두운 액체가 더는 번지지 않았다. 대신 틈새 안쪽에서 가느다란 김이 흘러나왔다. 격리동 내부 온도는 19도였다. 김이 생길 만큼 차갑지 않았다.
그는 손목 단말을 내려다봤다. 전력 16퍼센트. 산소 31일 치. 격리문 잠금은 이중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생체 신호를 말해.”
“열어 주면 보여 주지.”
“신호를 먼저 말해.”
대답이 없었다.
서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점검구를 다시 열었다. 세 갈래 전선 사이에 얇은 광섬유가 하나 더 끼워져 있었다. 원래 도면에는 없는 선이었다.
광섬유 끝은 격리문 패널 안쪽으로 이어졌다. 오래전에 설치된 선 위로 검은 점액이 굳어 있었다.
문 안쪽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후우.
짧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호흡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숨은 박자가 달랐다. 아주 짧은 숨 두 번이 겹친 뒤 한꺼번에 빠져나왔다.
서진은 단말로 압력 센서를 불러냈다. 문 안쪽 압력은 정상. 공기 흐름은 하나가 아니라 세 방향에서 들어왔다가 한 방향으로 빠지고 있었다.
“사람 하나의 호흡이 아니다.”
그 말이 전실에 떨어지자 문 안쪽이 조용해졌다.
잠시 뒤 같은 목소리가 웃었다.
“그렇게 확인하는 버릇은 그대로네.”
서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버릇이라는 말은 목소리보다 더 낯설었다. 자신이 누구와 함께 일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말에는 오래 지켜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격리동 카메라를 하나씩 불러냈다. 보조 전력을 받은 카메라가 몇 초 간격으로 살아났다. 화면에는 빈 복도와 닫힌 실험실 문이 반복됐다.
세 번째 화면의 구석에서 무언가가 지나갔다.
사람의 어깨처럼 보였지만 벽에서 떨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어둠이 먼저 미끄러지고 그 뒤에 목이 따라왔다. 화면이 밝아지는 순간 그것은 카메라 아래 사각으로 사라졌다.
서진은 카메라 전환 순서를 바꿨다. 이번에는 네 번째 화면을 먼저 켰다. 같은 일이 반복됐다. 어둠이 움직이고 카메라가 따라가면 사각이 비었다.
상대는 카메라가 켜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서진은 전실 벽면에 형광 점검액을 조금 떨어뜨렸다. 이동 통로를 따라 얇은 선을 긋고 격리문 앞에 작은 원을 만들었다. 공기가 움직이면 액체가 흔들릴 것이다.
문 안쪽에서 손톱이 내려왔다.
긁.
긁.
그리고 세 번째 소리 뒤에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붙었다.
“한서진 씨.”
존댓말이었다. 목소리는 낮고 맑았다. 끝음을 아주 조금 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서진은 그 습관을 알 것 같았다.
“윤해나?”
문 너머의 존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긴 문을 사이에 두고 누군가가 입 모양을 연습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맞아. 나야.”
서진은 팔찌의 동기화 버튼을 눌렀다.
푸른 선이 시야를 가로질렀다. 카메라와 압력 센서가 겹쳐지고 격리동의 생체 신호가 맥박처럼 뛰었다.
동기화 12초.
신호는 하나처럼 보였다. 곧 다른 신호가 아래에서 떠올랐다. 불규칙한 심장 박동과 빠르게 수축하는 근육 신호였다. 세 번째 신호는 문이 아니라 벽 안쪽에서 잡혔다.
동기화 29초.
공포가 밀려왔다. 누군가가 좁은 관 안에서 몸을 말고 있었다. 피부를 긁는 손톱 소리와 젖은 숨이 겹쳤다. 그 위로 해나의 목소리가 흘렀다.
“봉쇄 0시에서 열한 분이 비었어.”
서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 문장은 녹음처럼 일정하지 않았다. 해나의 목소리 안에 다른 사람의 숨이 끼어 있었다. 마지막 단어가 끝나기도 전에 짧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동기화 41초.
그는 연결을 끊었다. 머리 뒤쪽이 망치로 찍힌 듯 아팠다. 전실 바닥의 형광 점검액이 떨렸다. 격리문 앞의 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도 안쪽의 공기 흐름이 바뀌었다.
“해나라면 내 이름 뒤에 씨를 붙이지 않아.”
그가 말하자 목소리가 낮아졌다.
“기억이 없으니 그렇게 말하지.”
“신원 확인 절차를 따른다. 이름, 권한 등급, 마지막 확인 위치.”
“나는 윤해나야.”
“다시.”
“윤해나. 연구 구역 2등급.”
“마지막 확인 위치.”
침묵이 길어졌다.
서진은 단말에 음성 패턴을 기록했다. 대답이 늦어진 시간도 함께 적었다.
“마지막 확인 위치.”
“네가 문을 닫은 곳.”
정답이 아니었다. 확인 위치가 아니라 비난이었다.
서진은 동기화 기록을 열었다. 존재의 신호는 인간 한 명의 박동처럼 일정하지 않았다. 세 겹의 신호가 서로 다른 간격으로 움직였다. 그중 하나는 약했고 하나는 지나치게 빠르며 하나는 문이 아닌 벽에서 반응했다.
인원 목록에 없는 이유가 생체 등록 누락만은 아닐 수 있었다.
그때 전실 스피커가 켜졌다.
《격리 해제 절차를 재개하십시오. 구조 대상의 의식 수준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구조 대상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았다.”
《관리자 권한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을 거부하면 냉동 수면실의 잔여 전력이 차단됩니다.》
벽면의 전력 표시가 깜빡였다. 16퍼센트에서 숫자가 움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냉동 수면실로 이어진 회로 하나가 노란색으로 변했다.
서진은 문을 열지 않고 점검구 안쪽의 파란 레버를 찾았다. 레버를 건드리면 냉각 속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격리동의 카메라와 냉동 수면실을 동시에 유지할 수 없었다.
문 안쪽에서 해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서진 씨. 문을 열지 마.”
그는 고개를 들었다.
이번 말은 앞선 목소리와 달랐다. 숨이 가빴고 문장 끝이 갈라졌다. 해나가 실제로 경고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서진은 음성의 시간 기록을 확인했다. 방금 들은 문장은 스피커 기록에도 격리문 센서 기록에도 동시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 내부에서 말한 음성이 시설 방송 회로를 거쳐 다시 들어온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전실 출입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통제실로 가려면 격리동 외곽 통로를 지나야 했다. 현재 경로는 카메라 두 대의 사각을 통과한다. 그 사각을 상대가 이미 알고 있다.
서진은 문손잡이에 형광 점검액을 묻혔다. 이어 바닥에 세 걸음마다 작은 점을 남겼다. 누군가 따라오면 점이 지워지거나 발자국이 생긴다.
“전실을 비운다.”
《격리 대상이 위험합니다.》
“격리 상태는 유지한다.”
《관리자 명령을 승인해 주십시오.》
서진은 스피커 쪽을 바라봤다.
“명령은 기록과 함께 남긴다.”
그는 단말에 문장으로 남겼다.
[격리 해제 거부. 대상 신원 미확인. 냉동 수면실 전력 유지 우선.]
기록을 저장하는 순간 격리문 패널이 켜졌다.
[관리자 권한 요청]
[신경 패턴 대조 중]
서진의 팔찌가 짧게 진동했다. 누군가가 안쪽에서 자신의 권한을 흉내 내고 있었다.
대조율은 11퍼센트에서 멈췄다. 그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전실 조명이 어두워졌다. 시설이 상대의 신호를 확인하고 있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확인 절차를 빌려주는 것처럼 보였다.
서진은 패널의 전원선을 끊었다. 전력 잔량이 15퍼센트로 떨어졌다.
냉동 수면실 쪽에서 낮은 경보음이 울렸다. 해동 대기 중인 캡슐의 냉각 표시가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선택의 대가가 즉시 돌아왔다.
“변경 기록.”
그는 단말에 새 수치와 냉각 경보를 함께 적었다. 손끝이 떨렸지만 글자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문 너머의 존재가 이번에는 어린 남자의 목소리를 냈다.
“감시자.”
서진의 걸음이 멎었다.
“나가고 싶어.”
목소리에는 소년의 울음이 섞였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상했다. 한 사람이 울면서 말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울음은 낮게 깔리고 단어는 그 위에 정확하게 놓였다.
서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문을 열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는 외곽 통로의 수동 잠금 레버를 내렸다. 격리동과 보안 전실 사이의 안쪽 문이 닫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카메라 화면에 식별표 하나가 잡혔다.
[연구원 04-윤해나]
식별표는 사람의 목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검은 액체에 반쯤 잠긴 채 바닥을 끌리고 있었다.
서진은 손전등을 화면에 가까이 가져갔다. 식별표 뒤에서 손가락 같은 것이 움직였다. 손톱이 다섯 개가 아니라 네 개였다. 네 손가락이 바닥을 짚고 몸을 끌어당겼다.
문이 닫혔다.
통제실 방향의 비상등이 하나씩 켜졌다. 전력 부족으로 붉은 불빛만 길을 만들었다.
그때 닫힌 문 너머에서 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진 씨. 통제실에 가지 마.”
서진은 멈췄다.
“거기에는 네가 지운 게 있어.”
이번에는 문장 끝이 끊기지 않았다. 흉내 내는 존재가 완성하지 못한 말이 아니라 오래 저장된 문장을 꺼낸 듯했다. 대신 스피커에서 오래된 잡음이 튀었다.
서진은 통제실 문 옆의 기록판을 확인했다. 봉쇄 시작 시각 03:12. 중앙 기록 03:23. 그 사이 열한 분.
문 너머의 목소리는 그 공백을 알고 있었다.
그는 통제실 문에 팔찌를 댔다. 잠금 패널이 켜지며 두 줄의 상태가 나타났다.
[관리자 기억 백업: 재생 준비]
[미등록 생체 신호: 2]
서진은 문을 열기 전 통제실과 전실 사이의 수동 경보선을 당겼다. 벙커 전체에 경보가 퍼지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의 이동 경로와 격리문 상태가 보안 기록에 고정됐다.
혼자 판단하면 혼자 사라진다.
그 생각은 기억이 아니었다. 지금 만든 규칙이었다.
서진은 통제실 문을 열었다.
안쪽 모니터 두 개가 동시에 켜졌다. 한쪽에는 자신의 얼굴이 찍힌 오래된 영상이 멈춰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격리동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는 생체 신호 두 개가 표시됐다.
문이 닫히기 직전 마지막 목소리가 흘러왔다.
“이번에는 누구 목소리로 부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