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그림자 배달꾼

2화: 봉인 문서 속 지명
남쪽 문은 성벽의 문이 아니었다. 진호가 찾아간 곳에는 누렇게 탄 대나무 벽과 폐쇄된 가마터만 남아 있었다. 밤새 내린 안개가 지붕의 그을음을 적셨다.
“여기가 수취인이 말한 문인가요?” 월령이 물었다.
“문처럼 보이는 그림자 세 개가 겹쳐야 해요.”
해가 산 위로 올라가자 그림자 하나가 사라졌다. 진호는 봉투를 가마터 바닥에 놓았다. 문서의 봉인은 손상되지 않았지만, 안쪽 종이결에 새 지명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남쪽 문. 오래된 도자 가마.’
“지명이 바뀌었어.” 월령이 말했다.
“답장이 가마를 가리킨 것 같아요.”
“배달처는 불탔는데 문서가 계속 길을 바꿔. 발신자가 원래 주소를 숨겼을 수도 있어.”
“수취인은 자기 위치를 알려 주려 했어요. 추격자는 문서만 찾고 있고요.”
월령은 봉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정말 수취인을 찾는 게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해. 네 형이 이 일에 끼어 있어.”
진호는 가마 입구에서 발자국을 찾았다. 눈 위의 자국은 끊겼지만, 가마재에는 무릎 높이의 먼지가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누군가 내부 벽에 몸을 기대 오래 기다린 흔적이었다.
“안에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 벽돌은 안쪽만 새까맸고, 불에 탄 나무는 없었다. 불탄 배달처는 누군가가 바깥에서 태운 것이었다. 가마 바닥에는 작은 청동 바늘이 떨어져 있었다. 바늘 끝에 봉투와 같은 대나무 섬유가 감겨 있었다.
“이건 표국의 바늘이 아니야.” 월령이 말했다.
“누가 답장을 쓴 사람일까요?”
“수취인이겠지. 하지만 직접 만나기 전에는 이름을 붙이지 마.”
가마 안쪽 벽에는 종이 한 장이 눌려 있었다. 진호가 떼어 내지 않고 빛에 비추자, 글자가 그림자로 나타났다. ‘월죽재’. 그는 그 이름을 지도에서 찾지 못했다.
“이런 장소가 있어요?”
월령이 노선도를 펼쳤다. “지명 목록에는 없어. 그런데 여기, 두 문파의 옛 호송로가 만나는 곳이야.”
“문서가 문파를 움직이려는 건가요?”
“봉인을 뜯지 않고는 몰라.”
바깥에서 대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진호는 가마 입구를 봤다. 숲에서 세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선 무인은 백로검문 표식을 팔에 둘렀고, 뒤의 둘은 적련문 붉은 끈을 찼다. 서로 다른 문파가 같은 길을 걸을 이유가 없었다.
“왜 같이 움직이죠?” 진호가 속삭였다.
“화물이나 사람을 쫓고 있겠지.”
무인들은 가마터 앞에서 멈췄다. 백로검문 무인이 말했다. “봉인 문서를 내려놓으면 지나가게 해 주겠다.”
“누가 보냈습니까?” 진호가 물었다.
“수취인이 문서를 회수하라고 했다.”
“그럼 수취인 이름을 말해 주세요.”
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적련문 무인이 칼집을 밀었다. “배달꾼이 문서를 열어 봤다는 소문이 있더군.”
“열지 않았어요.”
“그럼 내용을 모르겠군. 넘겨.”
월령은 진호 앞에 섰다. “표국은 문서의 수취인을 확인한 뒤 전달한다. 당신들이 받을 사람이라면 신분을 밝혀.”
“우리가 누군지 네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진호는 발밑의 재를 살폈다. 무인 세 명의 보폭은 서로 맞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같은 문파의 정규 보법을 쓰지 않았다. 뒤에서 다가오는 네 번째 발자국은 가벼웠다. 형 진석이 쓰는 걸음이었다.
“선배, 오른쪽으로 물러나요.”
월령은 이유를 묻지 않고 가마 벽에 붙었다. 진호는 빈 바구니를 무인들 쪽으로 밀었다. 바구니가 굴러가며 가마재를 일으켰다. 시야가 흐려진 틈에 그는 봉투를 들고 뒤쪽 벽으로 뛰었다. 벽에는 좁은 연통이 뚫려 있었고, 그 안으로 대나무 그림자가 길게 들어왔다.
“그쪽은 막다른 곳이야!” 무인이 외쳤다.
진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통의 너비와 바람 소리를 확인했다. 어깨가 겨우 통과할 만큼 좁았지만, 반대편에서 대나무 잎이 움직였다. 월령이 먼저 빠져나가고, 진호가 뒤따랐다. 무릎이 벽돌에 걸렸다. 그는 숨을 참아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천천히 밀어냈다.
숲에 나오자 월령이 그의 팔을 잡았다. “네 형이 정말 뒤에 있었어?”
“발자국만 봤어요. 그가 따라오는지, 저쪽에서 도망치는지는 몰라요.”
“너는 그 발자국을 계속 따라가고 있어.”
“형이 뭘 했는지 알아야 해요.”
“그 문서를 배달한 뒤에.”
숲 바깥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대나무 사이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은 진호의 어깨가 아니라 봉투가 든 품을 향했다. 그는 몸을 돌려 봉투를 옆구리로 옮겼다. 무릎이 꺾이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문서를 먼저 지켜.” 월령이 달려들었다.
“아니요. 선배가 먼저 나가요. 제가 저 사람들을 세고 있어요.”
“숫자를 세는 게 목숨보다 중요해?”
“숫자를 알아야 길을 고르죠.”
진호는 대나무 잎이 흔들리는 간격을 확인했다. 화살을 쏜 사람은 둘, 오른쪽 숲에서 발을 옮긴 사람은 하나, 가마터 쪽에는 둘이 남아 있었다. 다섯 명이 모두 추격 중이 아니었다. 한 명은 다친 동료를 부축했다.
그는 짧은 칼을 꺼내지 않고, 땅에 떨어진 화살을 주워 대나무 마디에 꽂았다. 화살촉이 바람을 받아 남쪽을 향했다. 추격자들이 그 방향을 쫓는 동안, 진호는 북쪽의 낮은 길로 걸음을 옮겼다.
“너, 다친 사람까지 세었어?” 월령이 물었다.
“발자국이 끊긴 자리에서 피가 떨어졌어요.”
“그럼 저 사람도 적이야?”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 공격하지 않는 사람을 제가 먼저 공격할 이유는 없습니다.”
월령은 그의 무릎을 부축하려 했지만, 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걸을 수 있어요. 속도는 늦어도 괜찮아요.”
“늦으면 다음 길이 닫힐 수도 있어.”
“그러면 다른 길을 찾으면 돼요. 사람을 버리고 빨리 가는 건 배달이 아니니까.”
월령은 더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대나무가 낮게 자란 골짜기를 따라 움직였다. 뒤쪽에서 추격자의 휘파람이 한 번 들렸고, 곧 발자국 소리가 멀어졌다.
월령은 정강이에 묻은 재를 털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붉은 표국 띠는 끝이 찢어져 있었다. 진호는 그 안쪽에 찍힌 옛 보증 인장을 봤다.
“선배, 형 빚을 보증했어요?”
월령은 띠를 내려 가렸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할게.”
“나중에는 언제예요?”
“너 혼자 살아 돌아올 때.”
“그럼 지금도 말할 수 있잖아요.”
월령은 대답하지 않고 남쪽 산길을 골랐다. 진호는 그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봉투 표면을 대나무 그늘에 비춰 봤다. 새 지명이 길게 드러났다. ‘월죽재 아래, 물 없는 샘.’
“선배가 고른 길은 두 문파의 호송로를 지나가요.”
“그럼 다른 길을 골라야겠네.”
“그 길은 돌아가야 합니다. 무릎에 무리가 갈 거예요.”
“빠른 길은 추격자를 만나겠지.”
“느린 길로 가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 못 해요.”
“수취인이 정한 시간을 지키는 게 배달이야. 우리가 정한 지름길을 강요하는 게 아니고.”
월령은 결국 노선도를 진호에게 건넸다. “길을 고르는 건 네가 해. 단, 네 선택 때문에 누가 따라오게 되는지 생각해.”
진호는 남쪽으로 돌아가는 산책로를 택했다. 무릎이 아파도 물길을 따라가면 발자국이 지워질 수 있었다. 길목에 버려진 표국 마차가 있었다. 한쪽 바퀴가 부러져 있었고, 안에는 약초 꾸러미와 부러진 활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급히 내렸어요.” 진호가 말했다.
“아까 그 사람들 물건일까?”
“아니요. 발자국 간격이 달라요. 아이가 한 명 있었어요.”
그는 꾸러미를 들어 무게를 확인했다. 약초는 젖지 않았다. 마차 안쪽에는 그림자 문서의 섬유가 한 가닥 붙어 있었다. 진호는 봉투를 꺼내 뒷면을 비췄다. 새 글씨는 없었지만, 봉투의 접힌 모서리가 물 없는 샘 방향을 가리켰다.
샘은 바위 아래 움푹 패인 자리였다. 물은 없고 검은 대나무 뿌리만 내려와 있었다. 그곳에서 낡은 표국패 하나가 발견됐다. 백진석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월령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가 여길 지나갔어.”
“형이 문서를 갖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표국패만 남겼어요.”
“무언가 전하려고 했겠지.”
“아니면 제가 이 길을 못 오게 막으려는 걸 수도 있어요.”
진호는 표국패를 집지 않았다. 그는 봉투를 샘 가장자리의 그늘에 놓았다. 종이 안쪽에 잉크가 번지듯 한 단어가 나타났다.
‘월죽재.’
목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누군가가 문서의 다음 장소를 직접 골라 준 셈이었다. 월령이 봉투를 가리켰다. “거기 가면 받을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럼 배달할 수 있겠어?”
“수취인을 만날 때까지요.”
진호는 먼저 일어났다. 무릎이 저렸지만 이번에는 월령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그는 형의 표국패를 남겨 두고, 문서만 들었다.
진호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세 번의 소리 뒤에는 한 박자 쉬고, 네 번째 발이 땅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그 간격은 형이 어릴 때 절뚝이는 척하며 장난치던 보폭과 같았다.
“형이 따라오는 거야?” 월령이 물었다.
“아니요. 우리보다 먼저 가고 있어요.”
그는 표국패를 손에서 돌렸다. 뒷면의 ‘남문’ 글씨가 땀에 젖어 번지고 있었다.
뒤쪽 대나무 사이에서 발소리가 세 번 울렸다. 이번에는 추격자 수가 네 명이 아니라 다섯이었다. 다섯 번째 발자국은 숲을 빠져나가지 않고, 그들이 향할 길목에 먼저 멈춰 있었다. 월령은 노선도를 접고 진호의 걸음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