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그림자 배달꾼

1화: 불탄 배달처의 답장
백진호는 배달처를 세 번 확인했다. 지도에는 ‘삼나무 다리 아래, 그림자 셋이 겹치는 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종이에 그려진 지형은 불탄 지붕 하나와 대나무 숲뿐이었다.
“배달처가 없어.” 진호가 말했다.
표국 선배 강월령은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주소가 틀렸는지, 집이 사라졌는지 확인해.”
“그 다음은요?”
“수취인이 없으면 문서를 가져와. 열지는 말고.”
진호는 오른쪽 무릎 보호대를 고쳐 맸다. 내리막에서 힘이 빠지는 다리였다. 월령은 노선도를 그에게 건넸다.
“발자국은 몇 명이야?”
“넷. 앞에 둘, 뒤에 하나, 숲 안에 하나.”
“왜 그렇게 봤어?”
“보폭이 세 종류고, 왼발이 끌리는 사람이 있어요. 마지막 흔적은 일부러 대나무 잎을 밟았어요. 길을 보여 주려고.”
“추격자일 수도 있지.”
“그래서 문서를 꺼내지 않았어요.”
문서는 기름 먹인 종이 봉투에 봉인되어 있었다. 표국 인장이 온전했고, 수취인 이름은 봉투 안쪽에만 적혀 있었다. 발신자는 절반으로 찢긴 죽편에 청죽표국의 옛 표식을 남겼다. 진호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봉인을 확인하고, 답을 받아 오는 계약을 했다.
그는 잿더미를 살폈다. 불은 집 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뒤편 대나무 벽을 타고 번졌다. 집의 기둥은 남았지만 문은 안쪽으로 무너져 있었다. 그는 무릎을 굽혀 탄 나무 조각을 들었다. 아직 따뜻했다.
“어제 불이 났네.”
“왜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까요?”
월령은 주변을 둘러봤다. “마을이 비었어. 주민들은 산 너머로 옮겨 갔을 수도 있어.”
진호는 타다 남은 문틀에 봉투를 갖다 댔다. 종이의 그늘이 벽에 세 겹으로 드리워졌다. 그림자 하나가 문짝처럼 열렸다. 안쪽에서 얇은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어요.”
진호는 뒤로 물러났다. 월령이 칼집을 들어 올렸다. 목소리는 봉투 안쪽에서 나온 것처럼 들렸다. 봉인에 붙은 종이가 저절로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쪽의 접힌 면에 새 글씨가 번졌다.
‘여기로 오지 마세요. 불은 문서를 찾으러 온 사람이 냈습니다.’
“누가 쓴 거야?” 월령이 물었다.
“수취인일 겁니다.”
“수취인은 이 집에 없잖아.”
진호는 글씨를 읽고도 문서를 펼치지 않았다. “주소 대신 경고를 보냈어요.”
월령은 봉인을 확인했다. “열리지 않았어. 답장이 종이 섬유 결 안에 나타났네.”
“답장이 한 번만 가능하다고 했죠.”
“그러니 네가 지금 할 일은 문서를 더럽히지 않고 이 사람을 찾는 거야.”
진호는 불탄 집 옆에서 발자국을 다시 셌다. 네 사람이 맞았다. 뒷발꿈치 흔적은 현관에서 멈췄고, 앞발끝은 북쪽을 향했다. 한 사람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불을 놓은 자는 길을 따라 떠난 게 아니라 숲속에 머물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는 사람은 네 형일 수도 있어.” 월령이 말했다.
진호는 고개를 들었다. “형은 산길에서 발을 끌지 않아요.”
“형을 쫓는 사람은?”
“저보다 보폭이 커요.”
그는 대나무 그림자길로 들어갔다. 빛이 잎을 통과하면서 길을 몇 번이고 바꿨다. 같은 나무를 두 번 지나친 듯했지만, 바닥의 이슬은 한쪽으로 흘렀다. 진호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방향을 따라갔다.
월령은 뒤에서 발소리를 줄였다. “네 무릎이 버틸까?”
“지금은 버텨요.”
“지금이 아니라 돌아갈 때도.”
“그러니까 빠른 길을 찾는 거죠.”
길 옆에 천 조각이 걸려 있었다. 표국의 붉은 띠와 같은 색이었다. 진호는 손을 뻗지 않았다. 천 아래에는 누군가 칼로 대나무를 네 번 긁은 자국이 있었다. 네 번 긁고 마지막 줄만 짧게 끊겨 있었다. 형 진석이 도박판에서 패를 접을 때 쓰던 손짓과 같았다.
“형이 여기 있었어요.”
월령은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확실해?”
“저 표식은 형이 빚쟁이에게 쫓길 때만 남겨요.”
“왜 여기까지 왔지?”
“봉투를 노리는 사람과 형의 채권자가 같을 수도 있어요.”
월령은 문서를 가리켰다. “그걸 먼저 전달해.”
“수취인이 경고했어요. 이 길로 오지 말라고.”
“배달자는 답장도 전달해야 해. 수취인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지.”
진호는 봉투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대나무 그늘이 봉투 표면을 지나갈 때마다 글씨가 하나씩 진해졌다. “삼나무 다리 아래. 그림자 셋이 겹치는 문.”
“주소로 돌아갈 거야?”
“아니요. 다리 밑을 먼저 확인할게요.”
“그곳도 집이 없으면?”
“답장이 여기서 왔다는 건 누군가 문서를 받으려 했다는 뜻이에요.”
다리 아래에는 물이 거의 말라 있었다. 오래된 삼나무 뿌리가 돌 틈을 밀어 올리고, 바위 벽에는 집의 문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세 개 드리워졌다. 실제 문은 없었다. 진호는 봉투를 바위 위에 놓았다. 그림자 중 하나가 종이에 닿자, 봉투가 아주 약하게 떨렸다.
“여기에 있어.” 그가 속삭였다.
대답은 없었다. 월령은 주변에 칼을 겨누었다. 그때 대나무 숲 위쪽에서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진호는 무릎을 꺾어 몸을 낮췄다. 화살은 봉투 옆의 돌에 박혔다. 화살 깃털에는 불탄 집에서 맡았던 기름 냄새가 배어 있었다.
월령이 숲을 향해 달려갔다. 진호는 봉투를 품에 넣지 않았다. 봉투를 옮기면 수취인의 그림자 신호가 끊길 수 있었다. 그는 다리 밑 그늘을 그대로 두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읽었다. 대나무 잎이 바람과 반대로 흔들렸다.
“둘이야.” 그가 외쳤다. “한 명은 위에, 한 명은 뒤에서!”
월령이 칼집으로 대나무를 쳐 화살을 막았다. 진호는 다친 다리로 바위 계단을 뛰어올랐다. 통증이 무릎을 잡아당겼다. 그는 계단을 끝까지 오르지 않고 중간에서 옆으로 몸을 던졌다. 추격자의 발소리가 지나갔다. 뒤꿈치가 무거운 걸 보니 갑옷 조각을 숨겼다.
진호는 대나무 줄기를 꺾어 길을 막았다. 추격자가 넘어지며 짧은 칼을 떨어뜨렸다. 얼굴을 가린 사내가 칼을 다시 집으려 했다. 진호는 발로 칼을 멀리 밀고 봉투를 들었다.
“누가 문서를 찾으라고 했죠?”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호는 칼을 걷어차 멀리 보내고 그의 발목에 묶인 종을 풀었다. “발자국을 일부러 남겼군요. 내가 다리 밑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배달꾼은 길을 따라간다.”
“누가 시켰어요?”
“네 형이 직접 왔어.”
진호의 시선이 남쪽 숲으로 향했다. 사내는 그 순간 몸을 틀어 일어나려 했다. 월령의 칼집이 그의 목 앞을 막았다.
“진석이 여기 있었어?”
“빚쟁이들이 형을 따라왔지. 네가 대신 갚겠다고 나서면 둘 다 데려가라는 명령이었어.”
“형은 어디 있어?”
“그건 내 거래가 아니다.”
진호는 그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형은 일부러 발자국을 북쪽으로 돌려 추격자를 끌고 갔다. 봉투를 지키려는 건지, 동생을 떼어 놓으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사내의 손목을 묶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월령이 혼자 추격자를 상대해야 했다.
“월령 선배, 이 사람을 표국으로 데려가요. 나는 수취인을 찾을게요.”
“그럼 네가 형을 쫓지 않겠다는 거야?”
“문서가 먼저입니다. 형도 그걸 알고 길을 잘못 남겼을 거예요.”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형제끼리 서로 속이는군.”
“그래도 이번엔 내가 누구의 빚을 대신 갚을지 직접 정할 겁니다.”
월령은 사내의 허리에서 작은 표국 표찰을 찾아냈다. 청죽표국의 옛 배달패였다. 안쪽에 백진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네 것이야?”
진호는 표찰을 받아 뒤집었다. 형이 표국에서 쫓겨나기 전 쓰던 물건이었다. 뒷면에는 ‘남문, 해 뜨기 전’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배달처가 불탔으면 문서는 네가 갖고 돌아가야 해.”
“왜 답장이 나타났을까요?”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월령이 뒤에서 그를 붙들었다. “진호야, 오래 붙잡아 두지 마. 다른 사람이 올 수 있어.”
진호는 사내의 손목 안쪽에서 검은 먹물 자국을 봤다. 청죽표국의 인장은 아니었다. 그는 봉투를 다시 그림자 셋 사이에 놓았다.
봉투가 열리지 않은 채, 안쪽에 글씨가 한 줄 더 생겼다.
‘해 뜨기 전에 대나무 그림자길을 따라 남쪽 문으로 와 주세요. 형은 오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진호는 그 문장을 읽었다. 월령의 눈이 그의 얼굴에 멈췄다. “네 형이 수취인을 만나려 했어?”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럼 왜 오지 말라고 하지?”
그는 봉투를 노출하지 않으려 소매에 싸 들었다. 그림자 셋이 겹치는 다리 아래를 벗어나자, 대나무 잎 사이로 작은 등불이 보였다. 등불은 남쪽을 향했다가 곧 꺼졌다. 수취인이 길을 알리는 신호였다.
“저 사람은 왜 직접 나오지 않을까요?” 월령이 물었다.
“누군가 문서를 따라오고 있으니까요.”
“그럼 우리도 쫓기는 중이야.”
“네. 하지만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는 제가 세어 볼 수 있어요.”
진호는 진흙에 찍힌 발자국을 다시 셌다. 북쪽으로 간 형의 흔적은 일부러 깊게 남겨졌고, 남쪽 등불 아래에는 새 발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수취인은 문 앞까지 나오지 않고, 그림자만 빌려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진호는 불탄 배달처를 바라봤다. 땅에 남은 형의 발자국은 남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뒤꿈치가 북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의 형은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게 아니라, 누군가가 따라오지 못하게 길을 막고 있었다. 진호는 봉투를 품지 않고 두 손에 들었다. 수취인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그것이 형을 찾는 일보다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