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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교수님의 연구실 노예가 되기 싫어서8화

천재 교수님의 연구실 노예가 되기 싫어서

천재 교수님의 연구실 노예가 되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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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빗장 걸린 무덤

문밖의 경고

쾅, 쾅, 쾅!

육중한 참나무 문이 부서질 듯 울렸다. 문고리가 거칠게 덜컹거리며 복도 바닥을 짓밟는 군화 소리가 쇄도했다.

“마도학부 정기 안전 점검반이다! 비인가 장비 가동 및 출력 초과 의혹에 대한 현장 확인이 요청되었다. 책임자는 즉시 문을 열어라!”

학부 감사실 소속 선임 조교의 목소리였다. 부학장실의 서슬 퍼런 위압감이 묻어났다.

연구실 안은 지독한 정적에 갇혀 있었다.

바닥에는 냉각수 증기가 자욱했고 타는 냄새와 오존 향이 진동했다. 차폐벽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과 그을음이 선명했다. 지금 문이 열린다면 비인가 폭주와 장비 파손으로 즉시 압수수색을 당할 처지였다.

에르반은 출입문 앞에 굳어 있었다. 철제 빗장을 쥔 손가락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과거의 참상을 다시 마주한 원초적 공포만이 그를 짓눌렀다. 문을 열지도 문밖을 향해 소리치지도 못했다.

쾅!

“들리지 않는가! 묵비는 감찰 거부로 간주한다!”

문짝이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스승의 침묵을 메울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리에트는 소매로 턱 끝의 핏방울을 훔쳐낸 뒤 문가로 다가섰다. 황동 문서 전달구의 걸쇠를 젖히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마도학부 안전 규정 제14조 2항을 고지합니다.”

문밖의 두드림이 멎었다.

“제3공명연구실 조교 리에트 벨로아입니다. 본 연구실은 방금 고위험 실험을 마치고 잔류 마력 방출과 냉각 환기 절차를 수행 중입니다. 차폐실 환기 시간은 15분입니다.”

차분하고 단호한 어조였다.

“환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 진입하여 역류 마력에 노출될 경우 현장 지휘자에게 전적인 과실 책임이 청구됩니다. 점검반장께서 그 책임을 서면으로 보증하시겠습니까?”

문 너머에서 거친 숨소리가 오갔다.

“핑계 대지 마라! 부학장실의 긴급 감사 요청이다.”

“규정을 무시하고 진입하시면 감사위원회에 정식 제소하겠습니다. 남은 냉각 시간은 15분입니다. 08시 15분 이전에 문을 훼손할 경우 기물 파손과 안전 수칙 위반을 함께 첨부하겠습니다.”

수석 장학생의 지적 앞에서 점검반은 빗장을 부술 명분을 잃었다.

“좋다. 딱 15분 준다. 08시 15분에 강제 개문 영장을 들고 오겠다.”

군화 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멀어졌다.

이유 없는 봉쇄

15분.

간신히 벌어들인 유예 시간이었지만 공기는 납처럼 무거웠다.

리에트는 전달구 걸쇠를 걸고 돌아섰다.

“교수님, 서둘러야 합니다. 냉각수를 배출하고 차폐벽 그을음부터 닦아야…….”

말을 잇던 리에트의 시선이 굳었다.

에르반은 연구실 구석 암호 금고 앞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철컥.

금고 문이 열리자 에르반은 탁자 위의 청색 수정핵을 거칠게 집어넣었다. 세 줄기 검은 균열이 새겨진 채 빛을 잃은 공명핵이었다. 그는 금고를 닫고 이중 잠금장치를 걸었다.

이어 주 공명대로 다가가 마력 공급관 주 밸브를 렌치로 내리쳐 잠갔다. 금속 마찰음과 함께 모든 마력 도선이 동결되었다. 기동 퓨즈함에서 은도금 퓨즈까지 뽑아 플라스크 안으로 던져 넣었다.

연구실을 완전히 폐쇄할 때나 쓰는 영구 동결 조치였다.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에르반은 돌아보지 않았다.

“실험은 끝났다. 제3공명연구실은 오늘부로 모든 연구를 무기한 중단한다.”

“중단이라니요? 2단계 증폭에서 위상이 꼬이며 치솟았던 건 기존 표준식의 결함 때문입니다. 수식을 다시 수정하고 역산하면…….”

“그만해!”

에르반이 마침내 돌아섰다. 헝클어진 은발 아래 드러난 푸른 눈동자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오만하던 천재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쫓기는 짐승 같은 적의만이 번득였다.

“더는 계산하지 마라. 수식을 고치는 일은 없다.”

“교수님!”

“질문하지 마! 너는 조교다. 책임자가 연구를 종료하겠다면 끝난 거다.”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리에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관자놀이를 찌르는 통증을 억누르며 똑바로 그를 응시했다.

“단순한 실패 때문이 아니잖습니까. 방금 그 백청색 빛, 뼈마디를 파고들던 진동. 교수님은 그 파장의 정체를 알고 계십니다. 십 년 전 제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파장과 정확히 같았습니다.”

에르반의 눈동자가 세차게 요동쳤다.

“……헛소리하지 마.”

“제 감각이 기억하고 있어요. 교수님은 대체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 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치려 하십니까!”

“닥쳐!”

에르반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갈라졌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알아서도 안 돼. 이 연구는 시작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리에트에게 다가와 어깨를 거칠게 밀쳐냈다.

“조교 계약은 일시 정지다. 연구실 출입 열쇠와 장부를 두고 당장 나가.”

“교수님!”

“나가라!”

에르반은 사나운 손길로 리에트의 손목을 낚아채 문밖으로 끌어당겼다. 리에트는 비틀거리면서도 가슴팍의 가죽 장부만은 놓치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복도의 찬 공기가 뺨을 때렸다.

에르반은 리에트를 바닥으로 밀어냈다. 리에트가 균형을 잡고 돌아선 순간 무거운 문이 닫혔다.

쾅!

철제 빗장이 맞물리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철컥.

“교수님! 문 여십시오!”

두드림에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선배 조교들이 왜 이곳을 무덤이라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과거의 유령에 짓눌려 스스로를 가둔 천재의 감옥이었다.

좁혀오는 포위망

복도는 적막했다.

닫힌 문앞에 홀로 선 리에트의 소매 끝에서 탄내가 피어올랐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지만 가슴을 채운 것은 지독한 환멸이었다.

위대한 학자라 믿었던 자가 과거의 망령 앞에서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때 복도 모퉁이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울렸다.

타박, 타박!

붉은 곱슬머리를 흩날리며 달려온 마렐이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섰다.

“리에트! 너 몰골이 왜 이래? 피…… 피 흘렸어? 옷은 또 왜 탔는데?”

리에트는 마렐의 손목을 잡고 계단 밑 어두운 구석으로 이끌었다.

“쉿, 목소리 낮춰. 내 상처는 가벼워. 마렐, 기록실에서 무슨 일을 확인한 거야?”

마렐은 질린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단순한 조회가 아니었어. 붉은 표식은 부학장실이 직권으로 긴급 감사를 발동했다는 뜻이었어. 세드릭 부학장이 정오에 긴급 학부 평의회를 소집했대.”

“평의회?”

“바엘의 실패를 빌미 삼아 제3공명연구실이 비인가 마도식을 연구하며 안전 규정을 위반했다고 몰아세우고 있어. 정오 회의에서 연구비 전액 삭감과 공명핵 강제 회수 결의안을 통과시킬 거래. 게다가 나한테도 공방 출입 정지 경고장이 떨어졌어.”

공명핵 강제 회수.

연구실을 안전 위반으로 몰아 공중분해시키고 에르반의 자료를 학부 명의로 빼앗으려는 수작이었다.

마렐이 굳게 닫힌 연구실 문을 보며 허탈하게 물었다.

“그런데 저 문은 왜 잠겨 있어? 교수님은 어디 계셔?”

“교수님은 안에 있어.”

“안에? 그럼 얼른 문을 열고 대책을 세워야지! 정오면 세 시간도 안 남았다고!”

“문을 열지 않을 거야.”

리에트의 서늘한 대답에 마렐이 멍하니 쳐다보았다.

“폭주가 일어났어. 2단계 증폭에서 위상이 완전히 무너졌고 공명핵에 세 줄기 검은 균열이 생겼어. 교수님은 모든 연구를 중단하겠다면서 나를 쫓아내고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어.”

“공명핵이 깨졌다고?”

마렐의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정규 2등급 공명핵의 파손은 장학생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는 중대한 과실이었다.

“교수님이 도망쳤다고? 세드릭이 들이닥쳐서 깨진 공명핵을 발견하면 조교인 너한테 책임을 덮어씌울 텐데!”

연구실 문은 닫혔고 지도교수는 숨어 버렸다. 바깥에는 학부 권력의 거대한 덫이 도사리고 있었다. 완벽한 고립무원이었다.

홀로 선 기록

도망칠 곳은 없었다. 이대로 물러서면 연구실은 해체되고 규정을 위반한 조교로 낙인찍혀 쫓겨날 터였다. 안전한 치료식을 만들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리에트의 회색 눈동자는 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릿발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울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어.’

리에트는 품에 안고 있던 가죽 장부를 열었다. 안쪽 비밀 내피를 가볍게 뜯어내자 빳빳한 종이 두 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벽에 측정한 저온 계측 자료. 그리고 07시 48분 폭주 직전의 상황이 낱낱이 기록된 비상 차단 기록지였다.

종이 하단에는 에르반의 친필 서명이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에르반 루센. 비상 차단 조건 동의.’

그 옆에는 리에트가 기록한 수치가 선명했다.

‘07시 48분. 2단계 증폭 공명 중 위상 역류 발생. 2차 비상 차단선 분리 및 주 차단석 강제 작동으로 2초 내 정지.’

리에트의 손가락이 서명 위를 스쳤다.

“교수님이 문을 걸어 잠갔다고 해서 진실까지 지워지는 건 아니야.”

마렐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리에트?”

“공명핵이 깨진 건 우리의 태만 때문이 아니야. 현행 표준식이 숨겨왔던 고유 위상 결함이 증폭 단계에서 터져 나간 거야. 그리고 우리는 안전 수칙에 따라 한계 도달 즉시 2초 안에 회로를 차단했어.”

리에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차단선을 뽑지 않았다면 공명핵 파손으로 끝나지 않았어. 연구실 전체가 날아가고 점검반까지 휘말렸을 거야. 이건 무단 폭주가 아니라 규정에 따른 안전 중단이야.”

“하지만 세드릭 부학장이 그런 말을 믿어줄까?”

“믿게 만드는 게 아니야. 반박할 수 없는 숫자로 입을 다물게 만드는 거지.”

리에트가 장부를 덮고 마렐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마렐. 네가 보온 상자 바닥에 숨긴 사본 있지?”

“응, 있어. 다행히 들키지 않았어.”

“그 사본과 내 기록, 새벽의 독립 계측 데이터를 대조할 거야. 도서관 지하 열람실로 가자.”

“거기서 뭘 하려고?”

“보고서를 쓸 거야.”

리에트의 입가에 서늘한 결의가 맺혔다.

“지도교수가 도망치고 문을 닫았다면 조교인 내가 직접 제출하겠어. ‘공명 실험 안전 중단 경위 및 표준식 위상 결함 분석 보고서’. 정오의 평의회 탁자 위에 이 보고서를 올려놓을 거야.”

마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도교수의 동의 없이 조교가 단독으로 평의회에 반박 보고서를 내는 것은 전례 없는 도발이었다. 세드릭의 칼날을 받아내고 에르반의 비겁한 침묵을 깨부수겠다는 도전이었다.

“리에트, 그건 너무 위험해……! 잘못되면 네 학적 자체가 날아갈 수도 있어!”

“가만히 앉아서 파멸을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안전해.”

리에트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닫힌 연구실의 현판이 차가운 그늘 아래 버려져 있었다. 에르반 루센은 문 뒤에 숨었지만 리에트는 문밖으로 걸어 나왔다.

더는 누구의 노예도 아니었다. 타인의 그늘 밑에서 보호받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도서관 열람실의 묵직한 참나무 책상 앞에 앉은 리에트는 새 양피지를 펼쳤다. 깃펜을 잉크에 푹 적신 뒤 단호한 필체로 첫 줄을 써 내려갔다.

‘작성자: 마도학부 수석 장학생 및 제3공명연구실 조교 리에트 벨로아.’

사각거리는 펜촉 소리가 적막한 열람실을 갈랐다.

그것은 봉쇄된 무덤을 깨뜨리고 진실을 향해 홀로 내딛는 첫 번째 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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