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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교수님의 연구실 노예가 되기 싫어서6화

천재 교수님의 연구실 노예가 되기 싫어서

천재 교수님의 연구실 노예가 되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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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나눠야 끝까지 간다

새벽에 도착한 보온 상자

리에트가 마지막 장비의 위치를 적고 문을 나서려던 순간 복도 끝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리에트? 안에 있지?”

마렐이었다.

문을 열자 마렐은 양팔에 물건을 가득 안은 채 서 있었다. 한 손에는 은빛 집게 모양의 저온 계측 클램프가 들려 있었고 다른 팔에는 두꺼운 보온 상자가 끼워져 있었다. 가죽 가방에서는 빵과 말린 과일 냄새가 났다.

“네가 쪽지에 적은 것들. 클램프 하나. 보온 상자 하나. 그리고 식사.”

마렐은 대답을 마치자마자 리에트의 얼굴을 살폈다.

“너 눈이 왜 그래? 밤새 사람을 갈아 넣었어?”

“실험은 끝났어. 자료도 확보했고.”

“자료가 확보됐으면 사람이 멀쩡해야지.”

마렐은 리에트의 장부를 가져가 마지막 줄을 확인했다. 새벽 다섯 시 십 분에 퇴실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장부는 아직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자료 정리가 남았어.”

“자료 정리보다 네가 빵을 씹는 게 먼저야.”

작업대 앞의 에르반이 시선을 들었다.

“외부 장비는 실험 조건을 바꾼다.”

“그래서 교정 상태부터 확인하면 됩니다.”

마렐은 보온 상자를 열었다. 안쪽에는 은빛 냉각석 두 개와 접촉 방지용 천이 들어 있었다.

“이 클램프는 고리 표면이 아니라 접지선 내부의 열 변위를 재요. 표면이 멀쩡해도 안쪽에서 먼저 무너지는 경우를 잡을 수 있어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나?”

“재료실에서 장비 대여표를 정리한 지가 몇 년인데요. 물건을 빌려주려면 쓰임새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마렐은 클램프를 리에트 쪽으로 밀었다.

“대여 시각과 반납 시각을 적어. 누가 가져왔는지도 적고.”

리에트는 펜을 들었다가 멈췄다.

“장비를 빌려줘서 고마워.”

“고맙다는 말 말고 기록해. 네가 부탁한 건 빚이 아니라 필요한 계측이야.”

마렐은 빵 하나를 리에트 손에 쥐여 주었다.

“먹어. 안 먹으면 장비도 안 넘겨.”

리에트는 빵을 받아 들었다. 관자놀이에서 두통이 가늘게 맥박쳤다. 그녀는 감각을 숨긴 채 장부에 적었다.

‘05시 18분. 마렐 오르티스 입실. 저온 계측 클램프와 보온 상자 반입.’

“식사는 연구 기여가 아니다.”

에르반이 말했다.

“먹지 못한 측정 담당자는 오차를 만듭니다.”

마렐이 에르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교수님도 장비만 보지 말고 사람의 손을 보세요. 지금 리에트 손끝이 떨립니다.”

에르반은 리에트의 손을 잠시 확인한 뒤 봉인된 클램프를 향해 턱을 움직였다.

“영점부터 확인한다.”

“역할을 먼저 나누죠.”

리에트가 장부 아래에 세 칸을 그었다.

“마렐은 클램프 교정과 온도 기록. 저는 고리와 기존 계측기 기록. 교수님은 펄스 인가와 차단을 맡으세요.”

“내 연구실에서 내 장비를 쓰면서도 지시자는 나다.”

“지시자는 교수님이어도 기록 담당자는 따로 둘 수 있습니다.”

에르반은 대답 대신 클램프의 봉인을 풀었다.

독립된 손끝

마렐은 냉각석을 집게로 집어 클램프 끝에 가져갔다.

“이 장비는 손의 열만 받아도 영점이 흔들려요. 기준 고리에 물렸을 때 0.00에서 세 번 멈춰야 합니다.”

그녀는 얇은 기준 고리에 클램프를 물리고 작은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리에트가 수치를 보려 하자 마렐이 시야를 가렸다.

“먼저 네 관찰값을 적어. 결과를 보고 맞추면 독립 계측이 아니야.”

리에트의 손이 멈췄다. 마렐은 보이지 않는 값을 먼저 읽는 그녀의 습관을 모르면서도 측정 순서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기준 고리에는 이상이 없어. 기준선은 안정적이야.”

“0.00. 세 번 모두 같아.”

에르반은 첫 번째 은합금 고리를 공명대 중앙에 놓았다. 클램프는 네 번째 단자 뒤쪽의 접지선에 물렸다.

“첫 번째 펄스.”

푸른 빛이 고리 안쪽을 지나갔다. 리에트는 표면의 움직임과 금속 내부에 남은 이질감을 동시에 느꼈다.

‘잔류 방향은 접지선 쪽. 0.04마크에 가까운 편차.’

마렐의 클램프가 짧게 떨렸다.

“접지선 열 변위 0.037마크.”

에르반이 기존 계측기를 보았다.

“표면 온도는 18.4도다.”

“표면이 아니라 접지선 내부를 재고 있습니다. 기존 저온계는 표면이 식은 뒤에야 숫자가 올라와요.”

마렐은 클램프를 움직이지 않았다. 에르반은 첫 계측지 옆에 장비 번호를 적었다.

“두 장비가 같은 걸 보고 있지는 않군.”

“그래서 같이 쓰는 겁니다.”

리에트는 자신의 관찰값과 마렐의 수치를 다른 표에 적었다. 아직 두 기록을 하나의 결론으로 합치지 않았다.

“왜 바로 비교하지 않나?”

에르반이 물었다.

“서로의 값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걸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마렐은 빵을 반으로 나눠 리에트 쪽으로 밀었다.

“이번엔 네가 먹을 차례야.”

“측정 중이야.”

“측정 중에도 씹을 수 있어.”

리에트는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두통이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감각이 더 흐려지지도 않았다.

에르반은 두 번째 펄스까지 십 분 간격을 두겠다고 정했다. 그동안 세 사람은 각자의 기록을 확인했다.

마렐의 손끝이 클램프를 고정한 채 미세하게 떨렸다. 리에트는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괜찮아?”

“장비가 무거워서 그래. 네가 묻기 전에 말할게. 아직 측정할 수 있어.”

“그럼 계속하지.”

“계속하는 것과 무리하는 건 달라.”

마렐은 붉은 한계선을 가리켰다.

“내가 이 선에 닿았다고 판단하면 중단할 거야.”

리에트는 그 말을 장부의 빈칸에 옮겨 적었다.

두 번째 펄스의 대가

“중단 기준을 세 사람 모두에게 열어 두죠.”

리에트가 말했다.

“두 번째 펄스 뒤 접지선 열 변위가 0.08마크에 접근하거나 클램프 접점이 흔들리면 즉시 중단합니다. 기존 저온계가 안전값을 보여도 독립 계측값을 우선하고요.”

“그건 네가 정한 기준인가?”

“앞선 측정에서 누적값이 0.08마크까지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그 경계에 도달하는 순간을 잡아야 합니다.”

마렐은 장부에 손을 얹었다.

“제가 측정 중단을 선언할 권리도 적어 주세요.”

“장비를 가져온 사람에게 그런 권한이 필요한가?”

“장비를 잡은 사람이 접지선의 열을 먼저 봅니다. 펄스 레버를 잡은 분이 전부를 볼 수는 없어요.”

리에트는 역할표 아래에 문장을 추가했다.

‘측정 담당자 누구든 안전 중단 선언 가능. 중단 시각과 근거를 각자 기록.’

에르반은 문장 아래에 서명했다.

“조건부로 인정한다. 선언 근거는 숫자로 남겨라.”

“그건 이미 하고 있습니다.”

에르반이 두 번째 레버를 밀었다.

이번 펄스는 조용히 고리를 통과했다. 대신 클램프 끝에서 푸른 점이 번졌다.

“0.061. 0.069. 0.078마크.”

마렐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접점 열 상승이 멈추지 않아요. 표면 온도는 19.1도인데 내부 변위는 계속 올라갑니다.”

에르반은 세 번째 레버에서 손을 뗐다.

“중단한다.”

그가 차단석을 눌렀고 리에트가 두 번째 차단선을 내렸다. 마렐은 클램프를 떼지 않은 채 냉각석을 가까이 가져갔다.

고리는 폭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렐의 기록지에는 기존 계측기보다 먼저 상승한 숫자가 남았다.

리에트는 작업대 모서리를 잡았다. 머릿속에서 접지선 안쪽의 얇은 선이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리에트.”

마렐이 빵을 그녀 손에 쥐여 주었다.

“이번엔 명령이야. 먹어.”

리에트는 빵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네 이름을 장비 제공자로만 적을게.”

마렐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클램프를 잡고 영점을 맞추고 수치를 읽었어. 그런데 왜 제공자야?”

“장비를 빌려 온 건 네가 맞으니까.”

“너는 도움을 받으면 꼭 혼자 갚으려고 해. 내가 네 옆에 서 있는 시간이 전부 호의로만 남으면 다음에 또 나를 밀어낼 거잖아.”

리에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렐은 청구서가 아니라 측정지와 펜을 내밀고 있었다.

“독립 계측 담당으로 적을게.”

리에트가 말했다.

“측정값도 네 원자료로 분리하고. 다음부터는 역할표 없이 실험하지 않을게.”

마렐은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반이 역할표를 집어 들었다.

“원자료의 보관 책임은 세 사람이 나눈다. 측정지 사본은 각자 한 부씩 가진다. 누구도 혼자 원본을 수정하지 않는다.”

리에트는 펜을 내밀었다. 에르반과 마렐이 차례로 서명했고 리에트도 마지막 칸에 이름을 넣었다.

붉은 표식

냉각과 정리가 끝날 무렵 복도 밖의 창이 푸르게 밝아졌다. 아침 수업을 알리는 종이 멀리서 울렸다.

리에트는 세 사람의 기록을 맞춰 보았다. 첫 번째 펄스 뒤 마렐의 클램프는 0.037마크의 열 변위를 기록했다. 그녀의 관찰값은 0.04마크에 가까운 잔류 방향을 가리켰다. 두 번째 펄스 뒤에는 클램프가 0.078마크의 누적 열 변위를 잡았고 기존 저온계가 표면 온도를 늦게 따라갔다.

“이걸 같은 결론이라고 쓰면 안 돼.”

리에트가 말했다.

“클램프는 마력 편차를 직접 잰 게 아니야. 열 변위와 잔류 방향이 같은 시각에 반복됐다고 써야 해. 독립 계측은 한 번 끝났을 뿐이고.”

에르반은 마렐의 기록지를 자신의 노트 옆에 놓았다.

“하지만 0.05마크 미만을 자연 방전으로 처리해도 된다는 가정은 약해졌다.”

그는 마렐의 수치를 연구 자료로 받아들였다. 리에트는 그 문장을 기록부에 옮겼다.

마렐이 클램프를 보온 상자에 넣고 대여표를 펼쳤다. 장비 번호 아래에서 그녀의 손이 멈췄다.

붉은 잉크로 작은 칸이 새로 그어져 있었다.

‘야간 사용 확인.’

그 옆에는 오늘 새벽 5시 18분과 제3공명연구실의 약칭이 적혀 있었다.

“그 칸은 원래 없었어.”

마렐이 낮게 말했다.

“어제 대여표를 정리할 때는 없었어. 재료실 반납 담당 표식도 아니고.”

에르반은 대여표를 가져가 잉크의 번짐을 살폈다.

“누가 기록했는지 확인할 수 있나?”

“기록실에 가서 원본을 확인할게.”

마렐은 붉은 표식이 보이지 않도록 사본을 보온 상자 아래로 밀어 넣었다.

“이건 내가 처리하는 게 빨라.”

“혼자 가지 마.”

리에트가 말했다.

그때 복도에서 회색 조끼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는 연구실 앞에서 멈췄다.

세 사람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문 아래로 가느다란 그림자가 지나갔다. 누군가 안쪽을 확인하듯 서 있다가 뒤로 물러났다.

에르반은 봉인끈을 한 번 더 조였다. 마렐은 반납표를 품에 넣었다. 리에트는 장부의 마지막 줄에 새로운 항목을 적었다.

‘07시 02분. 독립 계측 자료 세 부 작성. 야간 사용 표식 확인. 외부 확인 필요.’

밤을 버티는 것만으로는 연구를 지킬 수 없었다. 이제는 누가 그 밤을 세고 있는지도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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