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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세계에서 생필품을 독점함4화

종말의 세계에서 생필품을 독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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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공짜의 덫

똑. 똑. 똑.

철문 너머에서 울린 소리는 얇은 배관을 타고 계산대 뒷벽으로 번졌다. 단단한 쇠판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였다.

서도윤은 장부에서 시선을 뗐다.

“민석 씨. 방금 그 소리가 무엇인지 압니까?”

접이식 의자 옆의 최민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들어올 때 뒤에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분명합니다. 괴수는 몸으로 들이받지 저렇게 끊어서 치지는 않아요.”

강해나가 방패를 세우며 일어섰다. 두 시간 동안 방어선을 지킨 탓에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문을 바로 열지는 마요.”

“열 생각 없습니다.” 도윤이 대답했다.

그때 철문 너머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이! 안에 사람 있는 거 다 안다! 빨리 문 열어!”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목소리는 거칠었다.

박정호가 질린 얼굴로 몸을 웅크렸다. 윤수민은 빈 포장지를 등 뒤로 숨겼다.

도윤은 셔터 조작봉을 쥐고 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해나가 방패로 도윤의 옆을 가렸다.

“누구입니까?” 도윤이 물었다.

“지나가는 사람이다! 배고파 죽겠으니까 당장 문이나 열어!”

“여기는 피난소가 아닙니다. 용건을 말하세요.”

“환기구로 밥 냄새 다 풍겨 놓고 시치미 뗄 셈이냐? 방금 안에서 뜨거운 밥 처먹는 소리 다 들었어!”

철문이 덜컹 흔들렸다. 사내가 문손잡이를 사납게 흔들고 있었다.

수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경비 계약 보상으로 지급된 즉석식을 나누어 준 것이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온기 띤 밥 냄새가 닫힌 문의 틈새로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혼자 다 처먹지 말고 물이랑 밥 당장 내놔!”

도윤은 철문 아래의 어둠을 응시했다.

“저희는 물건을 그냥 드리지 않습니다. 대가로 내놓을 물건이나 정보가 있습니까?”

“대가? 개소리하지 마!” 사내가 쇠붙이로 문을 쾅 쳤다. “너희들 방금 다리 저는 놈이랑 손가락 병신들한테 공짜로 밥 퍼줬잖아! 밖에서 다 보고 들었어! 걔들한테는 거저 주면서 왜 나한테만 대가를 따져?”

정호가 기겁하며 기어 왔다.

“도윤 씨, 제발요. 남은 밥 하나 던져주고 돌려보내요. 저러다 괴물들이 몰려오면 우리 다 죽습니다!”

도윤은 정호의 손을 차갑게 쳐냈다.

“한 번 공짜로 주면 물러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안쪽에 식량이 더 있다는 확신만 줄 뿐입니다. 줄 게 떨어지는 순간 저 사람은 우리 목을 조를 겁니다.”

해나 역시 방패를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 씨 말이 맞아요. 문을 열어 주면 식량을 빼앗으려 들 겁니다.”

철문 너머에서 사내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 셋 셀 때까지 문 안 열면 내가 이 쇠파이프로 배관이랑 셔터를 죄다 두들겨서 박살 낼 거다. 안쪽 괴물 놈들 죄다 이 문 앞으로 끌고 올 테니까 다 같이 뒤져 보자!”


건우가 벽을 짚으며 말했다.

“저 목소리, 오태구입니다. 대피소 입구에서 사람들 밀치고 배낭 빼앗아 달아났던 놈이에요.”

“하나! 둘!”

오태구가 소리쳤다.

해나가 도윤을 보았다. 방패를 든 팔이 미세하게 떨렸다.

“저자가 배관을 두드리면 통로 안쪽 괴수뿐만 아니라 주차장 쪽 괴수까지 반응해요. 유리벽 진열대로는 오래 못 버팁니다.”

매장에 남은 생수는 7병, 즉석식은 3개, 건전지는 2묶음뿐이었다. 자정의 보충은 하루에 겨우 한 번이었다. 지금 공포에 굴복해 즉석식을 내던지는 순간 이 매장은 협박하면 음식을 뱉는 자판기로 전락한다.

“협박에는 절대 거래하지 않습니다.” 도윤이 문을 향해 외쳤다.

“이 새끼가!”

쾅!

오태구가 쇠파이프로 철문 옆 노출 배관을 내리쳤다. 매장 천장의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쾅! 쾅!

오태구는 이성을 잃은 채 쇠파이프를 난타했다.

그 순간 통로 깊은 곳에서 울음소리가 솟구쳤다. 크르르르르. 철제 선반 아래 웅크리고 있던 검은 괴수였다. 유리벽 너머 도로 쪽에서도 긁는 소리가 빨라졌다.

“괴물이 움직여요!” 민석이 소리쳤다. “통로 선반 쪽에서 이쪽으로 옵니다!”

“셋이다! 문 열어!”

오태구는 여전히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 끝이 급격하게 뒤틀렸다. 등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그제야 눈치챈 것이었다.

찰박.

젖은 살덩이가 바닥을 짓이기며 끌려오는 소리였다. 쇳조각이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지독한 비린내가 통로를 메웠다.

오태구의 쇠파이프질이 멈췄다.

“문…… 문 열어! 살려줘! 뒤에 괴물이 있어!”

철문이 거세게 덜컹거렸다. 이번에는 협박이 아니었다. 오태구가 온몸으로 철문에 부딪히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해나가 방패를 고쳐 잡으며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의 눈빛은 차가웠다.


문밖에서는 오태구의 비명과 괴수의 거친 숨소리가 뒤섞였다. 몇 초만 지나면 괴수가 오태구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터였다.

그냥 문을 열면 오태구의 쇠파이프에 매장 안 사람들이 다칠 수 있었다.

도윤은 철문 아래 배식구 틈새를 5센티미터쯤 벌렸다. 그리고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라!”

“살려줘요! 뭐든 할 테니까 제발!”

“손에 든 쇠파이프, 지금 당장 문틈 아래로 밀어 넣어!”

“뭐라고?”

“무기를 넘기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괴물 밥이 되기 싫으면 당장 넘겨!”

통로 안쪽에서 괴수의 포효가 터졌다. 날카로운 앞발 소리가 허공을 찢었고 오태구의 바지가 찢어지며 비명이 터졌다.

“넣을게! 넣는다고!”

덜커덩!

피와 녹이 묻은 쇠파이프가 문틈 아래로 들어왔다. 도윤은 파이프를 발로 밟아 낚아챘다. 흉기가 제거되었다.

“해나 씨, 지금입니다!”

해나가 방패로 문짝을 밀며 틈을 만들었다.

“은색 선 밟고 들어와요!” 해나가 외쳤다.

오태구가 바닥을 기어 문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둠 속에서 검은 괴수의 젖은 주둥이가 번뜩였다. 앞발의 갈고리가 오태구의 발목을 낚아채기 직전이었다.

해나가 오태구의 옷덜미를 움켜쥐고 매장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도윤 씨, 닫아요!”

쿵!

도윤은 조작봉으로 철문을 힘껏 밀어붙였다.

철문이 닫히는 순간 괴수가 문짝을 들이받았다.

쾅!

철판이 안쪽으로 우그러졌다. 도윤과 해나가 온몸으로 문을 누르며 잠금장치를 걸어 잠갔다.

철문 너머에서 괴수가 발톱으로 철판을 신경질적으로 긁어댔다. 끼기긱, 끼긱. 마찰음이 이어지다 서서히 깊은 곳으로 멀어져 갔다. 소음이 잦아들자 주차장 쪽의 소리도 점차 가라앉았다.

살아남은 것이다.


매장 안에는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오태구는 바닥에 뻗어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다.

상체를 일으킨 오태구는 계산대 아래의 생수병을 보자 손을 뻗었다.

“물…… 물 좀 줘! 목말라 타 죽을 것 같아!”

그의 손이 닿기 직전 쇠파이프가 앞을 가로막았다.

탁.

도윤이 방금 압류한 쇠파이프의 끝으로 바닥을 짚고 서 있었다.

“건드리지 마세요.”

“사람 목숨 구해 줬으면 물 한 모금 정돈 줄 수 있잖아!”

정호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도윤 씨. 그래도 살아서 들어왔으니까 물 한 모금 정도는 그냥 나눠 줘도……”

도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호를 응시했다. 서늘한 눈빛에 정호는 입을 다물었다.

도윤은 계산대로 걸어가 장부를 펼쳤다. 볼펜을 쥐고 단호한 필체로 글자를 적었다.

“오태구 씨. 당신은 방금 소음을 일으켜 매장 전체를 괴수에게 노출시켰습니다. 문짝을 파손시켰고 방어 인력의 체력을 낭비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살려고 그런 건데 어쩌라고!”

“살기 위해 남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건 권리가 아닙니다.”

도윤은 장부를 오태구의 눈앞에 내밀었다.

“당신을 들인 건 무기를 넘겼기 때문입니다. 마실 물에는 값이 붙습니다.”

“값?”

“생수 반 병을 드리겠습니다. 그 대가로 배낭 안의 물품을 확인하고 통로 안쪽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진술해야 합니다. 또한 내일부터 시작되는 매장 방어 및 정리 작업에 4시간 동안 복무해야 합니다.”

오태구의 눈이 커졌다.

“물 반 병에 4시간 노동이라고? 날강도 아니야 이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쇠파이프를 돌려 드릴 테니 다시 문밖으로 나가세요.” 도윤은 철문 쪽을 가리켰다. “쇠파이프를 들고 직접 싸워서 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계약서에 서명하고 물을 마시겠습니까?”

해나가 묵묵히 방패를 세우며 오태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일말의 동정도 없었다. 한 번 물러서면 끝없이 선을 넘는 본성을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오태구는 우그러진 철문과 해나의 방패, 도윤의 흔들림 없는 눈을 번갈아 보았다.

“……서명할게. 서명하면 되잖아.”

오태구가 볼펜을 받아 들고 이름을 적었다.

그 순간 도윤의 시야에 투명한 활자들이 떠올랐다.

[계약 당사자의 동의를 확인했습니다.]

[거래가 기록되었습니다.]

도윤은 종이컵을 꺼내 생수병의 절반을 따르고 뚜껑을 닫았다. 생수는 이제 여섯 병 반이 남았다.

오태구는 게 눈 감추듯 물을 들이켰다.

도윤은 종이와 펜을 들고 오태구 앞에 섰다.

“약속한 정보를 말하세요. 통로 안쪽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오태구는 빈 컵을 쥐며 숨을 골랐다.

“별거 없어. 괴물 피해서 지하 배관실로 숨어들었는데 통로 깊은 곳에 이상한 게 있었어. 바닥에 시커먼 선이 그어져 있더라고. 그 선을 따라가니까 벽에 글씨 같은 게 빼곡하게 새겨져 있더라고. 거기서 소름 끼칠 정도로 찬 바람이 불어왔어. 무서워서 돌아 나왔는데 괴물이 쫓아온 거야.”

도윤은 장부에 그 내용을 적었다.

검은 선과 벽면의 글씨, 차가운 바람. 건우가 말했던 거래 기록 벽의 존재가 일치했다.

도윤은 볼펜을 내려놓고 매장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정호는 고개를 숙였고 수민은 빈 즉석식 봉지를 쥔 손을 떨었다. 건우와 민석 역시 굳은 표정이었다.

도윤이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똑똑히 들으십시오.” 매장 안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우리가 방금 먹은 음식 냄새를 밖으로 흘리고 아무 대가 없이 식량을 나누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바깥의 사람들에게 이곳은 손쉬운 먹잇감이 됩니다. 공짜로 베푼 선의가 약탈자를 부르고 그 약탈자가 우리 모두를 죽일 뻔했습니다.”

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베푼 호의가 어떤 재앙을 부를 뻔했는지 뼛속 깊이 깨닫고 있었다.

“앞으로 이 매장에 무상 배급은 없습니다.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도 장부에 대가를 적고 당사자가 확인해야만 내어줄 겁니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이 문 안에 머물 수 없습니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정호조차 입술을 깨물며 침묵했다.

도윤은 구석에 쌓인 골판지 상자 하나를 뜯어냈다. 계산대 위에 빳빳한 판지를 올려놓고 굵은 매직을 집어 들었다.

매장 안에 남은 생존자는 이제 일곱 명이었다.

남은 생수는 여섯 병 반, 즉석식 세 개, 건전지 두 묶음이었다.

자정의 보충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기준 없는 나눔은 파멸을 부른다. 살아남으려면 모든 물건에 명확한 교환 기준을 매겨야 했다.

도윤은 판지 상단에 굵은 글씨로 적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공식 임시 가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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