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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세계에서 생필품을 독점함3화

종말의 세계에서 생필품을 독점함

종말의 세계에서 생필품을 독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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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경비의 값

“배터리도 거래할 수 있습니까?”

철문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건우보다 젊었다. 숨은 가빴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서도윤은 계산대 아래에 쌓인 건전지 세 묶음을 떠올렸다. 하나를 잃으면 어두운 매장에서 밤을 버틸 수단이 줄어든다.

“무엇을 주실 겁니까?”

“안쪽에 비상등이 있습니다. 불을 켜면 안전한 길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 길과 사람 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강해나가 철문 앞에 선 도윤의 팔을 붙잡았다.

“먼저 문을 열지는 마요.”

“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건전지를 건네는 것도 비슷해요. 저 안에 몇 명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도윤은 철문 아래의 어둠을 보았다. 건우는 걷지 못하는 동료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동료의 이름도 상태도 말하지 않았다. 안쪽에서는 긁는 소리가 계속 났고 목소리는 하나 더 늘었다.

“이름부터 말해 주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대답이 돌아왔다.

“최민석입니다. 이건우 씨와 같이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뿐입니까?”

“네.”

“두 사람 모두 사람입니까?”

민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철문 너머에서 낮은 숨소리가 났다.

“그 질문은 거래 조건에 없잖습니까.”

“지금 조건을 만드는 중입니다.”

도윤은 계산대에서 종이를 가져와 문 아래로 밀어 넣었다.

“건전지 한 묶음의 대가는 세 가지입니다. 현재 인원과 부상 상태. 은색 표식이 이어지는 길. 비상등을 켠 뒤 보이는 위험입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확인할 수 있게 알려 주세요.”

“건전지를 먼저 주시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하면 거래가 아니라 요구입니다.”

철문 안쪽에서 손바닥이 닿는 소리가 났다.

“그럼 반 묶음만.”

“건전지는 낱개로 나누지 않습니다.”

도윤은 종이 위를 가리켰다.

“철문에서 일곱 걸음 안쪽까지 은색 선이 이어집니다. 그다음 오른쪽으로 꺾입니다. 선이 끊긴 곳에는 철제 선반이 있어요. 거기서 소리가 나면 움직이지 마세요.”

해나가 손전등을 한 번 비추자 철문 틈 안쪽에 은색 선이 보였다. 일곱 걸음쯤 이어진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첫 번째 말은 맞네요.” 해나가 말했다.

“건우 씨는 다리를 못 씁니다. 저는 걸을 수 있습니다. 대신 왼쪽 손가락 두 개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민석의 말이 끝나자 철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바닥을 긁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해나가 방패를 세웠다.

“저게 동료입니까?”

“아닙니다.”

도윤은 종이에 적었다.

두 사람. 한 명은 보행 불가. 한 명은 손 부상. 안쪽에 정체를 모르는 움직임.

“건전지를 드리겠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표식이 끊긴 곳까지 확인하세요. 확인한 내용을 모두 말하면 거래가 끝납니다.”

“그 뒤에 구조해 줄 겁니까?”

“구조는 별도입니다.”

민석이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을 꺼내는 데도 값이 필요합니까?”

“제가 가진 건전지와 식량도 누군가의 목숨을 걸고 가져온 물건입니다. 구조할 사람을 정하려면 방어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해나가 도윤을 바라보았다. 화가 난 눈이었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도윤은 계산대에서 즉석식 두 개를 가져왔다. 포장지를 본 정호가 침을 삼켰다. 수민은 장부를 펼쳤다.

“그건 누구에게 줍니까?”

“경비 계약의 대가입니다.”

해나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지키면서 음식값을 받지는 않았어요.”

“보상이 없으면 다음 사람이 문을 지키지 않습니다. 선의만으로 버틴 보호는 나중에 빚이 됩니다.”

해나는 정호의 붕대 감긴 팔을 보았다. 정호는 바닥의 병뚜껑을 주워 들고 있었다.

“조건을 말해 봐요.”

“두 시간 동안 철문과 비상 출입구를 지킵니다. 위험이 생기면 매장 안 사람들의 대피 순서를 정합니다. 역할을 끝내면 즉석식 두 개를 팀 보급으로 드립니다.”

“팀이라고 부를 사람은 아직 많지 않아요.”

“그래서 수민 씨가 재고와 부상자 기록을 맡고 정호 씨는 창고 통로를 치웁니다. 해나 씨가 경비를 맡으면 세 사람이 계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호가 팔을 들어 보였다.

“난 팔을 다쳤습니다.”

“들 수 있는 양을 정하면 됩니다. 완료 여부만 확인하겠습니다.”

해나는 종이를 당겼다.

“경비 실패로 식량을 빼앗지는 마요. 위험 때문에 역할을 못 끝내면 다음 교대로 넘기고 보상은 보류합니다.”

“동의합니다.”

해나가 서명하자 도윤의 시야에 흰 문장이 떠올랐다.

[계약 당사자의 동의를 확인했습니다.]

도윤은 문구를 숨기듯 종이를 접어 장부 사이에 넣었다.

“이제 건전지를 거래하겠습니다.”

도윤은 계약서에 적힌 역할을 다시 읽었다. 물건을 내놓는 순간부터 구조는 모두의 책임이 된다. 누구 하나가 규칙을 잊으면 문턱 자체가 위험해진다.


해나는 철문 옆에 방패를 세웠다. 수민은 창고 문을 닫았고 정호는 발로 빈 상자를 밀어 통로를 막았다.

“문은 다섯 센티미터만 엽니다. 손이 보이지 않으면 건전지를 밀지 않겠습니다.”

철문이 조금 열렸다. 젖은 콘크리트와 쇠 냄새가 흘러나왔다. 민석의 손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손가락 두 개가 굳어 있었고 손등에는 검은 가루가 묻었다.

도윤은 건전지 한 묶음을 손 앞에 밀었다. 민석이 봉지를 잡고 뒤로 물러나자 안쪽에서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

비상등이 붉게 켜졌다.

빛이 은색 선을 따라 번졌다. 철문에서 일곱 걸음 떨어진 곳에 선반이 나타났다. 선반 아래에는 검은 몸통이 웅크리고 있었다. 몸의 윤곽은 빛이 닿을 때마다 잘렸다가 이어졌다.

해나가 방패를 들었다.

“건우 씨는 어디 있습니까?”

“선반 뒤입니다.”

도윤은 철문 틈으로 손 하나가 바닥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이건우가 가진 철제 열쇠가 쇠바닥에 부딪히고 있었다.

해나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내가 들어갑니다.”

“선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알고 있어요.”

해나는 은색 선 위에 한 발을 놓았다. 괴수의 몸이 앞으로 밀려왔지만 선반 앞에서 멈췄다.

도윤은 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닫으면 해나와 두 사람을 안쪽에 남긴다. 열어 두면 괴수가 선을 넘어올 때 매장 안으로 바로 이어진다.

“도윤 씨.”

해나가 부르는 순간 괴수의 앞발이 선이 끊긴 바닥을 긁었다.

해나는 건우의 팔을 잡아당겨 판자를 다리 아래에 밀었다. 건우가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였다. 민석은 비상등을 바닥으로 낮춰 표식이 이어지는 방향을 비췄다.

“왼쪽으로 두 걸음. 그다음 뒤로 한 걸음입니다.”

건우의 판자가 선 위를 긁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괴수의 머리가 그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한 명씩.”

해나는 건우를 철문 앞까지 끌어왔다. 도윤은 계산대 옆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그를 받쳤다.

민석이 뒤를 돌아보았다. 괴수가 선반 아래에서 몸을 낮추고 있었다. 은색 선은 다시 끊겨 있었다.

“민석 씨!”

민석은 눈을 감고 해나의 목소리를 따라 한 걸음씩 움직였다.

도윤은 문틈을 넓혔다. 괴수가 고개를 들어 그를 향했다. 움직임을 쫓는다는 해나의 관찰이 맞다면 지금 자신이 가장 위험한 미끼였다.

그는 빈 캔을 철문 반대편으로 굴렸다.

캉.

괴수가 고개를 꺾은 사이 민석이 마지막 선을 건넜다. 해나는 그를 문턱 안으로 밀었다. 도윤은 즉시 철문을 닫았다.

괴수의 앞발이 틈을 긁었지만 문은 끝까지 닫혔다.


철문을 닫은 뒤에도 해나는 방패를 내리지 않았다. 시계가 새벽 두 시를 넘길 때까지 그녀는 비상 출입구와 철문 사이를 오갔다. 수민은 물자와 부상 상태를 기록했고 정호는 한 손으로 옮길 수 있는 상자를 통로에 세웠다.

누군가가 움직일 때마다 해나는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밖의 괴수는 두 번 유리벽을 긁었지만 캔을 굴린 뒤에는 물러났다.

두 시간의 첫 교대가 끝났다.

도윤은 장부의 계약란에 완료 표시를 했다. 흰 문장이 시야 아래에 나타났다.

[거래가 기록되었습니다.]

[계약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도윤은 즉석식 두 개를 꺼내 수민에게 건넸다.

“팀 보급입니다. 나눠서 기록해 주세요.”

해나가 하나를 다시 밀었다.

“부상자부터 주세요.”

“계약에는 팀 보급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도윤은 장부를 확인했다. 해나의 서명 아래에는 정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수민은 포장을 뜯어 건우와 민석에게 먼저 나누었다. 정호도 한 숟갈을 받아 들었지만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이걸 먹으면 또 경비를 해야 합니까?”

“다음 교대는 새 계약입니다.” 해나가 말했다. “먹고 쉴 권리는 따로 있어요.”

도윤은 그 말을 장부에 적었다. 계약이 보상만 묶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선택의 경계도 만든다는 사실이 새삼 선명해졌다.

건우가 접이식 의자에 기대어 손을 들었다.

“안쪽에 표식이 아닌 선이 하나 더 있습니다.”

“검은 선입니까?” 해나가 물었다.

건우의 표정이 굳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차장 문까지 이어집니다.” 건우가 말했다. “그 선을 따라가면 거래 기록이 적힌 벽이 나옵니다.”

철문 너머에서 노크가 울렸다.

똑. 똑. 똑.

이번에는 계산대 쪽을 향한 소리였다.

민석이 낮게 말했다.

“저건 우리 목소리가 아닙니다.”

도윤은 장부를 덮었다. 해나는 방패를 들고 철문과 주차장 문을 번갈아 보았다.

두 시간 교대는 끝났지만 다음 거래의 상대는 이미 장부 앞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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