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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가족 상담실의 빈 의자2화

피해자 가족 상담실의 빈 의자

피해자 가족 상담실의 빈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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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같은 사건을 가리킨 세 문장

상담실 복도 영상에는 빈 의자만 찍혀 있었다. 누군가 메모를 놓은 시간대에 문은 열리지 않았고, 복도도 비어 있었다. 임나래는 영상의 사각에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고서에 남겼다. 카메라가 움직임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윤미숙은 그날도 문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이번에는 빈 의자 위에 손수건을 놓았다. “그 자리에 누가 앉았으면 해서가 아니에요. 내가 말을 멈춰도 누가 듣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해요.”

나래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수건을 그대로 두었다. 상담은 사건 기록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미숙은 동생의 기일이 지나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아 가족들에게 괜찮은 척하는 일이 힘들다고 했다. 나래는 가족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미숙은 “모른다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기억을 다 갖고 있지 않다고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말하면 가족들이 실망할까요?”

“다들 제가 사건을 제일 잘 기억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틀리면 동생을 배신하는 것 같고요.”

“기억이 다르다는 게 사랑을 덜 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미숙은 손수건을 빈 의자에서 자기 무릎으로 옮겼다. 그녀는 동생과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 들은 말이 ‘그 사람은 아니야’였다고 다시 말했다. 하지만 누구를 가리키는지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나래는 그 요청을 존중하고, 상담 기록에는 사건 문장을 적지 않았다.

오후에는 서은별의 동의 아래 법률지원 담당 박진호와 세 사람이 함께 만났다. 은별은 언니가 남긴 메모를 경찰에 제출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메모에는 ‘그 사람은 아니야’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작성 시각은 사고 당일이었지만, 언니의 글씨인지 확정할 수 없었다.

“이걸 내면 누군가를 무고하게 만들 수 있나요?” 은별이 물었다.

진호는 문장 하나만으로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고, 원본과 작성 경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제출을 강요하지 않았고, 법률 상담을 거쳐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은별은 메모를 경찰에 바로 내지 않고, 먼저 사건 담당 형사에게 확인할 질문을 정리하고 싶어 했다.

나래는 상담의 목적을 다시 확인했다. 사건 정황을 조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은별이 어떤 선택을 할지 정리하는 자리였다. 은별은 “제 말이 언니의 말로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래는 진술이 아니라 본인의 기억으로 전달되도록, 진호가 별도 제보 절차를 안내해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 상담 기록은 경찰에게 가지 않나요?”

“동의 없이 제공하지 않습니다. 오늘 정한 내용 중 사건 관련 부분은 상담기록에 넣지 않겠습니다.”

은별은 서명란을 읽고 천천히 이름을 썼다. 그 뒤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언니의 메시지를 보여 줬다. 마지막 메시지는 사고 이틀 전, “목요일에 그 사람을 만나지 마”였다. 상대 이름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은별은 이 문장을 경찰에게 보여 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제가 이걸 보여 주면, 그 사람을 찾을까요?”

“수사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어요. 당신이 제출 범위를 선택할 수 있는지 진호 씨와 확인해 보죠.”

은별은 화면을 닫았다. 언니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이 읽게 하는 일이 두려웠다. 진호는 그 마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원본은 보존하고, 사본만 제한적으로 제출하는 방법을 문의할 수 있어요.”

상담실 밖에서 진호는 나래에게 말했다. “세 문장이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 것 같아요. 미숙 씨와 은별 씨가 말한 문장, 그리고 익명 메모.”

“그 연결은 아직 우리 쪽에서 하면 안 돼요. 내담자 동의 없이 한 사람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줄 수 없습니다.”

“경찰이 오래된 사건을 다시 열 수도 있습니다.”

“그럴 정보가 있다면 본인이 제보하도록 돕는 게 우리의 역할이에요. 상담 관계를 자료로 쓰면 안 됩니다.”

진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자기 사무실로 돌아가며 은별이 제보를 원하면 상담에 동석하겠다고 했다. 나래는 그 약속을 기록하지 않고, 필요한 경우 은별에게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그날 저녁, 경찰 형사 김하람이 센터를 찾아왔다. 그는 오래된 미제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새로운 제보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나래는 특정 내담자의 상담 내용은 확인할 수 없고, 센터가 가진 익명 메모는 별도 위험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하람은 상담실 문을 바라보며 “그 문장만 대조하면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 알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래는 그가 정보를 얻으려는 마음을 이해했지만, 내담자의 말을 대조하는 순간 상담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외부에 드러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람은 “우리는 피해자 가족을 보호하려고 하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저도 그분들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 방법이 다를 뿐이에요.”

하람은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럼 익명 메모는요? 상담 기록이 아니잖습니까.”

“센터 공간에서 발견된 문서라 별도 보관합니다. 위협이나 긴급 위험이 있는지는 검토하지만, 내용을 수사에 넘길지 결정하려면 작성 경위와 권한을 확인해야 합니다.”

“누가 작성했는지 모르잖아요.”

“모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작성자가 내담자일 수도 있고, 직원일 수도 있고, 외부인일 수도 있어요.”

하람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미제 사건을 맡은 뒤 가족들의 진술을 다시 확인해 왔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유족의 시간이 또 길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래는 그를 문 앞까지 배웅하고, 공식 제보를 받는 담당자 연락처를 센터 입구 안내함에 추가했다.

진호는 상담실로 돌아와 “하람 형사가 말한 걸 은별 씨에게 알려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나래는 먼저 은별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진호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그녀가 다음 상담에 올 때 직접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 다음 주 은별은 센터에 다시 왔다. 그녀는 경찰서에서 자신의 기억을 진술했고, 언니 메시지의 내용은 제출하지 않았다. 경찰은 진술 내용을 확인하겠다고 했지만, 후원자 이름과의 관계는 알려 주지 않았다. 은별은 그 사람을 직접 만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제가 이름을 말했으니 이제 경찰이 알아서 하겠죠?”

“수사 진행은 경찰이 결정합니다. 연락이 오면 당신이 응답할지 다시 선택할 수 있어요.”

은별은 상담실 빈 의자를 벽 쪽으로 돌렸다. 오늘은 문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래는 의자를 옮겨도 되는지 물은 뒤, 은별이 스스로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언니에 관한 질문을 상담에서 다루지 않고, 진술 뒤에 잠을 잘 수 없었던 밤을 이야기했다.

“말하고 나니 가벼울 줄 알았는데, 이제 제 말이 기록에 남았어요.”

“그 기록은 당신이 제출한 진술입니다. 상담 기록과는 별개로 관리됩니다.”

은별은 그 차이를 확인하고서야 손을 폈다. 그녀는 상담을 마칠 때까지 휴대전화를 꺼 두었다. 나래는 그 행동을 선택으로 존중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앉아 있다가 예약된 시간이 끝나기 전에 상담실을 나섰다.

하람은 “상담기록을 달라는 게 아닙니다. 같은 문장이 있는지 확인만 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 확인 자체가 상담기록을 열람하는 겁니다.”

하람은 한숨을 쉬었다. “사건이 묻힐 수도 있어요.”

“내담자가 원하면 제보 절차를 안내하겠습니다. 지금은 동의가 없습니다.”

하람은 더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피해자 가족이 직접 경찰서에 올 수 있도록 연락처와 담당 시간을 남겼다. 나래는 그 자료를 공개 상담실 안내함에 두었다. 특정 내담자에게만 건네지 않았다.

미숙은 그 안내문을 보고도 가져가지 않았다. “저는 아직 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요.”

“괜찮아요.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은별은 반대로 안내문을 가져갔다. 그녀는 경찰서에 직접 가서 자신이 기억하는 내용을 말해 보겠다고 했다. 다만 언니의 메시지는 당장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본인의 증언과 언니의 기록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밤이 되어 센터 문을 닫을 때, 나래는 빈 의자를 상담실 안쪽으로 옮겼다. 복도에 놓인 종이 메모는 없었다. 대신 상담 예약 명부의 마지막 줄에 ‘익명 방문’ 표시가 하나 생겨 있었다. 방문자는 10분 동안 센터 로비에 머물렀고, 상담실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 시간은 영상 속 빈 복도와 겹쳤다. 누군가 상담실 문을 열지 않고도 메모를 넣을 수 있었을까. 나래는 문 아래 틈을 확인했다. 종이가 들어갈 정도의 틈은 있었지만, 메모에는 접힌 자국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세 번째 문장이 도착했다. ‘그날 목요일에는 세 사람이 같은 문 앞에 있었습니다.’

나래는 메모를 별도 봉투에 넣었다. 첫 메모와 같은 글씨였다. 하지만 상담에서 들은 말과 연결된다는 이유만으로 작성자를 찾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센터장에게 안전 검토를 요청하고, 상담실 접근을 예약자만 가능하게 바꾸기로 했다.

그때 은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경찰서에 도착했지만, 접수한 이름이 언니의 사건 기록에 이미 있었다고 했다. 그 이름은 오래전 조사를 받았던 사람이 아니라, 현재 피해자 지원센터의 후원자 명단에도 올라 있었다.

나래는 후원자 명단을 출력하지 않았다. 이름이 상담기록과 연결되는 순간, 보호해야 할 사람을 먼저 의심하게 될 수 있었다. 그녀는 경찰에 확인 요청을 넘기고 상담실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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